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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에서 창출 단계로

산업기술 정책의 과제

이진주 교수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은 과거 20여년간 산업기술의 발전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과학수준이나 기초연구등이 큰 도약을 하지 못하는 반면 제조업을 중심으로한 산업기술은 비록 외국기술에 원천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의 자체역량에 의한 새로운 산업기술의 창출이 자주 보고되고 있다. 강철보다 강하면서도 물에 뜰 만큼 가벼운 새로운 고분자 섬유인 아라미드 펄프가 이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물질특허를 얻었는가 하면, 반도체소자의 필수부품인 리프드레임의 소재가 개발되어 기술선진국인 서독에 높은 대가와 기술사용료를 받으며 그 소재기술이 수출되기도 했다. 또한 10여년간의 오랜 노력 끝에 간염백신이 자체적으로 개발되어 개발회사인 녹십자는 매출액 순위가 10위 밖에서 4위권으로 놀랄만한 급신장을 이룩했다. 이밖에도 핵자기공명 단층촬영장치(NMR-CT)가 선진국의 유수한 의료전자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개발되어 국내보급이 되고 있으며 아스파탐, VLSI 등이 민간기업의 노력으로 속속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나라 산업기술이 이제 극히 부분적으로나마 선진국과 같은 창출기(創出期)의 수준까지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징조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모방학습형의 산업기술발전정책을 처음 외국기술의 도입기를 거쳐 이들 도입된 외국기술의 내재화기 즉 국산화단계를 거쳐 선진국과 같은 자체능력에 의한 창출단계를 맞게 된다.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기존의 외국기술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 자체적 과학기술 능력을 키워 나가는 전략 및 정책이 비교적 성과가 좋은 것으로 보여진다. 중공 인도와 같이 자주개발형의 전략·정책을 펴온 나라들이 원자폭탄과 같은 일부 군사기술에서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산업기술 낙후성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해 최근 우리나라와 같은 정책으로 방행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라틴 아메리카와 같이 합작투자를 주로 선택하는 기술 차용형의 기술개발을 추진해온 나라는 경제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중심 선진국에 예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예를 보면 같은 기술 차용형의 기술개발 전략 정책이라도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도시국가의 경우에는 내수 기반이 없어 다국적기업이 경제적 예속보다는 주로 생산거점으로만 합작투자를 하기 때문에 종속관계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도 태국, 말레이지아와 같이 선진국의 기술개발정책인 자유방임형의 나라들도 있으나 이들 나라도 최근에는 우리나라 방식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도입기를 거쳐 내재화기 후반에 와있는 우리로서는 이미 선진국 계열에 올라가 있는 국가들이 어떻게 창출단계로 도약하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게르센크론'이라는 역사학자는 19세기로부터 2차대전 까지의 유럽 여러나라에 대한 연구결과 상대적 후진성과 공업화 속도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혀내었다. 즉 후진국은 이른반 후발성(後發性)의 이익을 누릴수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선발국(先發國)으로부터의 기술파급력이 있고 후발국의 내부적 흡수력이 있으면 공업화 '속도'에 있어서는 선발국을 크게 능가할 수 있으며 잘만 하면 선발국 '수준'을 앞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와같은 기술적 역사적 발전법칙에서 볼 때 최근의 새로운 산업기술 창출은 우리에게 큰 가능성과 희망을 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실여건은 위의 역사적 법칙에서 볼때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과학기술은 창출을 주도할 고급두뇌와 인력의 부족이 매우 심각하다. 위에서 예시한 우리나라 산업기술의 창출사례들은 공통적으로 세계 선두수준의 연구자와 같은 역량을 가진 해외유치두뇌나 교수에 이룩되었고 이를 민간기업이 단순히 받아들여 기업화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아직까지는 민간기업에서 세계최초의 산업기술을 창출해 낼 고급두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의지부족이 아니라 고급 연구인력 부족이라는 외부 환경 요인에 더 큰 이유가 있다.

둘째, 새로운 과학기술의 창출은 장기간에 걸친 기초연구나 응용연구를 거쳐 이룩되는 것인데 근시안적이며 속전속결의 결과를 중시하는 정부정책으로는 그만한 시간적 여유와 자금지원을 잘 해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나마의 연구수행 기관수도 매우 부족하다. 이를 위해 이공계 대학원의 교육 및 기초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는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세째 민간기업은 과거와 같이 외국기술에 의존하여 산업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을 더 심화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기술창출에 대한 새로운 연구개발 체제를 상호 보완적으로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와 그밖의 다른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면서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이웃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 1백여년이 지난 최근에야 들어서기 시작한 기술 선진국의 대열에 우리도 21세기 중반까지는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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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진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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