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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갓난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많은 능력을 부여받고 있다. 시력 청력은 물론 어른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특기도 있다. 약하디 약한 그들이 생존해나갈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은 무엇일까?

소아과의사가 처음 신생아를 만나는 것은 분만실에서이다. 아기가 출산하기 이전에 아기에게 문제가 생기리라고 예상하는 경우에는 소아과의사를 미리 불러서 대기시켜 놓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초음파를 위시하여 여러 종류의 의료기기가 발달되어 아기가 태어나기전에도 자궁안에서 아기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또는 출산 후에 문제가 생기게될는지 미리 예측할 수 있으므로 그만큼 출산이 안전해진 셈이다.

아기는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와 외기에 얼굴을 내놓자마자 깊은 숨을 들이쉰다. 대개 이 첫 호흡은 울음소리로 나타난다. 따라서 아기가 숨을 제대로 쉬는지는 누구라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처해 있던 환경에서는 전혀 호흡을 하지 않았다가 출생 후에는 자기힘으로 숨을 쉬어야 하니까 그만큼 아기의 첫 호흡은 중요하다.

엄마 자궁내에서는 아기가 양수에 떠있으므로 입이나 코안은 물론이고 폐안에도 모두 양수가 들어 차있다. 폐안의 폐포나 기도가 완전히 확장되지 않고 반쯤 찌부러들은 상태이지만 하여튼 공기는 전혀 없고 양수로 꽉 차있다가 엄마 뱃속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기도내의 양수가 어느 정도 밖으로 나오면서 폐포도 확장되어 공기가 들어가게 된다.

아기의 첫 호흡에 대하여는 고대적부터 여러사람이 관심을 두고 연구해오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아기가 첫 숨을 쉬게 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첫 호흡은 문제가 있을 때가 많다. 대개는 궁둥이를 때리거나 그 비슷한 강한 자극을 주면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러나 소수에서는 그 정도 자극을 해도 숨을 쉬지 않고 결국 인공호흡을 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인체의 여러 기능중에서 호흡만큼 분초를 다투고 급박한 것은 또 없으리라. 먹고 배설하는 것, 체온 조절, 시각, 청각 그 어느 기능보다도 호흡은 다급하다. 그 중에도 신생아의 호흡은 더 급박한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자기힘으로 숨을 쉬게 된 신생아를 관찰해보면 실로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첫째 놀랍게도 이목구비 손 발 손가락 발가락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인간다움을 갖추고 있는 점이다. 무엇이든지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로 신생아의 신비함은 그렇게 밖으로 보이는 모양새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능력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기는 엄마의 젖과 다른 산모의 젖 그리고 우유를 구분할 수 있다.
 

사람얼굴과 목소리를 좋아해

우는 아기에게 다가가 그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고 나즈막하게 얘기를 해주면 금방 울음을 그친다. 그리고는 눈을 뜬다. 이때 시야앞에 빨간 공같은 물체를 비춰주면 빤히 응시한다. 시선을 준다고 생각될 때 공을 천천히 움직이면 좌우로 90℃정도는 공을 쫓아 눈을 돌릴 수도 있다. 빨간 공에 관심이 없는 듯하면 사람 얼굴로 대신하면 더 잘 쫓아본다. 특히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사람 얼굴이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면 아기들은 틀림없이 잘 쳐다보고 이리저리 쫓아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이러한 검사는 아기가 기분이 좋고 깨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어떤 아기에서나 그리고 언제나 나타나는 반응은 아니다. 청각에서도 딸랑이같은 장난감소리 보다는 사람 목소리를 더 좋아한다. 아기가 눈을 감고 칭얼댈 때 가만가만 속삭이듯 얘기해주면 울음을 그치고 목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하여튼 아기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청각 자극은 사람 얼굴과 목소리인 것만은 틀림없다.

미각과 후각도 그에 못지 않은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 단맛(설탕물) 쓴맛(키니네) 짠맛(소금물) 신맛(구연산)을 주면 그중에서 설탕물을 골라 그쪽만 빨아 먹는다고 한다. 맛을 구별해서 선택할줄 안다는 의미이다.

수주 동안 엄마 젖을 빨은 아기는 자기엄마의 젖과 다른 수유부의 젖을 주었을 때 자기 엄마 젖을 알아내어 그쪽으로 얼굴을 돌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기들도 최소한의 기본적 미각, 후각은 갖고 있는 셈이다.

아기들은 이러한 감각능력 외에도 이를 보호하는 특수한 힘도 갖고 있다. 아기의 눈에(감거나 뜨고 있을 때) 환한 불을 비치면 눈을 깜박하고 눈을 꼭 감는다. 불을 껐다가 다시 비쳐도 또 깜짝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극을 여러번 반복해서 비추면 눈을 감는 반응이 둔해지고 드디어 없어진다.

이를 '습관화'반응이라고 하는데 모든 감각기능에 존재한다. 같은 장소의 피부에 아픈 자극을 계속하면 몇번 한 후에는 움츠러드는 반응이 없어지고 만다. 물론 한참동안(수분 이상) 있다가 다시 자극을 하면 다시 반응을 하기는 하나 또 반복하면 없어진다.

이러한 습관화 기능은 신생아를 지난 후에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는 신생아 특유의 반응인데 아마도 미숙한 감각기관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라고 해석된다. 즉 감각자극을 받아들이는 말초기관이나 이를 전달하는 신경기관, 또 궁극적으로 감각을 해석하는 중추신경기관도 모두 미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같은 자극이 너무 반복해서 되풀이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몇번 반응한 뒤에는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기들의 촉각은 더욱 잘 발달되어 있다. 그 중에도 아픈 자극을 주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 발바닥을 아플 정도로 콕 찌르면 깜짝 놀라 그 쪽 다리를 오무라뜨린다. 너무 아프면 화들짝 놀라고 깨어 울기도 한다. 살짝 자극하면 그 쪽 다리는 오무리고(자극을 피하듯) 반대편 다리는 그 아픈 자극을 밀쳐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쭉 뻗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아픈 자극을 피하는 것이다.

촉각이 유별나게 예민한 아기는 사람의 손을 타게 된다. 즉 한시도 참지 않고 사람의 피부와 접촉을 원하는 것이다. 허전하고 외로워서 칭얼댈 때에 어른이 손바닥으로 아기 가슴이나 배를 만져주면 그 정도로 만족하고 울음을 그치기도 한다.
또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안고서, 그것도 고추 안고 노래부르며 토닥거려야 잠잠해지는 까다로운 아기도 있다.

신생아도 성격이 나타난다

신생아실에는 항상 수십명의 신생아가 누워 있고 매일 여러 명씩 태어나 새로 들어오고 또 2, 3일이 지난 아기들은 엄마를 따라 집으로 간다. 그렇게 바쁘고 빨리 돌아가는 신생아실에서도 아기들의 성격이 모두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간호사들은 특히 아기들의 특성을 잘 따진다. 그들에 의하면 유난히 자주 보채고 울어서 항시 안아주어야 하는 아기도 있고, 깨어나자마자 아주 큰 소리로 울어서 옆의 아기까지도 울려놓는 아기도 있다고 한다. 유난히 자주 찔끔찔끔 먹는 아기도 있고 기저귀가 젖기만 하면 틀림없이 칭얼대는 과민파 아기도 있다.

예민하고 손이 많이 가는 아기도 있지만 자고 깨어나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주위를 둘러보듯 두리번거리는 착한 아기도 있다.
아기들을 자세히 그리고 유심히 관찰해보면 분명 그 개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아기를 둘 이상 키워본 부모들은 신생아 때부터 아이들마다 성격이 다르다고 얘기한다. 신생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그러한 개별적 성격에 만족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간다.

과연 신생아기(期)의 검사나 관찰로 파악한 성격으로 차후 아기가 자란 후의 개성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인가, 더 나아가 장래의 지능까지도 신생아기에 점칠 수 있을것인가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흥미로운 문제제기이기는 하나 아직까지의 연구로는 신생아기의 특성과 나중의 개성이나 지능사이, 직접적 혹은 비례적인 관계를 증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렇게 간단히 증명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무엇보다 인간이 반드시 기계적이고 단순한 개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선천적으로 타고난 개성이나 지능이 있더라도 수년간 특정한 환경안에서 성장하면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의 다양한 자극 속에서 아기는 자란다. 이미 타고난 밑바탕의 개인차는 있을지 몰라도 수 많은 자극으로 변화되기도 한다. 강화 혹은 약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완전히 무능하고 백지상태인데 환경여건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다른 개성이 이루어진다는 생각도 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날 때 갖고있는 것이 성장하면서 불변하리라 생각할수도 없다. 다시 말하면 어느 정도의 구조나 틀을 갖고 태어나서 환경의 영향을 받아 한 사람의 개체로 완성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소리나는대로 손을 움직여 물체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신생아의 조건반사

새로 태어난 동물 새끼들은 금방 일어서고 걸어다니기도 한다. 반면 사람의 갓난아기는 그러한 운동면에서는 뒤늦은 것 같아 보인다. 강아지새끼는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기도 전에 발발 기어다니고 사슴새끼는 가늘고 긴 다리를 일으켜 세워 허느적거리며 걸어다닌다.
그렇다면 사람의 신생아는 그에 해당하는 능력이 없는가? 갓 태어난 아기를 자세히 검사해 보면 실로 여러가지 운동능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기 손바닥 쪽에 어른의 손가락을 갖다대면 꼭 잡는다. 아주 세게 잡으면 빼내기가 힘들 정도다. 그러한 반사는 발바닥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발가락은 완전히 구부릴 수 없기 때문에 발바닥 쪽으로 약간 구부릴 뿐이다.

또 아기를 엎어놓아 보라. 일부러 코와 입이 막히도록 얼굴을 엎어놓아도 금방 옆으로 돌이킨다. 가끔 고개를 약간 들기도 한다.
또 아기를 눕혀 놓고 얼굴 위에 얇은 손수건을 올려놓으면 여러 대처현상을 볼 수 있다. 숨을 크게 쉬며 가만히 있는 아기는 아마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중일 것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고개를 쭉 빼는 아기도 있는데, 이는 숨쉬는데 손수건이 장애가 되니 이를 피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또 팔을 뻗쳐 허우적거리는 아기도 있다. 아마도 그렇게 해서 손수건을 치우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대개 그렇게 움찔거리는 사이에 얼굴을 덮은 손수건이 미끌어져 내려오지만 드물게는 내뻗친 아기의 팔에 밀려 제거되기도 한다.
엎어놓아도 고개를 돌려 편히 숨을 쉴 수 있게 하고 얼굴에 올려진 호흡장애물을 자발적으로 치울 수 있다. 적어도 호흡이 막혀 고생하지 않도록, 아니 그래서 사망하지 않도록 조물주가 그런 능력을 심어준 것이라고 보면 어떨까.

아기를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워 본다. 그러면 대개 아기들은 양다리를 꼬부린다. 하지만 한쪽 발바닥이 책상에 닿도록 해주면 그 발은 얼른 꼬부리고 그 대신 다른 쪽 발을 책상에 내려 놓는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몇번 반복시키면 마치 걷는 것과 같은 동작이 된다. 물론 큰 아이들 걷는 것처럼 다리에 힘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걷는 시늉이라도 하니 참으로 기특하다.

때로는 두 다리를 같이 뻗어 수초간 서는 흉내를 내기도 한다. 또 아기의 발을 책상 모서리 밑으로 내려 발등이 모서리에 닿게 하면 아기는 얼른 발을 올려 책상 위에 발바닥을 갖다 댄다. 이같은 다리와 발의 조건반사는 따지고 보면 훗날 걷기 위한 기초능력임을 알 수 있다. 비록 금방 걸어다니지는 못하지만 걷는데 필요한 기본지식은 갖추고 태어나는 셈이다.

신생아의 조건반사중 가장 강렬한 것은 역시 빠는 반사라 할 수 있다. 아기들은 얼굴이나 뺨에 무슨 촉각이라도 닿으면 마치 입에 넣으려는듯 입을 벌리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는 아기가 배가 고플 적에 특히 강하고 아프고 기운이 없는 아기도 이 반사는 약해지지 않는다. 이 반사를 의사들은 '헤적이'반사라고 한다. 이는 빠는 반사와 같이 아기의 영양섭취를 위해, 나아가 생존을 위해 절대 필요불가결한 반사라 할 수 있다.

아기는 입에 들어온 물체는 성분을 가리지 않고 빨아댄다. 젖꼭지는 물론 가제를 넣어도 또 손가락을 넣어도 빨기는 마찬기지이다. 특히 배가 고프면 더 잘 빨아댄다. 엄마의 손가락을(깨끗이 씻은 후에) 아기 입에 넣으면 아기는 혀로 손가락을 감아서 입천장에 대고 빠는데 그 힘이 대단하다. 손가락이 빨려들어갈 듯하고 몇번 빤 후에는 손가락이 얼얼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 옛말에 '젖 먹던 힘'이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가 가진 기력중에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는 뜻도 되지만 그만큼 빠는 데에 힘을 들인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하여튼 자그마한 아기라도 젖꼭지를 빠는 힘만은 대단하다. 아마도 아기가 들이는 기운중에 가장 에너지 소모가 많은 것이 빠는 기력일 것이다.

그런데 이 빠는 반사에도 개인적 차이가 있다. 어떤 아기는 젖을 먹어서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빠는 데에 흥미를 느끼지 않고 도리어 내뱉기도 한다. 또 다른 아기는 이미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계속 빨고 싶어하기도 한다.

이렇게 젖먹는데 관계없이 자꾸 빨고자 하는 아기는 결국 손가락을 빨거나 빈 젖꼭지를 물려야 잠잠해진다. 이런 아기를 보고 엄마들은 애정, 관심이 부족하거나 피부접촉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지 아기들은 이미 태어날 때 빠는 욕구를 각기 다르게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주는 관심과 사랑의 정도와는 무관하다는 말이다.

물론 배가 부른 후에 더 빨고 싶어할 때 안아주거나 놀아주면서 관심을 딴데로 돌리도록 하면 빨고자 하는 욕구는 없어진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또 입이 허전한 시늉을 한다.


두 장난감을 동시에 주면 아기들은 아랫 것을 선호한다. 엄마의 젖꼭지와 닮았기 때문이다. 이는 아기들이 추상적인 정보를 사용하고 저장할 수 있음을 뜻한다.
 

신생아의 매력 포인트

신생아가 가진 능력중에 가장 위대하고 절대적인 것은 아무래도 그가 가진 매력일것이다. 아기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관심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분명 갖고 있다. 앙징스럽게 생긴 눈 코 입, 동그랗고 빨간 볼, 고물거리는 손가락 발가락,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한번 더 들여다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고 가능하다면 안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어떤 이는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기에게 예쁘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기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어른 뿐 아니라 심지어 조그만 어린이에도 있는 성싶다. 자기 자신이 그 시절을 지난지 얼마 되지 않는 입장이건만 지나치는 남의 집 아기를 만지고 싶고 놀고 싶어하는 어린이가 많다.

이와 같이 어른이나 어린이를 모두 매료시켜 자기 주위로 끌어들이는 신생아의 매력이야말로 가히 마력이나 부를만하고 이 능력이야말로 신생아만이 갖고 있는 위대한 힘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어떤 이유로든지 아기가 울기만 해보라. 앙앙대고 우는 소리는 지나가던 행인도 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떤 불편함이 있어서 우는지 몰라도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달려가 일단 아기를 안고 달래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자그마하고 상당히 무능력한 아기로서는 얼마나 위대하고 막강한 능력인가.

이 험하고 야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여건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궁극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신생아는 마력과도 같은 이 힘을 갖고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만물의 영장답게 서서히 그러나 계속적으로 발육성장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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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 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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