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제외하고는 온몸이 긴 털로 덮여 있어 「작은 사자」같은 우리의 삽사리는 이제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삽사리는 동양권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외모와 성품을 지닌 우리 고유의 토종개로서 조상들의 정감에 밀접히 연루되어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일부이다. 최근 서양문물의 급격한 도입과 더불어 유래한 외국가축에 대한 선호의식은 우리 토착 가축들의 멸종 및 변종화를 초래하였으며, 이 같은 역사적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 땅의 삽사리도 빠른 속도로 멸종의 운명을 맞을 뻔 했다.
●- N계열 유전자에 의해
온 몸이 긴 털로 덮여 있는 삽사리는 색조에 따라 청삽사리와 황삽사리로 대별된다. 청삽사리의 경우 태어났을 때는 짙은 흑색, 황삽사리는 담황색을 띤다. 생후 4∼6개월 경부터 털갈이를 시작하는데 털갈이를 마치면 털색이 바뀐다. 청삽사리는 검은색의 긴털에 옅은 회색털이 적절히 배합되어 흑청색 또는 흑회색을 띠게 되며 황삽사리는 황색털에 회색과 갈색털이 고루 배합되어 농황색 또는 황금색조를 보인다. 이 같이 특이한 색조의 배합의 의한 청과 황의 구분은 개에서는 거의 연구된 바 없는 N계열 유전자의 관련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의 긴털 개로는 페키니스와 찡이 있는데 모두 소형견이며 납작한 얼굴을 가지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코만 제외한 온 얼굴을 덮고 있는 긴털을 지닌 삽사리는 마치 사자와 같은 야성적 외모를 연출한다. 티벳라마승들에 의해 승원에서 보호되어 혈통을 보존해 올 수 있었던 티벳탄테리어만이 외형상 삽사리를 닮은 유일한 동양견종이다.
몸집이 큰 황삽사리는 점잖고 대국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데 비하여 대부분의 청삽사리는 대담하고 투지가 강하다. 특히 쉽게 새로운 주인에게 적응하는 타견종들과는 달리 어릴 때 정을 준 한사람의 주인을 오래 기억한다. 뿐만 아니라 참으로 충직한 성품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오고 있다. "한번 정을 준 옛 주인을 못잊어 해질녁이면 둥구밖까지 나가서 주인을 기다리는 삽사리"에 대한 구전은 삽사리의 성품을 단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삽사리의 이러한 정신적 기질이 우리 선조들로 하여금 삽사리를 무척 사랑하게 했을 것이다. 선조들의 애환이 들어 있는 많은 민속자료에 자주 등장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리라. 삽사리의 성품에는 강한 투지와 야성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다분히 동양적이며 명상적이고 한국적이다.
삽사리가 언제 어떠한 경로를 통해 한반도로 들어왔으며 반도의 남쪽지방에 서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헌적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삽사리라는 고유의 이름과 우리의 언어 속에 널리 쓰이고 있는 삽사리 방(尨)이라는 한자 어휘만 보더라도 삽사리는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 깊이 연루된 순수한 우리의 토착견임을 말해주고 있다.
삽사리는 주로 경주지방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경주지방에는 삽사리와 관련된 구전(口傳)이 많다. 김유신장군이 싸움터에 삽사리를 군견으로 데리고 다녔다는 월성군 건천지방의 구전이나, 통일신라가 망하면서 그 동안 왕궁에서만 길러지던 삽사리가 민가로 흘러나왔다는 경주지방의 구전이 삽사리의 분포와 잘 일치하고 있다. 이는 삽사리의 신라시대 유래설의 신뢰도를 크게 높이는 증거로 믿어진다.
●- 민간 외교관으로도
이 땅에서 오랫동안 서식해온 우리의 삽사리는 최근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거의 멸종단계에 이르고 있다. 삽사리에 대한 최초이자 유일한 과학적 연구를 행한 바 있는 경북대의 김화식 탁연빈교수의 연구논문에 의하면 20년전 국내 생존 삽사리는 50마리 정도였다고 한다. 두 교수는 이들중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지는 30마리를 수집, 전염병에 대한 저항성, 체형과 성품에 대한 연구를 행했다.
이때 수집된 30마리의 삽사리는 연구가 끝난 뒤 하성진교수에 의해 20년간 보존, 번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명의 선견지명있는 애견가들의 노력에 의해 발굴·보조된 삽사리는 현재 40여마리가 있으며 이들을 기초로 하여 삽사리 품종의 재창출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여러 분야애서 국제무대로 발돋움하는 이때,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만한 단 한 종류의 토착 품종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개는 모른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애완동물로서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뛰어난 민간 외교관으로서 큰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좋은 대상이다. 가까운 일본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토종개를 수없이 선보이고 있다. 예컨대 아끼다견 도사견 찡 일본스피츠 시바견 등 이루 헤어릴 수 없이 많다.
삽사리는 우리가 보존하고 개량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유전자 자원으로서 육종과학자 과학정책입안자 문화재 관리요원들 뿐만 아니라 한국이인이면 누구나 관심을 기울여야 할 우리 모두의 자산인 것이다.
●- 우열을 가르는 기준
삽사리에 혈통고정과 이에 따르는 현대화 작업은 고래의 문헌탐색과 최첨단의 유전공학적 연구방법의 접목을 통해 이루어야 할 우리시대의 대단히 흥미로우며 소중한 과제로 여겨진다.
먼저 삽사리에 대한 체형과 성품의 원형을 오래된 민화 구전 가사 등에서 찾아야 한다. 또 현존하는 삽사리에서 발현된 외형적 성품적 특징의 진수를 읽어냄으로써 삽사리 육종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
현재 살아 있는 삽사리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형질을 최대한 발굴키 위해 집단내 교배를 통한 대량번식을 유도함으로써 형질의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혈통의 계통을 세우기 위한 이 같은 정지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야 엄격한 기준의 설정과 취사선택을 통해 혈통고정이 행해질 것이다.
삽사리를 평가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전체 외관(60%)이며 색조 균형 두상 꼬리모양 등을 고려한다. 성품(40%)에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데 대담성 기민성 강인성 사회성 영리함 등이 삽사리의 우열을 가른다.
●- 균형이 잘 잡힌「털 복숭이」
온몸이 긴털로 덮혀 있는 삽사리는 몸높이와 길이의 균형이 잘 잡힌 중형견이다. 몸통은 가슴부위가 배부위에 비하여 더 발달되어 있다.
파상모 혹은 직모로서 온몸을 덮고 있는 삽사리의 긴털들은 코를 제외한 온 얼굴을 덮고 있다.
머리는 크며 아래위 턱이 비교적 짧다. 긴털로 인해 눈이 항상 가려져 있으나 기만하고 대담한 느낌을 준다. 양쪽 귀는 옆으로 처져 있으나 긴털로 인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치아는 강건하며 견치가 큰 것이 특징이다.
긴털로 인해 꼬리는 부채모양이며 위로 들린다. 선꼬리 말린꼬리가 있으며 회전 및 정지운동 조절에 적당한 크기이다..
삽사리 체질의 강인함은 탁월하다. 개의 치명적인 질환인 견온열과 전염성 간염에 대한 저항성의 정도를 조사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폐사율(32%)이 타견종에 비하여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염병에 대한 저항성이 강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
사육경험에 의하면 삽사리는 다른 수입 외국견종에 비해 쉽게 기를수 있으며 다 자른 뒤에는 병으로 죽는 예가 거의 없었다. 혹한과 혹서에 견디는 능력도 대단해서 어떠한 환경에도 잘 적응한다. 이 같은 강인함은 우리 강토에서 오랫 동안 길들여짐으로써 얻어진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