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처리분야에 여성기술사가 탄생했다. 한양여전 전산학과 전임강사인 안보희씨(35세)는 오랜 실무경력을 바탕으로 기술계 최고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얼마전 전산학분야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여자박사(한국과학기술원·김태남)가 탄생한 바있다. 여성기술사, 여자박사의 등장으로 짧은 역사를 가지는 우리나라 컴퓨터계에 여성파워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한 셈이다.
박사가 일정기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특정분야에 대한 연구 업적을 위주로 수여되는 학위라면 기술사는 기사 1급 자격 취득 후 7년 이상의 실무경력을 갖춰야만 응시자격을 부여받는다. 박사와는 달리 그 분야 전반에 걸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해야 하는 것. 그만큼 여성에게는 힘든 자격이다. 참고로 86년까지 배출한 기술사 4천5백32명 가운데 여자는 10명뿐. 안보희씨가 10번째 여성기술사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육과정에 정식으로 전산학이 도입된 것은 1970년 숭전대학 전자계산학과가 최초이다. 컴퓨터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는 전자계산기 정도 취급받던 시절이다. 안보희씨는 바로 여기 2회 졸업생. 우리나라에서 활약하고 있는 40여명의 정보처리기술사와는 다르게 '정규군'인 셈이다.
-그당시는 컴퓨터마인드가 전혀 형성돼있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할 생각을 했읍니까?
"컴퓨터마인드가 다 무엇입니까,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컴퓨터라는 말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읍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99%이상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저 고등학교 선생님의 '너는 수학을 잘하니까 적성에 맞을 것이다' 라는 말에 선택을 하게 되었지요. 입학 당시 미팅할 때 파트너가 전산학과 다닌다니까 '아 키펀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읍니다. 저는 그때만해도 파트너가 무척 고마왔읍니다. 그정도만 인식해주는 것도 상당했으니까요. 지금의 정보산업 발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지요."
-뜬구름잡다가 천도복숭아를 구한 셈이군요.
"맞습니다. 어영부영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에 접어들면서 전산학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감이 잡히더군요. 정말 이것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미래사회를 주도해 가는 하나의 '흐름' 이라는 생각이 확고히 들었읍니다. 그저 쑥쑥 빠져드는 느낌이 들더군요."
-배운 지식을 처음 현실에 적용해 본 것은 언제였읍니까?
"제가 공부한 것이 아무래도 첨단분야이니까 쉽게 취직이 되리라 생각했읍니다. 국내에서 전산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읍니다. 전공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자라는 것이 우선했으니까요. 40여장의 입사원서를 쓴 끝에 건설부 한간홍수통제소의 프로그래머로 첫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했읍니다.
제가 한 일은 일본에서 들여온 홍수통제 프로그램을 분석해서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하는 일이었지요. 매뉴얼(사용방법) 하나없이 몇억원씩에 팔아먹은 일본측도 나쁘지만 그것 하나 제대로 분석못하는 우리도 한심했읍니다. 제가 배운 컴퓨터언어는 포트란, 코볼 정도였는데 그 프로그램은 알골로 돼있어 일본에서 알골입문을 사와 언어부터 다시 시작했읍니다"
-오랫동안 실무에 종사하면서 많은 일들을 했었을텐데…
"제가 한 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78년도 KIST(현 과학기술원)시절 114번호 안내 전산화입니다. 제가 그곳에 취직이 된 것도 바로 이 작업을 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그당시만 해도 저 정도 실무경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으니까요. 그때의 하드웨어가 HP-1000으로 16대의 터미날을 연결해 쓸수있는 아주 기억용량이 작은 컴퓨터였읍니다. 요즘의 웬만한 PC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것이지요. 거기에 80만 데이타를 집어넣어야 하니까 그 어려움은 상상이 갈것입니다"
-현재 교육자인 셈인데 전산분야를 가르치면서 느끼는 점은 없읍니까. 자신이 배우던 시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를텐데요.
"저는 지금도 전문대학 학생들에게 전산실무교육을 하지만 숭전대학교 전자계산원에서도 고등학교졸업자를 대상으로 오랫동안 실무교육을 한 바 있읍니다. 이 가운데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하나의 잘못이 많은 잘못을 재생산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특히 학문의 연륜이 짧은 전산분야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제가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가르쳤다고 할 때 그들은 더욱 많은 업무에 그 오류를 확대 재생산할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더욱 공부해야 되겠지요."
-지금 특별히 하고 있는 일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면 밝혀주시지요.
"저는 이제까지의 시간을 모두 준비기간으로 보고싶습니다. 기술사가 된 것도 일종의 준비라고 할 수 있지요.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분야는 '소프트웨어엔지니어링' 입니다. 소프트웨어가 개발됐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은 자꾸 변하는 것이고 그에따라 실질적인 적용은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고속도로를 만들어 놓고 많은 유지보수비가 들듯이 질이 좋지 않은 소프트웨어는 생명이 길지 않는 법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란 질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품질관리방법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오랜 기간 실무에 종사하면서 축적된 경험을 충분히 살릴 수 있겠지요."
준비는 많으면 많을수록 높이 도약할 수 있다는 안보희씨는 이제 막 날개를 피려고 모든 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