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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남극관측탐험대가 지난해 12월 16일 개선했다. 남극대륙 최고봉을 정복하고 지질과 기상등도 관측하고 돌아왔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이번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항구적인 남극기지를 설치하고 남극조약에 가입하는 문제다.

 

기지없이 체계적탐사 불가능
 

남극관측사업은 남극에 영구기지를 설치해야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한국남극관측탐험대 윤석순단장은 귀국직후 "남극을 처음으로 탐사하고 영구 기지가 없는 상태로는 체계있는 관측탐사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러나 이번 활동을 통해 이미 남극에 진출한 여러나라에 좋은 이미지를 심었고 앞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여 남극탐사활동을 벌여갈 토대를 마련했다. 영구기지 설치와 남극조약가입을 건의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남극에는 현재 18개국에서 74개소의 기지를 설치해놓고 있다. 그중 59개 기지에서는 매일 기상을 관측하여 인공위성에 송신,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남극에 진출한 나라의 기지들은 극한에도 견딜 수 있는 생활환경을 갖추고 최신과학장비로 관측활동을 하고 있다.
 

칠레의 기지에는 인공위성 노아(NOAA)제6호및 제9호와 하루 두번씩 정보를 교신할 수 있는 기상위성 송수신장치, 텔레타이프, 팩시밀, 라디오존데(고층기상관측기), 지상기상 관측기 등 최신장비를 갖추고 10명의 과학자가 연구관측을 계속하고 있다.
 

이 기지에는 6가구(1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고 유치원에서 중학교까지의 학교도 있다. 본국과의 연락, 자재수송을 위해 헬리콥터 2대, 경비행기 트윈오터 1대, 대형 수송기C-130 허큘리스 1대 등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일본기지에는 로케트발대까지 갖춰 놓고 있으며 미국의 맥버드기지는 작은 도시를 방불케하는 규모로 건설해 놓고 있다.
또 폴란드 기지에서는 그린하우스에서 채소까지 재배하고 있다.
 

물자나 관측대원을 수송하기 위해 각국이 모두 대규모 쇄빙선을 동원하고 있다. 일본은 5천톤급, 8천5백톤급, 1만9천톤급의 디젤엔진 전기 추진식 쇄빙선을, 미국은 디젤 가스터빈 겸용 전기추진식 1만3천톤급과 9천톤급을, 소련은 원자력 터보 전기추진식 1만6천톤급과 디젤 전기추진식 1만3천톤급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눈위나 빙원을 안전하게 달릴수 있게 캐터필러가 달린 탱크와 같은 특수자동차와 항공촬영, 관측등에 사용되는 헬리콥터와 경비행기도 갖추고 있다.
 

남극관측사업을 추진하는 종합적인 기구도 각국에는 설치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정부 각 부처가 협력하여 관측사업을 통합추진하기 위해 내각의 의결에 따라 남극지역관측통합추진본부(본부장 문교부 장관)가 설치되어 있다.
 

사업비는 1회에 최하 3억엔(61년도) 에서 최고 1백15억엔(81년도)씩 투입되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영구기지를 설치하여 관측사업을 하려면 이런 모든 체계를 갖추어야 가능하다. 또 남극조약에 가입해야 각국의 협력을 받으며 관측사업을 원활히 추진해 갈 수 있다.

 

남극조약이란
 

남극대륙의 국제법상의 지위를 정하고 남극이용의 원칙을 확립한 조약이다. 1959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남극회의에서 작성되어 12월1일에 서명, 61년6월23일에 발효되었다. 전문과 본문14조 및 최종의정서로 된 이 조약의 골자는 남극대륙의 비군사화, 법규현상의 동결, 과학적 조사를 위한 자유와 국제협력이라는 3원칙에 입각해 있다.
 

조약체결 당시 이조약에 가입한 나라는 남아프리카, 노르웨이, 뉴질랜드, 미국, 벨기에, 소련, 아르헨티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칠레, 프랑스 등 12개국이다. 그뒤 폴란드, 체코 ,덴마크, 네덜란드, 루마니아, 동독, 브라질, 불가리아, 벨기에, 스페인, 중공, 인도가 차례로 가입해 28개국으로 늘었다.

추가로 가입한 나라들은 조약의 기본정신을 동의하고 남극에 대한 연구실적보고에 의한 기존가입국의 승인을 거쳐 가입할수있었다.
 

우리나라도 남극관측단의 보고를 토대로 남극조약가입 및 영구기지 설치를 위한 외교문제 등을 관계부처가 협의하면서 다각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극조약3조에선 '남극지역에 있어서의 과학탐사의 국제협력촉진'이 강조되어 있다.

조약가입후 각국은 독자의 탐사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각국사이에 서로 과학자를 교환하거나 공동관측을 실시하고 있다.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탐사활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남극탐사활동을 시작한다는것은 그만큼 어려운 고비가 많다.
 

1955년9월 브뤼셀에서 열린 국제학술연합회의(ICSU) IGY특별위원회(CSAGY) 제2차 남극회의에서 일본이 남극관측에 참가할것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몹시 망설였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았고 경험도 없으며 광범위한 여러 관련분야의 막대한 경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쇄빙선이 꼭 있어야 하는데 개조할 좋은 선박이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매스컴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많은 학자, 경제인 등의 폭넓은 호응으로 참가할 것을 결정했다.

 

알을 품고 있는 펭귄


남극관측탐험대 활동
 

한국남극관측탐험대 대원 17명은 지난85년11월6일 한국을 출발, 11월16일(현지시간) 남극에 도착했다. 대원들은 빈슨팀과 킹조지팀으로 나누어 활동을 시작했다.
 

빈슨팀은 푼타아레나스를 떠난지 18시간만인 16일 새벽4시 빈슨 매시프아래쪽 빙원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캠프밖에는 '이글루'(에스키모인의 얼음집)도 만들었다. 이 지대에서는 지자기(地磁氣)의 영향으로 나침반이 쓸모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간 정밀지도와 육안관측으로 방향을 잡아 전진해야했다. 영하30도가 넘는 추위속에 4.5마일을 전진하여 해발 2천5백m 지점에 제1캠프를 설치했다. 대륙을 처음 밟은지 4일만이었다.
 

제2캠프는 60도 경사의 6백여m나 되는 절벽을 넘어 해발 3천5백m 지점에 구축했다. 등정 9일만이었다. 24 시간 낮만 계속되어 바깥 기상상태를 보아 활동시간과 취침시간을 적절히 안배했다.
 

제3캠프는 빙벽과 죽음의 구덩이가 여기 저기에 함정처럼 있는 난코스를 천신만고끝에 돌파, 해발 4천2백m 지점에 자리잡았다. 태양이 설원에 강렬하게 반사되어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입술이 바짝 말라갔다. 기온은 영하35도를 넘었다.
 

여기서 허욱, 허정식, 이찬영 3명의 정상도전조가 편성되었다. 제3캠프에 남은 대원과 워키토키로 연락을 해가면서 정상도전조는 전진시작 3시간만에 5천1백40m의 정상을 극복했다. 11월29일0시30분이었다.
 

66년에 미국팀이 처음 청상에 오른뒤 세계에서 5번째로 한국팀이 정복한 것이다.
 

킹조지팀은 이 지역이 지금 여름이어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칠레의 '아르투르 프라트'기지를 비롯, 7개국의 기지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남극관측실태를 둘러보았다. 또 한국해양연구소 선임 연구원 최효박사(지질학)와 책임연구원 장순근박사(해양 기상학)를 중심으로 칠레기지와 중공기지 중간에 설치된 한국관측기지 주변에서 자연과 생물에대한 여러가지 관찰·관측도 진행되었다.
 

과학관측은 기상관측, 지질관측, 해변과 빙산탐사, 해류와 조류관측, 해양생물과 육상생물 관찰 및 표본 채취, 화석 및 암석채취 등이었다.

기상관측은 이번 남극탐험이 첫길이어서 준비한 장비가 충분치 못해 간단한 지상기상관측기만 설치, 풍향풍속 기온 등 간단한 관측밖에 못했다. 관측대는 짧은 기간이지만 정밀관측시설로 여유있게 관측 못한것을 못내 안타까와했다.
 

해안의 지표(地表)와 암석 등을 살피는 지질,펭귄 바다표범 바다새 고래 크릴 등의 생태를 살표보는 생물, 빙산과 빙원의 얼음의 상태와 생성 연도를 살피는 빙정학(氷晶學)분야도 모두 주마간산 정도일 수 밖에 없었다.

최효박사도 "앞으로 영구기지를 설치하여 여유있게 연구 관측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아쉬움을 달래었다"고 말했다.


한국이 처음으로 설치한 기상관측기와 최효 박사
 

198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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