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것이 1958년이니까 햇수로 따지면 꼭 30년 전이다. 아직도 중학생, 고등학생시절의 추억이 머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벌써 30년이 지나갔다니 세월의 빠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겠다. 내가 입학해서 6년간 다닌 학교는 서울중고등학교(지금은 중학교는 없고 고등학교만 있음)로, 이때의 생활이 아직까지의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향기로운 추억거리가 많은 시간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수학을 워낙 좋아하여서 수학 선생님들의 귀염을 받았고, 수학참고서란 참고서는 모두 구하여 풀어볼 정도로 열심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국어과목을 싫어하여서 언제나 국어성적이 나쁜 편이었고, 국어에 대한 콤플렉스는 고3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국어를 싫어하게 된 동기가 한문을 싫어했고, 국어선생님께 호감을 못 느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것은, 우리 글이 한문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므로 한문을 잘 공부해 두었으면 한다. 한문공부는 국어실력의 밑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거름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기간중의 추억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3가지의 추억이 있다. 첫번째가 중3, 고1때에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통하여 농촌봉사활동을 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농촌이 매우 살기 어렵고 전기시설도 미비하였으며 또한 글을 모르는 농민들도 상당히 많은 시절이었다.
우리가 주로 한 일은, 낮에는 근로봉사하고 밤에는 한글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일과는 매우 고된 것이었으나 우리는 이 활동을 통하여 근로정신, 봉사정신 그리고 애국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동창생들이 자주 만나 그 당시 일을 회고하곤 한다.
두번째로 고1, 고2시절에 미국인 선교사를 모시고 영어성경공부를 일주일에 한번씩 2년간을 한 추억이다. 이 선교사분은 우리에게 성경공부뿐만이 아니라 영어회화공부를 성의껏 시켜주었는데, 이분의 자애스러운 마음가짐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와닿곤 한다.
세번째로 고등학생시절에 호주대사관의 지원에 의해 서울고와 이화여고생들의 영어회화클럽에 가입하여 한 여러가지 활동이다. 이 클럽에서 영어로 연극, 음악회 등을 한 추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중·고등학교 6년간을 줄곧 1등
요사이 고등학생들은 입학시험준비에 너무 매달려 거의 정서적인 과외활동을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생각에는 부지런하기만 하면 학교공부도 잘하고 과외활동도 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얼마나 능률적으로 사용하느냐 일것이다. 고3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 밑의 학년에서는 각자가 하고 싶은 과외활동은 적절히 해나가면서도 학교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여러가지 과외활동을 하면서도 중고등학교 6년간을 줄곧 반에서 1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남보다 시간을 아껴가며 더 열심히 공부한 덕이라고 생각한다. 각자는 자기나름대로의 생활리듬이 있어.서 공부하는 방식이 다르리라 생각된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1시간 가량 자고, 저녁을 먹은 후에 공부를 시작하여 밤 12시까지 공부하고, 취침했다. 그리고 새벽 5시경에 일어나서 다시 학교갈 때까지 공부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이 방법으로 어쩌면 내가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였다고 생각되고, 간간이 시간을 내어 과외활동도 열심히 하였다고 기억된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다 주워진 환경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며, 최선을 다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자연히 올것임을 확신한다.
●―화학공학에서 산업공학, 다시 통계학으로
고등학생시절에 품은 희망은 장차 훌륭한 기술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제일 유명하다고 믿었던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지원하여 입학이 되었고, 일차적으로 나의 희망은 달성이된 셈이었다. 그런데 대학교 4년을 공부하면서 화학공학이 나의 적성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대학교 4학년 때에는 졸업후의 진로문제로 많은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졸업후에 군대생활을 하면서 휴가를 나온 틈에 교수님들을 찾아 뵙고 상의한 결과 산업공학을 공부하여 보기로 하고 미국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제대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과로 유학을 갔는데, 이 유학생활 초기 1년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극심한 시련기였다고 기억된다.
산업공학의 배경이 없이 대학원에 진학했고, 한국에서 컴퓨터교육을 못받았고, 또 군대생활하면서 공부하는 습성을 잃어버린 관계로, 미국학생들과 악전고투의 경쟁을 해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중고등학생시절과 같은 공부습성이 다시 살아났고,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으로 공부하다보니 차츰 자신을 찾아가면서 공부에 임할 수 있었다.
이 당시 산업공학을 전공으로 하고, 부전공(이 학교는 부전공을 필수로 요구하고 있었음)으로 통계학을 택하였는데, 산업공학보다는 통계학 공부가 훨씬 수월하고 재미있었다. 이것은 내가 중학교시절부터 수학을 제일 좋아한 것이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산업공학으로 간신히 석사학위를 받은후에, 박사과정은 통계학으로 전공을 바꾸어서 하게 되었고, 박사과정공부는 수월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공부하였다. 통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미국의 한 남부대학에서 3년간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7년에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로 부임하여 지금까지 통계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수학을 열심히 공부할 것
앞으로 대학교에 진학하고 대학교 졸업후에도 계속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모든 학문의 기초는 수학이므로 수학을 좋아하도록 노력하고, 수학을 잘 공부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대학원공부는 어떤 학문(이공계는 물론 경제학, 경영학, 사회학, 심리학 등의 사회과학을 포함)이든지 간에 수학적인 자질이 없으면 공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학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학자가 되고자 하는 학생은 자신이 수리적인 사고능력이 충분히 있는가를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이 수리적 사고능력은 선천적인 것도 있지만 후천적인 것이 더 크므로 수학을 좋아하고, 공부하다보면 자연히 길러지는 경우도 흔히 있다. 학문을 하려는 모든 지원자들에게 수학공부를 착실히 해둘 것을 거듭 당부하고 싶다.
두번째로 학문을 사랑하는 마음, 공부를 재미있게 생각하는 마음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누구나 다 태어나면서부터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고, 학자가 될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부가 싫증이 나면 할 수 없는 것이고, 아무리 좋은 것도 강제로는 절대로 잘 안되는 법이다.
●―공부는 이렇게
독자 특히 중고등학생 독자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은 공부방법을 권해보고 싶다. 우선 자기 반에서의 석차나 상대적인 비교에 신경을 너무 쓰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국어, 영어, 수학, 사회, 한문 등의 여러가지 과목 중에서 자기가 싫어하는 과목에 대하여 싫다고 멀리 하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듯이 애정을 주고 사랑을 보이면서 공부시간을 많이 배당하여 재미를 붙이도록 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응답이 있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과목이 좋아지는 경우가 흔하고, 실력이 향상되게 된다.
과목을 사랑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영어의 경우에는 한 과 정도의 문장을 암기해 보는 것이 좋고, 수학의 경우에는 색다른 문제집을 구하여 풀어보는 것이 좋고, 국어의 경우에는 뜻을 음미하며 좋은 문장을 암송해보는 것이 좋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공부를 아끼고 재미있게 해보려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며, 이런 태도가 은연중에 생기면 반에서의 석차 등도 저절로 향상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옛말이 있다. 스스로에게 "나는 학문을 좋아한다", "나는 공부가 재미있다" 등을 암시하고 노력하다보면 어느 땐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이같은 자기암시를 통해 공부에 자신이 생겨서 저절로 잘되어가는 경우가 많다.
●―통계학은 의사결정과학
이제 내가 전공하고 있고, 내가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통계학이란 학문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자.
통계학(statistics)이란 용어는 원래 국가산술(state arithmetic)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용어가 처음으로 나타난 곳은 1797년에 발간된 브리태니커백과사전(Encyclopaedia Britannica)이라고 한다. 그 책에서는 국가의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하여 인구, 세금, 연령, 직업 등과 관련된 필요한 숫자를 체계적으로 수집·정리·산출해내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통계학을 정의했다.
대부분의 학문이 그렇듯이 통계학도 역사적으로 발전과 변모를 거듭하였으며, 현대통계학은 '국가산술'의 영역을 벗어나서 데이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과학(decision-making science)으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현대통계학의 올바른 정의는 "사회, 자연 및 인간생활의 온갖 현상을 연구하기 위하여 불확실성(uncertainty)이 내포된 데이타의 수집계획, 정리, 분석방법을 연구하고, 미지(未知)의 모집단(母集団·population)에 대한 추정 및 검정을 통하여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의 획득과 처리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모집단이라는 것은 우리의 관심대상이 되는 집단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 모집단의 크기는 방대하고 이것을 전부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집단으로부터 극히 일부를 고르게 추출하여 표본(sample)을 구하고,이 표본의 정보로부터 모집단에 관한 어떤 판단이나 조치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텔리비전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어떤 품질문제(불량품과다발생, 화면품질 불량발생 등)가 생겼다고 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 대상이 되는 모집단(생산공정이나 불량이 과다발생된 로트(lot) 등)을 구성하고, 여기에서 작은 규모의 표본을 추출한 후에 이 표본에 대한 측정을 통하여 데이타를 수집한다. 이 데이타를 통계적인 방법으로 정리·분석하여 모집단에 관한 정보를 얻고, 이것을 검토하여 의사결정을 한 후, 제기된 품질문제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와같은 통계적 활동을 도표로 나타내보면 별표와 같다.
문제해결을 위한 통계적 활동의 순서도 통계학은 데이타의 분석을 매체로 하는 학문이므로, 데이타 자체의 성격에 따라서 통계학은 여러 분야로 구별해 연구하기도 한다. 그중 주요한 5개 분야를 설명해 보겠다.
●―통계학은 첨단과학이다
첫째 공업통계학이 있다. 이는 공업분야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각종의 통계적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통계적 품질관리, 실험계획법 등이 많이 사용된다.
둘째 생물통계학이 있는데 이는 의학, 생물, 보건분야에 쓰이는 통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가설검정이 많이 사용된다.
세째 농업, 수산업 분야에 쓰이는 통계를 연구하는 분야인 농업통계학이 있는데 여기에는 표본이론, 실험계획법 등 이 많이 사용된다.
네째 경제통계학도 있다. 경제, 경영 분야에 쓰이는 통계를 연구하는 분야로 회귀분석, 다변량분석 등의 통계적 방법이 많이 사용된다.
끝으로 사회통계학이란 것도 있다. 이 분야는 사회학, 심리학, 법학 등의 사회과학에 쓰이는 통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통계적 추정, 다변량분석 등이 흔히 사용된다.
지금 열거한 5가지 분야 외에도 더 세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통계학의 이론과 응용이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데에도 필요불가결의 요소로 등장해간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점점 사회기능이 복잡해지고 발전할수록 통계학의 수요가 급증하며, 이런 이유로 통계학을 첨단과학으로 꼽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통계학을 노크해 보라
어떠한 학문이든지간에 적성에 맞지않으면 공부할 수 없으며, 따라서 각각의 학문이 요구하는 적성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여기에 맞는 적성을 가진 학생들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통계학에 알맞는 적성을 3가지만 열거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수학을 좋아하여야 한다. 통계학도 수리과학(mathematical science)의 하나로서 수리적 사고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학보다도 약간 사회과학적인 요소가 잠재되어 있어서, 이공계를 지망하는 학생중에서 수학은 좋아하지만 이론적인 수학보다 응용적인 측면을 좋아한다면 통계학을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둘째 컴퓨터를 다루는 것을 좋아하여야 한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지만, 근래의 통계학은 컴퓨터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므로 컴퓨터를 좋아하는 성격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세째 통계학은 이공계에서보면 가장 사회계열 성향이 강하고, 사회계에서 보면 가장 이공계열 성향이 강한 학문이다. 즉 통계학은 수리과학적인 바탕 위에 사회과학적인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통계학을 지원하는 학생은 성격상 융통성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시 말하면 다방면에 취미를 가지고 있거나, 이공계와 사회계열을 골고루 좋아할 수 있는 성격이 적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특히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항상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놀고, 운동하고, 취미생활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멍청히 있는 시간을 없애고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생활하다 보면 언제나 좋은 결과가 올 것이다.
통계학은 우리나라에서의 역사는 짧으나 앞으로의 수요와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며, 젊은 학도들이 도전해볼만한 학문이라고 믿는다. 많은 젊고 유능한 통계학자들이 계속적으로 배출되어 우리나라의 통계학을 이끌어 가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