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어쩌면 인간에 공통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남보다 더욱 많이 그리고 한없이 소유하려는 욕망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인간이 소유욕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신석기 시대부터였다. 이시대부터 사유재산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뉴턴」도 빠진 황금의 환상
따라서 인간은 일찍부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값싸고 흔한 철이나구리, 납이나 아연과 같은 금속을 적당히 처리하여 귀하고 값비싼 은이나 금으로 바꾸려 했다. 이런 조작술을 연금술(鍊金術, Alchemy) 이라 하고 연금술을 연구하는 사람을 연금술사(鍊金術師,Alchemist)라 부른다. 이 연금술(Alchemy의 Al-은 아라비아어의 정관사)은 화학(Chemistry)과 이복형제의 관계에 있고 연금술사(Alchemist)는 화학자(Chemist)의 전신이다. 또 연금술사가 일확천금이나 불로소득을 노린다는 뜻에서 흑색술사(黑色術師)라 부르기도 한다.
연금술은 알렉 산드리아 시대에 사회 전반에 걸쳐 깊히 깔려 있었다. 하지만 연금술의 전성기는 중세로서 서유럽 여러 나라와 사라센제국에서 그 연구가 극도에 달하였다. 물론 동양에 있어서도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이나 일본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연금술사는 많은 황금을 만들려고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가산을 모두 탕진하였을 뿐 아니라, 거의 일평생을 다 바쳤다. 당시 교회의 승려들은 기울어가는 교회의 재정을 복구하기 위하여 연금술에 대단한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실제로 어느 한 교회의 구석 음침한 방에서 연금술을 실현해 보려고 무한히 노력하였다. 특히 그들은 신의 가호가 있기를 끊임없이 기원하였다.
승려뿐 만이 아니다. 절대군주국가의 왕들도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연금술을 통해서 만들어진 금으로 군비를 강화하고 침략전쟁을 일으켜 국토를 넓히려 하였다. 영국의 제임스 2세는 그 좋은 예이다. 그는 궁중 한 곳에 실험실을 마련해 놓고 손수 연금술을 실현해 보려고 했다. 그 뿐이랴. 위대한 과학자 뉴턴까지도 금을 만드는 환상에 젖은 나머지 실험실에서 비밀리에 연금술을 실시해 보았다. 그 때 뉴턴은 바로 조폐국장을 지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나 이들 누구도 황금을 만들어 내지 못하였다. 물론 사기술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금술의 맥은 끊이지 않고 중세 1천년동안 계속 관심속에서 연구되어 왔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황금에 대한 욕망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연금술사는 천하고 값싼 금속을 고귀한 금속 특히 금으로 만들수 있다는 어떤 사상적 근거를 굳게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소전환의 사상
연금술 사상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 얼마간 차이가 있다 기원전의 연금술 사상은 신화나 점성술과 관련되어 있었다. 금속이 생성되는 것은 신성한 어떤 원시적 존재물의 죽음의 결과라 보았다. 따라서 머리에서 납, 피에서 주석, 뇌에서 은, 뼈에서 구리, 근육에서 강철, 혼에서 금이 각각 생성된다고 믿고 있었다. 또 연금술은 점성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태양은 금, 달은 은, 금성은 구리, 수성은 수은, 화성은 철, 목성은 주석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별은 무겁고 거무스레한 납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연금술 사상은 점차 후퇴하였다. 그것은 당시 자연철학자들이 연금술 상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이를 천하게 여겼던 까닭이었다.
연금술사들의 마음속에 강하게 뿌리박고 있었던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소관이었다. 그는 우주의 근본물질은 4개의 원소 즉 흙 물 공기 불이라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네 원소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든지 상호 전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사상이 연금술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한편 알렉산드리아 시대에는 금속의 변색술이나 착색술이 연금술의 중심과제였다. 그들은 어떤 금속이 금색이나 은색을 띠고 있으면 그 금속을 금이나 은으로 생각하였다. 또 금속이 완전한 단계로 되어가는 과정은 금속의 색에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흑색화→백색화→황색화의 각 단계가 고려되었다. 흑색단계는 색의 결여를 의미하고 일반적으로 납 주석 구리 철의 합금을 산화시키는 단계이다. 백색단계는 천한 금속을 은으로 만드는 단계로 예를 들어서 비소화합물이나 주석화합물에 의해서 백색화 된다. 황색단계는 금을 만드는 단계로서 유황으로 금속을 처리 황색화한다.
「철학자의 돌」을 찾아라
중세에 접어들면서 연금술 사상은 크게 변질되었다. 모든 무기물질은 죽음과 소생의 과정을 거쳐서 고귀한 금속으로 변한다. 또 금속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열에 의해서 분해되는데, 이 때 정신(혹은 혼)은 증기상태로 도망치거나 액체상태로 응축한다. 그리고 그 액체속에는 그 금속의 실체를 구성하는 본질(혹은 혼)이 들어 있고, 그 본질은 그 실체의 특징과 성질을 결정한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기본적인 수법은 어떤 천하고 값싼 금속을 가열하여 그 곳으로부터 그 금속의 본질을 추방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 금속은 아무 특성도 없는 금속이 된다. 그 다음 고귀한 금속의 본질을 특성없는 금속에 불어 넣는다. 이리하여 금속은 변성된다. 이른바 원소전환이 이루어져 철이나 구리가 금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연금술사들은 금의 본질 혹은 금을 만드는 매개체인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찾으려고 끝없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동양의 연금술
연금술 사상은 서양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양에도 있었다. 그러나 동·서양의 연금술사는 우선 목적이 달랐다. 중국의 연금술에 관한 저술로는 도교학자 갈홍(葛洪, 283~343)이 쓴 '포박자'(抱朴子)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내편 20권, 외편 50권으로 된 방대한 저서이다. 그중 내편 제4권은 그 제목이 '금단(金丹)'이다. 여기서 '단'이란 곧 불로장생하고 초인간적인 능력을 지닌 신선(神仙)이 되기 위한 약이다. 동양의 연금술의 목표는 바로 이 약을 만드는 연단술(鍊丹術)이었던 것이다.
이 '단'을 만드는 기본원료는 수은과 금이었다. 수은은 변화와 희귀한 성질과 힘을 지닌 금속이다. 가령 백발이 성성한 한 노인이 이 '단'을 복용할 경우, 순식간에 소년으로 탈바꿈하고 또 노인으로 되돌아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반하여 금은 강한 물에 의해서도 소멸되지 않으며, 땅속 깊이 있어도 썩는 일이 없는 금속으로서 불변의 상징으로 보았다.
따라서 수은과 금을 교묘히 조합하면 불노장생하며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약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당나라의 모든 황제들은 이 '단'을 많이 복용하였다. 그러나 한 두 황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단명하였다. 사실상 그들은 수은에 의한 중독사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또 '포박자' 내편 제16권의 제목은 '황백(黃白)'이다. 여기서 '황'은 금을, '백'은 은을 가리킨다. 이것은 서양의 연금술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금이나 은을 만드는 것이 목적으로 되어 있다. 갈홍은 금을 만드는데 성공한 예를 기술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납과 주석을 녹이고 거기에 콩알만한 약을 넣고서 쇠젓가락으로 저으니, 납과 주석이 곧 은으로 변했다는것. 그리고 빨갛게 달군 철통에 또 다른 콩알만한 약과 은을 넣고 밀봉한 후 열어보니 금으로 변해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콩알만한 약'은 서양 연금술에서 나오는 '철학자의 돌'과 같은 개념의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선 그다지 중시 안해
우리나라에도 연금술 사상의 흔적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연금술은 도교(道敎)의 한분야로서의 신선도(神仙道)와 그에 연관된 연단술(鍊丹術)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천한 금속을 고귀한 금속으로 전환시키려는 사상은 중요시되고 있지 않았다. 도교사상과 연단술의 영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 있는 것은 이조시대의 의학 특히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医宝鑑)을 정점으로 하는 16,17세기의 것이다.
당시 일본 및 중국에 의한 의한 조선침략이나 양반들의 피비린내나는 당쟁으로 국토는 황폐화되었고, 민중의 생활은 궁핍해져 산야에 숨어사는 사람의 수가 적지 않았다. 당시 신선사상의 유행에는 이러한 사회정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신선이 되는 길은 정신수양과 육체적 절제 그리고 단약이나 선약초(仙藥草)의 복용으로 불로장생을 실현하는 길이라 믿었다. 불로장생약을 복용한 사람의 이름이 '해동이적'(海東異蹟)에 20사람 보인다. 또 윤평군(尹平君)이나 그의 아들의 연단술 실현을 둘러싼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인의 연단술을 이용해 불로장생을 이루려던 노력의 흔적은 '동의보감'을 비롯한 이조시대의 의학서중에도 그다지 뚜렷하게 남아있지 않다. 그 까닭은 한국 사상은 고대로부터 한국의 특산물인 인삼과 녹용을 가장 좋은 강장제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의약사상과 불로불사보다 현세와 미래의 평안을 희구하는 유교나 불교의 강한 영향이 한국에 있어서의 연단술을 희미하게 만들어 놓았다.
연금술의 값진 부산물들
연금술사들은 금의 본질이며 금을 만드는 효소인 '철학자의 돌'을 구하려고 거의 1천년 동안 고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꿈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그 동안의 연금술사의 꾸준한 노력은 두 가지 부산물을 가져왔고, 그 부산물이 바탕이 되어 근대화학의 길이 열렸다. 그 부산물 중 한 가지는 각종 실험기구 즉 시험관, 플라스트, 깔때기, 불집게, 솥, 내화성 도가니, 여과기, 시약병 등이다. 다른 한가지는 각종 화학약품 즉 염산, 질산, 왕수, 가성소다, 황산, 탄산나트륨 등이다.
특히 연금술을 위한 각종 실험을 통해서 합리적 화학의 길이 개척되었고, 화학변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증류기의 제작과 그 응용으로 장미꽃에서 장미향료, 술에서 알콜(${C}_{2}$${H}_{5}$OH), 나무에서 알콜(C${H}_{3}$OH)등을 얻었는데, 이는 근대 화학공업의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 정유공장은 여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중국의 연금술사는 불로장생을 구하였다. 이에 반하여 서양의 연금술사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금과 은을 구하였다. 따라서 동양의 경우에는 추상적인 성격이 부여되고 폭 넓은 해석이 주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는 관념적인 해석이 조금도 끼어들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목적의식의 차이 때문에 중국의 연금술은 마술적인 것이 되어 오늘날 사라졌지만, 서양의 연금술은 실험정신의 실마리가 되어 과학으로 승격되었다. 동양의 연금술은 현실로부터 등을 돌린데 반해서 서양의 연금술은 항상 현실과 밀착했던 것이다.
또 동서양 연금술의 실제상의 기법에도 큰 차이가 있다. 서양에서는 건류나 증류를 실시하여 어떤 물질로부터 그 물질을 분리하고 추출하는 방법이 성행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연금술에서는 본질을 추출할 목적으로 실험이 행해지지는 않았다.
또 중국의 연금술사들이 사용한 실험기기는 거의가 금속기구나 토기기구였다. 이에 반하여 서양의 연금술사는 주로 유리로 만든 기구를 많이 사용하였다. 금속이나 토기를 가지고서는 정밀한 실험기구를 만들 수 없었지만, 유리는 정밀하고 섬세한 기구를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서양은 복잡하고 정밀한 실험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고, 그 실험 기술적으로 간편하였다. 이로써 서양에서는 정밀과학의 기초가 다져진 반면에, 동양에서는 조잡한 과학으로 뒷걸음치게 되었다.
20세기에 되살아난 연금술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극성을 부렸던 연금술 즉 금을 만드려던 꿈은 환상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그들의 꿈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비록 금은 아니었지만 원소를 전환시키는 실험이 1919년에 성공하였다. 영국의 실험 물리학자인 E.라더포드(1871~1937)는 α입자(헬륨의 핵)를 질소원소에 충돌시켜 보았다. 이때 질소가 산소로 원소변환한 것이다. ${}^{14}_{7}N$+ ${}^{4}_{2}H$ → ${}^{17}_{8}O$+ ${}^{1}_{1}H$
이것은 인류가 처음으로 원소를 인공적으로 변환시킨 역사적인 실험이었다. 특히 1934년 퀴리부처는 알루미늄에 α입자를 충돌시켜 핵반응을 일으켰다. 이 때 자연에 존재하는 것과 꼭 같은 방사성 원소 즉 인공 방사성원소가 생겼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우라늄235는 중성자에 의해서 두 개로 나눠지면서 스트론튬${}^{90}_{38}Sr$과 크세논${}^{144}_{54}e$으로 분열되었다. 또 우라늄238을 핵변화시켜 플루토늄239로 만들었다. 이제 마음대로 원소를 변환시켜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원소는 금 이상으로 값이 비싼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