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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학계의 견해, 어떻게 다른가

S대 천문학과 M교수는 지난해 미국에서 관측활동을 마치고 귀국하던중 김포공항세관원들에게 창피를 당하고 말았다.
 

정부의 연구보조금 지원이 시원치않은 판에 호주머리를 털어 천체전자관측장비를 들여 온 것이 화근이 된 것.
 

세관원들은 M교수가 사들고 온 천체관측장비의 기묘한 모습을 보고는 이를 VTR카메라로 오인, 엄청난 관세를 물기전에는 통과시켜줄 수 없다며 떼를쓰기 시작했다.
 

M교수는 장비를 들여서라도 연구활동에 도움이 될까 해서 사온 관측장비에 오히려 세금을 얹어줘야만 한다는 기묘한 논리에 울화가 치밀었다.
 

또 설명에 설명을 거듭해도 학술용 장비를 고집스럽게 고집스런 사치품인 외제VTR로 착각하는 세관원의 단편적인 지식앞에 아예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미국 버클리대학에 건설중인 입자가속기 센터.


결국 빈손으로 공항을 나서야했던 M교수는 20여년간 참고 참아왔던 기초학문에 대한 냉대와 소외를 한웅큼 눈물로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비단 M교수뿐 아니라, 천문학계일각에서는 "오히려 왕정시대의 점성술사가 부럽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오가고 있다.
 

하나의 비유이긴 하겠지만 학자로서 갖는 진리추구의 집념과 나름대로 느끼는 지적 자부심만으로는 현실이 너무도 견디기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절대군주의 총애를 받으며 부족한 것 없이 살다가는 점성술사가 차라리 낫다는 자괴심마져 갖게된다는 것.
 

모든 학문연구를 상업성, 국제경쟁력 등으로만 연결시키려드는 그릇된 풍토가 낳은 이같은 해프닝은 불식되어야한다는 외침속에서도 여전히 도처에서 벌어지고있다.
 

소장파 천문학자로 최근 미국에서 귀국한 S대 C교수는 열악한 우리나라 천문학여건을 절감하면서도 이를 극복해보기위해 나름대로 무던히 애를 써보았다.
 

C교수는 우선 별로부터오는 빛을 주파수별로 분석, 별이 어떤 물질로 구성되었는지를 알수있는 CCD(charged coupled device)를 구입해줄것을 학교측에 요청했다. 유리렌즈를 이용한 광학망원경으로는 별의 위치와 크기정도만 관측할 수 있을뿐 별의 구성물질이나 지표의 온도 등은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24인치 광학망원경에 부착할 경우 2백인치 광학망원경과 같은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으면서도 불과 70여만원에 불과한 CCD를 사서 무엇에 쓰겠느냐'는 냉담한 반응을 보일뿐이었다.
 

C교수는 이들 관계자들이 거대과학 첨단과학 극한과학등 듣기에도 거창한 가시적 생산물에만 몰두해 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고 때론 스스로도 과연 천체과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며 자기회의에 빠져버리곤 한다고 실토했다.


수학과의 강의


미국의 경우 아마추어들까지도 50인치광학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하고있으며 일본의 경우 24~36인치 망원경이 보편화되어있는 마당에 국립이라는 서울대에 10인치 천체망원경만이 있는 현실이니 안타깝다고도 했다. 다시말해 저변이 없는 한국천문학계에 덜렁 전파망원경 한대를 설치한다해서 모든것이 하루아침에 첨단 또는 최고로 올라설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순수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행정관료들과 학자들과의 이같은 갈등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은 최근 과기처가 유사이래 처음으로 기초과학종합연구소를 세우겠다는 야심적 계획을 발표하고서 부터이다.
 

과기처의 계획은 당초 수학 물리 생물 화학등 순수과학분야와 함께 공학연구센터를 추가하자는 것이었다. 다시말해 눈에 띄는, 가시적 생산품을 하나쯤 내놓아야 하지않겠느냐는 상업성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같은 과기처의 구상은 순수과학의 '순'자도 모른다는 과학자들의 비난과 맞바로 부딛혔다. 대개 새로운 순수이론이 정립된뒤 빠르면 20년, 길게는 1백년후에야 그 응용의 산물을 볼 수 있는 순수과학에 대해 매년 수출이나 국제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생산품'을 내놓으라는 요구는 아무래도 무리한 주문이었기 때문이다.
 

과기처는 이에따라 최근 열린 산학연대표로 구성된 기초과학진흥추진위원회와 협의, 공학연구센터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기초과학종합연구소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 가속기등 5개연구센터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과기처가 마련한 기초과학연구소의 성립목표를 보면 다시 아연실색해질 수밖에 없다. 그 목적은 날로 높아 가고있는 세계의 기술장벽을 강화하는 것 으로 되어있다. 즉 표면적으로 공학연구센터를 포기하긴 했지만 목표는 여전히 같은 곳에 두고 있다는 내용이다.
 

과기처의 요구대로 국제경쟁력을 염두에 둔다면 물리연구센터는 반도체연구에, 화학연구센터는 신물질개발등 응용기술에 연구력을 분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리, 화학연구센터가 각각 반도체 혹은 신물질개발에 참여한다는 것은 기존의 전자통신연구소 화학연구소등이 수행하고 있는 개발분야와 중복되기 때문에 결국 국민의 세금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마는 셈이된다.
 

또 초전도체나 레이저개발을 물리연구센터에 요구한다는 것도 이들분야의 개발을 기존의 표준연구소가 맡고 있기때문에 역시 중복되는 것.

전문가들은 따라서 기왕 독립형때의 종합연구소를 설립하려면 '순수' 그 자체여야한다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있다.
 

응용기술은 궁극적으로 민간기업이 주도해야한다는 먼 안목에서 보더라도 정부의 섣부른 개입은 오히려 민간연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도 하다.
 

이와함께 기초과학연구의 중심이 되어야할 대학이 소외된 상태에서 별도의 독립기초과학연구소를 세우는 것은 토대없는 건물이 되기 십상이라는 지적도 높다.
 

서울대 조완규총장은 "대학이 기업연구소의 수요를 메꾸고 남을만한 인력을 배출하고있는데도 이들 연구소들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것은 졸업자들이 학위에 걸맞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학이 국제경쟁력에 도움이 될 생산품을 만들지는 못하는 실정이고 여기에다 예산은 빠듯하다. 따라서 정부의 연구지원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으며 이런 실정에서는 실험실습, 연구등 보다는 '책과 칠판만의 교육'밖에 할 수없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조총장은 따라서 학문적 연구와 결부되는 기초과학종합연구소는 대학활성화와 더불어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현재 전체연구인력중 대학이 보유한 박사급이 70%, 석사급이 35%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들 고급인력들이 활동될만한 무대가 있어야한다는 얘기다.


이제 순수과학도 산업적측면에서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학인력이 활동할 무대는 여전히 빈약하다. 교수 1인당 연구용기기구입비를 볼때 우리나라가 1만달러이하(85년)였던데 비해 일본은 이미 83년도에 8만8천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이같은 수치는 또 그보다 2년전인 83년의 출연연구기관의 프로젝트용 기기구입비 6만달러보다도 적은 액수로 대학이 정부의 지원에서 얼만큼 소외되어있는 지를 잘 드러내고있다.
 

또 출연연구 기관의 특정연구 과제에 대해서는 9천만원을 지원한다. 그러면서도 대학교수의 연구비는 그의 4%에 불과한 3백50만원을 지급하고있을 뿐이다.
 

학술연구조성비로 정부가 지난 85년 책정한 7백50억원도 사실은 40~50억원밖에 지불되지는 않았으며 최근 3년사이 2배이상이나 교수수가 증가했는데도 연구비지원규모는 답보상태에 있다.
 

결국 이같이 대학교육이 등한시되다보면 한국의 과학기술은 모래탑이 될수 밖에 없으며 첨단의 응용기술로 도포된 속빈 강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기초과학종합연구소 계획과정에나 나타난 정부의 상업지향성이 사라지지 않는한 △ 탄탄한 토대로서의 대학 △ 보다 전문화된 기초과학연구 △ 이에 바탕을 둔 응용기술개발이라는 짜임새있는 틀은 갖춰지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자가 점성술사로 전락되고 수학자가 기업의 경리회계사로 전락되는 풍토는 반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몰과학적인 비극이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98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최수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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