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명의 역사는 물과의 투쟁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물의 맹위에 재앙을 당해 꿇어 엎드렸고, 가뭄과 물 부족으로 식수와 식량을 얻지못하고 고통을 당하였다. 물이 부족하면 청결한 위생생활을 영위할수가 없으며 산업활동이 마비가 된다. 인간은 물을 지배하고 정복하여 문명을 발달시켜왔다.
물은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양식의 근원이며 동시에 교통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인류최초의 문명은 물이 풍부한 곳이나 물이 인간을 지배하는 지역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에게는 우선 물이 필요하므로 풍부한 곳에 살아야하나 이것을 정복하지 않고서는 큰재앙을 당하게 되므로 무엇보다도 우선 물을 관리하고 이용하기 위한 창의와 연구가 필요했다.
이집트인들은 해마다 덮치는 나일강의 범람에 대처하기 위하여 1년 365일인 일력을 만들었다. 고대의 탁월한 법치국가이었던 바빌로니아에서는 물의 사용을 규제하는 법령을 만들었다. 고대의 중국인들은 1천 6백 km에 이르는 운하를 건설하였다. 이운하는 2천 5백년이 지난 지금도 감탄하고 있는 놀라운 것이다.
그러나 고대인들이 완전한 물의 문제를 해결했던 것은 아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중국의 비애'라고 일컫는 한번의 범람으로 1백여만명의 생명을 앗겼던 예들이 황하에서 가끔 발생하였다.
인더스강 유역에서 번성하였던 위대한 문명도 역시 홍수때문에 종종 참화를 당하였다. 그주변은 배수가 잘 안되어 한번 강이 범람하면 농토의 태반이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4대 고대문명의 발생과 수리의 역사
물을 유용하게 이용한 최초의 시도는 신석기시대부터 일 것이다. 당시 인간은 농작물을 재배할 줄 알았고 그들은 물에서 식수와 관개용수를 해결하였다.
그래서 4대강 유역에서부터 큰문명이 발생되어 각기 고유의 위대한 문화를 이루었다.
그리스의 위대한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이집트는 '나일의 하사품'이라고 하였다.
매년 6월이면 나일강의 하류는 열대의 비와 상류지대의 산악에서 눈이 녹아 내린 물로 현저히 수량이 붇는다. 그시기는 놀랄만큼 정확하다.
그래서 9월 하순까지는 모든 범람평지가 흐린물로 뒤덮이고 서서히 물이 빠지는 10월하순까지는 주요한 수로를 채우고, 범람한 평지에 비옥한 침니를 남긴다. 이미 기원전 4천년대말에 이집트인은 소박한 수리(水利) 기술을 이용하여 홍수를 억제하게끔 되었다. 단순하지만 수로를 만들고, 제방을 쌓고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관리하여 농산물의 증산을 꾀하였다. 이집트 제 1왕조의 창시자로 전설적 인물인 메네스왕은 기원전 3천 1백년에 수도 멤피스 부근에 웅대한 수리사업을 벌였던 일로 유명하다. 그후인 파라오시대에는 더욱 수리사업을 확대하고 관개와 늪지의 배수로 운하를 건설하는등 고대사회에 경이로운 수리사업으로 고대 이집트인의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메소포타미아인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주변의 델타지역에서 훌륭한 문명을 탄생시켰다.
메소포타미아인은 홍수의 예방과 관개시설 뿐만 아니라 도시의 상수도 문제와 배를 위한 수로를 만드는 일에 눈을 돌렸다.그들은 운하·제방·저수지·단순한 댐등 일련의 수리체계를 만들었다. 이것은 이집트의 것에 비하여 훨씬 복잡한 것이었다.
기원전 3천년경에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도시는 도시 최단부까지 연속되는 운하망을 이루었다.
기원전 10세기경에는 상류지역의 급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물을 끌어올리는 대역사를 이룬다. 약 48km에 이르는 운하가 앗시리아의 센나헤리브왕의 손에 의하여 퍼졌고 그 운하의 일부는 고대의 가장 큰 규모의 고가수도(高架水道)에 의하여 산골짜기를 건넌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많은 운하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공수로는 약 1백 20m 폭을 가진 나완운하다. 주로 농사를 위한 관개수로로 티그리스강에 평행하게 약 3백 20km나 이어져 갔다. 장거리에 걸쳐 정확한 경사를 유지하였으며 수문을 사용하는등 현대 수준으로도 놀랄 만한 위대한 업적이었다.
4천 5백년전에 이미 이루어진 하천문화
또한 메소포타미아지방에서 2천 4백km쯤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기원전 2천5백년경 제3의 하천문화가 있었다. 훗날 고고학자가 발굴한 도시의 이름을 따서 하랍파문명이라고 부르는 인더스문명은 지역적으로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훨씬 넓고 기술도 진보해 있었다.
특히 파키스탄의 카라치 북방 3백20km에 있는 모헨조다로는 유명하다. 모헨조다로는 매우 큰 도시인 듯한데, 그 몇몇 수리사업은 오늘날 현대 선진국 여러도시의 것들과 필적할 만하다. 많은 민가는 2층집이고 욕실이 있고 더러운 물은 배수관을 통하여 흘러가고 이 배수관은 오수웅덩이에 이어져 있는 기간하수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고대 제 4의 문명인 중국의 황하문명은 넓은 늪지대와 수목이 번성한 습지대를 꿰뚫어 배수하여야 하고 긴 동결기간에 대처하여 굴운하를 파서 교통과 농경을 발전 시켰다.
고대 4대문명이후 로마인들은 광대한 제국의 도시에 공급하는 대규모의 수도(水道)를 여기저기에 남겼다.
서기 1세기에 로마의 위대한 박물학자 '플라니우스'는 다움과 같은 글을 남기었다. "로마의 공공건물, 욕탕, 풀, 배수로, 민가, 정원 따위 그리고 근교의 건물에서 볼수 있는 풍부한 물의 공급을 생각해도, 또한 물이 운반되는 먼 거리와 아치식다리, 산에 뚫은 터널, 깊은 골짜기를 가로 지르는 수평의 수로를 생각해도, 전세계에서 이만큼 스케일이 큰 사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로마인들이 이룩한 수리사업은 어마어마하였다. 로마 제국에 어울리는 거대한 수도를 통하여 보내지는 물은 매일 70만톤도 상회하였다. 오늘날 서울시의 상수공급량 약 1백 20만톤과 비교할때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막대한 물은 납파이프와 돌과 벽돌의 이음매로 된 복잡한 수도망을 거쳐 전 시내에 공급되었다. 그당시에 완성된 11개 수도중 오늘날도 로마시의 수도의 일부로서 사용되고 있는 정도이다.
산업의 혈액인 물
한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데 적어도 1백 14톤(㎥)의 물이 사용된다. 주로 재료인 강재공장에서 76톤, 조립공정에서 약 38톤, 그리고 플라스틱 및 유리섬유 등 부품제조공정에서 수톤의 물이 소요된다. 또 자동차의 연료인 가솔린은 그 제조공정에서 1ℓ마다 물 70ℓ 즉, 약 70배의 물이 사용된다.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뿐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물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즉 물은 가장 기본적인 재료이기 때문에 산업의 혈액이라고 일컫는 이유가 된다.
지상의 모든 산업에 이용되는 재료중 공기를 제외하면 물만큼 많이 사용하는 것이 없다.
수력발전과 맥주공장에서는 직접 물을 사용하여 전기와 맥주를 생산한다. 제철소에서는 적열된 금속을 냉각하는데 사용하며, 물은 표백작용에 있어 용제로서 사용되고 제지 공장에서는 펄프에서 불순물을 빨아내는데 사용된다.
물을 가열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피스톤을 돌릴 수 있어 믿을 수 없이 거대한 기차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는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수력발전은 현대산업문명 중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인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물은 그 사용량이 매년 증가하여 선진국에서는 하루 소비량이 1인당 5천ℓ이상이다. 미국에서의 1일 1인당 물의 소비량(이는 총물수요량을 인구수로 나눈양 임)은 약 7천 5백ℓ에 달하고 있으며 이중 약 6천 5백ℓ가 농업 또는 공업용이다. 우리나라는 약 4천ℓ이며 약 3천ℓ가 농업 및 공업에 사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용 수자원은 연간 약 2백억㎥로 제한되어 있으며 그 사용량은 급격한 증가추세에 있다.
중수 원자시대
물중에서 특수한 물인 중수와 이를 이용한 현대과학의 가공할 힘의 제조는 물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다.
'유리'가 발견한 후 얼마 동안 중수는 진기한 화합물로만 생각하고 실질적인 가치는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탈리아의 화학자 '페르미'(Enrico Fermi·1901~54)는 획기적인 원자핵실험을 통해 중수(D₂O)의 군사적, 경제적 중요성을 확인하였다. 페르미는 1934년에 여러 원소들을 중성자로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여 수많은 인공방사성원소를 만들었다. 거의 모든 비방사성원소가 중성자로 때리면 방사성동위원소로 바뀌는 것을 발견한 데서부터 이 실험은 시작되었다.
느린 중성자가 ·원자들의 집합을 통과할 때 원자핵과 충돌할 확률과 그것이 충돌하는 원자핵에 잡힐 확률도 커진다.
페르미의 발견후 독일 과학자 '한'(Otto Hahn, 1879~1968)과 '슈트라쓰만'(Fritz Strassmann, 1902~ )은 우라늄원자핵이 중성자를 흡수하면 원자핵이 실제로 분열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원자핵분열 과정에서 우라늄원자가 갖고 있는 많은 중성자들 중에서 두세개가 방출된다.
그 중 U${(우라늄)}^{235}$는 페르미의 연구에서와 같이 느린 중성자에 의해 가장 효과적으로 분열되고 실제로 우라늄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매우 느린 중성자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사실로 ${U}^{235}$의 분열에 의해 방출되는 빠른 중성자들을 감속시킬 수 있다면 ${U}^{235}$가 0.07%밖에 들어 있지 않는 보통 우라늄 덩어리 중에서도 지속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중성자를 잡지 않으면서 중성자의 과잉 에너지를 흡수하는 물질, 즉 감속제(moderator)가 필요한데 그것이 중수이다.
그러므로 보통 H₂O는 효과적인 감속제가 되지 못하지만 중수는 중성자를 잘 흡수하지 않으며 가벼워서 충돌시에 중성자의 에너지 중 큰 부분을 흡수할 수 있다.
그러므로 D₂O가 가장 효과적인 감속제로 사용되는데 중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전기분해 과정에서 얻어지며 막대한 전기를 필요로 한다.
원자핵 에너지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중수의 실용성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중수의 잠재적인 경제적 및 군사적 가치는 1950년대에 수소폭탄이 개발됨으로써 더욱 증가하였다. 실제로 1952년에 에니위톡(Eniwetok)에서 폭발된 수소폭탄은 액체 중수소와 3중수소의 혼합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U}^{235}$ 폭탄으로 열핵반응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화학연료의 공급이 고갈될 때가 가까와옴에 따라 중수소의 중요성은 증가할 것이다.
바닷물에 들어 있는 핵융합연료의 양은 거의 무한정하다.
바닷물 1갤런중에 들어 있는 중수소는 그 에너지 함량에 있어서 3백50갤런의 가솔린과 맞먹는다고 볼 때 바닷물의 엄청난 양으로서도 수십억년 동안 인류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