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과학에서 체험하는 과학으로!”미국의 과학관들이 전시 위주에서 탈피해 관람객들이 기계와 실험장치를 조작하며 자연 현상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과학관을 대대적으로 수술하면서 내걸고 있는 구호이다. 미국의 도시들마다 생겨나고 있는 이런 ‘체험형 과학관’의 씨앗을 처음 뿌린 사람은 프랭크 오펜하이머(1912-1985)란 물리학자이다. 원자폭탄을 만든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동생인 그는 형을 도와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전쟁 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개념의 과학관을 만드는 일에 앞장섰다.
오펜하이머는 학생이나 대중들이 실험장치를 통해 중력, 전자기력, 빛, 소리 등 자연 현상을 직접 체험해 봄으로써 과학의 중요한 개념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해서 그가 만든 최초의 과학관이 익스플로러토리움이다. 금문교가 바라다보이는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1969년 세워진 이 과학관에는 아직도 그가 직접 만든 각종 실험장치들이 전시돼 있다. 매년 60만명이 찾아오는 익스플로러토리움은 미국에서 가장 좋은 과학관을 꼽을 때마다 항상 1위를 차지할만큼 알찬 전시물로 가득차 있다.
익스플로러토리움에 들어서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전시된 6백50개의 장치를 당기고, 쳐보고, 퉁기고, 소리지르고 장난치면서 “한번 해봐” “와” “멋지네”하고 소리를 질러대 이곳이 과학관인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전시물을 만지지 말라고 야단치는 사람들도 찾아볼 수 없다. 애당초 만지며 스스로 의문을 품고 조작하면서 해답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기 1위 익스플로러토리움의 비결
익스플로러토리움의 도서관장인 로즈 팔랑가는 “여기는 사이언스 뮤지움이 아니라 과학, 예술, 그리고 시각,청각 등 인간 지각의 전시관”이란 사실을 강조한다. 아이 트랙이란 전시물은 지각과 과학의 결합이 무엇인지 느끼게 한다. 이 장치의 컴퓨터 스크린은 영상을 보여주고 관람객의 눈의 움직임을 추적해 어느 곳을 응시했는지 알려준다. 사람들은 똑같은 사진을 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응시하는 곳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된다. 익스플로러토리움이 하루에 한번씩 하는 소 눈깔 해부 시간에는 발딛을 틈도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해부를 하면서 관람객들은 소의 눈동자(동공)는 타원형이지만 사람은 원형이며, 소는 망막에 원추세포가 없기 때문에 컬러는 못보고 형체만 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익스플로러토리움 바로 옆 샌프란시스코 앞바다 방파제에는 바닷물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음악 감상도 즐길 수 있다. 방파제에는 25개의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파이프가 묻혀져 있어 파이프를 통해 바닷물이 들락날락거리며 소리를 낸다.
익스플로러토리움이 그동안 개발한 7백개 이상의 전시물들은 미국 내의 다른 과학관에도 그대로 복제품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다. 전시품과 프로그램의 개발에는 매년 1만명의 교수와 4만5천명의 교사가 참여한다. 그야말로 익스플로러토리움은 과학교육 개혁의 선봉장인 셈이다. 과학관이 단순히 전시장이 아니라 학교에 부속된 일종의 교육시설이다. 갈수록 명성이 높아지자 익스플로러토리움은 외국의 과학관에 전시물을 판매하거나 빌려주는 사업도 하고 있다.
실내에서 만들어진 대형 번개
미국 동부의 보스턴도 하버드와 MIT 등 명문대학이 자리잡은 도시 답게 훌륭한 과학관을 갖고 있다. 19세기 말에 세워진 이 과학관은 그동안 꾸준히 전시품을 개량해 미국 전역에 설치된 과학관의 또 다른 모델이 돼 왔다. 이 과학관의 구호는 활동으로서의 과학(SCIENCE AS AN ACTIVITY)이다.
이 과학관의 가장 유명한 전시품은 번개 제조 장치. 이 장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반데그라프 제너레이터와 실내 번개 실험장치로,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원자의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실험장치로 사용해오다가 1980년에 기증했다. 높이가 11m나 되는 이 거대한 장치에 2백50만 V의 전기가 흐르면 무려 4m나 되는 스파크가 튀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관람객들은 몇 미터 앞에서 이 번개를 보면서 정전기가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지 그리고 번개와 천둥이 칠 때에는 어떻게 해야 안전한지 배운다.
보스턴 과학관에는 이밖에도 5세 이하의 유아를 위한 디스커버리 센터, 휴먼 바디 커넥션, 과학 극장 퍼포먼스, 사이언스 라이브 스테이지, 찰스 헤이든 천체관 그리고 5층 높이의 돔 스크린을 갖춘 옴니 극장이 있다. 또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어 많은 노인들이 구경을 한 뒤 카페에서 담소를 즐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을 여행한다면 꼭 하루쯤 시간을 내서 가볼만한 훌륭한 과학관으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느 곳이 워싱턴 D.C의 미국항공우주국(NASA) 과학관이다. 이 곳은 항공기와 우주선 등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고, 라이트 형제가 1903년에 날렸던 ‘플라이어’의 모델, 아폴로 11호의 사령선 모듈도 볼 수 있다. 이 전시관에서도 조작과 체험을 통해 비행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50개의 인터랙티브 전시물이 가장 인기이다. 관람객들은 풍동 속에 있는 비행기의 날개를 조종하면서 이착륙과 비행의 원리, 베르누이의 정리를 체험할 수 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사이트렉 과학관은 무중력을 느낄 수 있는 시설, 우리의 몸을 배터리로 만들 수 있는 실험시설로 유명하다. 시카고의 과학산업관에서는 병아리가 깨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코너, 나포된 독일 잠수함, 석탄광산의 실제 복사품이 인기다.
미국 남부의 플로리다주 스페이스 센터에 있는 스페이스포트는 로켓과 우주왕복선을 쏘는 기지답게 우주선과 로켓 전시장이 있고 5층 높이의 커다란 대형 스크린에서 우주왕복선의 발사장면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뉴욕시에 있는 뉴욕홀오브사이언스도 비누거품부터 레이저빔까지 모든 것을 실험할 수 있는 과학관이다.
미국 동남부의 과학도시 샤롯트에 있는 디스커버리 플레이스에서는 3층 높이의 열대림이 조성돼 있어 희귀종의 새와 폭포 등을 볼 수 있다. 피뢰침을 만든 벤자민 프랭클린을 기념해서 만든 필라델피아의 프랭클린 과학관에서는 3백50t 무게의 기관차를 직접 운전해볼 수 있으며 자신의 혈액이 몸 속에서 흘러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