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도와주세요! 산에서 다리를 다쳐서 움직일 수가 없어요!”
“지금 계신 곳이 어딘가요?”
“모르겠어요. 주위에 나무밖에 안 보여요…!”
만약 여러분이 산에서 구조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휴대폰에서 지도를 켜서 세 단어를 확인하면 됩니다. 전 세계 모든 위치를 3개의 단어로 나타내는 지도가 있거든요.
야외에서 펼쳐지는 음악 공연은 생각만 해도 멋져요. 하지만 공연을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공연장으로 음악 장비를 실어 날라야 하는데 그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영국에서 음악 공연을 기획하던 크리스 쉘드릭은 수학자 친구 모한 게인셀린검에게 이런 불편을 털어놨습니다. 둘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고, ‘what3words’라는 세 단어 주소가 탄생했어요.
저는 지금 ‘성대.난간.알다’에 있어요!
쉘드릭과 게인셀린검은 전 세계 모든 곳을 가로 3m, 세로 3m의 정사각형으로 나누고, 각 정사각형을 3개의 단어로 나타냈어요. 예를 들어, 영국 런던의 ‘빅벤’ 시계탑이 있는 곳은 ‘clean.wider.both(깨끗한.넓히다.둘다)’예요. 처음에는 영어 단어만 사용했지만 지금은 한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30여개 언어로 나타낼 수 있어요.
어수동을 만드는 회사 ‘동아사이언스’ 옥상에 위치한 과학동아천문대의 주소는 ‘성대.난간.알다’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카카오맵에서 어떤 위치든 검색하면 세 단어 주소를 볼 수 있어요. 바다나 산에도 세 단어 주소가 있답니다.
‘원래 쓰던 주소도 아무 불편 없었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라마다 주소를 쓰는 방식이 다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바뀌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똑같은 정보를 갖기가 어려워요. 영국 버킹엄 궁전의 주소는 ‘Westminster London SW1A 1AA’지만, 대한민국 서울시청의 주소는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이니까요.
또 전 세계에는 주소가 없는 사람도 많아요. 세계 우편 업무를 총괄하는 국제기구인 ‘만국우편연합(UPU)’의 우편전문가 패트리샤 비바스는 “주소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수십억 명에 달한다”고 말했답니다. 인도와 브라질, 케냐 등 경제 발전이 진행 중인 나라에서는 주소체계가 자리 잡지 못했어요.
그런데 주소가 없으면 구호 물품을 전달받는 일도 어렵고, 몸이 아프거나 사고가 나도 도움을 받기가 힘들어요. 인구의 30% 정도가 초원지대 유목민인 몽골에서도 이전까지는 주소를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다행히 2016년부터 몽골에서도 우체국에서 세 단어 주소를 사용하기로 했고, 많은 사람에게 우편 배달을 할 수 있게 됐답니다.
건물·도로 무너지면 세 단어로 위치 알려요!
국제연합(UN)은 재난을 입은 지역에 구호 물품을 보낼 때 세 단어 주소를 활용해요. 재난 지역에서는 위치를 알리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주소를 알 수 있는 표지판이나 건물, 도로가 파손돼 위치를 정확히 전달할 수 없죠. 산이나 바다에서 조난을 당해 구조요청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유용하게 쓰여요. 해수욕장 입구 주소는 알아도 바다 한가운데 주소는 말하기 어려우니까요. 도시에서도 사용할 수 있죠. 도로 중간에서 사고가 나서 구급차가 출동하거나 골목에서 범죄가 발생해 경찰이 출동할 때 같은 상황이랍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어떨까요? 한강공원에 놀러 가서 치킨을 배달시킬 때 세 단어로 위치를 설명하는 게 쉬울 거예요. 내가 있는 곳으로 택시를 부를 때에도 편리하고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장소나 추억이 담긴 여행지를 기억할 때도 사용할 수 있어요.
지구를 57조 개로 나누고 세 단어 붙였어요
그렇다면 세 단어 주소는 어떻게 매겨지는 걸까요? 먼저 세계지도를 가로 3m, 세로 3m의 정사각형으로 쪼개요. 그랬더니 약 57조 개의 정사각형으로 나뉘었어요. 정사각형은 4개의 꼭짓점과 1개의 중심점이 있어요. 이 57조 개의 중심점에 각각 세 단어로 이뤄진 주소를 붙였어요. 직사각형이나 다각형, 원이 아닌 정사각형 모양으로 나눈 건, 똑같은 면적으로 촘촘하게 나눌 수 있고 빈틈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쪼개진 정사각형마다 세 단어로 이름을 붙이려면 4만 개 정도의 단어가 필요했어요. 4만 개의 단어를 가지고 이리저리 서로 다르게 조합하면 64조 개(=40,000×40,000×40,000)의 ‘세 단어 조합’이 나오기 때문이에요. 모든 단어 중에서 욕설과 같은 부적절한 단어는 빼고, 철자가 다르지만 발음이 같아서 헷갈리기 쉬운 단어도 제외했어요. 이렇게 주소를 나타내기에 적당한 단어 4만 개를 골랐죠.
그런데 왜 2개나 4개나 아닌 3개의 단어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쉽게 외울 수 있는 최적의 단어 수가 3개이기 때문입니다. 단어가 많아질수록 주소를 기억하기가 어려워지죠. 1개나 2개의 단어를 사용하면 기억하기는 더 쉽겠지만, 57조 개의 위치를 1~2개 단어로 나타내려면 철자가 어렵거나 긴 단어까지 써야 해요. 비교적 쉬운 단어를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기억하기에 적당한 개수의 단어로 만든 것이 바로 ‘세 단어 주소’였던 거예요.
사람들 많이 가는 곳은 쉬운 단어 썼어요
세 단어 주소를 만들 때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어요. 먼저, 비슷한 발음이나 철자를 가진 단어가 한 주소 안에 담기지 않도록 했어요. 만약 비슷한 단어들이 있다면 각각을 서로 멀리 떨어진 곳의 주소에 사용해 사용자가 혼동하지 않게끔 했죠. 또 비교적 짧은 단어는 지하철역 주변이나 쇼핑몰 등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곳에 주로 사용했어요. 반대로 사람들이 자주 찾지 않는 바다나 산 등은 조금 더 긴 단어들로 나타냈죠.
다만, 어떤 위치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그 위치와 관련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건 아니에요. 그저 규칙에 따라 무작위로 선정한 단어들의 조합입니다. 한국어판 what3words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맵은 “한국어판 세 단어 주소가 영어판을 그저 번역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적합한 한국어 단어들을 선별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인터뷰 "드론 배달 가능하려면 정확한 위치정보가 필요해요"
_크리스 쉘드릭 what3words 창업자
Q. 세 단어 주소가 필요한 이유는 뭔가요?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치정보 시스템인 GPS만큼 정확하면서도 사람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주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GPS 주소를 말하려면 “40.7127753, -74.0059728에서 만나”라고 해야 하거든요. 숫자보다는 단어가 기억하기 쉽죠. 어떤 단어가 어떻게 짝을 이루도록 했는지는 일급 비밀이랍니다.
Q. 위치를 나타내는 일은 왜 중요한가요?
10~15년 전에는 모바일 지도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일상생활에 꼭 필요해졌어요. 앞으로는 드론 배달이나 무인 자동차 같은 기술이 발전할 것이고 여기에는 디지털 지도 기술이 뒷받침돼야 해요. 사람들이 이용하기 쉽고 기계가 이해하기에도 쉽도록 목적지를 입력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