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한글' 우리는 이 한글을 아름답고 보기좋게 다듬는 작업을 소홀히 해오지 않았던가.
한글학자 한갑수씨는 일찌기 한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세계 1백71개 국가중에서 고유의 글자를 가진 나라는 56개 나라에 불과하고 1백15개국은 자기나라 문자가 없으니 우리민족은 긍지를 가져야 한다. 더구나 우리 한글은 지구상의 글자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인 음소(音素)문자이니 더욱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대개 문자의 형성과정을 보면 ①기억방조(記憶傍助) ②그림(회화문자) ③상형문자 ④음절문자 ⑤뜻글자 ⑥음소문자 등 6단계로 발전돼 왔는데 한글은 처음부터 음소문자로 만들어져 선진국의 언어학자들도 놀라고 있는 것이다. 음소란 더이상 나눌수 없는 최소한의 음운단위(자음 또는 모음)를 말한다.
바로 이러한 우수한 한글이 만들어진지도 5백50년이 지난 오늘날 한글을 보기좋게 갈고 다듬어 놓지 못한 점에 대해서 우리 모두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영어나 일어의 경우 수천가지의 글씨체가 마련되어 활자로 표현될 때 아름답고 보기 편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서체개발에 소홀해온 우리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물론 한글을 활자화할 때 다른 글자에 비해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영문은 26자에 불과하고 일본의 가나문자는 50여자를 넘지 않으므로 서체를 다양화하기가 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한글은 자음 14자 모음10자에 불과하지만 이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글자는 1만자가 넘는다. 더욱이 같은 'ㄱ'의 경우에도 초성으로 쓰일 때와 받침으로 쓰일때가 모양이 다르고 '가'로 표시할 때와 '고'로 쓰일 때의 모양은 현저히 다르다. 따라서 한글은 한자한자를 독립된 글자로 보기 좋게 설계해야 하므로 영어 일어에 비해 수십수백배의 노력이 든다고 할 수 있다.
또하나 일제 식민지 36년을 겪는 동안 우리말 우리글이 아예 말살될 뻔했던 것으로 말미암아 활자개발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시기를 놓쳐버린 점을 들 수 있다. 실제 해방이후 신문을 찍어낼 수 있는 활자원도(原図)가 부족해 쩔쩔맸을 정도였으니 서체를 다양하게 개발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힘든 실정이었다. 그러나 해방된지 40여년이 지난 현재에 이러한 이유를 대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든지 우리 한글을 다듬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니까.
한글서체를 개발하는데는 엄청난 돈과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서 엄청나다는 뜻은 요즘 시쳇말로 재벌들의 부동산투기에 투자되는 수천억원씩 든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느 한 개인이나 중소기업차원에서 손을 대기가 힘에 부친다는 뜻이다. 한글을 아름답게 하고 보기좋고 쓰기에 편하도록 다듬는 일이 어느 한 개인이나 기업의 돈벌이를 위한 작업은 아니지 않는가? 만약 이 일이 10배의 이윤을 보장한다면 누가 여태까지 손대지 않았겠는가?
최초의 서체개발은 성서인쇄를 위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후 조선시대 내내 한문에 눌려 괄시를 받아왔던 한글은 아녀자나 하층 계급들 이외에는 아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최초의 한글 납활자가 만들어진 것은 1980년대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였으니 흥미로운 일이다.
충청도 공주 태생의 최지혁과 이와는 별도로 만주 봉천에서 서상륜 백홍준이 자본(字本)을 쓰고 목(木)활자를 만들고 이를 기초로 납활자가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이 활자체는 1백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글자 한자한자를 보면 그다지 예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독성(可讀性)이 뛰어나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된장국과 같이 늘먹어도 구수한 맛을 풍기고 있는 서체라고나 할까.
필자가 활자를 만드는 일에 뛰어든 지는 부산피난시절부터 였으니까 벌써 50년이 가까워 온다. 전시에 신문사마다 부족한 글자가 많아 납활자 대신에 목각활자를 쓰는 일이 많았는데 도장을 새기면서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경향신문에 활자를 대주는 일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후 활자와 더불어 보낸 50년, 어려움과 아쉬움도 많았지만 필자가 만든 활자로 교과서나 신문이 찍혀나온 것을 볼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
필자는 처음에 목각조각을 했지만 앞으로는 모든 활자를 기계로 만드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1954년 문교부가 교과서용 활자서체의 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기회로 일본에가 기계조각법과 원자(原字) 설계법을 익히게 되었다. 그후 국민학교 교과서용 활자를 개발하면서 본격적인 서체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에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혼자뿐이어서 개발계획에 맞추려면 하루에 1백자 이상씩 원도를 쓰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그후 지금은 고인이 된 최정호씨와 함께 한글 명조체와 고딕체를 개발해 각 출판사와 신문사에서 사용하는 활자를 공급하게 되었다. 최정호씨는 주로 일본의 모리자와 샤켄 등 사식기회사에 한글원자를 수출했고 필자는 신문사용 활자를 개발하는데 치중해왔다. 그중 특기할만한 일은 중앙일보가 창간됐을 때 자모 전부를 제작했던 일과 10여년전 한국일보에 화재가 발생해 활자들을 소실했을 때 우리 글씨로 대체해준 일이다.
정부차원의 적극투자 아쉬워
지금은 컴퓨터시대, 앞으로 모든 인쇄물은 컴퓨터를 이용하지않고는 제작될 수가 없는 날이 올것이다. 특히 전자출판에 관한 기술이 날로 급속히 발전하는데 비해 우리글을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노력은 미미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일제 전산사식기의 한글서체는 그들이 우리로 부터 글씨를 헐값에 사가서 기계와 함께 비싼 값으로 다시 팔고 있으니 이런 안타까운 일이 어디에 있는가? 전자출판시대가 본격화되고 신문출판의 대부분이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될 때 디사한번 우리 한글이 일본에 의해 종속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다행히 늦게나마 일부 전산사식기 회사들을 중심으로 한글서체개발의 중요성을 깨닫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엄청난 투자가 드는 이 일을 중소기업들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전체의 정신문화를 좌우하는 한글을 아름답게 한다는 차원에서 정부는 적극적인 투자와 하계 및 연구소들의 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에앞서 한글서체를 개발하는 일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서체개발에 뜻을둔 사람들을 위해서 몇가지 말해 본다면 한글활자글씨(原字)를 제작하는데는 선천적인 소질도 있어야 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이 60%이상을 차지한다고 하겠다. 원자를 설계제작하는 기술은 경험 그자체이므로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서예(書藝)라고 할 수 있다. 서예에 대한 조예가 어느정도 있어야 서체에 대한 미적감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함께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어떠한 평을 하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사명감을 가진 사람에게 발전이 있는 법이다.
서체를 개발하는 작업은 보람도 있지만 일종의 자기수련과정이요 예술이기도하다. 글자 한자한자에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일반적으로 정년이 55~60세라고 말하지만 필자는 나이 일흔하나에 특채형식으로 회사에 들어오게 됐으니 아마 우리나라에에서 최고령 취업자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