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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디자인

멋과 편리를 함께 추구한다

원대한 포부를 안고 출발한 디자이너인생. 좌절과 깨달음을 거듭하면서 인간을 위한 디자이너로 바로 선다.

디자이너. 흔히 디자이너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패션에 관계된 전문인으로 생각하면서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돈도 많이 버는 것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이겠지만 성공한 일부 부류의 모습이 이 분야에 대한 전체집단이 마치 그런 것처럼 보이게 하는가 보다. 내가 미술대학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했을 때도 주위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앞으로 돈도 많이 벌고 멋있고 유명해지겠지."

공업디자인이란 분야는 다분히 예술적인 면이 강하고 작업대상도 무수히 많으며 어쩌면 수치적이고 논리적 이론적 배경이 별로 필요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자신의 능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여지가 다른 분야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일반인들에게 비쳐진다. 나 또한 전공선택 초기에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고 결국에는 공업디자이너가 된 동기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공업디자인 멋과 편리를 함께 추구한다


●―공업디자인이란?

다시 생각해 보면 남들처럼 전공을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막연히 무엇인가 있을 것같은 기대감으로 출발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신입생시절에는 무척이나 허둥대고 창피했던 기억들이 많이 있다.
대학입시에 합격해서 합격자면담을 실시하던 날 한 교수가 내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자네 공업디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 질문을 받고 대답내용을 아무리 생각해도 선뜻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실제 당시 나자신은 공업디자인에 대한 정확한 예비지식이 없는 상태였다. 단지 그림에 웬만큼 소질이 있어서 주위에서 미술대학을 가라고 자주 권유했고 나 또한 그림그리는 자체가 좋아 별 망설임없이 선택하게된 것이다. 성격이 꼼꼼해서 무엇을 잘만든다는 점과 위에서 말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공업디자인을 선택한 것인데 나에게 전공에 대한 의미를 말해보라니 그 질문을 한 교수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잘 몰라서 그것을 배워보려고 입학한 사람에게 그 의미를 묻다니 그걸 알면 무엇하러 이 전공을 선택했겠냐고 대답하려다가 둘러댄 말이 "자동차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생활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교수의 얼굴에 잠깐 미소(엄밀히 말하면 조소일 것이다)가 스쳐가는 것 같았다. 불과 10여년전만 하더라도 공업디자인이란 매우 생소한 분야였다. 나는 미지의 매력적인 단어에 기대감을 갖고 내 앞에 펼쳐질 신비로운 세계로 이렇게 첫발을 내딛었다.

●―원대한 포부

본격적으로 대학생활이 시작되고 전공과목을 하나씩 배워가면서 나는 디자인분야를 이상의 세계가 아닌 내자신이 그속에서 생활하고 체험하는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
미처 몰랐던 공업디자인의 의미에서 부터 하나의 아이템(item)을 진행하면서 익히는 방법들까지. 모든 것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으며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새롭게 나의 가슴과 머리에 와닿았다.

내가 생각하고 만드는대로 온갖 사물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학과동료들과 진행내용을 토론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난관에 봉착했을 때는 한갑의 담배가 다 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작품에 몰입하고, 교수의 지적으로 새로운 힌트를 얻게 되고…
이러한 과정은 나로 하여금 공업디자인에 대한 예찬론자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공업디자이너는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의미있는 직업인 것 같았다.

과제를 준비하느라 학교에서 며칠밤을 꼬박 새며 옷도 갈아입지 못한 거지꼴로 교내식당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밥을 먹던 추억도 있었다. 가끔 힘들때면 미래에 대한 회의도 잠깐씩 스쳐갔지만 그러면서도 대학시절 나는 졸업후의 인생이 무지개빛으로만 보였다. '누구도 따라올 수없는 감각으로 무한히 펼쳐진 세계를 재구성해보리라'.

나의 눈에는 거리와 실내의 모든 것이 어지럽고 제멋대로 널려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의 손으로 이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리라는 꿈에 넘치는 포부마저 갖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화려한(?)대학생활은 마무리되고 있었다.

●―예술이냐, 아니냐

85년 초 디자이너로 부푼 기대를 안고 회사에 입사하여 채 몇달이 지나기도 전에 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나'라는 주체만을 앞세웠던 이상향은 '사회'라는 상대를 만나면서 너무도 힘없이 무너져갔다. 이제는 더이상 내가 생각하고 그리는대로 세상이 만들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나를 그 세계로 유도하고 속박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것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나의 생각은 궤도를 수정하도록 요구당했다. 또 언제나 나 자신보다는 상대방이 인정하는 디자인을 해야만 한다는 대전제가 앞에 놓여있었다.

학창시절 갈고 닦기에 게을리하지 않았던 조형감각과 디자인적 사고는 회사가 요구하는 업무를 위해서는 아주 작은 연장하나에 불과할 뿐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수련과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회사초기 그러한 상황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문득 대학시절 친구들과 밤새도록 언쟁했던 문제가 생각났다. '디자인이 예술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한 답을 갖고있지 못하다. 한 개인의 감각에 의해 나타나는 실체―순수미술이든 응용미술이든―는 분명히 같은 맥락을 갖고 있지만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사고, 진행방법, 결과에 대한 해석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결과가 주관적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객관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생각이 머리속에서 감돌때 나는 이때까지 미처 깨닫지 못한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디자인은 분명히 어떤 목적성을 가져야하며 그 목적성은 그것이 활용되는 상황에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제1의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전공공부에서 망각했던 점을 새롭게 찾는 순간이었다.

●―객관성의 추구

한 회사에서만 공업디자이너로 근무한지 5년이 되는 지금, 회사에서의 디자인업무는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내가 받아들여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다.

흔히 '우물안 개구리'라는 표현을 쓴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고 다들 노력하지만 알면서도 실수하는 경우가 있다.
한번은 소형냉장고의 디자인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초기방향을 내생활에 기준하여 주로 먹는 음식들이나 사용하는 그릇 등이 어디에 놓일 것인지 연구했으나 이러한 접근방법은 곧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초기방향은 소형냉장고를 이용할 계층과 인구 및 그들의 생활패턴을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들의 가옥구조와 섭취하는 음식물, 사용하는 용기, 소득수준 등등. 나의 기준이 아닌 전체를 고려한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왼손잡이 장애자 뚱보 여성(또는 남성)등 꼭 같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그 전체를 군대처럼 획일적 방법으로 가늠할 수는 없다. 그와는 정반대로 디자인은 자칫 탈락될지도 모르는 대상을 위한 인식과 배려가 오히려 더 철저히 요구되는 분야다.

결국 냉장고는 내가 쓰기에 가장 편리한 기능, 내가 보기에 가장 좋은 모양에서는 거리가 있는 냉장고로 모습을 바꾸었으나 그것은 훨씬 더 많은 장점을 지닌 새로운 제품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공업디자이너가 그리 수월하게 될수 있는 것이 아님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사회구조가 단조롭고 획일적일 때는 디자인 진행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지만 점차 사회가 복잡다양해지면서 디자인분야도 고도의 해결능력이 필요해진다.

'진정한 디자이너는 어떤 존재인가?'
'참다운 제품디자인은 무엇인가?'

항상 나자신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공업디자인이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효과적으로 연관지어야만 참다운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다.

우리 주위에 디자인과 연관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비단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처해있는 사회현상 경제철학 기술 인간 등 모든 인간생활에 디자인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뛰어난 디자인이 되려면 이러한 면들이 모두 고려되어야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유용함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분야에서 중견디자이너로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스스로 참다운 가치를 지니는 디자인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많다. 모자라는 역량 탓이리라. 그렇다고 현실을 승복하고 시간가는대로 지내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원대했던 꿈이 한갖 망상이 되지 않도록 다듬고 조금씩이라도 현실로 옮겨놓는 노력이 있어야할 것이다.


공업디자인의 총아로 불리는 자동차디자인의 렌더링(설계에 따르는 스케치)


●―인간을 위한 디자인

현대는 바야흐로 디자인의 시대인 듯하다. 아마 여태까지 사회전반에 걸친 디자인의 미숙상태가 이러한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스컴에서 공업디자인을 유망분야로 선전하고 정책적으로 디자인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육성하겠다는 소리도 들리고 또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생활공간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는 등등. 어느 순간에 갑자기 디자인은 우리생활에 필수적인 부분으로 파고들었다.

아는 사람의 까페나 집에 들러도 내가 디자이너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인테리어 분위기를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까' '가구배치를 어떤 식으로 하면 더 나아 보일까' 등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직접 해주기를 부탁받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디자인분야가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익숙하게 느껴지고 어느 정도의 비중을 얻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나쁘지는 않지만 한편 너무 수박 겉핥기식으로 잘못 이해되고 또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내 손으로 디자인한 제품이 시중에 판매되어 소비자가 만족감을 얻는다면 그것만큼 내직업에 보람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사용자가 불편을 느끼고 실망한다면 그것은 속임수이고 사기나 다를 바가 없다.

일본이 오늘날의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들이 디자인에 신경쓰는것 이상으로 실제 내용을 충실히 했기 때문에 소비자들로 부터 신뢰를 받고 더욱 부가가치가 높은 디자인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상품들이 그동안 너무 디자인을 무시하고 저가격으로만 한몫보아왔지만 이제 디자인,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질적 내용을 갖추어야 소비자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참디자인으로서의 가치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세계에서 흔히 쓰는 '바늘에서 비행기까지'라는 말이 있다. 디자인은 이렇게 넓은 범위에 걸쳐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과 환경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

어떤 이들은 디자인을 사치라고 단정짓고 소비풍조를 조장하는 분야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더러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쩌면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인것같다. 흔히 '굉장히 비싸겠는데' '멋있는데' 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디자인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결과이다.

디자인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풍요로움과 만족을 주는 역할을 한다. 디자인도 각기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여러갈래로 세분되지만 결국 모든 디자인은 인간과 연결된다. 인간을 떠나서는 디자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요즘 매스컴에서는 한참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날로 어려워지는 수출경쟁력을 현재의 경제구조로는 더이상 극복하기가 힘들다는 인식이 사회저변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경제여건으로 보아 선진국대열에 올라서려면 첨단기술개발을 통해 더욱 고부가가치적인 상품을 생산해내는 길밖에 없다. 기술개발에는 엄청난 투자와 인력, 시간이 소요되지만 디자인의 개선을 통해 편리함과 외양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위치는 현재 다른 직종에 비해 완전히 자리잡고 있지 못한 느낌이다. 유럽이나 미국,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우리보다 한층 연륜이 있고 그들 나름대로 디자인의 방향이나 위치가 사회적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단지 현실적으로 국제경쟁력에 이기기 위한 도구로써가 아니라 우리 나름의 독창적인 디자인 기반이 세워지는 계기가 마련되야 하리라 믿는다. 끊임없는 창조성이 요구되는 직업, 그러나 그만큼 성취감도 따르기에 내일도 나는 회사 책상에서 커피 한잔을 들고 씨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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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윤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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