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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과 인체의 합창같은 매력에 끌려

 

악규석(安圭錫ㆍ40) 박사는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한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대구한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1985년부터 모교에서 병리학을 강의하고 있다. 현재 경희대 한의학과 학과장. 저서로는 <;동의 병리학 총론>;등이 있으며 3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언제 누구에 의하여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린 시절 나에게는 별명이 하나 있었다. 사실 동네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거의 별명이 붙어 있었다. 군수, 면장, 지서장, 의약박사 ···. 그 가운데 나는 '의약박사'라는 듣기에 기분좋은 별명을 부여받았다. 이는 아마도 내가 어릴 때 몸이 좀 허약했던 점, 학문에의 자질이 약간 보였던 점이 그러한 별명을 낳은 것으로 추측된다.

●-식물채집에 귀신같았던 아이

국민학교 여름방학 숙제에는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이 거의 빠지지 않았다. 채집에 관한 한 그때 이미 나는 탁월한 소질을 발휘하고 있었다. 식물채집의 경우 약초표본이 대부분이었는데 귀신같이 찾아내 늘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마산에서 하숙을 하면서 지냈는데 당시 나는 설사병을 자주 앓았었다. 그런데 양약을 먹으면 낫고 안먹으면 금방 재발하곤해서 큰 곤역을 치뤘다. 큰 형님 덕분에 약을 끊지않고 계속 먹었는데 임시변통일 뿐 병의 근원은 잘 치료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매우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의대를 지원, 자신있게 응시했으나 예상외로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실로 나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험에서 낙방한다는 것은 생각초차 못했다. 그러니 후기 대학은 애당초 관심 밖이었다.

마음을 정리하기 위하여 나는 시골에 내려가 양계장 일을 도왔다. 그때 나는 매우 기이한 한 사건에 접하게 되었다. 병아리가 부화되면 보통 1~2주 안에 많이 죽어 나갔다. 그런데 이것을 예방하고 건강한 닭을 만들기 위하여 병아리에게 인삼잎사귀 삶은 물을 주는 것을 보았다. 그 결과 치사율 산란율 등이 월등히 좋게 나타나고 있었다. 덜 죽고 알을 많이 낳았다는 말이다.

이때에 또 하나의 충격이 가해졌다. 약사이신 큰 형님이 들려준 말씀이었다. 그는 신약은 부작용이 많고 근본 치료가 잘 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화학약품이 아닌 자연의약품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충고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나를 한의과대학으로 인도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잘 알려지지도 않은 경희대 한의학과에 용기있게 원서를 냈다. 당시 나의 동창생 친구들은 그런 나를 비웃었으며, 장학금 타려고 가느냐고 놀려댔다.

막상 입학하여 교복과 뱃지를 받아들고 나니 일류대학에 입학, 뽐내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때부터 나는 졸업할때까지 그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허나 졸업후에는 모두들 나를 찾아 왔으며 오히려 '나의 선택'을 부러워하였다.

●-한문실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입학 후 1년간은 한의학을 이해하는데 매우 힘든 기간이었다. 고등학교까지 공부하는 동안 모든 지식이나 사고가 서양 과학적, 부분적, 세포조직적, 서양철학적으로 세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고를 동양적, 전체적, 종합적 사고로 바꿔야만 했기에 많은 번민이 따랐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이 점차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근래에는 중고등학교의 교육내용에 동양적 민족적인 것이 얼마간 포함되어 있어 학생들이 적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으니라고 생각된다.

우리 것을 몸에 익히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은 창피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를 잘 소화하지 못하고 전과(轉科)를 하는 학생도 있었다.

흔희 한의과대학에 들어 가려면 한자(漢字)를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쉽다. 물론 많이 알아서 해(害)될 것은 없다. 그러나 염려하는 것처럼 그렇게 높은 한문 실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적 술어등 특징적인 내용만 알고 나면 대체로 누구나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에 다닐 때 고민한 것 가운데 하나는 학문의 길을 가는냐, 개원(開院)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나의 고민을 지켜보던 대부분의 선배들, 심지어 교수님들께서도 개원을 권하였다. '한방병원을 차려 경제적 여유를 가지라'는 권유는 사실 나의 기를 세우게 했다.

그러나 아직도 황무지와 같은 이 엄청난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희생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이 같은 생각을 다져가다가 마침내 '내 사랑하는 학문'을 위해 한몸을 던져야겠다고 결정하고 나니 날 것만 같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대학원에 입학했고 곧 조교로 발령받아 학문을 계속하였다. 대학원에서는 정리되지 못한 이론을 알기 쉽게 정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BC 3세기 전에서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자들이 발표한 학설을 종합하여 정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우선 문헌의 수집이 어려웠다. 또 시대에 많은 각종 풍습 철학 그리고 학리(學理)의 차이 등을 이해하는 작업을 '시간의 소모전'이었다. 그러나 어려움을 느낄때마다 당시 지도교순님이셨던 문준전교수님은 의문을 풀어 주셨고 아울러 용기도 불어넣어 주셨다. 현재 내가 한의학 학문을 연구해 나가는데 밑거름이 되었던 시기는 고서(古書)와 더불어 지냈던 조교 시절이었다.

●-동양의학 대(對) 서양의학

이번 나를 매혹시켰던 한의학이란 '어떤 학문인가'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한의학은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동양 고유의 학문으로 수많은 의학자들의 예지와 경험이 집적되어 있다. 동양인들은 대자연에 순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깊이 깨달아 왔다. 그래서 소박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자연과 인간을 관찰, 자연으로부터 치료방법을 발견하여 인간에 응용하였다.

또 한의학은 서양의학에 비하여 개인적인 차이를 중시, 개인의 체질적인 원인과 증상을 먼저 생각한다. 병인(病因)론에 있어서도 서로 다르다. 한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부분적인 어떤 이상상태라고 보지 않고 몸 전체의 기능이 균형을 잃은 결과라고 본다. 때문에 서양의학을 부분적, 세포조직적이라고 한다면 한의학은 종합적, 전체적, 유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서양의학은 한의학에 비하여 외과적인 면에서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한의학은 내과적인 면에서 앞서가고 있다. 사상적 배경에 있어서도 차이가 난다. 서양의학은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인체와 생명을 물질로 규명하려고 든다. 하지만 한의학은 음양론적인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음양의 균형이상을 관찰하는, 보다 인간적인 '인간학'인 것이다.

한의학이 종합적 전체적이라고 해서 세밀한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대충 겉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종합적 전체적이란 말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눈이 나쁘다'는 상태를 치료할 때 한의학은 '눈' 자체에만 병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간이나 소화기계통 혹은 본래의 체질을 더 중요하게 관찰한다. 그래서 '눈'과 다른 기관들과의 유기적 관계를 보다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요컨대 한의학자나 한의사의 관심사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무엇이 건강의 조화를 파괴하고 있는지를 찾는데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한의학과 교과과정은 여러 과로 분류돼 있다. 한의학의 현대화와 미래 지향적인 제3의학의 창출을 위해 양의학의 기초적인 과목은 모두 배운다. 아울러 동양철학 의학한문 심리학 중국어 등 교양과목과 한의학개론 의사학 생리학 병리학 본초학(약물학) 방제학 등의 전공기초 과목도 이수해야 한다. 또 간(肝)계·심(心)계·비(脾)계·폐(肺)계·신(腎) 등 5개 내과학 부인과학 소아과학 침구과학 신경정신과학 외과학 안(眼) 이비인후과학 피부과학 물리요법과학 등 전공 임상과목을 배우게된다. 한방과목과 양방과목의 비율은 2대 1정도 짜여져 았다.

●-국외로 진출하는 한의학도

그렇다면 한의학이 부르는 인재는 어떤 사람일까? 한의학은 전체를 종합하고 분석하는 폭넓고 융통성있는 사고를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현미경적인 사고보다는 망원경적인 사고력을 원한다. 따라서 흑백논리에 익숙해 있거나, 틀에 박힌 조직적 부분적 초등수학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아예 한의학과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경외하는 마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희생할 각오가 요청되는 것이다. 여기에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한의학을 세계화 현대화하기 위한 진취적인 기상과 협동심 그리고 민족 의학에 관한 깊은 애착을 가진 사람이 '한의학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갔으면 하는 소망이다.

한의학을 전공한 졸업생들은 대부분 의료일선에 진출하고 있다. 한편 졸업생의 50%정도는 보다 심도있는 연구를 위하여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중 10%는 조교나 수련의(醫) 등 연구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외로 진출하는 졸업생도 많다. 미국 캐나다 브라질 이탈리아 아프리카 등에서 자영(自營) 또는 중요인물의 주치의로 활약하고 있는데 그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이다. 앞으로 중공 북한 등과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면 한의학은 새로운 붐을 일으킬 게 틀림없다.

최근 정부당국에서는 국 공립병원에 한방과를 설치하고 국립의료원 부설로 한의학연구소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한의사의 발길이 보다 더 폭넓게 미치게 될 것이다.

최근 정부당국에서는 국 공립병원에 한방과를 설치하고 국립의료원 부설로 한의학연구소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므로 앞으로 한의사의 발길이 보다 더 폭넓게 미치게 될 것이다.

사실 한의학은 그동안 서양의학에 비하여 큰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정부의 지원책도 늘 미흡했다. 제도적으로도 제한이 많이 가해졌다. 이것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른 것은 오로지 선배 한의사들의 피땀 흘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뿌리사상 민족사상 동양사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점, 특히 중공과의 교역전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수년내에 반드시 국가적인 지원책이 나오리라 확신한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문제로는 의료기사(임상병리사 X레이기사 등) 지휘권(權), 공중보건의(한의학과 졸업생의 군복무 문제 관련된 문제, 현재 한의학과 졸업생중 극히 일부만 군의관이 된다). 한방의료보험 미비점 보완 등이 있으나 가까운 장래에 해결되리라 믿는다.

최근의 한의학 연구는 이제까지 있어왔던 전통적인 방법론을 더욱 심화하고 있다. 아울러 현대인들의 사고에 부응할 수 있는 보다 가시(可視)적인 증거를 포착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진맥의 기계화, 경락(經絡 침을 놓는 자리 즉 경혈이 연결되어 있는 통로)진단의 컴퓨터와, 한약의 엑기스(용출건조액)화 또는 정제화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경혈주사법 한방물리치료법의 개발, 각종 치료기기의 발명 등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 한방연구소 책임자는 장관급

참고로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한의학 연구 실패를 소개한다.

중국의 한의과 대학은 5~6년제 대학만 27개교(校)이다. 대학원급 21곳이며, 한방연구원은 46개소나된다. 전문 한방연구기구인 의약위생과학연구기구는 전국에 2백여개소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기초연구소는 단 한곳 뿐이다. 의학위생과학 기술분야 종사자는 줄잡아 1만7천여명. 중국 한의학 연구소중 가장 대표적인 중의연구원(중국에서는 한의를 중의하고 함)은 북경에 있는데 이 곳은 당중앙정부의 위생부가 직접 관할하는 중의약학의 종합연구기관이다. 한편 중약연구소는 한약의 감별 성분 화학 약리 등을 실험하는 연구실이 있어 본초학에서 생약학까지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중약대사전의 저술, 중약통보의 발간이 이루어진다.

중국의 침구 연구소는 전국 각지의 침구치료방법의 수집과 연구로 난치병에 대한 유효성분의 개발등 임상에 관한 연구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위탁을 받아 상해중의원과 함께 국제침구학습반을 설치 운영, 경락경혈의 국제통일화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맹장염 등 각종 수술을 침구마취를 통하여 실시, 국제적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중단된 상태지만 국내에서도 침술마취에 의한 맹장수술이 경희대 한방의료팀에 의해 성공된 적이 있다.

이외에도 역사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문헌정리를 주로 담당하는 중국의사문헌연구소와 각종 정보를 수집, 매월 또는 격월로 잡지를 발간하는 중의정보연구실 등이 있다. 이들 연구원의 원장은 대개 장관급이며, 예산 인력 조직 등에 파격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자유중국의 한의학은 대체로 우리나라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주로 생약연구를 위한 연구소가 여러 대학에 산재돼 있다. 사실 생약연구 부분에선 일본이 중공을 훨씬 앞지른다. 허나 생약이외의 연구는 깊지 못하며 한의학을 서양의학적 사고로 연구하고 있는 점이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일본에는 제제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순천당 한방제약이 있다. 이곳에는 최신시설을 갖춘 전속병원이 개설돼 있는데 자사(自社) 제품의 액기스 제제를 써서 진료하고 있다.

또 생약재배로 유명한 무전약품회사의 생약연구소가 있다. 이곳은 약 3만평의 자연부지에 2천5백여종의 약초가 식물을 재배하면서 그 생태와 효능을 연구하고 있다.

한편 북한에서는 중앙과 도(道)에 동의병원(북한에서는 한의를 동의라고 함)이 있고 시 군에는 시민병원 산업병원에 동의과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들의 동의학연구소는 1958년에 설립하여 한의서의 국역(國譯), 한약의 개발에 힘쓰고 있다. 북한 전역에는 11개 대학에 동의과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 주변국가의 한의학 연구실태를 돌아볼 때 우리 수준이 조금 뒤쳐져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한의학 관계자 모두가 분발하여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수많은 갈등을 잠재우며

이같은 시점에서 한의학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는 나는 여러가지 번뇌에 사로잡히곤 한다. 모든 게 잘 갖추어진 환경에서 다른 데 신경쓰지 않고 오직 학문의 길로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서 학문의 길은 갈등을 만들어 내었다.

학문의 길로 접어든지 10여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동안 갈등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때마다 미완성을 극복하는 지혜를 개발, 스스로를 위로하곤 하였다.

만약 한의학에 대한 매력을 갖고 그 길로 나가도 싶은 후배들이 있다면 다음 몇가지를 잘 기억해 주기 바란다.

학문을 하려면 우선 건강한 체질을 타고 나야 한다. 학문은 일시적인 용기나 돈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인내와 끈기있는 노력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둘째로 외국어 실력이 좋아야 한다. 세계의 문헌을 자유롭게 읽어 신속한 정보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을 하는데 특히 필요한 외국어는 중국어 일어 영어 등이다.

셋째로 한의학에 대한 애착심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또 한마디 더 덧붙힌다. 이는 나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가정환경은 너무 빈곤하지 않은 것이 좋다.

올해도 여러 사정으로 학생들과 더불어 여름방학 내내 온통 보충수업을 해야 할 형편이다. 남들이 시원한 곳으로 휴가를 떠나지만 나는 무덥지근한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인류복지건강에 미력(薇力)을 보태기 위해 불평없이 연구를 계속할 작정이다.

먼 훗날 이러한 노력들이 헛되지 않고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기왕 학문의 길에 들어섰으니 언제나 존경받고 창의적이며 성실한 학자가 되고 싶은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끝으로 소박한 하지만 어렵게 느껴지는 소망 하나를 밝힌다. 이제 교 내외적으로 학생이나 교수가 오직 면학에만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이 하루속히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98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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