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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약, 어떻게 만들어지나

「징코민파동」을 계기로 알아본다

생약의 제조과정을 돌아보면서 징코민파동을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온 나라를 흔들어놓았던 이른바 징코민파동은 뚜렷한 결론없이 매듭지어진 느낌이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동방제약이라는 중소제약업체가 도산위기에 몰리게 된 것 말고는 뭐하나 시원스럽게 밝혀진 것이 없는 셈이다. 그 여파로 많은 제약업체들이 덩달아 판매부진에 허덕이고 있으며, 대다수의 약국들은 수입이 크게 줄어 울상을 짓고 있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과연 그 약을 안심하고 먹어도 되나'하는 의구심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징코민파동을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면 그것이 어떤 약인가부터 알아야 한다. 혈액순환개선제인 징코민은 은행잎에서 약효성분인 징코플라본배당체를 얻는 일종의 생약이다. 이 약은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유럽과 미주시장에서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생약의 제조기술에 관한한 독일은 세계제일로 평가된다).

연간 세계시장규모가 50억달러는 족히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은행잎 추출약제시장을 오랫동안 독일의 슈바베사(상품명, 테보닌)가 거의 독점해 오다시피 했다. 따라서 동방의 징코민은 테보닌의 해외경쟁자인 셈이다.

두 약은 제조방법에서 차이가 날 뿐 추출되는 약효성분은 다를 바 없었다. 이 때문에 한국과 독일의 두 제약회사는 치열한 특허공방을 수년에 걸쳐 벌여야 했다.

결국 동방이 제법특허를 인정받아 국내에서 은행잎 추출약제를 독점공급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해에는 국내 제약업체끼리 또 한차례의 특허분쟁이 붙었다. 은행잎추출약품의 시장성을 높이 평가한 선경이 새로운 제법특허를 신청하면서 제 2라운드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두 제약회사(동방과 선경)는 선경의 특허 신청내용이 자격이 '있다' '없다'를 놓고 한치의 양보없는 공방전을 벌였다. 제약업계에서는 이 분쟁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간주하면서 흥미진진하게 그 진행과정을 주시했다. 이 특허분쟁은 급기야 감정싸움으로 까지 비화하는 등 일파만파의 이전투구 끝에 '골리앗'의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가 바로 기넥신 40mg.

생약이라는 공통점

징코민과 기넥신은 모두 생약이다. 다시 말해 화학적 합성품이 아니다. 생약과 화학 합성약품은 그 원료와 제조방법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생약은 동식물의 약용으로 하는 부분, 세포내용물, 분비물 또는 광물"이라고 대한약전은 규정하고 있다. 징코민이 생약으로 간주되는 것은 식물인 은행잎에서 유효성분을 추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수한 생약제제를 제조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좋은 원료를 구득하는 것이다. 독일의 슈바베사가 굳이 한국산 은행잎을 수입했던 것도 우리의 은행잎이 수율(收率)이 높고 약효가 뛰어나다는데 기인한다.

물론 은행나무에 달린 잎을 막바로 생약제조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적절한 시기에 원료를 채취해야 한다. 예컨대 은행잎의 경우 노랗게 물들기 직전인 9월경에 따는 것이 가장 약효가 높다. 낙엽이 져 엽록소가 파괴되면 그 속의 성분도 함께 깨지기 때문이다.

원료의 선정도 중요하다. 특히 환경오염이 심한 곳에서 자란 식물원료는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테면 도심의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은행나무의 잎을 생약제조에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질이 나쁜 원료를 선택하면 최종산물인 생약제제 내에 비료 농약 중 금속성분이 극미량 함유될 수 있다.

겉보기에는 깨끗해 보이는 생약원료라 할지라도 그 속에 각종 협잡물이 섞여 있게 마련이므로 세약(洗藥)과정을 거친다. 그런 다음 잘 건조하고 절단해 저장한다. 여기까지가 생약제제의 전처리과정이다.

다음은 실제 제조과정. 첫 단계는 원료생약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약효성분을 뽑아내는 과정, 즉 추출과정이다. 이때 문제의 용매가 쓰인다. 약효성분만을 녹여내기 위해서다. 여기서 용매란 '어떤 물질'을 녹이는 물질이고, 그 어떤 물질이 용질이다. 용매와 용질을 합해서 용액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커피가루라는 용질과 물이라는 용매로 구성돼 있다.

은행잎 속에서 징코플라본배당체라는 약효물질을 얻으려면 먼저 약효성분을 녹여야 한다. 이렇게 약효성분만 녹이는 추출기술은 생약관련 제약회사의 최대 노하우다. 동방이나 선경이 특허를 받은 것도 바로 이 과정에서 새로운 방법과 기술을 개발해냈다는데 근거한다. 이같이 제조과정에서의 진보성과 신규성을 인정받아 획득한 특허를 제법특허라고 한다.

현재 생약성분 추출과정의 용매로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물이다. 특히 약효성분이 수용성이거나 극성이 클 경우에는 물로 녹인다. 물은 비교적 극성(polarity)이 큰 물질인데, 일반적으로 용질, 즉 약효성분은 극성이 비슷한 물질에 잘 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유기용매인 에탄올은 극성이 중간 정도이다. 따라서 용질이 유기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을 때는 에탄올에 잘 녹는다.

물론 물과 에탄올을 적정비율로 섞어(이것이 노하우) 약효성분을 녹이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일종의 마취제인 에테르를 추출용매로 쓰기도 하지만 에테르는 취급상의 어려움(화재위험)때문에 제약회사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사실 이 에테르의 잔류문제도 문제삼으려면 충분히 문제가 된다. 동방측은 약효성분의 추출용매로 에탄올과 물의 혼합용액을 사용한다고 특허신청서에 밝힌 바 있다. 이에 비해 선경측은 알칼리성 수용액으로 약효성분을 추출해 특허를 받아냈다. 즉 추출용매가 다르다는 점을 내세워 특허의 최대 요건인 신규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도심의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은행나무 잎을 생약제조에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용액에 고주파를 쏘아

징코민파동의 초기에는 약효성분의 추출과정에서 에탄올 대신 메탄올이 용매로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나 조사결과 이 과정에서의 메탄올용매 사용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대다수의 제약회사들은 생약성분의 추출용매로 가급적 물만 사용하기를 원한다. 에탄올이나 에테르를 사용할 경우 추가적인 구입비용이 들고 이 물질들을 다시 날려보내는데(건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만으로는 도저히 약효성분의 다량추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에나 에탄올 등 다른 용매를 고려한다. 요즘에는 용액에 고주파를 쏘아 추출효율을 높이는 방법 등도 제기되고 있는데 활용단계까지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동방은 이 고주파추출법의 특허를 이미 받았다).

대개의 경우 생약원료와 물을 탱크에 집어 넣은 뒤 가열해 한약에서 탕재를 끓여 우려내듯이 약효성분을 추출하고 있는데(물을 가열하지 않기도 한다), 이렇게 물만을 용매로 사용할 때도 나중에 약간의 에탄올을 첨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에탄올의 방부효과를 기대함과 아울러 생약찌꺼기가 가라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단 추출된 생약성분은 이어서 여과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용매에 녹지않는 불순물이 걸러진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추출액을 여과해야 하는 제약업계에서는 주로 원심분리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것은 원심분리기에 용액을 넣은 뒤 빠르게 회전시켜(2만~3만rpm, rpm은 1분당 회전수) 그 원심력으로 불순물을 걸러내는 매우 효과적인 여과법이다.

여과를 마친 뒤에는 농축과정으로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용액중의 용매를 일부 회수함으로써 생약의 성분농도가 짙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은행잎중 약효성분인 징코플라본배당체를 추출하기 위해 사용한 용매(물과 에탄올)를 상당량 다시 거둬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농축하는 동안 약효성분이 분해될 수도 있기 때문에 농축과정은 매우 고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농축할 목적으로 지나치게 높은 열이나 압력을 가하면 약효성분이 깨져버리므로 최근에는 감압가열농축법을 널리 활용하고 있다. 이는 압력을 20mm Hg(1기압은 76mm Hg)로 낮춰주면 물이 23℃(보통은 1백℃에서 끓는다)에서도 비등한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

농축의 다음 단계는 건조과정이다. 액체(농축액)는 효소나 곰팡이가 번식할 우려가 크므로 약효성분을 아예 말려서 고체화하는 것이다. 이같은 건조의 산물이 바로 건조엑스다. 엑스는 추출을 뜻하는 영어단어(extract)에서 앞의 두자만을 따온 것이다. 공식용어로 규정된 엑스를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엑기스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본식 표현이므로 되도록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생약에는 미지의 약효성분이 함유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한 생약의 효능실험 장면
 

메탄올이 더 빨리 제거돼

건조과정에서도 약간의 열(40~50℃)이 가해지나 이 과정은 가급적 신속히 진행시키고 있다. 그래야 약효성분의 분해가 적다. 요즘 제약회사에서 널리 사용하는 분무건조법은 농축액을 분무시켜 증발면적을 최대로 만든 뒤 순간적으로 열풍을 순환시켜 건조하는 방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농축과 건조과정을 동시에 실시한다. 이때 대개 동결건조를 한다. 동결건조란 건조하고자 하는 물질(용매)을 얼음상태(고체)로 얼린 뒤 액체를 거치지 않고 막바로 기체화하는 건조법. 이를테면 용매를 직접 승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물이나 에탄올 등이 드라이아이스처럼 자연상태에서 승화하지 않는다. 온도 0.0075℃, 압력 4.6mm Hg 이하라는 조건이 만족돼야 고체 용매가 날아간다.

이렇게 농축과 건조과정을 거치면서 물 이외의 용매(에탄을 에테르 등)들은 거의 제거된다. 설령 메탄올을 용매로 썼다 할지라도 농축건조과정만 제대로 수행하면 거의 다 날아가고 만다는 것이 제약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더구나 메탄올(64.1℃)은 에탄올(78.5℃)보다 끓는 점(mp, melting point)이 낮아 더 빨리 제거된다고 한다.

건조는 대개 10시간 정도 실시하고 있다. 하룻 밤은 말리는 것이 상례이다. 만약 건조가 덜 되었다면 건조탱크를 여는 순간 알코올냄새가 느껴진다고 한다. 만져봐도 끈적한 느낌을 받게 된다.

건조가 끝나면 이제 생약이 다 만들어진 것과 진배없다. 건조엑스에 몇가지 첨가제를 넣어 정제를 제조하면 그만이다. 이때 첨가제로 안식향산 등 방부제가 포함되기도 하는데 최근 소비자보호원에서는 그 허용치가 너무 높다고 경고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최고 10배에 달해 간장장애 위점막손상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알약 위에는 대개 코팅제를 입힌다. 코팅을 하는 이유는 수분침투를 막아 약의 변질을 방지하고, 빛의 침투를 차단해 광분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며, 색깔을 넣어 구별을 쉽게 하고, 쓴 맛을 일시적으로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또 정제끼리 서로 달라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코팅을 한다.

코팅제로는 HPMP와 같은 셀롤로오스유도체가 주로 채택되는데, 이것이 물에 잘 안 녹는다. 그래서 코팅제를 녹이는 용매로 에탄올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징코민중 일부는 코팅용매로 메탄올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기백신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왜 하필 메탄올을 사용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제약업체 관계자들은 메탄올로 코팅하면 약의 표면이 더 유려해지고, 메탄올이 에탄올보다 더 쉽게 날아가기 때문에(비등점이 낮아서) 메탄올을 선택했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코팅한 후에도 70~80℃의 건조절차를 거친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다는 점이 메탄올사용을 부추겼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 것이라는데 많은 제약관련자들이 동의한다. 그보다는 에탄올구입절차가 번거로워 (주세 등의 문제로) 메탄올을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처음 메탄올잔류여부가 이슈화됐을 때 국립보건원 검사요원들이 메탄올의 코팅을 벗긴 뒤 잔류검사를 해서 여론의 집중화살을 받았다. 사실 '코팅벗기기'는 사건을 증폭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약품의 함량실험을 할 때는 코팅을 벗기는 것이 정해진 규정이므로 '너무 고지식해서' 억울하게 당했다는 동정론도 있다.

코팅 위에 다시 당의정을 입히기도 하지만 당의정을 생략한 생약도 수두룩하다. 당의정 성분은 대개 설탕 아라비아검 젤라틴 등인데 이들은 물에 녹기 때문에 당의정의 용매 잔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액성 생약제제가 최종적으로 병에 담기고 있다.
 

코팅을 벗기는 것이 원칙

생약은 그 메커니즘이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은 약효성분에 주로 의존하는 약이다. 따라서 화학합성약품보다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나 독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큰 약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 제조과정에서도 원료의 건강성을 비롯해 첨가되는 각종 화학물질의 안전성 여부가 앞으로 계속해서 제2, 제3의 징코민파동을 부를 소지가 적지 않다.

S대의 S교수는 생약을 추출할 때 "용매가 무엇이냐보다 생약을 얼마나 위생적으로 제조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화학합성약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황산 염산 등이 사용되지만 제조과정중에 다 씻겨나가므로 문제가 되지 않듯이 설령 메탄올을 생약제제의 용매로 썼다 할지라도 그 잔류량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약이든 식품이든 어차피 완벽한 무독성은 기대할 수 없으므로 결국 양의 문제로 귀착된다. '공업용 알코올'로 통하는 메탄올을 인간이 먹어서 이롭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극미량일 경우에는 인체에 특별한 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약보다 오히려 메탄올이 더 많이 함유돼 있는 술이 이번 징코민 파동을 겪으면서도 전혀 여론의 질타를 받지않은 것은 앞뒤가 안맞는 넌센스다. 실제로 징코민 1정에 들었다는 메탄올량은 소주 1mg에 포함된 메탄올량과 비슷하다고 한다. '에탄올 가는데 메탄올 따라 간다'는 말이 있듯이 에탄올을 만들 때 부수적으로 메탄올이 생성되게 마련이므로 술에는 불가피하게 메탄올이 함유된다(그래서 주류에는 약품과는 달리 메탄올 허용치가 마련돼 있다). 특히 과실주의 경우에는 메탄올함량이 째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이번 징코민파동은 우리나라의 생약업계 전반에 엄청난 시련을 안겨주었다. 화학적 합성약품의 상당부분을 외국의 다국적기업에 점유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생약제제는 그동안 국내제약회사의 유일한 '숨통'역할을 해 왔는데, 직격탄과 그 유탄을 맞아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차제에 생약제조공정중에 투입되는 질산비스무트 등 불순물제거제, 생약원료 내의 농약 비료 중금속, 브롬화메틸 이황화탄소 사염화탄소 등 훈증제, 염화메틸렌 등 코팅제의 잔류방지와 안전성 점검에 만전을 기해야 '제2의 징코민파동'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생약의 제조공정 중에 투입된 각종 화학물질은 필터(filter)로 잘 걸러내거나 충분히 증발시켜 가급적 약제내에 잔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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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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