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아직은 평화적 이용보다 전쟁수단으로 각광받는 최고의 무기. 핵산업은 미국의 50대 기업축에 드는 거대한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
인류사상 최초의 핵실험이 행해진곳, 그곳은 죽음의 여행-호르나다 델무에르토-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막가운데 있는 '로스 알라모스'였다.
실험이 끝난지 두주일만에 히로시마에, 세주뒤에는 나가사끼에 죽음의 버섯구름이 깔려 세계를 놀라게했다. 이 참변이 있기전 그러니까 실험이 성공한직후 핵실험을 지휘했던, '베인브리지'는 나직히 '오펜하이머'박사 귀에다 이렇게 속삭였다. "우리는 무도 개자식들이요(Now we're all sons of bitches)"
그러나 실험이 끝나고 연구소에 돌아와서 죄의식을 느낀 학자 기술자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원자탄개발에 참여했던 7천여명 가운데 전쟁이 끝나자 귀향한 사람은 7백여 명. 나머지는 계속 일을했다. 대부분은 '원자탄 때문에 전쟁이 빨리 끝났다'는 트루만대통령의 말에 공감을 표했고 어떤 사람은 '원자탄은 미·일 양쪽에서 수백만명의 인명을 구해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전후 계속 번창한 산업
찬·반론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상당한 수사(修辞)로 치장하고서 말이다. "핵무기는 독특하고 유일한 전쟁억지장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말할것도 없이 핵탄두 옹호론자들이다.
이렇게 안이한 생각뒤에 전후 핵무기산업은 번창일로를 걸었다. 지금 미국에는 2만 5천개(소련은 2만3천에서 3만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됨)의 핵탄두가 있다. 전후 핵관계 생산은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AEC)가 관장했는데 지난 74년 두개의 기관이 따로 생겨 하나는 핵의 감시기능을, 다른하나는 핵무기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군관계 여러기관에서는 핵무기의 운반수단을 설계, 생산해 내고 있다. 그리하여 요즈음에는 미사일에서 등에메고 다니는 수단까지 개발되었다.
핵무기를 생산하는 DOE(에너지부)는 그 활동의 비중에 비해 예산은 자제돼 있다고 할까. 1년에 70억달라(약6조3천억원)이다. 처음 원자탄을 만들때의 맨하탄프로젝트의 예산이 20억달라 였던것과 비교하면 결코 많은 액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당시에는 20억달라로 4개를 만들었지만(3개사용, 1개 미사용) 요즘은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하루에 5개나 만들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나 TV 수상기의 생산처럼 핵무기도 대량생산으로 인한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있는것이다. 핵무기 예산은 생산에만 쓰여지는 것이 아니다. 보관, 수리, 실험, 폐기(핵무기도 시일이 지나면 성능이 떨어진다) 등에도 쓰여진다.
6분이면 모스크바 파괴
히로시마이후 핵무기및 그 운반수단의 발달은 눈부시어 파괴력에 있어서 예컨대 말썽많은 MX미사일의 경우 3백 킬로톤의 핵탄두 10개를 싣고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이 파괴한것보다 50배나 넓은 면적(42평방마일)을 불모화할수 있다. 퍼싱Ⅱ미사일은 유럽의 기지에서 6분이면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현재 핵폭탄제조자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파괴력의 향상 이외에 보다 안전한것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년 보다 안전한것으로 대체시키기 때문에 예컨대 60년대에 만든 많은 폭탄이 폐기 처분되기도 했다.
미국내 50번째의 대기업
핵폭탄제조와 관련된 연구소, 공장등은 미국의 13개주에 산재돼 있으며 여기에 종사하는 직원은 7만여명이 된다. '포츈'지의 사기업 랭킹순위로 따진다면 50번째의 크기에 해당된다. 폭탄생산업은 크게봐서 사기업형태라고 할 수 있다. 7만명의 종사자 가운데 정부에서 봉급을 받는 사람은 2천5백여명밖에 안된다.
운영방식은 이른바 '정부발주, 사기업시공'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핵폭탄의 설계는 '로스 알라모스'나 '로렌스 리버모아'에서 하는데 이들 연구소는 DOE의 위탁에 의해 캘리포니아대학이 운영한다. 설계도를 갖고 제작을 하는곳은 '샌디아 국립연구소'(앨버커크와 리버모아에 소재)인데 이것도 정부위탁에 의해 대기업인 AT&T에서 운영하고 있다.
또 플루토늄,디테리움, 트리티움 같은 기초소재는 '사바나 리버 무기제작소'가 책임지고 있는데 실제운영은 듀퐁사가 맡고있다. 유니온 카바이드회사는 핵분열시에 필요한 연료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이밖에 전자나 기계장치,연료를 감싸는 고성능 플라스틱, 중성자 제너레이터등을 제조하는 회사가 이곳 저곳에 널려있다.
사령탑은 펜타곤
이렇게 복잡 다기한 기술과 생산체계를 촐괄하는 곳은 국방성이다. 펜타곤은 DOE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말하며 DOE에서부터 핵무기 생산에 관련된 사기업체의 과학기술자들은 재빨리 수요자(펜타곤)의 희망을 알아차린다. 반대로 그들은 새로운 무기체계에 대해 펜타곤에 권유해서 수요를 창조해 내기도 한다.
동·서의 무기경쟁에 비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같은 '새로운 핵무기의 아이디어 경쟁'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수많은 실험실, 수많은 전문가들이 경쟁적으로 매력있는 아이디어-새로운 무기에 관한-를 내놓기 때문에 군비경쟁이 가속화 한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펜타곤의 원자력담당 차관보인 리차드 와그너박사는 "기술경쟁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다.그것이 군비경쟁을 촉진할지라도…. 만약 새로운 기술개발에 대한 자극이 감소된다면 우리는 국가적으로 큰 자원을 잃게 되는 것이다"라고 반격을 가한다.
경쟁적으로 아이디어 제공
경쟁이 얼마나 혹심한지 지금 대표적인 두개의 연구소 '로스 알라모스'와 '로렌스 리버모아'를 살펴보자. 이 두기관은 미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과학자, 기술자를 뽑느라고 야단이다.
지난 50년대에 '에드워드 텔러'라는 과학자가 수소폭탄 제조의 야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 유명한 '오펜하이머'박사가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로스 알라모스'이외에 또 하나의 연구기관을 성립하도록 로비활동을 맹렬히 전개했다. 이때 '버클리'의 '어네스트 로렌스'박사가(사이클로트론의 발명자) 그를 강력히 지원해 주었다. 그리하여 로렌스박사의 이름을 딴 제2의 핵무기 연구소인 '로렌스 리버모아'가 탄생한 것이다.
이 두연구소는 핵의 평화적 사용에 관해서도 연구를 한다. 이를테면 암세포를 죽이는 방사선, 지열을 이용한 발전, 바닷물을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방법 등은 이들 연구소에 의해 개발되었다. 그런데 평화적 이용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즉시 군사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피터 하젤스틴'박사는 리버모아연구소에서 의학용의 X-레이 레이저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오늘날 이 X-레이 레이저는 리버모아의 '스타워즈'체계에서 열쇠가 되는 부분을 이루고 있다.
두개의 연구소는 에너지성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제시한다. 채택된 프로젝트에 의해 제품이 생산되기까지는 보통 몇년씩 걸린다. 최근의 실적을 보면 로스 알라모스는 공중에서 발사하는 크루즈 미사일, 리버모아는 지상발진의 크루즈 미사일을 설계했다. 또 퍼싱Ⅱ에 쓰이는 열핵탄두(W-85)는 로스 알라모스의, MX는 리버모아의 창조물.
핵무기 생산에 종사하는 학자들
별의별 학자들이 두개의 연구소 주변에 모인다.전공으로 봐서는 핵물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가장 많다. 그러나 핵물리학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물리학 연구자들이 다 필요한 것이다.'조지 밀러'는 리버모아에서 설계책임자로 일하고 있는데 그는 "우리는 물리학의 모든 분야를 다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하게 된 동기도 각양 각색. 28살된 엔지니어 '존 페디시니'는 일리노이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뒤 로스 알라모스에서 해상에서 발사해 잠수함을 파괴하는 핵폭탄의 제조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나는 학생때 천식으로 다른 학생들처럼 운동을 즐길수 없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게 되었는데 역사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점차 역사중에서도 전쟁사에 관심이 쏠렸고 전쟁의 테크놀로지에 대해 정신이 팔렸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털어 놓는다. 그의 친구의 한사람은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딴뒤 단지 이곳에서 박사학위를 얻기 위해 일하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젊은 과학도들에게 응용과학분야의 박사학위를 준다.
핵실험의 현장
'엘버트 베네트'는 30여년이나 핵실험에 종사해 온 사람. "열 핵실험장은 무어라고 할까요. 지구같은 별의 끓고있는 내부를 구경하고 있는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네바다 사막의 표면을 보면 마치 달의 표면처럼 또는 사화산의 분화구처럼 움푹 들어가 있다. 이것은 지하 핵실험 때문에 생긴 것이다.
지하 실험이 행해지면 실험하는 곳의 지표가 거대한 응축력으로 깊게 파여지게 된다. 핵실험의 과정은 컴퓨터로 진행이 되지만 과정이 워낙 복잡해서 컴퓨터가 모든것을 다 해내지는 못한다. 핵폭발의 과정은 다 알려져 있지만 이것저것 해야 할것이 많아 아직까지는 관련된 모든것을 감당할 충분히 크고 성능좋은 컴퓨터가 없다는 것이다.
1963년의 조약에 따라 현재 1백50킬로톤 이상의 핵실험은 지하에서 조차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고성능의 핵실험은 축소된 폭탄으로 행해진다. 이것으로 실제 생산·배치될 새로운 핵폭탄의 산술적 파괴력은 검증이 되는 것이다.
지하 핵실험은 약 2천피트(약6백m)의 땅속까지 홈을 뚫어 그안에 줄로 이어진 폭탄을 넣는다. 홀은 모래 자갈 따위로 막아지며 이어 폭발을 시킨다. 실험 할 때마다 이름이 붙게 마련인데 미국내 조그만 마을의 이름이나 이상한 물건의 이름을 따다가 쓴다.
샌디아 연구소를 포함한 이들 핵무기연구소는 주로 지하 핵실험을 많이 하지만 이밖에도 주로 어려운 실험, 예컨대 태양에너지 발전, 풍력에 의한 발전등의 실험도 하며 때로는 가상 핵전쟁 실험도 한다.
미국은 핵 병기창?
미국의 몇개주를 빼고는 핵연구소나 핵발진기지, 핵제조 공장등이 넓게 널려있다. 핵무기의 제조나 배치에 관한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럼 직접 제조나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앞에 잠깐 말한대로 '핵에 의한 평화 유지'를 그들은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과신하고 있었다. 핵무장에 대해 미국에서 가장 부정적인 비판을 가하는 조직된 세력은 카톨릭 사제단이다. 이 가운데 한사람인 '르로이 매티슨'(64) 신부는 핵관계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자주 접촉하며 상담을 하고 있는데 그는 될수록 핵무기 제작에 관련하지 말라는 권유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단 한사람이 그와의 상담을 하고 난뒤 직장을 떠났을 뿐이다. '매티슨' 신부는 곧잘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데모도 했다.
핵무기에 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본다. "풋볼에서 1등을 하는 것처럼 전투력의 유지에서도 1등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핵을 관리 할수 있을만큼 미국인들이 충분히 성숙돼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의문은 우리가 개발해 내는 기술에 대해 통제를 할수있는 도덕적인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것이다. 나는 우리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파멸로 향해 표류해 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핵무기를 관리할 도덕적 능력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연구소의 과학자들도 자신을 못하고 있다. 보다 정교하고 파괴력이 강한 무기제작에 열심이지만 그들은 "핵무기는 결코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또는 "우리는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누구보다 핵무기의 파괴력을 잘 안다.
물리학자이며 핵폭탄 설계자로 일한바 있는 '프리먼 다이슨'은 84년에 발간한 '무기와 희망'이란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들이 소련이나 프랑스 중공과 함께 핵무기의 제로 감축(완전폐기)을 협의할수 없는 어떤 정치적 기술적 이유도 없다. 핵의 완전한 폐기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극히 소수밖에 안된다는 사실이 불행이다. 이제라도 인류가 도덕적 분발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각국의 정부와 군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핵무기는 결국 언제인가는 모든 사람을 파괴할 뿐 어느 누구도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로스 알라모스'를 떠나면서 여러 과학자들이 한말은 음미해 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핵무기 사용에는 반대의사를 나타냈지만 그들은 '핵무기의 전쟁 억지력'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자신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느껴졌다. 달리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로스 알라모스'에 진입하는 도로가 두개 있었다. 그렇다면 빠져 나가는 길도 두개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