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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윌리엄 필립스 박사

창의적 사고의 핵심은 어렸을 때의 경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에 대해 어린이들은 '왜?'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입을 다물고 무감각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한다. '과학은 너무 어려워!' 과학은 정말 어려운 것일까. 이에 대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울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한국원자력연구소와 제원호(서울대 물리학과)교수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11월1-7일)한 윌리엄 필립스 박사(50).


윌리엄 필립스 박사
 

원자포획 설명한 떠있는 팽이

필립스 박사는 원자를 냉각해 원자의 속도를 감속시키는 연구를 해낸 공로로 스티븐 추(스탠버드대), 클로드 코엔 타누지(프랑스 고등 사범학교)와 함께 199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했다. 지난 8월 APEC 청소년 과학축전 때 방한한 추교수 연구와의 차이점에 대해 "추교수 는 광학적인 방법으로만 원자를 냉각했지만, 나는 레이저로 원자를 냉각시킨 후 이 원자를 포획한 상태로 머물게 하기 위해 자기장을 이용한 것이 다르다"며 "물론 이 방법이 발표된 후에는 대부분의 실험실에서 원자를 레이저로 냉각하고 자기장을 이용해 포획했다"고 설명 했다.

또 "최근에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초전도체의 자기장을 이용해 지금껏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분자포획의 문을 연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며 "미래에는 DNA같은 생체 분자도 자기장을 이용해 손상시키지 않고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면서 자기장을 이용해 진공상태의 원자를 포획하는 현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레비트론 이라는 장난감을 보여줬다. 자석이 들어있는 상자 위에서 회전시킨 작은 자석 팽이는 공중에 떠있었다. 즉 회전하는 작은 팽이는 스핀을 갖고 있는 원자인 셈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원자가 자기장 속에 갇힌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팽이를 공중에 떠있게 만드는 것이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상자의 수평이 맞지 않으면 팽이가 자꾸 한쪽으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팽이가 날아간 방향을 보고 어느 부분의 수 평이 맞지 않는가 생각하면서 작은 나무조각들로 수평을 맞춰야 한다. 또 팽이의 무게도 조 절해야 한다. 이것을 시종 미소와 함께 진지하게 보여준 필립스 박사는 "일반인들이나 어린 학생들을 위해 어려운 과학의 원리를 시범을 통해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기쁘다"면서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시범이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으로만 기억되기를 바라지는 않 는다"고 강조했다. 즉 재미있는 시범 뒤에 숨어있는 과학적 원리를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는 말이다.

현미경으로 본 신세계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다는 그는 5세 무렵 아버지가 사다주신 현미경으로 유리조각, 나뭇잎, 머리카락 등 집안팎에 있던 모든 것을 보면서 가졌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은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고 한다. 중학교 이후 물리학 공부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물리학이 화학이나 생물학보다 자연세계를 보다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해줬기 때문이라 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많은 학생들이 물리를 가장 어려운 학문으로 여긴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동트기 전에 가장 어둡다'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직전의 시련과 고통은 있기 마련 이라고 강조했다. "무엇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어려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신념 과 용기가 생기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늘 어렵다고만 말하게 된다. 과학이나 물리를 어렵 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번 곱씹어 볼만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 노벨상은 창의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일궈낸 사람에게 주어 진다. 창의적 사고라면 과학자나 과학교육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 으로 어떻게 가르쳐야 하고, 어떤 것이 창의적 사고라고 말할 수 있는 정형화된 예도 없다. 이에 대해 필립스 박사는 창의적 사고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렸을 때의 경험이라 고 말한다.

"무엇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보다 주변 사물에 호기심을 느끼고 그 호기심을 해 결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 과정에서 창의적 사고가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것 이다. 진흙을 가지고 배모양, 공모양을 만들고, 시계를 보면서 그 안이 어떻게 돼 있을까 궁 금해 뜯어보는 것, 나무 위에 올라가 나무 아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쳐다보는 것 등 이 우리의 사고를 풍족하게 해준다"

목수가 연장 탓하는 일 없어야

그는 다른 노벨상 수상자들이 대학에서 연구를 했던 것과는 달리 오랫동안 국립표준과학연 구소(NIST)의 연구원으로 있다. "대학 교수를 왜 안했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답이 나왔다. 제안이 있었던 대학이 가족과 멀리 떨어져야 하는 곳이라서 그랬다는 것이다. 현재 NIST 연구원이면서 메릴랜드 대학 겸임교수인 것은 가족과 같이 지낼 수 있는 조건이어서 받아들 였다. 인생에 있어 연구도 중요하지만 가족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강조한 노벨상 수상자의 모습에서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뿐더러 노벨상을 받은 주제의 동기를 얻고 이를 해결하게 된 국립 표준과학연구소에 감사한다, 연구소의 연구 여건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한가지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연계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연구하는데 절대적인 장소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환경탓만을 하는 연구자들에게 뼈아픈 말이다.

필립스 박사는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열리는 제6회 레이저 분광학 심포지엄에서 원자를 냉각시켜 포획해 온 역사를 얘기하고, 광핀셋을 이용해 기체상태의 원자를 규칙적으로 배열시키는 자신의 최근 연구를 발표했다. 또 서울대에서도 전문가를 위한 한림석학강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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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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