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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반응의 중매쟁이

촉매란 무엇인가

촉매는만물을 다 이뤄놓고도 내것이라 하지도 자랑도 않는 멋진 물질이다.

상온상압(常溫常圧)에서 수소와 산소가 만나 제3의 새 물질인 액체상태의 물을 만드는 현상을 화학반응이라 한다. 그러나 상온에서 수소를 산소가 들어있는 공기중으로 방출해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즉 아무런 화학반응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방출되는 수소가 공기중의 산소를 고운 분말상태의 백금표면에서 만나게 하면 백금표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수소에 불이 붙는다. 즉 백금표면에서 수소와 산소가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켜 물을 만드는 것이다.

신비스런 자연의 촉매반응

이러한 화학반응이 일어날 때 반응열이 발생해 백금분말을 뜨겁게 하고, 결국은 벌겋게 달아오르게 하여 드디어는 자발적으로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온도가 되어 불이 붙게 된다. 여기서 수소와 산소는 서로 반응해 제3의 물질인 물이 되지만 백금에는 아무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이때에 백금은 산소와 수소가 합쳐서 물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은 아무 변화없이 물러나는 지극히 자연에 순응하는 물질로서, 이러한 물질을 화학에서는 촉매라고 부른다.

다시말해서 촉매는 만물을 다 이뤄놓고도 내것이라 하지도 않고, 자랑도 하지 않는 자연과 그 성질이 일치하는 멋진 물질이다. 위 반응에서 백금을 촉매라고 부르며 반응에 참여하는 역할을 촉매작용이라 한다. 촉매는 화학반응에서 중매장이인 셈이다.

이러한 촉매반응을 우리는 생태계 속에서 많이 관찰할 수 있다. 생태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신비스러운 효소반응들은 바로 효소촉매반응들로서 여기서 효소가 촉매역할을 한다. 사실상 이러한 생태계의 촉매반응들이야말로 촉매연구자들의 꿈이며 이상이다. 우리가 가장 가까이 관찰하는 예로서 모든 유기물이 타서 나오는 가장 안정한 화학물질인 물과 탄산가스를 활성화시켜 탄수화물을 합성하는 엽록소에 의한 광합성도 하나의 촉매반응이며, 이때 엽록소가 촉매에 해당한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촉매반응들은 너무도 신비롭고 아름답기까지해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실제 이런 현상을 관찰하고 이해해서 우리 실생활에 응용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가령 우리가 엽록소를 마음대로 만들어 공장에서 탄수화물을 제조해 낼 수 있다면, 인류는 식량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기술수준으로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날 화학공업에서 사용하는 촉매는 생태계속의 효소촉매와 비교할 때 가히 원시적이라 할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이러한 원시적인 공업촉매지만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연간 공업촉매 생산액은 15억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1조2천억원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한편 촉매와 관련된 총생산량은 직접적인 것만도 3~5천억달러라 하니 2백~4백조원의 시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촉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개발만이 살길이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있다. 특히 자원이 없는 나라에 사는 우리에게 촉매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핵심기술분야이다. 이렇게 우리생활에 큰 영향력을 갖는 기술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계의 촉매반응에 비교할 때 현재 공업촉매의 위치는 원시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만큼 야심만만한 젊은 과학도들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는 분야가 바로 촉매인 것이다.

에너지고개를 낮춰줘

그러면 촉매가 작용하는 현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위에서 말한 화학반응을 잘 살펴보면, 두가지 물질이 어떤 원인에 의해서 서로 만나게 된다. 대개의 원인은 전기적인 이유 즉 음극과 양극으로 극화되어, 이들의 상호작용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는 이런 극화현상이 전자들의 분포상태에 따라서도 생겨나는데 더 가까이 관찰하면 전자가 자신이 머물 곳을 찾아가다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마치 우리가 쉴 집을 찾아가듯이 전자들도 머물 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집을 찾아갈 때 강도 건너고 산도 넘듯이, 전자가 스스로 머물 곳을 찾아가는데도 넘어야 할 고개들이 있다. 이 고개를 '에너지고개'라고 하자. 어떤 고개든 넘으려면 에너지가 든다. 이 에너지고개를 물질이 반응해 넘어야 할 때 그 고개의 높이를 활성화에너지라고 부른다. 고개를 넘으려면 활성화에너지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어떤 고개는 높고 어떤 고개는 낮다. 고개가 낮으면 쉽게 넘을 수 있고 높으면 더 많은 힘을 들여야 넘을 수 있다는 원리는 화학반응에서도 같다. 그런데 촉매는 여기서 재미있는 역할을 한다. 좋은 촉매는 이 에너지고개를 낮춰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업어서 이 고개를 넘겨준다고나 할까. 즉 촉매는 화학반응의 활성화에너지를 낮춰주어 반응이 잘 일어나게 한다. 우리가 어느 지점에 서서 사방을 바라볼때 길이 많다. 춘천으로 가는 길, 인천으로 가는 길, 부산으로 가는 길, 또 가는 길에는 고개도 많다. 가는 길도 다르고 고개도 다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좋은 촉매는 에너지고개를 낮춰줄 뿐만 아니라 길을 인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춘천으로 가는 고개만 낮춰줘서 춘천으로 쉽게 갈 수 있도록 하듯이, 여러가지 화합물을 만들 수 있는 고개가운데 어떤 특정화합물을 만들 수 있는 에너지고개만 낮춰줘서 그쪽 방향으로 반응이 진행하도록 하는 촉매가 있다. 이러한 촉매를 선택성이 좋다고 한다. 한편 에너지고개를 많이 낮춰주는 촉매를 활성이 좋다고 한다. 따라서 촉매를 찾을 때는 언제나 활성이 높고 선택성이 좋은 촉매를 찾게 된다.


수소와 산소는 높은 에너지 고개에 막혀 화학반응을 못이룬다.


좋은 촉매와 나쁜 촉매

좋은 촉매를 통해 에너지고개를 넘고나면, 새 마을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듯이 전자는 새로운 집인 새 화합물에 머물어 우리가 관찰하는 물성을 갖는 화학물질을 이룬다. 이런 물질이 옷감도 되고, 감기약도 되고, 조미료도 되고, 기타 우리 주위의 모든 물질을 이룬다. 따지고 보면 이런 모든 물질이란 고개를 넘어 찾아 간 전자들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들이 넘는 에너지고개를 여러가지로 관찰하고 그려본 것이 화학이란 학문이다. 이런 전자들이 얼마나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전자는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 그리고 분포돼 있는 전자들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쳐 새로운 고개를 넘고 새로운 분포를 이루는가를 찾는 작업은 매우 흥미롭고 또 신비롭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들은 제멋대로 돼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어떤 정연한 규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조심해 살펴보면 그 규칙을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철저한 규칙아래 원자를 이루고, 원자와 원자가 만나 분자도 이루고, 또 분자와 분자가 만나 새로운 분자도 이룬다. 이러한 과정이 모두 높고 낮은 에너지고개를 촉매의 도움을 받아 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이처럼 에너지고개를 쉽게 그리고 선택적으로 넘게 하는 좋은 촉매도 있지만 모든 촉매가 좋은 촉매는 아니다. 어떤 것은 원치 않는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 반응을 방해하는 촉매도 있다. 마치 우리 주변에 좋은 중매장이도 있고, 나쁜 중매장이도 있듯이.

한편 촉매에는 유용한 반응으로부터 무용한 반응을 거쳐 유해한 반응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반응을 촉진시키는 촉매도 있다. 따라서 그 중 유용한 반응만을 촉진시키는 선택성 있는 촉매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선택성 있는 촉매의 역할이 없었다면 세상은 온통 혼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촉매반응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한 촉매가 생겨날 때도 다른 촉매의 영향을 받아 생겨나고, 영향을 받는 것처럼 또 다른 반응에 영향을 주는 상호관계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다시말해 서로가 서로의 촉매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자연은 여러가지의 촉매반응을 통해 나름대로의 모양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촉매를 공업촉매에만 국한시킬 때는 그렇게 신비스러울 것이 없지만, 생체속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효소촉매반응에 의한 자연의 변화를 우리가 얼마나 아는가 생각할 때 이러한 미지의 촉매세계는 젊은 과학도들의 관심을 끌고도 남을만하다.


촉매는 이 고개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이웃돕기로 풀어본 화학

우리는 흔히 화학하면 골치아픈 학문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서로서로 소개도 하고 도우면서 살듯이 화학반응도 그러하다. 화학의 촉매반응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불우이웃 돕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보듯이 흥미롭게 관찰해야 한다. 우리가 이웃의 어떤 사람을 만나려면 우선 거리가 가까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것을 화학에선 서로 가까이에서 부딪쳐야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충돌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렵게 말할 것 없이 서로 손을 잡으려면 손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가까이 와야 한다는 것 뿐이다.

다음은 에너지고개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제는 넘어야 할 고개밑에 와 있다고 보면 된다. 제힘으로 넘기 힘들면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이웃의 도움이 화학반응에서는 촉매의 도움이다. 더 가까이 관찰해 보면 업어서 넘겨주거나 끌어서 넘겨주고 또는 떠밀어서 넘겨주는 여러가지의 넘는 모양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화학에서는 반응기구라고 표현하지만 같은 얘기다. 이 현상을 관찰하려고 화학에서는 여러가지 수단을 쓰며, 최근에는 전자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좋은 기계장치들이 나와있다.

이제 이러한 촉매와 촉매작용을 공업에서는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간단히 소개해 보기로 하자. 우선 화학공업에서는 에너지를 적게 들이고, 원하는 화학물질을 적당한 촉매를 사용하여 높은 수율(收率)로 만들어서 경제성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화학공업에서는 촉매가 핵심기술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면서 환경공해를 줄이는 목적으로도 촉매를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 배기가스의 공해물질을 줄이는데 촉매를 사용하고 공기속의 악취나 유해물질을 제거하는데도 촉매를 사용한다. 또한 이러한 물질들이 공기중에 있는 것을 감지하는 센서로도 촉매는 이용되고 있다. 앞으로 자연속에서 일어나는 촉매현상을 모방하는 새로운 기술이 계속 늘어날 전망이어서 그 발전전망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198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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