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이래로 생물학의 큰 지주가 되어 왔던 진화론이 80년대에 이르러 흔들리고 있다. 공룡의 사인(死因)을 분석한 일부 고생물학자들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변혁론이라 불리우는 반(反)진화론의 요체는 생물이 빠르고, 급작스럽고, 예측할 수 없고, 결코 반복하지 않는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
점진주의를 극본하고…
지질학에 진화론을 도입한 학자는 다윈의 친구였던 '찰스 라이넬'. 라이넬은 그의 저서 '지질학 원리'에서 지구는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변화하며, 그 변화는 축적된다고 서술했다. 아무튼 그의 점진주의는 19세기를 풍미하고,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라는 표현은 모든 발전의 보편적인 원리로 통용되었다.
점진주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학설은 큰 사건의 결과로 급작스럽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대변혁론.
그러나 점진주의 '일방우세'속에 세월은 흘러갔다. 1세기가 지나도록 점진적 변화는 과학적 신념으로 굳어져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믿음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1980년부터이다. 이 변환은 실로 극적인 것이었으며 자연 변화의 본질문제까지 다루었다. 게다가 새롭고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80년대 대변혁론의 특징은 '과학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는 데 있다. 특히 생물의 멸종과 탄생에 관한 연구에서 많은 증거물을 얻어 냈다. 즉 화석을 통해 생물의 명멸이 급작스럽고 빠르게 이뤄졌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흔히 지질시대를 3단계로 나누고 있다. 약 5억7천만년 전의 고생대, 2억2천5백만년 전의 중생대, 6천5백만년 전의 신생대로 분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각 단계가 시작하기 직전에 한 생물종의 대량멸종과 다른 생물종의 번성이 교차했다. 예컨대 고생대 직전 이른바 '캠프리아 대폭발'에 의해 지금의 다세포생물의 기본구조를 지닌 생물이 탄생했다. 이들은 중생대가 시작될 무렵에 있었던 '페름기의 대재앙'에 의해 멸종했는데, 페름기에는 바다속에 사는 무척추생물의 95%가 일시에 사라졌다. 또 중새대 말 백악기 때에는 공룡이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포유류가 황금시대를 맞게 되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루이스 알바레스'는 9년 전 놀라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아들이며 지질학자인 '월터 알바레스', 지구화학자인 '프랭크 아사로' '헬렌 마이클'과 함께 백악기의 대멸종은 소행성의 충돌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 직경이 약 5마일이나 되는 거대한 소행성이 지상에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두꺼운 먼지구름이 지구대기를 덮었기 때문에 광합성조차 어려웠다는 것이 학설의 핵심이다.
그러나 알바레즈의 가설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 초신성, 태양의 플레어, 혜성의 충돌과 같은 대변혁설의 단골 메뉴를 사용하지 않았기때문.
하지만 알바레즈의 주장이 대변혁론을 과학적인 것으로 끌어 올렸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명백한 증거를 통해 차근차근 자신의 가설을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외계원소인 이디륨을 통해
알바레즈의 이론은 지구상에서 매우 드문 원소인 이디륨(Ir)이 대멸종기였던 백악기의 지층에서 잘 발견된다는 데 근거하고 있다.
지난 80년대에 세계 각국의 지질학자들은 알바레즈의 주장이 옳은지 여부를 박히기 위해 자국의 지층을 조사했다. 그 결과 거의 예외없이 멸종기간과 이리듐이 풍부한 지층의 연대가 일치함이 드러났다. 동시에 화산폭발과 관계깊은 마그마에도 이리듐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래서 한때 작은 혼란이 야기됐다. 이리듐은 외계에서 온 것인가, 화산폭발에 따른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의문은 곧 풀렸다. 외계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정된 것이다. 충격의 결과, 높은 압력을 받아 생긴 석경이 이리듐 함유지층 근처에서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변혁설이 새롭게 대두된 것은 분명하나, 아직도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지구는 다세포생물이 등장한 이래 5차레의 대멸종기와 수십차례의 소멸종기를 맞았었다. 그렇다면 알바레즈의 이론은 백악기사태라는 특별한 사건에만 적용되는 특수이론인가, 아니면 모든 사건을 설명해주는 일반이론인가? 또 대멸종은 불규칙적인가, 아니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인가? 화석을 통해 산출한 통계적인 분석에 따르면 대멸종은 2천6백만년을 주기로 일어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자료는 주기설의 손을 들어주기에는 너무도 빈약하다.
금년 3월23일. 직경이 1.5마일 쯤 되는 소행성이 지구를 살짝 스치듯이 지나갔다. 그 간격은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보다 2배 정도 먼 50만마일 정도였다.
미국의 저명한 운석학자인 '유진 슈마커'는 이 소행성이 지구와 정면충돌했을 때의 충격이 대략 2만메가톤의 수소폭탄의 위력과 맞먹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과학사학자인 '우르슐라마빈'은 충격설이 대륙이동설이나 판구조론보다 더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주장한다. 판구조론도 기실 라이넬의 점진주읠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부추긴 것이다.
고생물학 지질학 분야가 80년대에 이룩한 큰 발견으로는 흔히 2가지를 꼽는다. 물론 핵심은 대변혁론의 화려한 재등장이다.
첫째는 캠프리아대폭발 이전의 선조(?)들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생물의 역사의 약 5/6를 차지하는 단세포생물의 자취가 발견된 것이다. 이로써 고생물학의 범위가 대략 35억년전으로 확대되었다. 에디아카라(Ediacara)류라고 불리우는 이 단세포생물들은 80년대 이전까지만해도 캠브리아대폭발 이후의 생물의 형태를 보여주느 모델로 여겼다.
즉 생물의 원조라는 얘기인데, 이는 점진주의의 시각에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에디아카라류를 연구한 학자들은 현재의 생물과는 무관함을 지적한다. 에디아카라류와 다세포생물은 완전히 별개의 생물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캠프리아대폭발 규모와 범위에 대해 파악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성과는 캐나다 학자들이 버지스 세일(Burgess Shale)을 연구하면서 얻어졌다.
1971년에 연구를 시작해 1980년대에 가서야 완성한 이 작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부드러운 몸을 지닌 버지스 세일은 캠브리아대폭발 직후에 지구상에 나타났다. 처음 발견된 것은 1909년이었는데, 당시 과학계를 주도하던 점진주의에 입각, 현대 생물들의 원조중 하나라고 소개되었다. 물론 이 평가는 80년대에 와서 크게 수정되었다.
급하고 빠르게 예측키 어려운 대변혁론은 점진주의처럼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자연은 그 방법으로도 변화하고 있다.
수학에 있어서도 80년대에 대변환론적인 사고가 크게 유행했다. 대파국(catastrophe)이론 분기론(bifurcation) 프랙탈(fractal)이론 혼란(chaos)이론 등이 선보여 빠른 변화들을 수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