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여행 중 휴식을 취하면서 고대 중원문화의 실체를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청동기시대 우리나라의 중부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은 직사각형꼴로 땅을 파고는 그 위에 3각기둥형태의 집을 짓고 살았다. 집안에는 냇가에서 편편한 돌들을 주워다가 화덕을 만들어 식생활과 추위에 대비하기도 했다. 또 그후 중부지역에 살았던 백제인들은 야산의 비탈진 곳을 깎아서 가마바닥을 만든 뒤 그 위에 벽과 천정을 세워 굴가마(登窯)를 만드는 등 토기(土器)를 대량생산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 땅에서 삶을 영위했던 선조들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알려지게 된 것은 고고학자들의 발굴, 복원노력 덕분. 최근 개통된 중부고속도로의 중부휴게소(일죽과 음성 사이)에 만들어진 유물전시관이 바로 '과거를 엿볼 수 있는' 화제의 현장이다.
국내최초의 고속도로 유물전시
정면 7간에 기와지붕을 얹은 고풍어린 93평 크기의 이 유물전시관은 자칫 고속도로공사작업으로 인해 영원히 사라져버릴 뻔 했던 유적과 유물들을 국내최초로 미리 발굴, 보존하게 됐다는 점에서 값진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융조교수(충북대박물관장)를 발굴단장으로 한 충북대 서울대 연세대 충남대 이화여대 등의 발굴진이 한국고속도로공사의 지원으로 중부고속도로공사구간의 폭 1백m 지역을 발굴한 결과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려시대의 불상, 청동기시대의 집터, 백제시대의 가마터, 조선시대의 의복, 각 시대에 걸친 토기와 각종 유물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유물관의 전시물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끌고 있는 게 청동기시대의 집터. 앞에 언급한 충북 청주시 항정동의 집터와 청주시 내곡동의 집터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청주 내곡동의 청동기시대 집터를 보면 동서 6.3m, 남북 4.6m의 사다리꼴로 밝혀졌는데 집터 안에다 냇돌을 깔고 흙을 메움질하여 만든 화덕자리, 구덩이, 기둥구멍이 찾아졌다.
이 집터는 바깥둘레에 호를 가진 특이한 구조로 이 지역의 청동기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바닥에서는 굴참나무 소나무 계통의 숯이 많이 발굴됐으며, 화덕자리는 바닥에 냇돌을 깔고 접착력이 강한 흙으로 메움질하여 서쪽으로 치우치도록 사다리꼴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갈판갈돌(碾石棒) 돌화살촉 돌도끼 반달돌칼 돌가락바퀴 흙그물추와 많은 수의 민무늬토기들이 있다.
충북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서 발견된 고인돌도 주목되는 유적. 기원전 10세기경의 청동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인돌은 '거북바위'로 불려져왔던 것으로 덮개돌의 크기가 3.1m×2.9m×1.4m나 돼 중부내륙지방에서 발견된 고인돌중 가장 큰 것.
이 유적에서는 갈판(碾石) 눈돌(精靈石) 머리를 받친 베갯돌(石枕)과 민무늬토기조각 등이 찾아졌다. 이 고인돌의 형식은 구덩식이고, 덮개돌의 긴 방향과 무덤방(石室)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유적과 복원도를 함께 전시
중부고속도로건설지역에서 나온 것중 특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게 '안동김씨 출토유의(遺衣)'와 '순천김씨 출토유의'
충북대박물관팀이 중부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묘를 이장해가는 과정에서 수습, 조사한 '안동김씨 출토유의'는 16~17세기 지방양반들의 평상복으로서 당시의 복식형태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이 옷들을 죽은 사람의 옷을 집에 두는 것을 금기로 삼아 화장을 주로 했던 고려시대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관념으로 매장이 유행, 염습을 하여 시체와 함께 빈자리를 채워 넣었던 옷들이다.
출토된 옷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저고리는 안감과 겉감이 모두 명주이고, 깃은 목판 깃이며 상고시대의 저고리 길이보다는 짧아져 있는 게 특징이다. 치마는 명주 겹치마로 고대에서 현대까지 별로 변함이 없다.
한가지 흥미있는 것은 네덜란드의 유명한화가루벤스(1577~1640)가 그린 '한복입은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에서 묘사된 한복과 위의 출토유의가 흡사하다는 사실. 1607, 8년경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루벤스'의 작품이 실제로 당시의 복식과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중부고속도로문화유적조사단장이며 유물전시관을 만든 산파역이었던 충북대 이융조교수는 전시관의 특징이 첫째, 국내의 고속도로건설 사상 최초로 사전에 문화유적조사과정을 거친 끝에 출토된 것으로 만들어졌으며 둘째, 유물모다는 유적 중심으로 전시됐으며 세째,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그대로 옮겨와 복원시켰으며 복원도까지 작성해 이해를 도왔다는 점 네째, 중학졸업자 이상이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고고학적 내용을 쉽게 설명해놓았으며 모든 내용을 영어로도 옮겨 외국인에게도 우리의 고대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융조교수는 이번 발굴조사, 전시결과로 고속도로휴게소를 찾는 국민들이 손쉽게 먼 옛날 중부내륙지방에 꽃피웠던 중원문화의 성격과 실체를 통사적으로 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의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 교수는 외국에서는 아파트를 건설할 때도 건설부지의 유적과 유물을 사전발굴할 정도라고 말하면서 우리나라도 중부고속도로공사를 계기로 반드시 공사 전에 발굴조사작업이 선행되길 바랐다.
아울러 고고학자들 위주의 문화유적발굴에 그칠 게 아니라 광물이나 지질 생태 등 관련전문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종합적인 작업이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뭏든 중부고속도로 유물전시관이 개관됨으로써 많은 여행객들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우리의 옛문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