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백만종이 훨씬 넘는 온갖 동물들이 여러 가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 북극이나 남극처럼 일년 내내 엄동설한만이 있는 환경이 있는가 하면, 열대의 밀림이나 사막처럼 견디기 어려운 폭서가 지배하는 곳도 있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의 구별이 명확한 곳도 있다. 이와같이 다른 환경에서 동물들은 장구한 세월동안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물이 발생하는 동안에 성장이나 활동이 일시적으로 중지되는 상태를 휴면(休眠)이라고 하며, 동물로 하여금 휴면에 돌입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환경 요인은 온도이다. 온대지방에서는 겨울의 낮은 온도가, 그리고 열대지방에서는 여름의 높은 온도가 극심한 건조가 많은 동물로 하여금 휴면에 들어가게 작용한다. 이러한 각각의 경우의 휴면을 겨울잠(冬眠)또는 여름잠(夏眠)이라고 한다.
휴면에 들어가 있는 동안 동물의 성장이나 운동 따위는 거의 정지되고 수분함량이 감소될 뿐 아니라 물질대사 활동도 현저히 저하된다. 그러므로 생물체는 환경조건에 대해서 높은 저항성을 나타낼 수 있게 되며, 여기에 휴면에 적응적인 의의가 있는 것이다.
휴면의 한가지 형태인 겨울잠은 동물이 생활활동을 중지한 상태에서 겨울을 나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겨울잠이라고 하면 정온동물의 계절적인 비활동 상태를 가리키지만, 넓은 뜻으로는 땅위에 사는 절지동물 패류 양서류 파충류 따위 변온동물의 월동까지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곤충류는 종류에 따라서 알 유충 번데기 성충의 어느 단계에서 겨울을 날 것인지가 정해져 있어서 추운 겨울을 무사히 지내기 위해서 각기 독특한 월동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철에 땅을 10~15㎝ 가량 파보면 참개구리가 겨울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늦은 가을에 양지바른 곳에서 참개구리가 땅을 파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개구리는 앞다리로 버티고 뒷다리로 흙을 파헤치면서 몸을 시계방향으로 돌려 점점 땅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또한 이듬해 새싹이 돋는 봄에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이번에는 뒷다리로 버티면서 앞다리로 흙을 밀어올려 머리부터 나오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개구리류는 땅속에서 겨울을 나지만, 옴개구리 같은 것은 물속에서 겨울을 나기도 한다.
정온동물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있는 온도조절 중추를 시상하부에 가지고 있으므로 외계의 온도 변화에 관계 없이 적절히 체온을 유지한다. 그와는 달리 변온동물의 체온은 외계의 온도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늦은 가을이나 초겨울이 되어 외계의 온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체온도 같이 떨어지게 되고 심하면 생활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까지 도달하기 전에 적당한 피난처를 찾아 보금자리를 만들어 겨울잠을 자게 된다. 겨울잠을 자기에 적합한 장소로는 남향으로 된 사면의 땅속이나 돌밑같은 곳이 많이 이용된다.
정온동물 중에서 겨울잠을 자는, 이른바 동면동물은 고슴도치 다람쥐 박쥐처럼 몸집이 작은 포유류에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포유류들은 체온조절 능력이 제한되어 있어서 체온을 일정한 범위내에서 유지하지 못하므로 진정한 정온동물과 구별해서 이온동물(異溫動物)이라고 부른다. 이온동물은 겨울에 기온이 낮아지면 체온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게 되므로 활동을 중지하고 겨울잠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포유류의 경우, 큰 포유류에 비해서 몸의 부피에 대한 표면적인 비가 크다. 때문에 동일한 몸의 부피를 통해서 방출되는 열량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몸집이 작은 동물이 겨울철에 체온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겨울철에는 기온이 떨어질 뿐 아니라 먹이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에너지의 손실을 최소하하면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온도의 변화가 적은 따뜻한 곳에서 일시적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겨울잠을 잘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리적인 변화를 다람쥐 고슴도치 햄스터 박쥐 따위 포유류를 가지고 실험을 한 결과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겨울잠에 들어가기 앞서서 하는 준비과정과 실제로 겨울잠을 자는 동안, 그리고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동안에 일어나는 변화를 각 단계별로 나누어 생각해보기로 한다.
겨울잠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겨울잠에 들어가기에 앞서 동물들은 늦은 가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먹이를 최대한 섭취하고 이를 체내에서 지방으로 전환시켜 저장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 때 다람쥐의 호흡률(C${O}_{2}$/${O}_{2}$)이 1이 넘는 사실로 미루어 섭취한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합성되는 과정이 겨울잠을 준비하는 동물체내에서 일어남을 알 수 있다. 한편 다람쥐의 경우와는 달리 햄스터에서는 지방의 축적은 일어나지 않고 대신 먹이를 저장하고 느지막이 겨울잠에 들어간다. 5℃정도가 되어야 비로서 햄스터는 저온에 대비해서 녹는점이 낮은 불포화지방을 축적하여 겨울을 날 준비를 갖추게 된다.
고슴도치는 여름철에도 인슐린을 주사한 다음 차게 유지하면 겨울잠을 자게 만들 수가 있다. 고슴도치가 자연 상태에서 겨울잠을 잘 때는 혈액내 인슐린의 수준이 상승함을 볼 수 있다. 즉 겨울잠을 자기 전에는 인슐린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갑상선이 줄어드는 현상도 관찰되는데, 실제로 갑상선 호르몬을 주입해 주면 겨울잠을 자지못하도록 할 수도 있다. 이 밖에 뇌하수체도 겨울잠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면동물에서 뇌하수체를 제거하면 체온이 조절되지 못하므로 변온상태를 유발시킬 수가 있으며, 따라서 뇌하수체 추출물을 주입해주면 햄스터를 겨울잠에서 깨어나게 할 수도 있다.
다람쥐 실험에 의하면, 겨울잠에 돌입하면 피부의 혈관이 확장되고 근육의 장력이 떨어지면서 체온이 시간당 2~4℃정도씩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체온이 서서히 떨어져서 직장의 온도가 33~34℃가 되면 심장의 박동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뒤 이어 숨쉬기의 율도 점진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겨울잠을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추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추위만으로 겨울잠이 유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동물이 겨울잠에 대한 준비를 갖춘 다음에야 비로소 겨울잠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첫째는 체온조절 능력이 약화되어서 체온이 떨어지는 것에 비해 열의 발생이 더 빨리 감소되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어 햄스터는 다람쥐에 비해 늦게 겨울잠에 들어가게 된다. 외계의 기온이 30℃에서 5℃로 떨어지면 다람쥐는 열의 발생이 감소되어 즉각 겨울잠에 들어간다. 그러나 햄스터는 산소소비량을 평소의 2.5~3배로 증가시키기 때문에 늦게 겨울잠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겨울잠의 지속
겨울잠으로 빠져들면 체온이 떨어짐에 따라 심장의 박동률도 떨어져 최저에 이르게 되고, 3℃이하가 되면 심장의 박동 자체가 불규칙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다람쥐의 심장 박동률은 활동시에는 분당 2백~4백번이나 되지만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는 분당 7~10번밖에 되지 않는다. 숨쉬는 율도 더불어 낮아지고 대단히 불규칙하게 된다. 겨울잠에 들어간 햄스터에 미주신경을 통해서 자극을 주어봐도 박동률은 달라지지 않는다
동물이 일단 겨울잠에 들어가면 시상하부의 체온조절 중추는 정상 체온보다 훨씬 낮은 20℃정도의 낮은 온도로 맞추어진다. 그러나 외계의 온도가 5~15℃의 범위에 있게 되면 동물의 체온은 외계의 온도보다 고작 1~3℃정도 높게 유지될 뿐이다. 만약 외계의 온도가 더욱 떨어져서 위험한 수준까지 육박하게 되면 동물은 물질대사율을 증가시켜 체온을 높일 뿐 아니라 겨울잠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겨울잠을 자고 있는 동안 대사율은 평소의 1/20~1/100 정도까지 감소된다. 예를 들어 모르모트의 경우, 10℃에서 깨어있을 때 휴지상태의 대사율은 2.8Kcal/㎏/시인데 비해 겨울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는 0.09kcal/㎏/시가 된다. 호흡률(C${O}_{2}$/${O}_{2}$)은 0.7 정도가 되어 지방이 에너지를 내는 데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이산화탄소를 강제로 흡입시켜 보면 숨쉬는 율이 증가할 뿐 아니라 심장의 박동률도 증가한다. 따라서 겨울잠을 자는 동안도 호흡 중추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 이러한 경우, 다람쥐는 숨쉬기만 빨라질 뿐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지만, 햄스터는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차이를 나타낸다.
이와 같이 겨울잠을 자는 동안 대사율이 현저히 낮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체중은 상당히 감소된다. 예를 들어 갈색박쥐의 체중이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에는 21.5g 이었던 것이 1백80일동안 겨울잠을 자고 난 다음에는 16.1g으로 줄어들었다. 이 때 갈색박쥐의 지방은 28%에서 10%로 줄어 체중 감소의 절반 정도는 지방의 소비에 의해서 일어남을 보여준다.
겨울잠을 자는 기간 동안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주기적으로 겨울잠에서 깨어나서 방광에 고인 배설물을 배설하거나 먹이나 물을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머니쥐를 20℃에서 겨울잠에 들게 한 다음 온도를 2℃로 낮추어 보면, 주머니쥐는 깨어난다. 다람쥐의 경우는 겨울잠을 자는 전체 기간의 약 7%에 해당되는 기간을 깨어 있었다. 횟수로 따지면 매 11일마다 한번씩 깨어났고, 햄스터는 매 1.6~2.7일 마다 깨어나는것을 볼 수 있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남
다람쥐의 실험 예에서 보다시피, 겨울잠에 빠져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깨어날 때는 훨씬 빨리 깨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다람쥐의 경우 잠들기까지는 12~18시간이 걸렸으나 깨어나는 데는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밖에 박쥐의 경우는 한 시간 이내에 깨어나고 그 밖의 동물은 3시간 정도면 완전히 깨어난다. 박쥐를 1백44일간 냉장고에서 겨울잠을 자도록 두었다가 실온으로 되돌려 놓았더니 15분 후에는 날아다닐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다람쥐는 4℃에서 35℃까지 회복되는 데 4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동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데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것은 겨울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포유류의 목부분과 견갑부분에 축적되었던 이른바 갈색지방 조직이 활성화되어 내는 열로 알려져 있다. 이 때 발생한 열에 의해서 심장의 온도가 상승하게 되고 그 열이 혈류를 통해서 몸의 각 부분으로 전달됨으로써 체온이 급속하게 상승하는 것이다. 특히 이 갈색지방조직은 신속하게 다량의 열을 내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잠에 대비하는 여름잠은 동물이 무덥고 메마른 계절을 휴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여름잠은 열대지방에서 극심한 건조기에 흔히 볼 수 있으나 온대지방에서도 여름잠을 자는 동물의 예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수분 증발에 대한 방어기능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달팽이나 개구리다. 이들은 습도가 높은 땅속에 있는 구멍이나 틈을 찾아 파고들어 가사 상태에서 여름잠을 자는 집단을 만든다. 달팽이의 경우에는 몇년동안 휴면하다가 깨어났다는 기록도 있으며, 이밖에도 많은 동물들이 여름잠을 잔다.
예컨대 땅위에 사는 플라나리아, 거머리와 그 밖의 여러 가지 곤충류, 악어, 거북, 뱀 등에는 여름잠을 자는 예가 많다. 특히, 페어류는 건조기에 물이 말라버린 못이나 늪속으로 파고들어 거의 3개월간에 걸쳐 여름잠을 자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름잠을 자는 동안은 혈관분포가 풍부한 부레(페)로 호흡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