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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얼어붙고 어떻게 흘러내리는가

 

알래스카의 얼음 동굴


빙하는 흐른다
 

"빙하다!" 선두에서 걷고 있던 포터가 앞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고도계를 보니 4천m를 약간 웃돌고 있다. 멈춰서서 눈여겨 바라보았으나 깎아지른것 같이 계곡을 막고 있는 자그마한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뭐야, 잘못들은건가?' 하고 기분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 걸어올라가니 아까 보이던 언덕에 이르렀다. 거기서부터 상류쪽의 계곡은 사람 키의 2~3배나 되는 거대한 바위가 군데군데 있고 모래와 자갈로 꽉 메워져 있다. 그런데 모래나 자갈 사이에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 여러곳에 있었다. 울퉁불퉁한 모래자갈위의 큰 바위사이를 누벼가듯 가까이 가보니 반짝이고 있는 것은 얼음이었다. 검은듯 반짝이는 얼음덩이가 돌멩이틈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10여년전 동부네팔의 칸첸준가 산계에 있는 야룬빙하를 처음 보았을 때의 광경이다.
 

빙하는 물론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얼음만으로 이루어져 있는것 만이 아니고 얼음과 바위조각과의 복합체일 때가 많다. 그리고 보통 얼음의 근원인 눈에다가 얼음·바위조각·눈이라는 세가지가 혼합된 집합체가 빙하인 것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가 단순히 모여 있는 것만으로는 아직 빙하라 할 수 없다. 그것이 보통 하천처럼 낮은곳을 찾아 흘러내려야 비로소 빙하라 부를 수 있다.
 

그렇지만 얼음같은 딱딱한 물질이 어떻게 해서 '흐를수' 가 있을까. 그 열쇠는 '시간' 에 있다. 만약 시간이 지금보다 1백배쯤 빠르게 경과한다면 갖 찧어만든 떡처럼 연하게 보일 것이다. 시간이 충분히 걸리면 빙하는 자체의 무게에 의해 자체를 변형시키면서 흘러내리게 된다.
 

그리고 강한 힘이 쌓였는데도 변형될수 있는 시간여유가 없는 경우는 얼음이 굳은 물질상태로 파괴된다. 이것이 빙하위에서 볼 수있는 크레바스(프랑스어·crevasse·눈덩이나 빙하의 유동으로 생긴 균열)나 크래크(crack·암벽균열)로 나타난다.
 

빙하의 유동은 하상을 이루는 암반 위를 '미끄러진다'는 현상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따라서 빙하의 흐름은 자체가 변형되고 암반 위를 미끄러지고 파괴되는 세가지 요소가 얽혀서 생긴다.

 

빙하는 생겨서는 변해간다
 

빙하는 살아있다.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양분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이며 직접내려와 쌓이는것도 있고 주위의 경사면에서 눈사태가 되어 빙하위에 낙하되는 것도 있다. 눈사태일 경우는 눈덩이와 함께 돌멩이나 바위파편이 함께 낙하하여 빙하 속에 섞여 묻히는 수가 많다.

이렇게 눈이 빙하에 축적되어 가는 지대를 빙하의 '함양역'(涵養域)이라 한다.
 

빙하위에 쌓인 눈은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 얼음이 된다. 극지지역에서는 눈이 녹지 않기 때문에 계속하여 내려 쌓인 눈의 압력으로 다져져 얼음이 된다. 약간 따뜻한 지방에서는 표면의 녹은 눈이 물이 되어 아래쪽 눈 속에 스며들어 거기서 또 얼어 얼음이 된다. 좀 더 따뜻한 지방에서는 아래쪽 눈 속으로 스며든 물이 눈의 틈서리를 메우고 있다가 위쪽에 새로 쌓인 눈의 냉기와 무게로 압축되어 얼음이 된다.
 

이렇게 해서 생긴 빙하는 스스로의 무게 때문에 아래 쪽으로 흐른다. 흐르는 도중에 암닥의 암반에서 바위부스러기를 집어삼키기도 하고 또 주위의 경사면에서 바위부스러기가 굴러들어 섞이기도 한다. 빙하는 이렇게 흘러내리는 과정에서 새로운 요소를 자꾸 더하여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도가 낮아질수록 기온이 높아지기 때문에 빙하빙은 하류로 갈수록 차츰 녹아 물이 되어 흐르게 된다. 이렇게 흘러 어느 장소까지 이르면 얼음이 거의 녹아버린다. 이곳이 빙하의 말단이다.
 

빙하빙이 녹기 시작한 곳에서 말단까지를 빙하의 '소모역'(消耗域)이라 한다.
 

빙하빙은 녹아서 흘러가버린다. 그러나 바위부스러기등은 소모역 주위와 말단 부근에 남아 대량으로 쌓이게 된다. 이것이 빙하퇴석(堆石·moraine)이다. 그리고 빙하가 거대한 힘으로 흐르면서 밀어붙인 언덕도 모레인이라 부른다.
 

극지역의 빙하에서는 함양량도 소모량도 적다. 그래도 신진대사는 천천히 일어나고 있다. 광대한 남극대륙의 빙상이 그 전형적인 케이스다. 한편 남미 파타고니아 지방의 빙하는 '야윈 대식가'로 대량의 강설과 빠른 유동, 급속한 융해를 나타내 보인다. 이처럼 빙하의 크고 작음과 신진대사의 속도는 별로 관계가 없다.
 

또 빙하지대에서는 눈이 쌓이는것은 겨울이고 녹는것은 여름이라고 반드시 한정할 수 없다. 히말라야의 빙하에서는 함양과 소모가 여름에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물론 겨울에 쌓이고 여름에 방출하는 빙하가 많이 있으나 신진대사의 패턴에 따라 빙하의 개성이 여러가지로 드러난다.

 

빙하의 여러가지 생김새
 

빙하의 얼음 '암석'


지구상에는 각양각색의 크기와모양을 한 빙하가 있다. 가장 단순한 것은 둥근찰떡모양이다. 세계 최대의 남극 빙상이나 두번째로 큰 그린란드 빙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닮은 모양이라도 보다 작은것은 빙상이 아니고 '빙모'(氷帽)라하며 캐나다의 북극해제도나 북부유럽의 여러 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함양역에는 '퇴적분'(堆積盆)이라 하는 둥글고 평평한 곳이 많이 있다. 그 쟁반의 가상사리가 여러곳이 파괴되어 문어다리 모양으로 빙하가 흘러내리고 있는타이프도 있다. 이와 달리 파괴된 곳이 한곳 뿐이고 그 계곡을 따라 꾸불꾸불하게 흘러 내리고 있는 것이 '곡빙하'(谷氷河)로 알래스카에 많다. 같은 곡빙하라도 히말라야 등지에서는 퇴적분이 명료하지 않은 타이프를 가끔 볼 수 있다. 작은것은 퇴적분에서 혀를 비죽 내민 것 같은 모양의 '권곡빙하'(圈谷氷河)도 있고 급하고 험준한 암반에 얼음덩이가 얹힌 것 같은 '현수빙하'(懸垂氷河)라 불리는 타이프도 있다.
 

이런것은 단독빙하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으나 다른 빙하와 합류하여 하나의 빙하로 흘러내리거나 거꾸로 두개 세개로 갈라져 흐르는 경우도 있어 실로 여러가지 형태의 빙하가 있다.
 

빙하는 또 그것을 구성하는 얼음과 바위부스러기의 비율이나 분포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남극빙상은 전역이 거의가 함양역이며 그 표면은 눈으로 덮여있다. 눈 코가 없는 밋밋한 얼굴처럼 변화가 없다. 이와는 달리 적도바로 아래에 있는 빙하는 표면의 눈이 녹아버리고 일부분만이 빙하빙이 되어 있을 뿐 거의가 흘러내려 버린다. 이런 빙하에는 눈이나 바위부스러기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얼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네팔의 야룬빙하처럼 빙하의 하류지역 표면이 거의가 바위 부스러기로 덮여 있는 곳도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눈 얼음 바위부스러기 등이 단독으로 한쪽에 쏠려 표면에 분포하는 예이나 통상의 빙하에서는 이런것이 뒤섞여 분포하여 빙하마다 각각 다른 모양을 이루고 있다.
 

빙하의 흐름에 따라 생기는 세로줄무늬는 빙하 양쪽에 생긴 퇴석이 빙하와 합류하면서 빙하의 안쪽에 가지런히 세워져 생긴 것이다. 또 흐르는 빙하 흐름표면에 바위부스러기가 드러나 줄지어 늘어선 것은 흐르는 도중에 밑바닥 암반위에서 구르고 있던 것이 흐름에 따라 솟구쳐 올라 표면에 얹혀 퇴적된 것이다.
 

흐르는 도중에 얼음폭포(氷瀑)가 생기기도 한다. 빙폭 아래쪽에는 유동속도의 계절변화를 반영하는 빙탑(氷塔)의 열이나 바위 부스러기 분포가 고르지 않은 열이 생겨 아름다운 모양의 무늬를 만들어 내는 곳도 많다. 그리고 유동상태가 따라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은 크레바스나 종횡무진의 크래크대(帶)도 형성된다.
 

이렇게하여 빙하표면은 다양하고 아름다운 모양의 무늬를 보이며 자연의 조형미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198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나카오 마사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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