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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건강한 전통? 생존의 문화? 흙 먹는 ‘토식증’ 논란

아이티의 한 여성이 점토에 마가린과 소금을 첨가한 반죽을 햇빛 아래에 건조시키고 있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임산부들이 약용으로 많이 먹는다.
흙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 특이한 믿음 때문은 아니다. 엄마가 먹고 할머니가 먹으니, 자연스럽게 먹는다. 기원을 설명하는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무엇도 확실치는 않다. 딱 하나 분명한 건, 더 이상 무분별하게 흙을 먹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흙을 먹는 행동을 의학 용어로 ‘토식증’이라고 한다. 심각한 정신 이상 같은 인상을 풍기지만, 의외로 흔한 풍습이다. 특히 아프리카 여성들은 지역에 따라 30~80%가 하루 평균 100~400g의 흙을 먹는다. 미국 남부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여성의 절반가량이 임신기간 동안 진흙을 먹었다고 답했다(과거 노예 매매로 아프리카인들을 미국 남부로 데려오면서 토식증이 전해졌다). 아프리카에서는 이 비율이 90%에 육박했다.
 
“제가 집어 온 흙은 개미집에서 난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 개미집이 우리 집 근처에 있어서 흙을 얻기가 더 쉽거든요. 기분이 좋을 때마다 그냥 가서 먹어요.”
 
-임신 중기의 우간다 여성(논문 ‘우간다 북부의 토식증’ 中)
 

행여 호기심이 생긴다고 집 밖 놀이터의 아무 흙을 집어 먹을 생각일랑 하지 않는 게 좋다. 흙을 즐기는 사람들은 뚜렷한 취향을 갖고 있다. 아주 신중히 선택한다. 미국의 작가 베스 앤 페넬리가 잡지 ‘옥스포드 아메리칸’ 2010년 봄호에 발표한 토식증에 관한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19세기 남미의 오토맥 부족은 입자가 고운 붉은 점토를 선호했고, 그걸 얻기 위해 아주 먼 거리를 걸을 정도였다. 역사가 힐다 헐츠가 1947년에 발표한 ‘남부 도시 공동체에서 흑인들의 점토와 전분 섭취에 관한 메모’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 사람들은 부드러운 흰 점토를 선호한다.”


초콜릿이나 담배처럼 심리적 만족감을 준다?
지난해 오스트리아 빈의대와 우간다 굴루대 공동연구팀은 우간다 북부 사람들의 토식증을 연구해 ‘우간다 북부의 토식증 : 소비자와 임상의의 관점’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햇볕에 말린 벽돌, 불에 구운 벽돌, 우물 속 토양, 강둑과 습지에서 채취한 점토, 그리고 시장에서 판매하는 ‘로보 아굴루’라는 검은 점토 등 매우 다양한 흙을 섭취하고 있었다. 로보 아굴루는 건물과 그릇에 주로 쓰는, 강둑과 습지에서 나온 점토가 주성분이다. 큰 알갱이가 없고 질감이 부드러우며 시고 쓴 맛이 난다. 도시 외곽에서 찾을 수 있는 붉은개미와 흰개미의 집도 많이 먹는 것으로 확인됐다. 건조하고 부드러우며 신맛이 나지 않는다.

연구팀은 이들이 흙을 먹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임산부 17명, 임신하지 않은 여성 8명, 남성 10명, 지역의 보건전문가 15명 등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결과 흔히 알려진 것처럼 임산부는 임신 기간 동안 다양한 흙을 많이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간다 북부 지역의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식용 흙 ‘로보 아굴루’. 한 조각당 100~500 우간다실링(한화 31~157원)에 살 수 있다.

그런데 토식증이 꼭 임산부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었다. 임신하지 않은 여성과 남성들도 흙을 먹고 있었다. 임산부와 다른 점은, 좋아하는 한 가지 유형의 흙만 먹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남성들은 식용 흙이 떨어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의존성 증후군과 비슷했다.

“익숙해지면 흙 섭취를 멈출 수 없어요. 중독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흙을 끊었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물론 곁에 흙이 없다면 못 먹겠죠. 하지만 일단 흙이 있으면 자동으로 먹게 될 겁니다.”
 
_우간다 남성(논문 ‘우간다 북부의 토식증’ 中)
 
특히 어린 시절에 먹기 시작하면 토식증이 평생 지속될 가능성이 높았다. 연구팀은 “이는 초콜릿에 대한 욕구와 비슷하며 흙을 먹음으로써 오는 보상 심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도대체 흙의 어떤 면모가 그들을 매혹하는 걸까. 연구팀은 심층 인터뷰 결과, 냄새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모든 건 냄새 때문입니다. 흙 냄새가 정말 좋아요. 냄새를 너무 맡고 싶어서 흙을 구하러 가요.”
-
우간다의 임신하지 않은 여성(논문 ‘우간다 북부의 토식증’ 中)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례가 미국에도 있다. 페넬리는 같은 글에서, 고급 와인 시음회를 본떠 샌프란시스코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흙 시식회를 묘사했다. 참가자들은 와인잔에 다양한 흙과 몇 티스푼의 물을 섞어 담은 뒤, 코를 깊숙이 넣어 냄새를 맡고 시음을 했다. 점토 자체를 먹지는 않았다.



흙 속 납 노출의 안전한 수준이란 없다
그러나 무분별한 흙 섭취는 위험할 수 있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에서 신생아의 혈중 납 농도를 분석했다(doi:10.1016/j.envres.2017.03.028). 임신기간 동안 흙을 섭취한 콩고민주공화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출산 뒤 탯줄에서 얻은 혈액 샘플(제대혈)을 분석한 결과, 혈중 평균 납 농도가 1L당 60μg(마이크로그램, 100만 분의 1g)으로 나타났다. 이는 오스트리아 신생아의 혈중 평균 납 농도(13μg/L)보다 다섯 배 높은 수치였다. 조사한 혈액 가운데에는 농도가 155μg/L인 경우도 있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012년, 혈중 납 농도가 50μg/L보다 높은 어린이를 관리가 필요한 어
린이로 정했다. 그러나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는 혈중 납 농도가 이보다 낮아도 어린이의 지적 능력에 해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즉, 납 노출의 안전한 수준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혈중 납 농도가 이처럼 높은 건 토식증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토식증에 대한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다. 향후 정책을 통해 흙 섭취를 반드시 줄이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 더 읽을거리
Susan Allport, The Journal of Critical Food Studies, Vol.2 No.2, Spring 2002
Lena HuebI et al., ‘Geophagy in Northern Uganda: Perspectives from Consumers and Clinicians’(doi:10.4269/ajtmh.15-0579)
Claudia Gundacker et al., ‘Geophagy during pregnancy: Is there a health risk for infants?’(doi:10.1016/j.envres.2017.0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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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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