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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시대의 새로운 인간유형 실리콘 밸리의 소년들


「맥루한」은 외계인이 지구에 올 것을 예언했다. 그 예언은 너무나 적중했다. 그가 말한 외계인이란 고도기술시대가 낳은 소년들이었다.

1980년 12월30일, 새해를 바로 앞두고 '마샬맥루한'(Marshall McLuhan)이 이 세상을 떠났다. 캐나다 출신의 이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는 그의 예언이 적중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맥루한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등의 전자미디어가 사회구조를 변혁하여 신종의 인간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것을 1960년대에 예측한 사람이다.

그의 예언은 그런것만이 적중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죽을때도 정확하게 예측했다. "미래사회에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러기전에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사멸되어 가고있는 종족의 일원이다."

맥루한은 낡은 종족이 축구나 자전거타기를 즐겨한것처럼 새로 출현하는 종족은 일렉트로닉스 미디어에 정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래의 어린이들은 컴퓨터가 정보를 보내면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흘러가는 정보 중 필요한 부분만을 자신의 지식으로 챙긴다.

"그들은 모두 일렉트로닉스시대가 낳은 사람들로 내일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테크닉을 익히고 있다."

그는 '테크노 키드'(techno-kid·과학기술시대의 어린이)의 프로필을 이렇게 소개 한다.

"그렇게 멀지않은 장래에 그들은 자신의 부모보다 외계인과의 공통점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고도의 과학기술이 일반화되면서 청소년의 사고형태까지 지배한다.


테크노 키드의 출현

맥루한이 사망한뒤 불과 2년이 지나자 테크노 키드가 현실 세계에 나타났다. 다만 지금와서 보면 테크노 키드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실리콘밸리의 어린이'라는 이름이 그들에게 알맞게 되었다.

정보통으로 알려진 스탠퍼드대학 커뮤니케이션 연구소의 '에버렛 로저스'교수는 그들을 잘 알고있는 한사람이다.

"옛날 어린이는 8세 정도가 되면 레모네이드노점을 벌여 용돈을 벌었다. 그런데 요즈음 어린이들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컴퓨터회사의 컨설턴트가 되어 보수를 받고 있다."

몇년전 여름, 스탠퍼드 대학에서 소년들이 시간당 3달러50센트(한화환산 약2천4백원)을 받고 어른들에게 컴퓨터사용법을 강의했다. 그들은 스탠퍼드 대학과 가까이 있는 조던중학 학생들이었다.

'교수진'중의 한명이었던 13세된 '데이빗 피어'는 금전감각에서도 소년이라 생각할수 없을 정도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보수없이 가르칠수는 없다. 아버지가 소년시절에 신문배달을 하여 번것처럼 나는 컴퓨터로 벌어야 한다."

이 소년들은 결코 특이한 존재가 아니다. 이곳 뿐만아니라 미국 전국각지의 '기술단지'에는 이런 새로운 종족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술단지가 최초에 등장한 것은 스탠퍼드대학 주변이었다. 1975년에 '산호세'일대에 하이테크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54개사나 모여 실리콘밸리를 형성한 것이다.

서해안의 실리콘밸리와 달리 동해안에서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부근에 기술단지가 형성되어 보스턴 서부교외의 환상우회로 주변에 첨단기업이 모여들었다.

이밖에도 그런 지역이 두곳 더 있다. 한곳은 뉴욕주 트로이의 렌세렐이공대학 주변이고 다른 한곳은 듀크대학과 노드케롤라이나 주립대학의 채플힐캠퍼스와 래리캠퍼스를 이은 연구삼각지역이다.

이런 지역을 선두로 맥루한이 예언한 전자미디어 혁명의 제1단계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커리큘럼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종족이 트레이닝하고 있는 모습을 보려면 조던중학교를 찾아가면 될 것이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어른들에게 컴퓨터교육을 시켰던 소년들은 이 학교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운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전교생 8백20여명중 반이상이 자발적으로 컴퓨터실습에 참가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 컴퓨터 실습을 처음 시작했던 '존 터그'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채점기준이 엄격하여 어려운데도 학생들은 호기심으로 열심히 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학생들중에는 '겐더린 머재러'군처럼 "어머니가 배워두라."고 하여 배우는 학생도 있다.

이 지역에 사는 부모들은 거의가 컴퓨터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프로그래밍을 익히게 하여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하고있는 것이다.

기술단지에 퍼스널컴퓨터도 없이 이사를 온다는것은 자동차도 없이 교외로 이사가는것과 같다.

산 호세의 윌리엄즈중학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학교 교사 '에이린 스태퍼드'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측에서 교실에 컴퓨터를 갖추어 놓지않자 학부모들이 모금을 하여 컴퓨터를 설치해 버렸읍니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자란 새 종족의 모습이 현재 상태로는 현저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조던중학교의 '피터 헤일먼'교장은 "우리학교 학생이 다른 학교 학생들과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특별히 겉으로 보기에 다른것도 아니고 행동도 마찬가집니다. 과학과 첨단기술에 대한 것만 머리속에 꽉찬 학생들이 아닌 겁니다."
그렇다고하여 헤일먼 교장이 학생들의 '경향'을 인정하는데 인색한것은 아니다.

"이 주변의 청소년들은 모두 과학기술에 둘러싸여 자라고 있읍니다. 그들의 생활속에는 컴퓨터가 아무저항도 받지않고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몇번이나 놀랐읍니다. 학생들은 극히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자신의 환경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하여 그들이 별다른 학생들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 변한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가 어릴때와 같은것도 아니다.

조던중학교의 '터그'교사에게 들어보자.

"키보드를 두들기고 컴퓨터로 수자를 조작할수 있게 된다는 것은 남자에게 있어서는 박력이 생기고 일에 안정을 찾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학교 학생인 '데이빗 브래트너'군은 컴퓨터를 다루면서 느끼는 희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무도 해낸적이 없는 복잡한 프로그램을 완성하면 모두가 몰려와 환호의 소리를 지릅니다. 축구시합의 스타플레이어정도라곤 할수 없을지 모르지만 컴퓨터를 다루는 여학생들로부터도 호감을 받게 됩니다."

맥루한이 출현할것이라고 예상한 테크노키드들은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맥루한의 제자였으며 친한 벗이기도 했던 세인트루이스대학 교수'월터 옹'은 말했다.

"맥루한은 20세기의 예언자였다. 그러나 자신이 살고있는 세기에 예언자로서 존재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예언이란 논쟁의 촛점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의 통찰에 대한 이해가 점점 폭이 넓어져가고 있다."

스탠퍼드대학 컴퓨니케이션연구소의 '윌리엄 페이슬리'교수는 맥루한이 예언한 전자미디어혁명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크게 상황이 달라진점은 오늘날의 우리들 자신의 사회적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혁명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맥루한의 통찰중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일렉트로닉스의 기술은 '커뮤니케이션의 자연법칙'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거리가 멀어지면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진다. 이 법칙을 일렉트로닉스가 깨어버린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리적거리가 사회적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밀접한 접촉은 하나의 커뮤니티 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남부의 애틀랜타에서 타이프를 친 내용이 뉴욕의 한 책상위에 바로 도착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로써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이 변하게 된 것이다."
 

디지틀한 청소년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쉽게 몰두하면서 또 싫증도 쉽게 느끼는 것이다.


조용히 스며드는 불쾌한 변화

'두뇌를 사용하는 방법'의 변화는 이미 젊은층에 현실화되고 있다. 이 변화는 실리콘밸리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또 이것도 맥루한이 예지했던 것이다.

최근의 소년층의 주의 지속시간은 확실히 짧아져 가고 있다.

컴퓨터회사 애터리사의 게임담당자 '크리스토퍼 클로포드'는 직접 이것을 경험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북부의 고등학교를 돌면서 강연을 했다. 2년동안에 30만명의 고등학생과 얘기를 나눴다. 그런 체험을 통해 그는 그런 변화를 파악한 것이다.

"나는 한가지 화제를 30초이상 끌고가지 않기로 정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얘기일지라도 30초를 넘으면 종이접은 뭉치가 날기 시작하고 불만의 속삭임이 들린다. 같은 화제가 1분이상 계속되면 속삭임이 '소리'로 변한다. 우둔하게도 2분 이상이나 계속되면 강연회장은 온통 대 혼란이 되어버린다."

미국과학협회의 '앤드류 모너'는 주의를 지속하는 시간이 짧아진 대신 "얘기내용이 정확하여졌다"고 지적한다.

"요즈음의 소년들에게 시각을 물으면 '8시31분'이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몇시반'이란 표현은 소년들의 어휘에서 없어져 버렸다. 소년들은 '디지틀의 정확성'을 몸에 익히며 자라온 것이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아직 잘 모르지만 그들은 우리세대와는 분명히 다른 방법으로 주위와 자신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은 알수 있다."

맥루한은 이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흐름을 좋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이었다. 중년이 되어 카톨릭으로 개종한 맥루한은 아침식사시간에 빠짐없이 성서를 읽었다. 아내에게는 애정깊은 지아비로, 6명의 자녀에게는 독재자 같은 아버지였으며 초 보수적자세로 가정에 군림하고 있었다.

1975년 가을의 어느날 맥루한은 그의 집 지하실에서 낡은 팔걸이의자에 앉아 세계의 미래에 대하여 약간 언짢은 기분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작이나 강연을 통해서 나는 예측되는 미래를 펼쳐보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전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묻는다면 정직하게 '전기 스위치는 모두 끊어버리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다. 전기는 나와같은 인간이 깊은 뜻을 느끼고 있는 것은 모두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맥루한이 한 이 말은 결코 무엇인가의 비유가 아니다. 그는 진지하게 과학기술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하고있은 것이다.

뉴욕의 중심가, 맨해턴을 걸을때 맥루한은 솜으로 귀를 막고 "어째서 모두들 이런 소음을 견디는 것일까."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는 거실에 있던 단 1대뿐인 낡은 텔리비전을 "넌 프라이버시를 침해했기 때문에…"하고 지하실에 처박아 버렸다 한다.

맥루한은 록 음악도 대단히 싫어했다. 이렇게 맥루한은 과학기술을 철저하게 싫어했다. 그는 얘기하는 것을 녹음하는 것도, 비서가 타이프라이터를 전동의 신형으로 바꾸는것도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가치관이 시대의 유물이 되고 있다는 것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낡은 세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게 되었을때 전통적인 가치관을 새 가정에서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않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가치관은 인간을 파괴하는 나쁜 방향의 것이 되어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안정감이나 과거와의 계속성을 늘리기 위해 전통에 따라왔다. 그러나 일렉트로닉스 사회는 전통이 아닌 끊임없는 진보위에 구축되고 있다.

일렉트로닉스 사회는 어제를 돌아보지않고 내일을 기다린다. 거기에는 과거나 전통이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한가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일렉트로닉스 사회에 관한 그의 예측은 더욱 넓게 펼쳐진다.

인간의 사고방법은 일렉트로닉스 기술이 정보를 전달하는 스피드에 의해 변한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의 밑바닥에 있는 것은 '스피드'인 것이다.

당시 넓게 번지고 있던 마약 코가인 사용을 맥루한은 이 스피드와 관련시켜 이렇게 이해했다.

"사람들이 마약을 쓰는 것은 자연의 반응을 빠르게 하기 위한 일시적인 처치다. 인간이 일렉트로닉스·커뮤니케이션과 동화하여버리면 그때는 마약같은 것은 필요없게 된다. 자연스럽게 일렉트로닉스의 파장을 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사회에서 인간은, 그리고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일렉트로닉스시대의 생활에 대하여 내가 가장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의 깊이가 전혀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깊이 같은 것이 생길 시간이 없는 것이다. 살아 남기 위하여서는 순간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는 사회에서는 인간은 그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느긋하게 앉아 회상을 하거나 어느쪽으로 할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하는 사나이는 위대한 배우처럼 주어진 역할에 자신의 성격을 맞출 수 있는 관료타이프이다.

미래의 사나이의 이미지와 꼭 맞는 사람은 '로널드 레이건'과 같은 사람이다"

맥루한이 이렇게 말한 것은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기 5년전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퍼스널컴퓨터를 자유롭게 다룬다는 것은 단순한 게임과 같은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신체검사

맥루한은 미래의 인간은 육체적으로 쇠약하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에 수동적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육체에 미치는 위험을 그는 경고했다.

오늘날에는 퍼스널컴퓨터나 텔레비게임, 또는 공차기놀이와 소년들의 인기를 둘로 가르고 있으나 다분히 전자가 우세한 경향이다.

그리고 이런 영향은 실리콘밸리의 소년들에게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있는 NASA의 에임즈생물의학연구부장 '해롤드 샌들러'박사는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를 이렇게 지적했다.

"일렉트로닉스 기술은 다음 세대를 육체적으로 점점 수동적이 되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에게 텔레비전을 보게 하거나 텔레비게임을 하게 하거나 프로그래밍만 하도록 하지 않게 설득하는 의사가 많아지고 있다."

스탠퍼드대학의 '로저스'교수도 이런 경향을 인정하면서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지역 학교에서는 체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무드가 강해지고 있다. 머리가 얼마만큼 좋은가 하는 것이 점점 중요시되고 있다. 다만 머리가 좋다고 하여도 책을 잘 읽고 공부도 잘하며 지능지수가 높다는 고전적인 것이 아니다. 과학콩쿠르에 우승을 하거나 텔레비게임에서 하이코스를 올린다는 류의 것이다."

맥루한은 이런 경향도 예언했다. "창조력과 두뇌만이 중요시 될 것이다. 지력이 드디어는 체력을 정복하고 말 것이다"라고.

그러나 맥루한의 예리한 통찰은 대중의 갈채도 학계의 찬동도 얻지 못했다. 그는 일찌기 "만약 내가 '제3의 물결'을 써서 일약 유명하여진 저널리스트 '앨빈 토플러'였다면 모두가 나를 이해하여주고 유명하여졌겠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질색이라고 말하던 맥루한이지만 실은 은근히 자신의 저서가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한번도 오른 적이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맥루한의 죽음이 가까왔을 무렵 그의 명성은 최저상태였다. 1980년 터론토대학이 그가 적을 두고 있던 문화과학기술센터의 폐쇄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터론토대학은 지금 문화과학기술센터 재개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도서관에 맥루한문고를 설치하려고 다른 연구기관과 장서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제1회 맥루한이론회의가 열려 전세계의 많은 학자가 참석했다.

그러나 그의 지적유산인 맥루한이론의 정당성이 널리 인지되었다고 하기는 아직 시기상조일 것이다.

새로운 종족 한명에게 "마샬 맥루한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느냐"하고 물은적이 있다. 대답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물론 있지요. 애플사(8비트 퍼스널컴퓨터 애플Ⅱ를 생산, 대히트한 컴퓨터회사)의 유명한 프로그래머죠 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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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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