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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

35살에 선택한 낯선 직업

변리사는 발명가의 창조적 작업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대리인의 역할을 한다.

서른다섯이 넘은 나이에 여지껏의 경력은 깡그리 백지로 돌리고 새로운 직업을 선택한다.

어느날 갑자기 그 분야가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아주 유망한 직업을 택했다고 부추켜 주지만 일반인들에겐 여전히 낯설기만한 분야. 또 그 분야를 택한 자신도 솔직히 개념조차 잡지 못한 채 단지 현재를 벗어나고자 하는 일념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빠져든 곳.

어차피 시작한 것이라면 정공법으로 부딪쳐 보리란 생각에서 20년만에 다시 대학문을 두드려, 옛날의 전공과는 1백80도 다른 학문을 접하고 있는 나의 생활.

이것이 ‘변리사’란 나의 직업이다.
 

변리사
 

●─ 돌고 도는 인생행로

지난 달 유럽을 다녀온 나의 동료가 전해 준 에피소드 하나.

영국의 어떤 항공기 회사의 직원들과 이야기하던 중, 자신이 과거 항공회사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어떻게 그렇게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느냐고 놀라더라는 것. 그는 영국같이 틀이 짜여진 사회에서야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지만 한국같이 젊은 사회에서는 그러한 전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단다. 우리가 늘상 반만년의 역사를 이야기하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는 나나 나의 동료의 예로 보면 아직도 불확실한, 젊은 사회이다.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내가 경험한 최근의 에피소드 하나.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들 덕분에 일일교사로 지난해, 올해 2년 연속 국민학교 아이들과 수업할 기회를 가졌다. 지난해에는 발명에 대한 이야기를, 올해는 내 스스로의 실패를 거울 삼아 ‘나의 장래’란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수업중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한 어린이가 당당하게 요리사가 되겠다고 이야기했다. 하도 장난기가 심한 요즘 어린이들이라 소림사 주방장 정도의 우스개소리가 아닌지 미심쩍어 집에서 아들녀석에게 물어보자 평소에도 늘 요리사가 되겠다고 이야기해 왔다는 것이다. 확고한 미래에의 자신, 그 면에선 오히려 내가 그 어린이보다 어린 것이다. 지금의 나에겐 현재 시제만 있을 뿐이지 미래 시제는 없으니까. 어릴적 나폴레옹 전기를 읽곤 군인이, 고교 땐 모두들처럼 시인이, 대학 입학 면접에선 정치가가, 대학 시절엔 철학자가, 군대 제대 말년에 기자가 되자고 결심하여 정말로 기자가 되었으나 나 자신의 게으름으로 인해 중도탈락하고 말았다.

그리곤 아무런 미래에 대한 책임의식이나 계획없이 단지 가업을 잇는다는 핑계로 이른바 전문 자유직인 변리사로 변신했다.

벌써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아버님이 변리사였으니까 변리사가 무엇인가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은 있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시인이나 의사 변호사가 어떤 일을 한다는 것만큼은, 나 역시 변리사에 대해 뚜렷이 알지 못했었다.

20년만에 다시 대학, 이 나이쯤에 통상 이름이나 걸어두는 무슨 대학원이나 무슨 최고경영자 과정이 아니라 전자공학과의 학부를 다니면서 배우듯이, 변리사시험에 합격하고 4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직업에 대해 수습과정에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나는 변리사란 직업을 아직도 국외자적인 눈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 대리인이냐, 해결사냐

그러면 변리사란 무엇일까.

딱딱하지만 변리사법에 규정된 변리사의 업무에 대한 규정을 보면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의장 또는 상표에 관하여 특허청 또는 법원에 대하여야 할 사항의 대리 및 그 사항에 관한 감정 기타의 사무를 업으로 한다’는 것이다.

변리사란 일종의 대리인이다. 그런데 이 대리인이란 것이 아무래도 우리에겐 익숙치 못한 존재인 것 같다. ‘소공자’란 서양의 동화에서 보더라도 영국의 할아버지가 미국의 손자를 찾기 위해 대리인을 보내고, 영화 등에서도 대개 변호사인, 대리인이 자주 등장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리인은 그다지 친숙한 개념은 아닌 듯하다.

이처럼 대리인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만큼 ‘대리인’이 아닌 심부름꾼 내지는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곧 의뢰인들이 전문지식을 갖춘 대리인에게 사건과 관련된 모두를 알려주고 사건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오히려 감추고 또 일을 모두 벌여놓은 뒤 빠져나갈 구멍만을 찾아달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 변리사들 역시 대리인으로서의 직업의식의 결여로 이미 변리사가 있는 의뢰인에게도 집적거리는 등 추태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면 변리사는 어느 부분에 대해 대리를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 공업소유권이란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변리사법의 규정에서 말하는 특허 실용신안 의장 상표에 대한 권리를 공업소유권이라고 통칭하기 때문이다.

특허 상표 공업소유권 등의 명칭은 저작권까지 포함하는 지적소유권이란 낱말과 함께 주로 미국과의 통상마찰 덕분에 최근 일반인에게도 상당히 알려지게 되었다.

특허와 실용신안은 새로운 발명을 한 사람이 그 발명을 일반에 공개하는 대가로 일정한 기간 동안 그 발명의 제조 판매등에 대해 독점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며, 의장은 물품의 디자인에 대해 그러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발명이란 에디슨이 발명을 하듯이 이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 있는 물건에 대한 개량이나 물질에 대한 제조방법 등도 포함된다. 또 실용신안과 특허는 그 대상이 같은 것으로 단지 기술내용의 수준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상의 특허 실용신안 의장은 모두 창작성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상표는 영업을 하는 사람이 자기의 상품과 다른 사람의 상품을 구별시키기 위해 등록한다. 곧 많은 사람이 잘 아는 낱말이나 도형이라도 다른 사람이 상표로 쓰고 있지 않으면 자기의 상표로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발명이나 디자인 상표 등을 독점적인 권리화하려면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 출원을 하고 특허청 심사관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변리사의 역할이란 기본적으로 발명자나 디자인 고안자, 상표 사용업자의 특허권 실용신안권 의장권 및 상표권의 형성을 돕는 것이라 하겠다.

●─ 이과생들이 도전해볼만

그러자니 당연히 변리사는 자연과학, 주로 공학의 바탕이 없이는 불가능하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 그에 따른 숱한 발명들이 권리화가 될 수 있도록 손질하기 위해서는 발명자만큼 그 기술에 정통하지는 못하더라도, 발명자의 설명을 듣고 그 기술내용을 이해하고 핵심을 짚어낼 수는 있어야 한다. 물론 간단한 발명은 상식적으로 이해되고 그것을 특허법 등의 요건에 맞춰 적당히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수준이 높아지면 용어조차 낯선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화학, 약품에 관한 발명이나, 요즘 첨단기술로 치부되는 유전공학 전자공학 분야 등의 기술내용을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이 다룬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이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니 나같이 문과대학을 나온 사람이 뒤늦게나마 공대를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86학번의 전자공학과 4학년생이란 또 하나의 신분을 갖게 되고, 그 덕분에 봄가을로 빠지지 않고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리고, 학기말 시험을 치루기 위해 봉쇄된 학교에 들어가려면 전경에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학생신분임을 확인시켜야 하였다.

그런데 이 공업소유권이란 본질적으로 그 나라의 기술수준과 시장의 확보라는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제국주의 시대의 유럽 각국은 선교사를 앞세우고 이어 상인들을 등장시켰지만 20세기 후반 선진국의 상인들은 공업소유권을 그들의 첨병으로 삼는다.

적합한 예는 아니지만, 헝가리의 경우 우리나라에의 출원건수를 보면 공식적인 양국의 접촉 이전에 헝가리쪽에서는 벌써 우리나라에의 진출을 염두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요즘처럼 공업소유권 문제가 미국통상대표부에 트집거리로 등장할 때에는 과연 우리나라에서 공업소유권제도의 존재가 유익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게도 된다. 실제로 내노라하는 국내의 재벌회사들도 특허 상표 등의 라이선스비용으로 외국기업에 지불하는 것이 엄청나고, 우리나라의 특허제도가 기술수준이 앞선 외국기업들만을 보호해 주고 있지않나하는 의문에 빠지게 되곤 하기 때문이다.
 

이과생들이 도전해볼만
 

●─ 일본이 성공한 이유

하지만 공업소유권제도가 반드시 역작용을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1980년 7월 미국 NBC에서 방영된 ‘일본에선 가능한 것이, 왜 우리에겐 불가능한가?’라는 TV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일본이 성공한 이유로 ①특허 출원 ②협조적 노사관계 ③정서적 기업귀속의식 ④품질관리를 꼽았다.
일본 경제발전의 이유가 2, 3, 4항인 것은 그런대로 납득이 가지만 특허 출원을 경제발전의 첫째 이유로 꼽았다면 다른 여러가지 주변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대다수 사람들에겐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공업소유권제도가 일본의 경제발전에 어떻게 중요한가 하는 이유를 일본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선 공업소유권제도가 일본에 존재한 것이 외국기술의 도입을 쉽게 하고, 이 외국기술이 습득, 개량됨에 따라 일본인들의 발명을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특허청이 발행하는 공보에 의해 공업소유권 정보의 공개가 발명활동을 자극하고 쓸데없는 중복된 투자를 막아 연구개발의 효율을 높이게 된다.

이어서 공업소유권제도는 발명경쟁을 자극하고, 근로자의 노동의욕을 높이며 창조적 사고를 훈련하는 역할을 했다고 일본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공업소유권제도의 존재 및 그 효율적 이용으로 일본은 ‘모방국’이란 오명을 벗고 일약 세계 제1의 경제, 기술대국으로 떠올랐다.

어쨌든 공업소유권에 관한 한 양적으로는 일본이 세계 으뜸이다. 87년 한해동안 일본의 공업소유권 출원건수는 우리나라 특허청 설립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총 출원건수를 웃도는 77만여건에 달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공업소유권 총 출원건수는 9만5천5백71건이었다. 이를 권리별로 보면, 특허 2만51건 실용신안 2만2천6백77건 의장 1만8천1백63건 상표 3만4천6백81건이었다. 이중 기술수준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는 특허 출원을 보면 내국인 출원이 5천6백96건인 반면 외국인 출원이 1만4천3백55건으로 70% 이상을 차지하여 아직도 우리의 기술수준이 만족할 만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딱딱한 이야기와 숫자를 늘어놓는 것은 자연과학에 흥미를 가진 독자들이 특허문제에 눈을 돌려야 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또 이 분야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너무 부족한 탓에, 너무 답답한 마음에서 공업소유권 이야기만 나오면 저절로 설교조가 되고 만다.

●─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유직업

아직도 유럽 각국의 기업들이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을 보는 시각은 반도체분야를 제외하곤 ‘아니올시다’이다. ‘변리사적’으로 이야기하면 유럽의 기업들이 반도체 관련 발명은 미국이나 일본에와 같이 우리나라에도 특허 출원을 하지만 그밖의 분야 가령 일반 기계류 등에 대해서는 한국은 특허 출원 대상국에서 주로 제외된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 시장에 친숙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아직 한국의 기술은 자기들의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쇄업쪽을 예로 보자. 유럽 인쇄기기 제조업체의 어느 특허 담당자의 이야기는 한국의 인쇄술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인쇄기에 관한 한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어느 인쇄소를 가보더라도 어느 신문사의 운전기를 보더라도 국산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국내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에 따라 우리나라도 발명의 많은 수를 외국에 출원한다. 이 경우 출원은 물론 심사 도중에도 주로 영어로 왕래를 하게 된다. 손에 익지 않은 각국의 제도와 심사관의 의도 등에 대하여 적절히 대응한다는 것은 아무리 그 나라 대리인의 협조를 얻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국내 기업이나 발명자의 발명을 확실히 보호하기 위해서 변리사는 우리나라의 공업소유권제도는 물론 주요 시장 또는 경쟁상대국의 제도에도 정통하여야 하고 최소한으니 외국어에도 일가견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 각 분야의 여러 변리사가 함께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현재 우리 사무소도 부족하나마 4명이 함께 모여 서로 분야를 나누어 일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변리사란 번역자와 상당히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번역자는 하나의 언어로 된 사상을 다른 언어로 구체화시키듯이, 변리사는 발명자의 기술적 사상을 일반인이 알아볼 수 있도록 일상의 언어로 구체화시킨다.

아무리 봐도 변리사란 직업이 화려하게 각광받는 직업은 아니란 생각이 자꾸 든다. 번역자로서 남의 기술사상을 구체화시킬 뿐 창조의 세계를 직접 맛보는 것은 아니며, 또 일차적으로 자기의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의 성취를 대신 마무리짓게 된다.

하지만 오늘 아침처럼 국내의 어떤 대기업에서도 시도하지 못한 발명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 부자합작으로 개인차원에서 발명한 것을 검토를 하고 출원키로 매듭지었을 땐 저절로 사명감에 가슴 벅차기도 한다.

비록 자신의 능력이 창조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새로운 모든 것에 항상 흥미를 느끼는 사람, 여럿이 하는 직업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 더 비중을 두는 사람에겐 만족할 만한 삶의 근거를 변리사란 직업은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198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전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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