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은 최고와 최악이 뒤범벅 되었다.
세계의 과학기술계는 희망과 좌절이 뒤섞인 한해를 보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언제나 낙천적인 견해를 지닌다는 자연과학자들도 금년 한 해 동안 과학기술과 관련된 대형사고들을 접하면서, 가속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이것을 다루는 인간의 능력이 미처 따르지 못할 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말 발생한 미국의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의 참사나 4월말께 일어난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은 모두가 사람의 실수가 빚어낸 사고였다는 점에서 과학기술발전이 인간에게 장미빛 미래를 가져 올 것이라고만 보아오던 사람들을 불안속에 몰아넣었다.
천문학 최고의 해
1986년은 다른 면에서 과학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해였다. 특히 천문학자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1986년이 다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꼬리별의 스타인 핼리 혜성이 76년만에 다시 지구와 접근하는 기회를 맞아 지구생성의 비밀을 캐려고 잔뜩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일본, 서유럽국가들과 소련이 참여한 핼리 혜성의 관측사업은 3월 10일을 전후하여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이 관측 사업의 과학적인 결과는 지구생성과 생명체 탄생의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제공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핼리 혜성 관측사업은 또 과학을 통한 국제협력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데 큰 의의를 찾는다.
그러나 5월에 '챌린저'호에 태워 발사예정이었던 목성탐색선 '율리시즈'호와 10월에 유인우주선 '애틀런티스'호에 실려 궤도로 발사될 예정이던 '허블' 우주망원경은 1월 28일의 '챌린저' 참사로 당분간은 지상에 주저 앉을 수 밖게 없게 되었다.
원전사상 최악의 사고
7명의 우주왕복선 승무원의 생명을 앗아간 '챌린저'호 참사의 충격이 미처 가시기 전인 4월 25일, 이번에는 소련 우크라이나 지방의 체르노빌에서 세계 원자력발전사상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가 난뒤 4개월이 지난 8월 말 비엔나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 임시회의에서 밝혀진 사고의 진상은 원자력을 다루는 인간의 실수가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가 하는 본보기를 제공했다.
줄잡아 40억달러에 이를 재산피해도 엄청나려니와 수만명이 평생을 두고 암의 위협을 받게 되었으며 광활한 땅은 오랜 세월을 불모지로 버려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3만 5천명의 주민들은 오염지역에서 물러나 떠돌이 신세가 되었고 이웃의 2백 40만 키에프시민들의 상수도원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방사선 찌꺼기는 하늘로 올라간 뒤 국경을 넘어 이웃 유럽 여러나라의 농사와 목축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 사건은 서방국의 반핵단체와 자연보호운동자들의 반핵운동에 불을 질렀으며 가뜩이나 불황의 늪에 빠진 원자력산업계를 난타해 버렸다. 스웨덴같은 나라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12기의 핵발전소들을 서기 2010년 이전에 폐기하기로 했다.
죽음의 물결 흐르는 라인강
각종 사고로 점철된 금년의 마지막을 라인강의 독극물 오염 사건이 장식하게 되었다. 지난 11월 1일 라인강 상류의 스위스 제 2의 제약회사인 '산도즈'사 '바젤'공장에서 불이나 약 30t의 살충제, 살균제, 수은 등이 강물에 씻겨들어갔다.
살충제 공장의 화재가 원인이 된 보팔참사를 연상시키는 이 사고의 주 피해당사자는 다름아닌 물고기.수십만 마리의 뱀장어 등 민물고기가 강물위를 덮었다. 강주변의 국가들은 인체피해를 막기 위해 라인강의 식수사용과 어획을 금지시키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산했고, 서독, 프랑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라인강 연안 5개국은 긴급 장관회의를 갖고 하트라인 체계를 갖춘'라인강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사건은 체르노빌 사고 때 제기됐던 환경문제의 국제적 대응의 필요성과, 위험을 안고있는 화학공장의 안전확보의 중요성을 재삼 확인해 준 교훈이 될 것이다.
불꽃 튀는 첨단기술 개발경쟁
지난 해 세계 선진국들의 첨단기술 개발경쟁은 더욱 뜨겁게 달아 올랐으며 몇몇 분야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서로 선두자리를 뺏기고 빼앗는 각축전이 벌어졌다. 예컨대 정보기술 발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왕좌는 마침내 무너져 버렸다.
그동안 세계 반도체계의 정상을 차지해오던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사와 '모토롤라'사를 물리치고 일본의 '후지츠', '히다치', NEC가 올라가게 되었다. 지난 10월에는 일본의 '후지츠'사가 미국 반도체업계의 명문인 '페어차일드'사를 사들인 사실은 미국 반도체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오늘날 미국 실리콘 밸리를 첨단기술의 메카로 전환시킨 것은 바로 '페어차일드'사였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일본 반도체업계의 맹렬한 추격에 시달려오던 미국은 지난해 초에는 마침내 일본반도체 메이커들을 걸어 덤핑과 특허법 위반으로 몰아붙혔으나 일제 반도체의 가격인상과 미제 반도체에 대한 일본시장개방이라는 극적인 타협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과 일본 메이커들이 카르텔을 형성한 것이라고 해석한 서유럽 여러나라는 국제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고 나섰다.
생산기술에서 일본에게 한 수 짧다고는 하지만 기초 연구의 저력은 일본보다 월등하게 앞선 미국은 지난 해 반도체의 고집적화 경쟁에서 중요한 개가를 올렸다. 미국방부가 10억달러의 연구비를 들여 최우선적으로 밀고 있는 초고속집적회로(VHSIS)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TRW사가 칩하나에 3천5백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수용한 수퍼칩 개발에 성공하여 1989년에는 양산단계에 들어 갈 예정이다.
한편 10개년 계획의 제5세대 컴퓨터 개발사업에서 중반기에 들어 선 일본은 지난해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의 일부를 실용화에 옮기기 시작했으며 이 사업에 참여한 '미쓰비시' 전기사는 추론식 능력을 가진PIS장치를 상품화하여 전문가 시스템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각광받는 신소재 '다이아몬드 박막'
일본은 현재 전자와 광신호를 함께 다룰 수 있는 비소화갈륨(GaAs)반도체 개발에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런데 반도체용의 유망한 소재로서 새로 등장한 다이아몬드의 초박(超薄) 필름은 미국을 비롯하여 일본, 유럽 등 여러나라의 소재개발 경쟁의 새로운 메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다이아몬드 필름을 입히면 반도체 표면에 생기는 열을 올려 줄 뿐 아니라 다이아몬드 박막 자체로 비소화갈륨보다 연산속도가 더 빠른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밖에도 소재분야에서 미국의 '얼라이드 시그널'사는 지난 해 변압기에 혁명을 가져올 새로운 소재인 금속성 유리의 양산에 들어 갔으며, 영국 ICI사는 박테리아 먹이의 메뉴를 바꿔주면서 서로 다른 성질의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연구에 성공했다.
광기술 개발경쟁에서 가장 야심적인 분야인 광 컴퓨터는 지난 6월 미국의 AT&T사가 광트랜지스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그 실현을 한발 앞당기게 되었다. 지난해 1백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한 광기술 관련제품의 신장세는 해마다 50%에 이르는 가파른 커브를 그리고 있어 광기술에 대한 각국의 관심은 매우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광기술에 투입한 연구비는 10억달러 였으나 일본은 30억달러에 이르며 전자와 광기술을 함께 묶은 혼합 마이크로칩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에도 세계여러나라는 광케이블 부설작업을 줄기차게 밀고 나갔으며 87년에 대서양 바닥에 3천7백마일의 해저 광케이블이 깔리며 북미대륙과 유럽은 광통신망으로 연결된다.
식물에도 눈을 돌린 생명공학
유전공학을 이용한 인형(人型) 인슐린에 이어 지난 해 '제넨테크'사는 유전공학을 이용한 성장호르몬의 양산에 들어 갔다. 한편 단(単)클론 항체와 백신에 생명공학을 이용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제넨테크'사가 항암제인 TNF 와 혈전치료제인 TPA 개발에 착수했는가 하면, '시터스'사는 암조직 파괴용의 인터로이킨―2의 임상시험에 들어 갔고, '시론'사는 유전공학을 이용한 B형 간염 백신을 개발했다. '바이오테크놀로지즈'사는 재결합 DNA 기술을 이용하여 혈압조절효소인 인형 '레닌'의 양산에 들어갔다.
몇몇 기업은 유전공학을 이용하는 AIDS백신의 생산도 검토하기 시작했다. 생명과학과 생의학 연구에 연간 1백억달러를 퍼넣으면서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국의 유전공학에 대해 지난해 일본과 유럽도 만만치 않은 도전을 하고 나섰다. 예컨대 영국의 대표적인 유전공학기업인 '셀텍'사는 단 클론항체의 양산을 위한 미식품의약국의 승인을 처음으로 획득했다.
종래 유전공학을 식물에 이용하는 연구는 까다로운 규제에 벽에 걸려 실제로 연구결과를 실험하기가 어려웠다. 규제가 까다로운 까닭은 유전공학을 이용하는 의약품과는 달리 식물의 경우는 실제 실험을 하자면 이웃 환경속에 노출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과학자들이 신청한 여러건의 시험에 대해 미환경청과 농무부는 승인을 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주민들의 반대에도 부딪혔다.
현재 미국 과학자들은 제초제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옥수수와 내병성 감자에서 푸른 장미꽃에 이르기까지 60여종의 새로운 식물 품종을 개발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이중에서 몇가지는 87년 봄에 실험해도 좋다는 허가가 나와 유전공학의 응용은 식물품종개량 분야로 급속히 번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 미 연방정보는 86년 6월 유전공학을 이용하는 농업용 새품종의 연구개발 활동을 규제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나 다음달 미환경보호운동의 효장인'제리미 리프킨'은 이에 대해 도전장을 던졌다.
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발전계획
1986년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한 해였다. 우선 서기 2000년을 향해 우리의 과학기술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을 확정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처가 주관하여 85년에 착수한 이 작업에는 우선 첫해에 2백50여명의 전문가들의 참여 아래 기본목표와 방향을 수립하여 85년 12월의 기술진흥확대회의에 보고 하였고, 지난 해에 이것을 토대로 실천 계획 작업에 들어갔다. 모두 5백23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마무리된 실천계획의 기본골격과 주요 내용은 86년9월 기술진흥 확대회의에 보고되었다.
이 장기계획은 우리의 과학기술의 기본목표를 서기 2001년까지 세계 10위권 기술 선진국의 구현으로 잡고 그 추진방법으로서 인력, 중점 추진분야, 투자재원, 연구개발 체제, 연구 개발 활동 및 접근방법등 6대 추진전략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서기 2001년의 우리나라 연구개발 및 엔지니어링 요원은 인구 1만명당 30명꼴인 15만명으로 추정하고 그 수급계획을 밝혔으며, 과학기술 투자는 국민총생산고(GNP)의 3.1%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중점추진분야는 컴퓨터ㆍ반도체를 포함한 정보산업 기술, 정밀화학ㆍ생명공학을 포함한 재료 관련 기술, 설계 엔지니어링ㆍ기계자동화 등 산업요소기술, 원자력을 포함한 에너지ㆍ자원 기술, 환경ㆍ보건 등 공공기술, 해양ㆍ항공ㆍ우주를 포함한 대형복합기술과 기초연구 등으로 나누고 그 목표와 추진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수출시장을 주도하는 전자제품
금년은 우리의 고도 기술상품의 선진국 진출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연초에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에 우리나라 생산의 자동차가 상륙하여 외제 소형 자동차 시장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했으며, 미국 전자레인지 시장에 진출한 우리 제품은 일본과 거의 맞먹는 35%의 점유율을 차지하게 되었다. 국산 VTR의 선진국 시장 진출은 지난 9월말 현재 3억6천만달러를 넘어서서 지난 해의 같은 기간 보다 2백%가 넘는 큰신장률을 보였다. 그동안 일본에서 전량을 수입해 오던 VTR의 핵심부품인 캡스턴 모터와 드럼 모터를 금성정밀이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연간 8천만달러의 수입대체는 물론 일본이 꺼려해 오던 기술이전 문제도 해소하는 길이 트이게 되었다.
한편 미국과 유럽의 IBM PC 컴퓨터 유사품 시장에서 국산 컴퓨터는 대만을 제치고 공급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대만보다 뒤늦게 80년대 초에 이 시장에 뛰어든 우리나라 기업들은 지난 해 3억3천만달러의 퍼스널 컴퓨터를 수출하여 불과 몇 해만에 대만을 앞질렀다. 컴퓨터 장비의 수출도 7억5천만달러를 넘어서서 지난 2년새에 1백63%의 가파른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일본의 컴퓨터 부품 공급사들은 아시아에서 만드는 IBM 유사품 컴퓨터에 들어가는 부품중의 40%까지 공급하여 실속있는 재미를 보고 있다. 퍼스널 컴퓨터 시장에서 유사품에 밀려나게 된 IBM은 최근 인텔사가 개발한 강력한 80386 칩을 사용하여 여러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고 네트워크내의 다른 PC와 더욱 쉽게 통신할 수 있는 모델을 연말까지 내놓는다.
새로운 매체들의 등장
86년의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몇가지 새로운 매체들이 선을 보여 뉴미디어 시대를 예고했다. 그중에는 7월부터 서비스를 개시한 한글 전자우편(전자사서함)을 비롯하여 비디오텍스인 올림픽종합정보망(INS)과 경기운영 정보시스템이 있다. 그런데 INS와 관련된 전산장비는 수퍼미니 컴퓨터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제품이며 경기운영 정보 시스템은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시스템공학센터의 작품이었다.
한편 한국전기통신공사는 86년부터 시작하여 90년까지 5개년간 경부선의 철도 연변을 따라 광전송로를 부설하기로 했다.이로써 90년대 후반까지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간을 광케이블망으로 연결하여 '통신의 고속도로'인 종합정보통신망을 구축하려는 거창한 사업의 막이 오르게 되었다.
올해 초에 국내기업이 개발한 반도체 소재인 리드 프레임 생산기술이 선진국 서독에 수출되어 과학기술계의 적지않은 관심을 모았고, 6월에는 VTR기술이 말레이지아로 수출되었다. 또 10월에는 첨단적인 기술이 필요한 전 전자교환기가 필리핀으로 수출되었고, 첨단제품인 탄소섬유의 국내생산을 개시했다. 86년에는 원자력발전소 제5호기와 제6호기가 준공되었다.
늘어나는 유전공학 연구투자
국내의 생명공학 분야의 기업들도 지난해부터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이용하여 개발한 의약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럭키가 간염 진단 시약을 개발하여 9월부터 시판하기 시작했으며, 제일제당은 제2세대B형 간염 백신 개발에 성공하여 양산할 계획이다. 한편 과학기술처가 밀고 있는 특정연구 개발사업에서 86년의 유전공학분야의 연구 개발비는 첫째, 한국과학기술원 유전공학센터가 주관하는 국가주도사업은 지난 해보다 35%가 늘어난 13개 과제에 9억4천여만원이었고 둘째,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이 주관하는 정부ㆍ민간공동사업은 14개 과제에 16억5천만원 이었다.
대학의 유전공학 관련학과는 86년에 성균관대, 인하대, 부산수산대, 전북대 등 4개교에 신설되어 모두 10개교가 되었다.그런데 지난 해 산업계의 유전공학 연구개발을 위한 기반조성 노력은 지난 몇 해 동안의 가파른 성장세에 비하면 제자리 걸음을 하는데 그쳐, 우리 산업계는 한 때 뜨겁게 달아 올랐던 '유전공학 열병'에서 깨어나 냉정을 되찾으면서 장기적인 포석을 모색하는 과정에 들어 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좁혀지는 반도체 기술의 격차
한편 반도체 분야에서는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그리고 현대전자 등 국내3사가 지난 해 상반기에는 1메가D램의 개발을 거의 마무리 짓고 연말이나 87년초에는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지난 4월 처음으로 양산체제에 들어간 일본의 '도시바'를 비롯하여 현재 이런 반도체를 생산중인 일본의 '후지츠', '히다치', '미쓰비시'. 그리고 미국의 IBM,AT&T,TI, '모텍스'에 이어 우리나라도 1메가 D램의 생산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아직도 핵심기술인 기본설계를 미국의 현지법인과 공동으로 개발하거나 또는 미국 '비이텔리'사 등 선진국의 전문업체로부터 들여오는 형식으로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다음 단계인 4메가 D램의 경우는 기술도입이 어려워 우리의 힘으로 자체개발을 해야하기 때문에 국내 연구기관과 반도체 메이커들이 힘을 모으기로 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가 지난 8월 확정한 '초고집적 반도체기술 공동개발계획'에 따르면 이 연구소와 국내 반도체 3사 그리고 서울대학 부설 반도체연구소가 공동으로 참여하여 기초연구, 기본기술개발, 설계, 생산 등을 분담해서 추진하기로 했다.
일본이 오늘날 세계 반도체계의 정상으로 올라선 배경에는 76년에 일본정부가 지원한 '초LSI 계획'의 성과가 뒷받침이 되었다는 선례가 있어 이 사업의 성패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앞날을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한편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사와 일본의 '도시바' 및 NEC는 86년 2월 4메가 D램을 개발했다고 동시에 발표했다. TI는 88년부터 출하를 개시하여 89년에는 양산에 들어간다고 밝히는가 하면 '도시바'는 87년 하반기부터 샘플을 출하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네덜란드의 '필립스'사와 서독의 '지멘스'사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4메가 D램의 개발계획은 88년부터 양산 단계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아지는 기업의 기술개발 의욕
올해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술개발 투자는 85년보다 35% 늘어난 6천5백 여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연구인력도 85년보다 20%가 증원된 2만3천명선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매출액에 대비한 기술개발 투자율은 85년의 경우 1.39%라고 하지만 미국의 2.88%나 일본의2.31%서독의 3.2%등 선진 공업국에 비하면 아직도 매우 낮은 수준에 있다.
한편 올 한해동안 22개의 대기업 부설 연구소가 신설되어 모두 1백72개로 늘어났으나 중소기업의 경우 85년말 33개에서 76개로 늘어나 중소기업들의 기술개발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고 풀이되고 있다. 이것은 또 정부의 연구소 설립에 대한 자격 완화 조치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새로 설립된 43개의 중소기업 부설연구소들의 대부분은 고도기술을 필요로 하는 업종들이었다.
물질특허 도입이 몰고 온 회오리바람
86년의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밀어닥친 가장 큰 회오리바람은 87년 7월부터 물질특허 제도를 실시한다는 발표였다. 국산의 신물질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우리의 형편에서 연간 수백건의 외국의 신물질 특허신청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 올 때 정밀분야를 통틀어 연간 6백억원의 특허 사용료를 추가로 더 부담해야 한다고 추정되고 있어 국내산업의 대외종속, 제품가격의 인상, 중소기업에 대한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관련업계자들은 걱정하고 있다. 더우기 이 물질특허의 대상에는 화학물질 뿐 아니라 생화학물질과 천연물질의 발견까지 포함되어 있어 아직도 걸음마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유전공학 분야는 시련의 계절을 맞게될 것같다.
한편 86년 상반기까지 국내에 출원한 외국인의 유전공학 분야의 특허는 모두 1백85건에 이르고 있으며 85년이래 격증하는 추세에 있다. 우리나라 특허청은 지난 9월 미국 '제넨테크'사와 캘리포니아 대학이 국내에 출원한 6건의 유전공학 기초 기술에 대해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축의 이의 신청을 받아 들여 거절 사정함으로써 물질특허도입을 앞두고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유전공학연구조합측은 '제넨테크'사가 출원한 4건의 특허는 출원 전에'사이언스'지에 이미 공지되었기 때문에 신규성이 없어 특허가 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었다.
86년에는 또 우리나라 이공계 영재교육의 요람으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과학기술 대학이 개강했으며'한국의 MIT'를 지향하는 포항 공대가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면서 교수요원으로 채용하기 위해 대대적인 해외 과학기술자 유치사업을 전개하여 과학계의 눈길을 끌었다. 이 두 대학은 앞으로 우리나라 이공계 교육 방향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