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너, 조금 전에 한 말 진짜야?”
“어, 진짜야! 분명히 선생님 목소리를 들었”
“아니, 그거 말고! 너 음식은 어느 정도 간격으로 섭취해?”
“글쎄 평균으로 계산하면 한 달 반에 하루 정도?”
미아는 혼란스러운 듯 시선을 둘 곳을 찾아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선은 미아가 왜 갑자기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내가 너무 많이 먹어”
이마를 붙잡고 한숨을 훅 내쉰 미아가 따지듯이 물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정체? 나 선이잖아 자연인이고”
우물쭈물하던 선의 눈썹 끝이 축 처졌다.
“미아, 갑자기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미아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다가 한참 만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우나 쌤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지? 뭐라고 하셨어?”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선생님이 있는 곳”
잠시 생각에 잠겼던 미아가 선의 팔을 잡아당겼다.
“가자. 난 너의 정체를 좀 알아야 겠어.”
“뭐? 어디로 가는데?”
“도서관.”
선은 영문도 모른 채 미아의 뒤를 따라 걸었다. 걷는 내내 미아는 말이 없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선은 미아의 기분이 최대한 빨리 풀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한산했던 메디움 시티 공립 도서관은 비상 절약령 선포 이후 긴급 충전소를 이용하러 방문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선은 후드를 푹 뒤집어쓴 채 사람들을 피해 미아의 뒤를 따라 걸었다. 미아는 다른 곳에 전혀 시선을 주지 않고 곧바로 도시 건설 기록관으로 향했다.
미아가 생체 인증 시스템이 설비된 출입구 앞에 서자, 삑 하고 빨간 불이 들어왔다.
“선, 네가 와서 서 봐.”
“내가 선다고 이게 열릴까?”
선은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출입구 앞에 섰다. 삑 하고 초록 불이 들어왔다.
“역시.”
미아는 예상했다는 듯 도시 건설 기록관의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선이 허둥지둥 미아의 뒤를 따랐다.
“뭐야, 이거? 난 이런 거 등록한 적이 없는데?”
“넌 아마 태어났을 때부터 이곳에 출입할 수 있었을 거야. 그동안 교육구 밖 자율 이동이 허가되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겠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한테만 쌤 목소리가 들렸다고 하니까. 이건 사고가 아니라 어떤 계획인지도 몰라.”
미아는 재빨리 메디움 시티 지하 설계도를 찾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입체 설계도를 돌려보면서 미아가 말했다.
“우나 쌤 정도의 시스템을 가동하려면 공간이 꽤 필요할 거야. 메디움 시티 설계 시점부터 공간을 마련해 놨겠지. 어쩌면 지하의 유휴공간으로 등록돼 있을지도. 하여튼 좀 의심스러운 곳은 전부 찾아보자.”
미아와 선은 메디움 시티 전체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봤다. 관공서처럼 큰 공간을 차지하는 건물은 추가로 설계도를 띄우고 실제 내부 모습까지 일일이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서버를 구축해 놓았을 만한 장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선이 무심결에 말했다.
“서버 말이야. 혹시 지하에 없는 건 아닐까? 식재료도 지상에서 내려온다고 하니까”
“지상아, 그러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미아가 눈을 반짝이며 메디움 시티 지상 설계도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설계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지상까지 연결된 2개의 공간을 찾았다. 하나는 통합 환기 시스템으로 연결된 통로였고, 다른 하나는 식재료 조달용 화물 곤돌라가 오르내리는 길이었다. 미아가 곤돌라 쪽을 손으로 건드리며 말했다.
“환기 통로로 지상까지 나가는 건 불가능해. 곤돌라로 가자.”
미아의 말에 선이 난처한 듯 대답했다.
“그런데 곤돌라는 시청 안에 있잖아. 내 얼굴을 기억하는 공무원이 있을 텐데.”
“당연히 정문으로는 못 들어가지. 여길 봐, 이 환기구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미아가 홀로그램 속 지형지물의 색상을 변경하자, 메디움 시티 내 모든 환기 통로의 색상이 변하며, 그 형태가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통로는 전부 시청으로 연결돼 있었고, 거기서 갈라져 나온 일부 통로는 곤돌라가 있는 공간으로 이어져 있었다.
“환기 통로를 타고 여기까지 가는 거야.”
그렇게 말한 미아가 턱 끝으로 건설 기록관 천장 끄트머리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사람 하나가 드나들 수 있을 만한 작은 환기구가 설치돼 있었다. 미아는 선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사다리를 찾아 들고 환기구 아래로 이동했다. 사다리를 세우고 성큼성큼 올라서는 미아를 보며 선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드라이버 같은 거 필요하지 않아?”
미아는 별 문제가 안 된다는 듯이 한 손으로 환기구 뚜껑을 뜯어냈다. 그리고 안에서 돌아가고 있던 팬도 맨손으로 잡아 단번에 끄집어냈다.
“됐지?”
뜯어낸 자재들을 내려놓으며 미아가 씨익 웃었다.
미아는 환기 통로 속에서 서식지를 찾는 도마뱀처럼 재빠르게 움직였다. 선은 그 뒤를 쫓아서 기어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많이 부쳤다. 미아는 선이 너무 뒤처지면 조금씩 기다려주기도 하면서 시청 쪽으로 이동했다. 선이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었을 무렵, 앞서 가던 미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 아래 곤돌라 승강장이 있어.”
미아는 환기구 너머에서 한 공무원이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모습을 봤다. 곤돌라가 다시 작동하는지 테스트 중인 것 같았다. 곤돌라 스위치 앞에 한참 서 있던 공무원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승강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곧 문이 닫히는 육중한 소리가 났다.
“갔나 봐. 내려가자.”
환기구를 뜯고 먼저 아래로 내려간 미아가 뒤따라 내려오는 선의 몸을 잡아줬다. 두 사람은 가장 먼저 곤돌라 조작부로 가서 스위치를 이리저리 만져봤으나 곤돌라에는 역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주변을 둘러보던 중, 뭔가 특이해 보이는 장소가 선의 눈에 들어왔다.
편집자 주
본 작품은 동아사이언스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후원한 ‘2023 SF스토리 공모전’ 수상작입니다. <수학동아>는 36편의 수상작 중 AI 부문 수학동아 특별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타디그레이드 피플’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소설의 전문은 SF스토리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