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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재난구조로봇 뽑는다

변신로봇 휴보 vs 힘센 토르 누가 승리할까?

방사능물질이 가득 쌓인 원자로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가 고장난 냉각관을 수리하고 나오는 로봇. 거센 불길의 화재 현장을 뚫고 들어가 사람을 업고 나오는 로봇…. 아직까지 이런 로봇은 세상에 없다. 2년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도 고장난 원자로를 수리할 수 없어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이제 만화영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재난구조로봇이 현실로 등장할 전망이다.



첨단 무기가 나올 때 자주 등장하는 미국 국방성 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지난해 세계 로봇공학자들에게 ‘출전’을 요구했다. 연구비를 지원할테니 우리가 주최하는 로봇 경진대회에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DARPA는 인터넷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관으로, 무인자동차 대회 등 각종 기발한 경진대회를 자주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DARPA가 내놓은 로봇 경진대회 계획표를 처음 확인했을 땐 ‘황당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10년 이상 로봇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가 보기엔 실현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DARPA의 로봇대회는 제2의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대비한 것이었다. 당시 원전 내부의 밸브 하나를 잠그기 위해 로봇을 투입하려 했지만 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방호복을 입은 현장 근로자들이 목숨을 걸고 들어가 밸브를 잠갔다. 이러니 DARPA가 재난구조로봇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대회 요구조건이다. ‘무조건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로봇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다. DARPA는 이런 황당한 로봇 경진대회에 DRC(Darpa Robotics Challenge)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 대신 원자로를 구해내는 로봇에게 200만 달러(약 22억 원)의 상금을 준다. 물론 상금보다는 ‘세계 최고의 로봇’이라는 명예가 우선이겠지만.

먼저 왼쪽의 7개 미션을 살펴보자. 밸브를 잠그고, 장애물을 치우는 정도라면 어느 정도 여지가 있다. 요리를 하거나, 음식접시를 배달하는 로봇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치로 벽을 부수는 로봇은 보지 못했다.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기술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로봇도 손에 꼽는다. 일본 혼다자동차가 개발한 아시모, 우리나라 로봇 휴보, 미국 국방성이 직접 개발한 군사용 인간형 로봇 펫맨(PETMAN) 정도가 겨우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다.

이 대회에 참가한 오준호 KAIST 기계공학과 특훈교수(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장)는 “사람이 평소에 작업하는 발전소, 공장 등으로 들어가 작업을 해야 하니 인간형 로봇이 아니면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다”며 “재난구조로봇은 평소엔 비싼 가격과 불안정함 때문에 쓸 수 없는 기술을 최대한 동원할 수 있어 로봇공학에서도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로봇 7대가 한자리에

DRC는 크게 A, B, C, D 네 그룹으로 나눠 진행된다. 지난해 예선을 거쳐 A, B 두 그룹을 선발했다. A그룹에선 로봇 본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개발하는 팀들이 경합을 벌이며, B·C그룹은 로봇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만 가상현실에서 연구한다. A그룹이야말로 사실상 가장 주목받는 팀들이 모인 것으로, 예선을 거쳐 모두 7개 팀이 출전 자격을 받았다. 세계 로봇공학계의 ‘종결자’들인 셈이다.

7개 팀은 DARPA에서 180만 달러(약 21억 원)의 연구비를 받고 그동안 재난구조로봇을 개발해 왔다. 6월 중순 DARPA에서 중간점검을 받았는데, 7월 11일 발표해 2팀을 떨어뜨린다. 살아남은 5개 팀은 120만 달러(13억 원)의 연구비를 추가로 받고, 올해말 최종 경합에 진출한다.

➊ 7개 팀 중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는 역시 미국항공우주국(NASA)연구팀이다. NASA에선 두 개의 연구팀이 출전했는데, NASA 존슨우주센터(JSC)는 우주정거장에서 사람 대신 활동하던 로봇 로보너트(Robonaut)의 변형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로보너트는 본래 하체가 없는 상반신 로봇이다.

➋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는 새로운 신형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인간처럼 생겼지만, 사지를 모두 팔과 다리로 바꾸어 가며 쓸 수 있는 변형 인간형 로봇이다. JPL팀은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를 만든 곳이다.

➌ 우리나라에서 주목해야 할 팀은 미국 드렉셀대 연구팀이다. 이 연구팀은 우리나라의 휴보2를 개조한 ‘DRC휴보’를 내세워 우승을 노린
다. 만일 이 팀이 우승하면 우리나라 로봇공학이 세계 정상급 수준에 도달했다는 걸 인정받게 된다. KAIST 오준호 교수팀이 로봇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각종 제어 프로그램을 드렉셀대 팀이 개발하고 있다.

➍ 버지니아공대 연합팀도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계 로봇 과학자인 데니스 홍 교수가 주도하며 토르(영화로도 잘 알려진 북유럽 신. 한국 이름은 ‘똘망’)라는 이름의 재난구조로봇을 들고 나온다. 이 팀은 과거 인간형 로봇 축구대회 등 여러 번의 경진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장점이다.

➎ 인간형 로봇의 강자인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도 참가했다. 참가 기관은 미국 내 기업인 ‘샤프트 엔터프라이즈’지만, AIST가 개발한 HRP-2 시리즈를 기본으로 활용할 생각이라 사실상 일본 팀이다. HRP-2는 본래 산업현장에서 인간과 함께 일을 할 목적으로 개발한 로봇으로, 강한 힘을 갖고 있어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다.

이밖에 ➏ 미국 카네기멜론대 국립로보틱스기술센터, ➐ 미국의 군수산업체 레이시온도 모두 독자적인 로봇을 개발해 우승을 노리고 있다. 카네기멜론대는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레이시온은 사람이 입으면 힘이 세지는 외골격 로봇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이다.

연말 진행되는 2013 DARPA 로보틱스 챌린지에는 A그룹의 5개 생존팀, 그리고 소프트웨어 연구를 진행해 DARPA가 제공하는 로봇을 제공받아 미션을 수행하는 B·C그룹에서 나온 6개팀이 경합을 벌인다. DARPA는 현재 미국 텍사스에 공사장 내부 모습을 재현한 대회장을 건설하고 있다. 올해 말 대회에선 7개 과제를 한 가지씩, 차례로 심사 한다. 여기서 3개 팀을 떨어뜨린 뒤 다시 1년의 시간을 주고 2014년 말에 최종 본선을 진행한다. 이때는 7단계를 한꺼번에 돌파해야 한다. 최종본선에는 일부 연구팀이 추가로 ‘D그룹’ 권한을 받아 참가할 수 있는데, 세계 최고의 인간형 로봇으로 불리는 일본의 아시모가 과연 출전할지 기대되고 있다.
 

 


 

 

 

한국 로봇 우승할 수 있을까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 역시 휴보와 토르다. 오준호 KAIST 교수팀은 6월 1차 본선에서 달리기가 가능한 인간형 로봇 휴보2를 업그레이드 한 DRC 휴보를 선보였다. 오 교수는 DRC 휴보에 대해 “기존 모델과 비교하면 승용차와 탱크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덩치도 크고 더 강해졌으며 무엇보다 상황에 따라 때로는 두 다리로 때로는 네 다리로 걸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변신로봇이다. 이런 기능은 화재, 원전 사고 등 다양한 재난에서 효과적으로 발휘될 것이다.

휴보팀은 드렉셀대와 조지아공대, 퍼듀대 등 10개 대학이 힘을 합친 연합팀이다. 이들 팀을 이끄는 폴 오 드렉셀대 교수도 한국계 재미교포 과학자다. 이들은 휴보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인간형 로봇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데니스 홍 교수가 이끄는 버지니아공대도 한국인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팀은 버지니아공대와 펜실베이니아대, 해리스(미국 군수회사), 로보티즈가 참가하고 있는데, 대니얼 리, 마크 임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두 사람도 한국인이다. 로봇 제작도 한국기업 로보티즈에 맡기고 있다. 현재 경협에 나갈 로봇 토르도 거의 완성단계다.

토르는 본래 미국 해군 연구과제로 개발하던 ‘사파이어(SAFFiR)’라는 인간형 로봇을 DRC용으로 재차 개발하고 있다. 전기모터로 움직이는 휴보와 달리 주사기처럼 피스톤이 앞뒤로 움직이는 전동식 인공근육(리니어 액추에이터)을 동력원으로 쓰고 있다.

1차 중간점검을 마치고 한국을 방문한 데니스 홍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로봇은 모두 로봇의 팔이나 다리의 각도를 컴퓨터에 입력해 모터로 조정하는 방식이라 안정성이 떨어졌다”며 “균형을 맞춰가며 인공근육의 힘을 조정하는 ‘포스 컨트롤(Force Control)’ 방식을 적용해 안정성 높고 힘센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재난구조로봇 대회에서 한국 과학자들의 우승을 기대해 본다.
 

201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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