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분자엥게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되기도 하고, 또다른 분자에게는 선택의 문이기도 한 분리막. 나누기 좋아하는 도깨비로 불리는 분리막의 세계를 찾아가 보자.
가정에서 물을 정수할 때, 화장실읭 물을 인위적으로 제거해야 할때, 꽃을 신선하게 보관할 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구분지어 주는것, 바로 분리막이다.
1861년 그레이엄은 합성분리막을 사용해 처음으로 삼투압을 이용한 투석실험을 했다. 셀룰로오스 반투막 안의 콜로이드수용액을 흐르는 물 안에 담궈놓아 콜로이드를 농축할 수 있었다. 이 결과를 두고 맥스웰(1831-1897)은 분리막은 '나누기 좋아하는 도깨비'(sorting demon)라고 했다.
이 악마는 분자를 인식하는 능력이 있어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자를 차별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자들만 분리막 너머로 보내기 위해 막의 구멍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는 모델을 제시했다. 물론 지금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분리막이 분자들의 성질에 따라 통과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분리막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우선 분리막을 중심으로 분자들이 존재하는 위치를 막의 상부, 내부, 하부의 세부분으로 나눠 보자. 막의 상부에서는 두 종류의 분자들이 완전히 섞여 있는 상태로 운동을 하고 있으며, 막의 내부에서는 두 분자 중에 막을 통과할 수 있는 분자들이 막을 거쳐 막의 하부로 이동한다. 따라서 막의 하부에는 막을 투과한 한가지 분자가 존재한다. 물론 실제로는 다른 성분도 소량 막을 통과해 존재할 수 있다(그림1).
시들지 않는 꽃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각기 다른 외모와 키, 피부색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처럼, 서로 다른 분자들도 각기 다른 크기, 무게, 증기압, 화학적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질의 차이 때문에 어떤 분자들은 막을 통과하고 어떤 분자들은 막을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분리막은 크게 분자의 크기와 화학적 친화력, 그리고 농도 차이를 이용한 것으로 나뉜다.
일상생활에서 분리막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분야는 정수기다. 이 때의 원리는 거름종이가 물 속의 불순물을 거르는 것과 같다. 다만 분리막 속에 있는 구멍의 크기가 거름종이의 내부에 있는 구멍보다 훨씬 작다는 점이 차이다. 분리막은 구멍의 크기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기체분리막(0.1-2nm이하), 역삼투막(0.1-1nm), 한외여과막(1nm-0.1μm), 정밀여과막(0.1-1μm).
산소분자는 3.46(Å)(=${10}^{-10}$m)이고, 질소는 3.64Å으로 0.18Å의 차이를 보인다. 매우 작은 차이지만 기체분리막은 질소보다 산소를 5-10배정도 많이 통과를 시킨다. 이를 이용하면 공기 중에서 산소만을 또는 질소만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이것은 꽃의 신선도를 유지하는데 이용된다.
신선한 꽃이 농장에서 수요자가 있는 곳까지 수송되는 과정에서 꽃이 시드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면서 시들기 때문이다. 이때 분리막을 이용해 공기중의 산소는 통과시키고 비활성가스인 질소만 남아있는 곳에서 꽃을 저장시키면 산화되지 않아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우리가 네덜란드의 튤립을 감상할 수 있는 이유다. 또 가을에 수확한 맛있는 사과를 질소가 충전된 저장고에 몇 달 동안 보관시켰다가 봄에 신선하게 비싼 값에 내다 팔 수 있게 된 것도 다 이러한 막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공장의 굴뚝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아황산가스 등을 정화하거나, 보일러 연소효율을 높이기 위해 공기중의 산소를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데도 모두 기체분리막이 쓰인다.
약품의 순도를 결정
분자들의 친화력을 이용한 분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화학적 친화력이라는 말은 비슷한 분자들은 비슷한 분자를 녹인다는 뜻이다. 분리하려는 성분 중 막과 친화력 높은 분자가 막 속으로 많이 녹아 들어가 막의 하부로 통과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만약에 약산성인 이산화탄소와 중성인 질소가 있는 혼합물을 생각해보자. 분리막으로 약알카리성인 막을 사용하면 약산성인 이산화탄소는 약알카리성인 막과 화학적 친화성이 높으므로 이산화탄소가 막에 녹아 들어간다. 반면에 중성인 질소는 막과 별로 친하지 않다. 따라서 이산화탄소가 선택적으로 막을 통과해 분리된다는 원리다.
액체인 물과 알코올은 화학적 친화성이 좋아 잘 섞여 있다. 이들 혼합물을 분리할 때는 끓는점의 차이를 이용한다. 하지만 알코올을 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즉 분리된 알코올에는 물이 어느 정도 포함돼 있다. 이때 물과 화학적 친화성이 더 있고 에탄올과는 화학적 친화성이 덜한 폴리비닐알코올이나 키토산으로 만든 분리막을 사용한다. 그러면 물만 막을 통해 선택적으로 통과하고 알코올은 통과하지 못하므로 분리가 일어난다. 반도체나 노트북 컴퓨터의 액정화면을 만들 때 세척액으로 쓰이는 이소프로필알코올의 정제에 이러한 막들이 사용된다.
또 의약품 제조에도 쓰인다. 의약품 중에는 화학적 평면구조는 같으나 입체적인 구조가 틀린 이성질체가 많다. 예를 들어 화학적 평면구조는 같으나 입체적으로는 틀린 두가지 화합물 중에 소염제로 쓰일 수 있는 (R)이부프로펜과 (S)이부프로펜은 합성될때 같이 제조된다. 이떄 약효는 (S)이부프로펜만 있고 (R)이부프로펜은 없다. 따라서 이들 혼합물 중 (S)이부프로펜만을 고순도로 정제해야 한다. 이때의 순도가 의약품의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들 이성질체들은 끓는점과 같은 물리적인 성질이 비슷해 분리하기 매우 힘들다. 그러나 화학적으로는 (S)이부프로펜과 같은 입체특이성을 갖는 막을 이용하면 분리가 가능하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막이나 크로마토그래피로 분리해 의약품을 생산한다.
농도 차이 이용한 혈액 투석
농도 차이를 이용해 신부전증 환자의 혈액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투석이라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막의 상부에는 투과시키고자 하는 용액이 있고 막의 하부에는 투석액이라고 하는 용액을 상부와 반대방향으로 흘려 보낸다. 이때 상부 물질의 농도가 더 높으므로 물질은 상부에서 하부로 이동한다. 단 막의 구멍 크기는 투과되는 물질의 크기와 같거나 약간 커야한다.
신장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불순물인 요산, 크레아티닌과 같은 물질이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몸 안에 쌓이면서 혈액 중에 노폐물들의 농도가 높아진다. 이때 사용되는 혈액투석 용막은 노폐물을 선택적으로 분리하고 신선한 혈액은 다시 몸 속으로 돌려보내는 신장역할을 한다(그림2).
정수기 속에나 들어있을 듯 했던 분리막이 어느 덧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수기 속에서 이물질을 걸러내며, 최신의 리튬이온 배터리의 속에서 전해질이 전극과 붙는 것을 방지하며, 인공신장기 속에서 혈액의 노페물을 걸러내며, 공기정화기 속에서 먼지와 유해물질을 빨이들이며, 가습기 속에서 물 속의 바이러스를 거르며, 냉장고 속에서 산소를 배출시켜 음식물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분리막.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분리막이 이룩한 이스라엘 키부츠
물질들을 분리하는 기술 중에 막을 이용하는 방법이 발견된 지 1백년이 넘었다. 하지만 실제로 적용된 것은 1950년대부터 이므로 4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신기술이다. 그렇다면 분리막 연구의 출발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소금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지표상의 2/3나 덮고 있으면서 활용되지 못한 바닷물을 이용하려고 하면서부터다. 또 연구자들은 현재처럼 인구가 증가한다면 언젠가는 우주공간이나 바다 위 또는 바닷속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의 밑바탕은 바닷물의 활용이 전제조건이다.
1955년 미국의 라이드와 브래톤은 투명한 얇은 필름을 만들었다. 이 필름을 이용해 소금농도가 3.5%인 바닷물을 분리시킨 결과 소금의 농도가 0.1%이하인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필름을 그대로는 상업화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투과돼 나온 물의 양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59년 소우리라잔과 로엡이 필름의 표면층은 매우 치밀한 구조를 갖고, 그 아래에는 다공성 구조를 갖는 막을 만들었다. 이 막을 통과한 물은 소금의 농도가 낮을 뿐 아니라 그 양이 대단히 많아 상업화가 가능했다. 이 필름을 비대칭다공성막이라고 한다. 이것이 근래 대부분의 막에 쓰이는 중공사막(中空絲膜)의 기본적인 구조다. 이 막을 이용해 바닷물에서 소금을 빼내고 공업용수로, 먹는 물로, 또는 농업용수로 이용하게 됐다. 이스라엘의 사막 위에 키부츠라는 농촌마을이 세워지고,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위에 석유화학공장이 가동될 수 있는 것이 모두 막 덕분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