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으례 '발리'섬에 가보고 싶어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뮤지칼영화 '남 태평양'의 촬영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고 여행을 생활화한 선진국 사람들에게는 '신화의 섬' '다시 찾은 실락원' '힌두교의 섬'등으로 익숙해진곳이다. 따라서 이 섬에는 1년내내 관광객이 줄을 잇는다.
이슬람속의 힌두교
발리섬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문화는 무엇보다 종교에 영향을 받은바 크다. 이슬람세력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동과 서로 꾸준히 뻗어 나가면서 마호멧사후 1천여년이 지난 15, 6세기에는 현재의 인도네시아 전역이 아라비아상인과 이슬람 설탄의 지배아래 복속되었다. 인도의 힌두교의 영향아래 있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개종 또는 도망의 선택밖에 없었다.
지금의 발리섬사람들은 고유종교인 힌두교를 지키기 위해 외적의 침입이 비교적 어렵다고 생각된 발리섬으로 피난을 한 선조의 후예들인것이다.
따라서 발리섬에는 힌두교사원이나 화려한 종교축제가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방문객을 인상지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리의 춤도 종교의식의 일부이다. 제의식(祭儀式)을 보다 화려하고 인상깊게 하려는 장식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다.
열대의 꽃으로 장식한 화관(花冠), 원색의 의상, 우아한 원주민여인의 율동은 쉽사리 관광객을 활홀경에 빠지게하고 남자를 포함한 원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원숭이 부대의 군무(群舞)는 이색적이기에 앞서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이곳 무용중에는 선과 악의 쟁투를 표현하는게 많다. 악의 상징인 '란다'와 선의 상징인 '바론'. 사원계단의 꼭대기에 자리잡은 '바론'은 무서운 눈과 날카롭고 긴 어금니, 전신을 뒤덮은 모발의 형상을 하고 나타난다.
이러한 제의식과 무용으로 보내는 날이 발리섬 전체로 볼때 1년에 한번도 빠지는 날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 이런 종교행사가 순수히 신앙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는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발리섬사람들은 제례(祭禮)를 통해 생활의 활력을 얻고 삶의 리듬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위해 발리섬의 웬만한 호텔에서는 이곳의 춤과 제례, 그리고 민속악기의 연주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연출' 간략화하고 다듬어진것이어서 안보고 안듣는것 보다야 낫지만 생동감이 덜할 수 밖에 없다. 발리섬 여행자는 체류 기간중 각 촌락의 사원에서 행해지는 진짜를 놓칠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약간의 수고만 기울이면 실제 현장을 경험할수 있다.
화장(火葬)은 최후의 여행
발라섬의 이색적 풍물가운데에서 화장 의식을 빼 놓을 수 없다. 화장은 힌두교에서 연원해 불교에 답습돼 한국에서도 거의 거부감없이 치뤄지고 있는것.
이곳의 화장은 우선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이렇게 화려하게 장례를 치르려니 비용이 굉장히 많이든다.
발리섬사람들은 화장을 사자(死者)와의 작별순간으로보며 죽은자의 넋을 최후로 열반(涅槃)에까지 긴 여행을 떠나 보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체를 몇년씩 가매장했다가 꺼내어 성대한 화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화장 제의(祭儀)의 화려함은 죽은자의 신분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시체는 일단 가매장한뒤 대나무로 만든 탑이 완성된다음에 꺼낸다. 대나무탑은 여러가지로 장식을 하며 대체로 고귀한 신분일수록 탑의 층도 많고 크다. 시체는 사자나 황소모양을 한 관에 넣어 탑의 중간쯤에 안치한다. 이탑은 사진에서 보듯 10여명이 메고 화장할 장소로 옮겨진다.
화장식을 거행할 장소에 도착하면 탑돌이가 시작되는데 이것은 악령을 쫒는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화장식에는 힌두교 중(儈)이 참석한다. 그는 악령을 쫓고 죽은자의 혼이 편히 먼길을 떠나도록 주문을 왼다. 그런다음 탑과 관에 불을 놓는다.
사자의 혼이 이제 최후의 여행을 시작하는것이다.
시체를 태우고 남은 재는 다음날 조심스레 주워모아 바다나 하천에 뿌린다. 대체로 보아 불교의 화장의식과 비슷한데 이것은 힌두교의 배경아래 불교가 탄생했다는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촌락 공동체적 생활양식
인류의 오랜역사에서 볼때 어느곳에든 공동체의 규모가 작고 경제조직이 원초적일때에는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느슨하고 비교적 민주적으로 전체의사를 결정하며 사유재산의 개념도 희박했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의 오지나 오스트렐리아의 원주민 남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 생활양식이 이런 원초적양상을 간직하고 있다.
발리섬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공동적'인게 많다. 논에 물을 대거나 빼는일, 도로나 다리의 건설·보수, 제의식의 진행등은 촌락민 모두가 참여하며 또 모두의 책임이라는 의식아래 행해진다. 다른 나라 같으면 으례 지방정부가 할만할 일도 촌락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해 집행한다. 특히 이곳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행사와 관련된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발리섬의 기후는 열대의 섬이 대개 그렇듯이 상쾌하다. 남위 10도 근처에 있어 매우 무더울것으로 여겨지지만 하와이에서처럼 바다바람이 늘 더위를 식혀준다. 자바의 무더위에 고통받던 관광객이 이곳에 도착하면 그 이색적인 풍물과함께 "정말 낙원에 왔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내곤한다. 곡물로는 쌀을 많이 재배하는데 3모작까지 가능하지만 식량사정이 괜찮아 구태여 3모작까지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발리의 도로를 지나면 벼가 무성한 논이나 머리에 물건을 인 여인, 그리고 맨발의 아이들 모습이 흔히 눈에 띄어 어딘지 우리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곳 사람들은 또 공예품을 만드는데 익숙하다. 단단한 목각공예품은 값도 싸서 관광객의 주요 소핑리스트에 오른다. 사원의 벽에는 여러가지 채색그림이 많이 그러져 있다. 한국의 절에서 보는 그림과는 좀 다르게 느껴지지만 힌두교에 불교의 요소가 가마되어서 인지 어느정도의 유사성도 동시에 느낄수 있다.
종교적색채가 덜한 그림도 눈에 띄는데 남방의 화사한 꽃과 뱀같은 동물, 화산의 분화구연기등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아주 원색적이며 소박하게 그려진 그림은 세련미가 없다고 할수도 있겠으나 자연의 힘과 순수를 맛보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