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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근대 신문으로는 1883~1884년에 발간된 '한성순보'를 꼽는다. 이 신문은 김옥균 등의 갑신정변으로 중단되었다가 1886년 부터는 '한성주보'로 이어졌다.

신문 이름에 분명히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는 순간(旬刊)이어서 한 달에 세 번 발행되었고 주보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온 신문이었다. 이들 두 신문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이는 순보가 순한문으로 일관된 것과는 달리, 주보는 한글기사를 많이 싣고 있다. 그러나 더욱 큰 차이는 한성순보에는 무척이나 많은 과학 기술 관계 기사가 있는데 반해 한성주보에는 오히려 이런 기사가 줄어 있다는 점이다.

1백여년 전에 쓰여진 과학 기사를 읽어 가노라면 별의별 희안한 용어가 다 눈에 띈다. '가백니''우동''순화설''원질''애력'…. 나오는 말마다 판별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물론 이런 용어는 당시에는 모두 한자로 써있었으니 원래대로 한문을 써 놓아 보자 : 歌伯尼, 牛董, 醇化説, 原質 , 愛力.

이렇게 원래의 한자를 써 놓아도 이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 사람은 오늘의 한국인에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불과 1세기 전에 우리 선조들이 읽던 신문에 나오는 가장 평범한 과학 용어인데도 지금 우리에게는 도무지 무슨 뜻이지 짐작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가백니(歌伯尼)란 '코페르니쿠스'를 표기한 것이다. 17세기 초 서양의 선교사들이 중국에 서양과학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글은 우리나라에도 흘러 들어 왔다. 이미 그때부터 '가백니'는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성순보의 독자들에게 가백니는 아주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코페르니쿠스'를 '가백니'로 알고있던 1세기 전의 한국인들은 '갈릴레오'도 꽤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갈릴레오 역시 '갈릴레오'가 아닌 '알리류'(戛里留) 또는 '가리가'(嘉利珂) 쯤으로 알았을 뿐이다.

다음으로는 우동(牛董)을 생각해 보자. 이 말에 점심 때 먹는 국수를 연상했다면, 그것은 오늘의 한국인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될 뿐이다. 한성순보 시대의 우리 선조들에게는 '우동'이란 '뉴튼'을 뜻했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여 근대과학의 확립에 가장 뚜렷하게 기여한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튼'이 바로 '우동'인 것이다. 또 그를 유명하게 만든 인력(引力)이란 개념이 1세기 전에는 '애력'(愛力)이라 표현됐던 것이다.

'가백니' '우동' '애력'은 각각 코페르니쿠스 뉴튼 인력을 뜻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면 나머지 순화설(醇化說)과 원질(原質)이란 무엇일까?

순화설은 지금의 진화론 또는 진화설(進化說)을 뜻한다. 이 말 역시 중등교육 정도만 맏은 사람이면 다 아는 것이다. 아마 '진화설'하면 당장 찰스 다윈과 그가 지은 대표작 '종의 기원'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1세기 전에 다윈은 '달이온'(達爾溫)이었고, 그의 종의 기원은 '물류추원'(物類推原)이었다. 달이온이라는 과학자는 물류추원이란 책을 써서 순화설을 주장했다고 우리 선조들은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질(原質)이란 지금의 원소(元素)를 말한다. 원소에는 산소 수소 질소 염소등 1백 가지쯤이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당시에는 원소가 그렇게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으나, 수소 산소 질소 염소는 각각 양기(養氣) 경기(軽氣) 담기(淡氣) 녹기(绿氣)로 알려졌다.

별 생각 없이 이런 글들을 읽노라면 묘한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1세기 사이에 우리의 과학 용어가 완전히 못 알아보게 바뀌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깨닫게 된다. 1880년대에 우리 선조들이 이런 엉뚱한(?) 표현들을 쓰게된 것은 중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과학기술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중국 보다는 일본이 근대화에 더 성공하고 있는 것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일본의영향아래 과학기술을 수용하게 되었다. 1910년을 전후하여 모든 문화가 중국 중심에서 일본 쪽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과학자의 이름은 현지음에 가깝게 되었다. 또 1945년 이후에는 한글로 과학자의 이름을 표기하면서 더 그럴듯한 발음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잘 된 변화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순화설과 진화설 원질과 원소 애력과 인력 등 수 많은 과학기술의 용어가 바뀐다는 것은 그 전까지의 과학 수용(受容)이 모두 헛 일이 되고, 새로 과학을 배우기 시작한다는 뜻이 된다. 17세기 이후20세기 초까지 우리 선조들이 배워온 근대과학의 분량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것나 한국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그나마 축적되었던 한국인의 과학 능력은 용어의 혼란 속에 무(無)로 돌아갔다.

한국의 근대사는 전통의 순조로운 계승 속에 전개되지 못하고 단절의 역사를 겪어 왔다. 과학의 역사도 예외가 아닌 단절의 역사였음을 알게 된다. 해방후 과학 용어는 대체로 일제 때의 것을 계승하면서 여기에 수정을 가했고, 거기에 서양 용어가 끼어들기 시작하여 혼란된 모습을 보이고있다.

지금 우리가 1세기 전의 한성순보를 들어 말하듯, 백년 뒤의 어느 후배 과학사 학자가 '과학동아'의 과학용어에 대해 무슨 말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대목이다. 과학동아의 창간을 치하하면서 이점을 유의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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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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