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5일의 일기예보를 보면 서울은 구름이 끼고 비올확률이 10%이며 예상기온은 16~28도였다. 부산의 경우는 흐리고 비올 확률 60%에 기온은 17~25도. '흐리고 한때 비'식의 일기예보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들에게 요즘의 일기확률예보제는 신선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확률예보제를 단행한 중앙기상대의 손형진(孫亨珍·56)대장을 만나 '확률예보'에 얽힌 뒷얘기와 날씨와 우리 생활과의 관계 등을 알아봤다.
확률예보제의 시행 배경
―6월초부터 확률예보제가 실시됐는데 반응이 어떻습니까?
"바깥에서 어떻게 평을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읍니다만 내부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읍이다. 확률예보의 적중률을 계산해보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해오던 일기예보방식을 탈피해 확률예보제를 도입한 계기랄까 취지는 무엇인가요.
"기상예보는 그 수요자 즉, 국민각계각층이 어떤 종류의 예보를 원하는가에 따라 정해져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확률예보를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국민생활수준의 향상에서 비롯됐다고 보겠읍니다.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레저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항상 계획성이 중요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날씨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비가 올 확률이 70%라고 했을 때, 이 30%가 불확실한 정보를 이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자신의 경제활동상의 손익계산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확률예보의 해석에 약간의 혼선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비올 확률 50%에 예상강우량 20mm'라고 했을 경우, 전혀 비가 안내릴수도 있다는 것인지, 혹은 10mm정도의 비가 1백% 온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는지요.
"물론 그 경우 비가 안올 확률도 50%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비가 온다면 20mm쯤 내린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10mm쯤 올 확률 1백%로 받아들인다면 딱 맞는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리는 있는 얘깁니다. 강우량이 적어질수록 확률은 커지니까요. 앞으로는 예상강우량별로 각각의 확률의 예보할 것을 검토하고 있읍니다."
―외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기예보를 하고 있읍니까.
"82년 통계로 선진 15개국에서 확률예보제를 실시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20개국 정도에서 하고 있을 겁니다. 일기예보는 각국마다 자연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인력과 예산장비 등 여건에 맞도록 시스팀을 개발하고 있읍니다. 우리의 일기예보도 자체에서 개발한 시스팀에 의해 나오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날씨는 어떤 범위의 기상에 영향을 받아서 결정되나요.
"우선 지구전체를 감싸는 대기의 영향을 들 수 있고요. 다음엔 한반도주변의 지역들, 제주도에서 신의주에 이르는 1천km 지역, 수백km 지역 등의 기상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심지어는 약 10km의 범위의 기상요소들도 한데 어울려 날씨를 결정합니다. 서울의 경우 반경 20km가 넘으므로 같은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날씨가 다를 수 있읍니다. 어느 한 지역을 기준으로 10km나 1백km 범위의 기상은 수시로 변화하므로 그 수명도 짧습니다. 한마디로 변덕장이지요. 따라서 지역을 좀더 세분해서 일기예보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우리도 현재 고속도로라든가 해수욕장 같은 곳에 국지예보를 내보내고 있읍니다."
컴퓨터와 레이다는 필수장비
확률예보가 등장한 데서도 느낄 수 있지만 날씨를 추적하고 예측하는 일도 날이 갈수록 과학화하고 있다. 인공위성에서 찍은 기상사진을 받아보고, 컴퓨터가 필수장비로 된지도 이미 오래다. 우리의 기상업무는 얼마나 과학적으로 돼 있을까?
"기상대에서는 이미 컴퓨터가 절대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장비로 되어 있읍니다. 기온 기압 바람 습도 등 기상변화를 일으키는 요소들이 모두 컴퓨터를 통해 분석, 처리되고 있어요. 우리도 물론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더 큰 용량의 컴퓨터로 대체할 필요가 있읍니다. 컴퓨터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과학장비가 레이다입니다.
현재 제주도의 서귀포에는 이동식 레이다가 설치중에 있읍니다. 이것은 공기중의 구름속에 있는 빗방울에 전파를 보내 반사해온 것을 분석, 기상정보를 얻는 장비로서 열역학적인 기상특성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장비는 뇌전관측 즉, 번개와 천둥이나 벼락 등을 탐지해내는 것입니다. 구름과 구름사이 혹은 구름과 지상사이에 방전(放電)현상으로 인해 뇌전이 발생하는데, 요즘 고층건물이 점점 많이 세워지고 있어 이에 관한 관측이 중요시되고 있읍니다. 이외에 지진현상을 측정하는 지진계도 중요한 과학장비라고 할수 있겠읍니다.
―뇌전이나 지진은 모두가 순간적으로 발생하는데, 사전에 예보를 할 수가 있읍니까?
"물론 사전에 알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일단 뇌전이나 지진 같은 기상상태가 발생했을 경우는 더 이상 피해가 확산되기 전에 방재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으므로 관측의 중요성이 큰 것이에요. 앞으로 어느 어느 곳이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내릴 수가 있는 것이지요."
―무슨 뜻인 알겠읍니다만,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일쑤인 기상이변을 과연 얼마나 실제상황에 도움이 되도록 예보해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모든 과학이 발생의 근원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구의 탄생,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발생근원도 아직 확실히는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기상도 마찬가집니다. 예를 들어 수시간 동안에 10km 범위에서 발생, 변화하는 기상을 1주일 전에 예보할 수는 없는 것이에요.
미국의 예를 들어보지요. 미국의 중부지역에 가면 토네이도(tornado)라는 기상현상이 발생되는 이것이 세력권 안에 들면 집들이 분해되고 사람은 공중으로 올라가버립니다. 구름이 땅에 닿아서 빙빙 돌아 그 안의 기압이 낮아지는, 극도의 저기압상태를 이르는 것인데요. 이때 기상대에서는 미리예보를 못하고 일단 발생한 후 그 진로를 경고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손대장의 설명을 듣고보니 기상예측이라는 게 아무리 과학장비가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날씨나 기후에 대해 미리 알고 싶은 심정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당장 금년 여름의 장마와 무더위에 관해 물어보았다.
"기상대에 있다 보니까 날씨전망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됩니다. 또 겨울이 따뜻해졌다, 오존층이 파괴된다, CO₂의 양이 변화한다느니해서 우려하는 말도 자주 듣습니다. 저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지구의 오랜 역사에 비추어보면 최근의 변화라는 것은 무시할말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읍니다. 다시 말해 하루 이틀 사이에 인류가 살지 못하는 기후변화는 없다는 것입니다. 금년 기후가 어떻고 내년 기후가 어떻다는 식의 얘기는 실상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현재 기상대의 예측범위는 인류의 지혜와 컴퓨터같은 과학의 힘을 빌린다 해도 20일을 넘지 못합니다."
날씨에 좌우되는 분야들
―화제를 돌려보지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날씨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분야도 많을텐데요. 일반국민 외에 기상대의 주고객은 어떤 계층입니까?
"서울대 관악캠퍼스 공사 때의 얘깁니다. 한번은 공사관계자가 찾아와서 자문을 구하더군요. 창문쪽에 빛을 차단하는 블라인더를 설치해야 하는데, 광량(光量)에 따라 동(棟)배치가 달라지므로 이헤 관해 자문을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빛의 양을 어떻게 산출해 건물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예산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겁니다.
이외에도 메리야스 공장에서는 습도에 따라 실이 끊어지는 비율이 달라진다고 하고, 얼음과자나 맥주의 판매량, 해수욕장이나 스키장의 경우는 날씨가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까. 요즘은 스포츠나 레저활동이 증가해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 대표적인 분야가 되고 있읍니다. 심지어는 프로야구감독의 투수기용에도 날씨가 참작되고 있어요. 얼마전 국내의 모프로야구팀 감독이 일요일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믿고 토요일게임에 에이스 투수를 동원, 승리를 했다는 후문도 있읍니다."
―막상 듣고 보니 정말로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날씨를 다루는 기상요원들의 하루일과는 너무 단조로울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루종일 하늘을 쳐다보거나 아니면 컴퓨터에서 나오는 분석자료들을 챙기는 모습이 연상되는데요.
"그렇습니다. 기상대 직원들처럼 자기일에 충실하고 관계되는 문헌을 많이 보는 직종도 드물 겁니다. 특히 소백산이나 울릉도같은 벽지의 기상관측소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더욱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어요. 한가지 자랑하고 싶은 것은 2차대전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기상업무가 시작돼왔기 때문에 기상업무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게 축적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 30년을 기상업무에 종사해오셨는데, 잊혀지지 않는 사건도 많을 것 같군요.
"기상이란 게 '작은 것'이 애를 먹입니다. 60년대 후반으로 기억나는데 야간당직을 하던 날이었어요. 한밤에 눈을 붙이고 있는데 비가 온다고 누군가가 잠을 깨우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그쳤다는 겁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요. 다음날 조간신문을 보니까 미아리일대에 몇시간동안 큰 소동이 벌어졌다는 뉴스와 함께 가장 큰 활자로 기상대를 나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읍니다. 불과 몇시간 동안의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은 전주곡도 없었고 흔적도 없었으며 다만 피해사항만 있었던 경우였읍니다."
전남 보성출신의 손대장은 원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온 물리학도였다. 그가 55년 기상대에 들어온지 3년후 서울대에 천문기상학과가 설치됐으니까 선구적인 진로선택을 한 셈이다.
"교수들과 진로를 상의했더니 국가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천문·기상쪽에 일꾼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길로 들어섰다"고 담담히 술회하는 손대장은 예보관과 기상연구소장직을 각각 10년 정도 역임한 것 외에 시카고대학에서 기상학을 전공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상인이다.
중앙기상대 뒷편의 백엽상에서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백엽상이 기상업무의 심볼로 되던 때는 지났다"며 위성사진을 수신하는 방으로 안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