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전화기를 넣고 다니면서 어디에서나 통화할 수 있는 '포킷폰'시대가 열리고 있다.
언제든지 어디서나 누구와도 전화할 수 있는 시대가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막이 올랐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체신부는 한구이동통신(주)이 제출한 휴대용 전화설치 및 요금안을 승인함으로써 서울지역에서는 6월 하순께부터 일반이용자들도 휴대용전화기만 갖추면 아무곳에서나 전화선없이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체신부는 먼저 서울지역에서 1회선의 청약을 받은 뒤 올해안에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대조시 이용영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그런데 휴대용전화를 이용하려면 우선 3백만원 안팎의 휴대용전화기를 사야하며 설치비로 차량전화(카폰)와 같은 65만원을 내야 한다. 또 이 전화가입자는 월 2만 7천원의 기본료외에 시내 및 시외 50km까지 초당 25원의 도수료를 지불한다.
휴대용전화는 실상 일반 서민으로서는 그렇게 절박하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장비의 값이나 사용료도 너무 비싸 당분간은 '그림의 떡'같은 존재이지만 꼭 필요한 사람들이나 기관에게는 혁신적인 통신수단을 제공해 주는 한편 카폰과 함께 과밀한 주파수이용을 완화시켜 통화의 처리량을 늘려준다.
바뀌는 생활양식
'그레이험 벨'이 처음으로 전화로 통화를 한 이래 1백1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말과 달구지는 승용차로 바뀌고 열차는 비행기로 대치되었으며 컴퓨터는 여러 사무용 기계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었으나 전화만은 기본적으로 예나 제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전화통은 한세기 남짓 행동의 자유를 묶었던 전화코드를 벗어 던지고 훨훨 어디든지 활동의 나래를 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른바 '셀'방식 전화(cellular telephone)라고 하는 휴대용전화는 컴퓨터로 제어되는 중계국을 통해 공중전화회선과 접촉하는 무선전화 시스팀, 낮은 출력의 이런 무선이 충분히 도달 할 수 있게 한 도시를 여러개의 적은 (반경 5~10km 정도) 셀(cell)로 나눠 각 셀마다 중심에 중계국을 배치한다.
카폰이나 또는 휴대용전화로 호출하면 이 신호는 무선파를 타고 가까운 셀 중계국으로 간다. 컴퓨터로 제어된 중계국은 이 무선신호를 이동서비스교환센터로 보내 정규의 공중전화망에 연결해준다. 이 중계국은 또 카폰의 경우라면 승용차가 한 셀에서 다른 셀로 이동했을 때 자동적으로 이동해 들어간 셀의 중계국에 이 무선신호를 인계해주기 때문에 통화의 중단이 없다.
미국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시에서는 소방소장차의 카폰덕에 화재를 빨리 진화할 수 있었다. 화학물의 폭발로 생긴 화재현장에서 소방소장은 컴퓨터를 카폰에 연결하여 정부의 비상사재 데이타베이스를 불러 그 화학물에 대한 진화처방을 곧바로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오늘날 여러 어로선단들이 셀방식무선을 통해 고깃배 사이의 통신을 하고 있다. 종래에는 어로전략을 짤 때 어선간의 대화는 공중파를 통해 무선으로 해, 경쟁자들이 쉽게 그 내용을 도청할 수 있었으나 셀방식은 도청을 통해 막을 수 있다.
셀방식은 또 벽지의 전화서비스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의 일부 전화회사는 전화선을 끄는 비용을 고객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그러나 셀방식을 이용하면 가입자의 부담을 훨씬 줄이게 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셀률러 L.A'사라는 통신서비스망에 가입한 고객들은 이 지역의 고가도로를 운전하는 동안 교통체증에 관한 정보를 수시로 제공받을 수 있다. 전자공업의 메카인 실리콘 벨리가 자리한 '오린지'군(郡)은 고속도로를 따라 1천개의 셀방식 전화박스망을 설치하여 운전자를 도울 계획이다. 이 방식을 채택하면 정규의 지상선시스팀을 부설하는 경우보다 비용을 4천4백만달러나 절감할 수 있다.
다양한 용도
셀방식 전화는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설회사 간부들이나 건축가들은 그리고 출장중인 세일즈맨 뿐 아니라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 예컨대 미국 뉴욕주 올바니근처에서 사탕옥수수를 경작하고 있는 제임스 웨브라는 농부는 트랙터에 이동식 전화를 가설한 덕에 중간상인을 배제하고 20여개의 고객들과 직접 거래함으로써 수입을 15%나 더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수확기에 지불하는 전화사용료는 한달에 2백50 달러에 이르지만 이것은 여분의 수입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액수이다. 이런저런 잇점 때문에 미국의 이동용 전화의 수요는 연간 40%라는 가파른 증가추세를 보여 지난해에는 가입자수가 마침내 1백만명을 넘어섰다.
런던에서 사무변호사업을 하고 있는 '조나단 실버맨'에게는 종전에 사무실밖에서 업무상 전화를 건다는 것은 끔찍스러운 일이었다. 이리저리 헤매면서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 동전을 한손에 가득 움켜쥔채 전화를 걸어야 했으나 셀방식 카폰을 장만한 이후에는 이런 번거로움에서 해방 되었다.
지난 1월에는 법정에서 변호의뢰인이 복잡한 사건을 다루다가 중요한 서류가 빠진 것을 알고 슬쩍 법정을 빠져 나갔다. 그는 곧 밖에 세워둔 그의 볼보세단차에 들어가서 셀방식 전화로 브뤼셀를 불러 필요한 서류를 팩시밀리로 받아 변호용의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 영국에는 실버맨과 같이 이동용 전화의 쓸모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1985년 1월에 서비스를 개시한 이래 벌써 고객의 수는 20만명을 넘어섰고 매월 신규가입자의 수가 1만 2천명을 헤아리고 있어 1990년까지는 50만명의 이동용 전화 서비스 가입자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화가입자의 10%육박
영국이 세계의 셀방식 전화시장의 가장 활발한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이동식 전화 메이커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어 값도 반으로 떨어져 설치비까지 합쳐 세트당 1천2백50달러(약 92만원)밖에 먹히지 않는다. 이것은 독일보다 3분의 1이나 싼 값이다. '택시폰'사는 최근 런던의 이름난 검정색의 택시 1백여대에 이동용 전화를 가설했는데 승객들은 크레디트 카드로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다. 요금은 피크타임에 매분당 2달러 22센트(약 1천6백원)이다.
1981년 서비스를 개시한 스칸디나비아의 '노딕 모바일 텔리폰 시스팀'은 세계 최대의 셀방식망으로서 현재 가입자수는 35만명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일본의 경우 1979년 12월 동경에서 처음 자동차전화가 등장한 이래 급속히 성장을 거듭해 오면서 이용자수는 5만을 넘어섰다. 서비스지역도 해마다 넓혀나가 전국 4백60개도시 외에도 삿포로에서 동경, 대판 그리고 구주의 쿠마모토를 묶는 주요 간선도로를 따라 연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체신부의 계획에 따르면 91년까지 4만9천50회선의 카폰을 설치할 수 있는 용량의 시설을 갖춘다.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세계 전화가입자의 10%가 이동전화이용자가 될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기술혁신의 물결
그런데 기술혁신은 이동식 전화의 보급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이동식 전화의 선발메이커인 미국의 '모토롤라'사와 캐나다의 '노바테'사는 운전중 손으로 수화기를 들지 않고도 통화할 수 있는 카폰을 이미 내놓았다. 또 여러 메이커들은 음성명령으로 다이얼을 돌릴 수 있는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일본 메이커들은 셀방식망을 통해 카폰으로 행선지에 서류를 전송할 수 있는 팩시밀리 기계를 팔고 있다.
다음에 넘어야 할 고개는 지갑보다 크지 않은 초경량의 휴대용 전화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베터리에 있다. 셀방식 휴대용 전화는 승용차의 전기시스팀으로 동작하는 전화와는 달리 자체의 전력으로 작동해야 한다. 노바텔사는 1990년대말에 가서 새로운 마이크로칩기술과 리튬 재충전 배터리의 개발로 휴대용전화의 크기를 오늘날의 80%이하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도 있다. 값도 그 무렵이 되면 현재의 60%정도 떨어지게 될 것이다.
끝으로 셀방식 통신망은 오늘날의 애널로그식 전송대신 컴퓨터가 다루기 쉬운 디지틀식으로 바뀔 것이다. 지난해 유럽각국의 전화당국은 1991년까지 유럽전역에 걸쳐 강력한 새로운 디지틀 셀 시스팀을 설치하기 위한 공동표준을 채택했다. 한편 주파의 이용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셀의 크기를 줄이는 노력도 줄기차게 추구되고 있다. 현재 런던시내의 셀망은 반경 5백미터의 세계 최소의 셀로 구성되어 있다.
아뭏든 휴대용전화가 오늘날의 전화처럼 번져 나가면 인간은 이제 '숨을 곳도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된다.
컴퓨터사회와 신체장애자
지난 6월은 정보문화의 달. 정보통신의 생활화를 목표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정보문화의 달을 지정,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다. 그중에서 세인의 관심을 끈 행사가 하나 있었다.
정보통신의 새로운 메카로 등장한, 용산에 위치한 데이콤플라자에는, 평소와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컴퓨터 앞에 앉은 사람들의 옆에는 대개 목발이 있었고 간혹 휠체어에 의탁한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삼육재활원 신체장애자들이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다.
데이콤플라자는 16비트 PC를 1백여대 설치해놓고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초청, 컴퓨터를 일상생활에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교육하는 장소이므로, 이번에는 신체장애자들이 초청되었구나 생각하면 별다르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저 주최측에서 이런데까지 세심한 주의를 썼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그러나 정보통신과 신체장애자 사이에는 좀더 심도있는 관계가 설정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날의 행사가 그냥 지나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정보화사회, 엘빈 토플러를 비롯 우리나라 정보화사회 선각자들은 정보사회를 거스를 수 없는 제3의 물결이며 현대 산업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라고 열변을 토했다. 정보화사회에 대한 명강연과 명문의 글 뒷부분에는 항상 다음과 같은 예가 예외없이 첨부돼 있다. 즉 컴퓨터가 곳곳에 보급되고 이것이 거미줄 같은 통신망에 의해 네크워크화 되면 노약자, 신체장애자, 또는 육아를 둔 가정주부도 정상인과 다름없이 업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재택근무는 제약을 가진 인간들에게 날개를 달아줘 사회적 노동에 기여할 수 있게 해주므로 조그만 의미의 '인간해방'을 가능케 한다는 것.
이 행사가 있고 나서야 우리나라의 정보화사회 선각자들은 비로소 면죄부 하나를 받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죄는 자신이 떠든 말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과학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컴퓨터에 관련된 책과 잡지를 많이 보았어요. 컴퓨터 사회가 되면 저희들도 훌륭한 직업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글을 읽을 때만다 가슴이 울렁거렸어요. 오늘에야 처음 컴퓨터를 대하지만…"
너무 기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한 참석자의 이야기,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자판(키보드) 두드리기가 쉽지 않네요. 몸이 불편해서 그런지…. 우리몸에 적합한 컴퓨터 만드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요?"
외국의 어느나라에서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컴퓨터 보조기구가 개발됐다는 어느 잡지기사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