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91년 전인 1832년, 마이클 패러데이가 출판한 교과서인 ‘전기의 실험적 연구’를 보면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와 산소를 만드는 실험이 상세히 기록돼있습니다.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 봐도, 그 정교한 묘사와 해석 수준은 놀랍죠.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진 과학 기술이 바로 지금 인류의 이산화탄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입니다. 아주 간단한 화학반응이지만, 이에 관해 우린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물을 전기분해해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수소 생산 기술은 2006~2020년 전 세계 논문을 수집한 네덜란드 라이덴대 데이터에서도 높은 연평균 성장률(CAGR)을 나타냅니다.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선 금세기 중반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탄소중립이란 대기로 배출되는 탄소의 총량을 0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과정은 석탄,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이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이전의 280ppm에서 2023년 현재 420ppm으로 1.5배 증가했고, 지구의 평균 온도는 1.2。 상승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수소 생산의 핵심, 물
탄소중립은 자연의 탄소 흡수량과 새롭게 도입될 탄소 감축 기술의 탄소 흡수량 합이 인류의 탄소 배출량과 같아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야만 기후변화가 초래할 돌이킬 수 없는 대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지난 30년간의 연구를 통해 전 세계 과학자들이 내린 결론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은 205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0%를 줄이겠다고 세계에 약속했습니다. 현재 연간 약 7억 t(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이중 약 3억 t을 감축한다는 계획입니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수소 생산입니다.
수소는 단위 무게 1g당 에너지가 120.7kJ(킬로줄줄은 1N(뉴턴)의 힘이 작용해 그 방향으로 1m 움직일 때 한 일과 에너지의 단위)로 다른 연료보다 높고, 태웠을 때 이산화탄소 등 오염물질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주목받는 청정 연료입니다. 또한 한국의 산업 부문 탄소 배출량 중 39%, 전체 탄소 배출량의 14%를 배출하는 철강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미래 기술이, 바로 수소를 이용해 산화철을 철로 바꾸는 수소환원제철입니다.
이렇게 탄소중립에 필수적인 수소를 가장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방법은 물을 전기분해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2050년 약 3000만 t의 수소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그 중 물을 전기분해한 수전해 수소는 수입 수소를 제외한 공급량의 대부분인 260~550만 t을 차지합니다.
친환경적이고 저렴하게 수소를 생산하려면
물 속에 양극과 음극의 두 전극을 넣고 알카라인 건전지 두 개를 연결한 뒤 전압을 가하면 양쪽 전극에서 기체가 생성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양극에서는 산소가, 음극에서는 수소가 발생하죠. 이렇게 간단한 반응으로 수소를 만드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요? 중요한 해결점들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에너지가 조금만 가해져도 아주 빠르고 격렬히 반응해 다시 물이 생성됩니다. 실험실에서 물의 전기분해 실험 후 수소의 존재를 확인할 때, 음극에서 포집한 수소에 정전기를 띠는 물체가 살짝만 다가가도 수소가 펑 하며 반응하죠. 이것이 수소와 산소가 반응해 물이 생기는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생성된 수소와 산소를 잘 나누기 위해, 전극 간에 분리막을 사용합니다. 분리막은 원하는 이온만 통과시켜 반응기가 작동하기 위한 전류가 흐르게 돕습니다. 저항은 낮고 수소와 산소를 잘 나누는 분리막과 반응기 구조를 개발하는 것이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얻기 위한 첫 번째 중요 과제입니다.
둘째로 물에 어떤 이온이 들어있는지, 수소이온농도지수(pH)가 얼마인지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수돗물은 전해질 농도가 낮아 저항이 큰 탓에 바로 전기분해하려면 매우 높은 전압을 가해야합니다. 바닷물은 소금(NaCl) 때문에 양극에서 산소 대신 염소가스(Cl2)가 나옵니다.
또한 수돗물이나 바닷물처럼 물의 pH가 중성이면 H+ 이온과 OH- 이온이 상쇄돼 산소와 수소 생성 반응에 참여를 잘 할 수 없습니다. 그 탓에 물의 전기분해에 필요한 전해질 이온들이 부족해져 반응이 느려집니다. 따라서 이온의 종류와 농도, 물의 pH를 조절해서 물 분해의 효율을 높여야합니다.
셋째로 양극과 음극의 촉매가 중요합니다. 전기 화학 반응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면 각 전극 반응에 필요한 전압을 촉매로 줄여야 합니다. 대표적인 수소 발생 촉매인 백금(Pt)과 산소 발생 촉매인 이리듐(Ir)을 각각 양극과 음극에 사용할 때, 물 수분해 반응을 위해 각각의 전극에 가해야하는 전압의 합은 열역학적 최소 필요 전압보다 0.39V가 커서 에너지 손실도 존재합니다. 촉매 성능이 낮으면 이 에너지 손실은 훨씬 커지죠.
또 백금과 이리듐 같은 귀금속은 가격이 비싸 산업에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이리듐은 전 세계의 매장량이 400t에 불과해 백금보다도 5배나 비싼 1kg당 16만 2000달러에 거래됩니다. 여러 과학자와 회사가 노력해왔지만, 현재 보편적인 산소 발생 촉매의 이리듐 함량은 10~15%로 높습니다. 그러므로 귀금속에 의존하지 않거나 귀금속 함량이 아주 낮으면서도 물분해가 일어나는 전압의 크기를 최소화시키는 촉매를 개발하는 것이 물 전기분해 기술의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 문제점들을 해결해 달성하려는 궁극적 목표는 수소의 저렴한 생산입니다. 친환경적이어도 경제성이 낮으면 널리 활용될 수 없죠. 현재 물 전기분해의 수소 생산 비용은 1kg당 3~7달러입니다. 1kg당 1~2달러인 탄소가 배출되는 수소 생산 방식보다 경제성이 상당히 낮습니다. 이에 미국 에너지부는 청정수소 생산 비용을 10년 안에 1kg당 1달러로 낮추는 ‘111’ 목표의 ‘수소샷 프로젝트’를 2021년 출범시키기도 했습니다.
200년 전부터 준비된, 기후위기의 해결책
한편 이 문제점들을 해결할 방법의 단서를 자연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식물의 광합성 시스템 속 산소 생산은 자연계에 흔한 원소인 망간과 칼슘, 산소로 구성된 생체 촉매로 매우 효율적으로 이뤄집니다. 저희 연구실은 이 생체 촉매를 모방해, 산소 생성 반응에 필요한 총전압이 큰 중성 환경에서도 산소 발생 촉매 능력이 좋은 10nm(나노미터억 분의 1m) 이하 크기의 망간산화물 나노입자 촉매를 개발했습니다.
물 분해 외에도 자연은 탄소중립을 위한 신기술 개발의 좋은 교과서입니다. 자연은 전자전달 매개체를 통한 연속적인 전자전달 흐름을 활용해 적은 에너지로 생체연료를 합성합니다. 저희 연구실은 이 원리를 모방해 전자가 이산화탄소 안으로 주입된 뒤 전자전달 매개체를 거쳐 다시 빠져나와 연속적으로 용액에 유입되면서, 합성연료인 디메틸카보네이트를 생산하는 새로운 전기화학적 이산화탄소 전환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기존의 이산화탄소 전환 기술들보다 적은 전기 에너지로 고부가가치의 물질을 제조함으로써 활용 가능성을 높인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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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의 과학자들은 후손인 우리가 직면할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여러 기술들의 단초를 만들어뒀습니다. 이젠 우리가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어쩌면 당장 우리 자신을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이라는 긴박한 과제를 완수해야하는 상황입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이 큰 과제를 풀어나가고 싶습니다.
*필자소개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서울대에서 재료공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2010년부터 서울대에 재직 중이다. 물 분해와 이산화탄소 활용 등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nkitae@snu.ac.kr
김정은.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 서울대 재료공학부를 졸업했다.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아미노산, 고분자 등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myeun0513@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