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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디그레이드 피플

 

 

지난 줄거리

중앙 광장에 도착한 선은 공립 도서관이 열기를 기다리며 홀로그램 분수를 바라보다 우연히 한 학생을 만난다. 피부 곳곳에 흰 무늬가 있는 이 학생은 알고보니 기계도가 75%인 사이보그로, 학생들 사이에 동경의 대상인 ‘미아’였다. 선은 미아와 첫 만남에서 깊은 대화를 주고 받는데….

 

부스 안에 도착한 미아가 입을 가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이거 진짜 구식 전자 컴퓨터잖아? 분위기 진짜 엔틱하다! 이런 골동품을 사용해도 되는 거야? 아니, 레플리카인가? 그래도 내가 만졌다가 망가지면 어떡하지?”

미아가 조심스럽게 마우스 입력장치를 톡 건드리자 새까맣던 모니터 화면이 팟 켜지면서 HTTP 시대의 웹페이지가 떴다. 도서 검색이라는 글자 옆으로 새하얀 입력창이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미아는 전자 컴퓨터를 신기해 하면서도 선뜻 입력장치를 조작하려 들지는 않았다. 잘 모르는 구시대 유물을 직접 만지는 것이 꽤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이 기기를 쓰던 시기에는 원하는 내용의 책을 알아서 찾아 주는 시스템이 없었나 봐. 책 제목이나 등록된 키워드만 검색되는 것 같네.”

“그럼 일단 뭐든 단어를 하나 넣고 검색을 눌러볼까?”

“좋아. 키워드는역시, 인간!”

선은 자판 입력장치를 이용해 검색창에 ‘인간’이라고 톡탁톡탁 적어넣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의학 서적부터 문학 작품까지 ‘인간’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된 자료의 페이지 수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졌다. 어색하게 마우스를 움직여 몇 페이지 넘겨보던 선이 난감한 듯 말했다.

“이건 너무 광범위한 것 같아. 하나하나 찾아보려면 일 년도 부족하겠어.”

“그러네. 이럴 땐 우나 쌤 찬스를 써야겠지?”

미아가 우나에게 물었다.

“쌤, 어떻게 해야 여기서 제가 원하는 자료를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자연인의 생각 같은 걸 볼 수 있는 자료요.”

우나가 대답했다.

“우선 찾고자 하는 내용의 범위부터 명확히 하는 것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제3차 산업혁명기의 자연인들이 남긴 기록은 HTTP 시대 말미의 백업 데이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서고에 남아있는 공식 기록을 찾으면, 원하는 자료 수집이 훨씬 수월할 겁니다.”

우나의 설명에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인구가 100억에 가까웠다니까 자료가 엄청 많겠죠?”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소실됐다고는 하나, 그들이 기록한 데이터는 여전히 방대하게 남아있습니다. 미아, 이 공립 도서관에서는 모든 보안이 해제된 HTTP 시대의 백업 데이터에 직접 액세스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해로운 자료 또한 많습니다만그래도 데이터를 살펴보고 싶다면 접속 포트를 열어주겠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선이 눈을 껌뻑이며 되물었다.

“해로운 자료요?”

“네. 그 시대의 백업 데이터에는 진실로 판명된 정보만 담겨있지 않아요. 이건 자료를 접한 이가 직접 판단해야 할 일이죠. 물론 인간의 심연까지 드러내놓는 저급 정보는 미아와 선의 연령대를 고려해서 제가 임의로 차단해두겠습니다.”

“좋아요! 저는 과거 자료를 살펴보고 싶어요!”

미아가 눈을 반짝이며 선을 바라봤다. 선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현재 이용하고 있는 전자 컴퓨터로 HTTP 시대의 백업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포트를 열겠습니다. 나의 지시를 따라주세요.”

미아와 선은 우나가 시키는 대로 컴퓨터를 조작했다. 백업 데이터가 보관된 데이터 센터에 접속하고, 포털을 이용해 원하는 정보를 검색한 다음, 하이퍼링크를 따라 이동하며 정보를 찾는 방법도 배웠다. 미아와 선은 이 작업에 금세 흥미를 붙였다.

“선, 우리 꼭 옛날 사람이 된 것 같지 않아? 이런 고전 기계를 다 써보다니.”

“그러게. 이거 조작 방식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손이 잘 안 따라줘.”

“나도 그래. 옛날에는 이런 자판을 보지도 않고 글자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대. 정말 신기하지? 너 손에 쥐 안 나게 조심해라?”

“응, 알았어.”

“그럼 지금부터 자료 찾아보고 좀 이따 공유하자.”

“좋아.”

미아는 곧바로 의자에 앉아 자판을 타닥타닥 두드리기 시작했다. 글자의 위치가 익숙지 않아 한 글자를 치고 다음 글자를 찾을 때까지 시간이 꽤 소모됐으나 무언가 열심히 입력하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분명했다. 미아가 글자를 다 입력하고 마우스로 화면 여기저기를 눌러볼 때까지도 선은 미아의 옆자리에서 물끄러미 미아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어떤 자료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미아가 화면을 보고 활짝 웃음을 지었다. 선은 곧바로 시선을 자판으로 옮겼다. 그리고 더듬더듬 글자를 찾기 시작했다.

 

 

“미아, 혹시 이 사람 알아?”

선의 물음에 미아가 살짝 고개를 돌려 선의 컴퓨터를 바라봤다. 선이 가리킨 모니터에는 검은 페도라와 선글라스를 낀 남성의 이미지가 하나 떠 있었다. 미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수업 시간에 본 것 같은데누구더라? *아메리카합중국의 마지막 대통령?”

“아니. 역사 시간이 아니라 음악 시간에 봤을 거야. 마이클 조셉 잭슨. 아메리카합중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활동했던 유명한 음악가래.”

“아, 생각났어! 20세기 팝의 황제, 맞지? 근데 좀 이상하네. 20세기의 아메리카합중국은 *공화정이었을 텐데, 저 사람은 왜 저런 호칭으로 불렸을까? 요즘 같으면 바로 페널티를 받을 일인데.”

“*전제정치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그랬을지도 몰라. 20세기가 좀 그렇잖아.”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옛날이니까 지금과는 인식이 다를 수밖에 없지.”

미아가 흥미로운 얼굴로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런데 이 사람 자료는 왜 찾은 거야? 인간에 관해 알려주는 명곡을 만들었어?”

“사실은 나도 이 사람 노래를 잘 몰라. 난 바로크 시대 음악만 들어서.”

“뭐?”

어이없는 얼굴로 모니터를 쳐다보던 미아의 시선이 화면 좌측 상단에 위치한 검색창 쪽으로 힐끗 이동했다. ‘백반증, 위대한 사람,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 등의 글자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뒤늦게 이를 눈치챈 선이 허둥지둥 검색어를 가리려고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피식 웃는 미아를 보며 선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 그러니까 수많은 자연인이 이 사람을 엄청나게 좋아했대! 자연인이 왜 이 사람을 그토록 좋아했는지 알아가다 보면, 그 시대 자연인의 보편적인 정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아가 미소를 지으며 턱을 괴었다.

“너 이제 보니까 말을 되게 잘하는구나?”

“어”

“지금까진 무슨 말이든 할 때마다 엄청 눈치 보는 것처럼 보였거든. 근데 조금 전엔 똑 부러졌어. 앞으로도 그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고, 고마워노력해볼게.”

미아의 칭찬에 선은 멋쩍은 듯 목을 긁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뺨이 약간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미아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니터 속의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좋아. 그럼 자연인이 이 사람을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어. 수업 시간에 배울 정도로 위대한 사람이니까 공식 자료도 많이 있겠지!”

“디지털 변환 데이터는 이 컴퓨터로 바로 볼 수 있나 봐. 원본이나 사본을 이용하려면 승인 과정이 좀 복잡한 것 같고.”

“그래? 그럼 이 컴퓨터로 간단히 볼 수 있는 것부터 살펴보자. 우나 쌤, 이 컴퓨터 사운드 저희한테 동시에 연결해주세요.”

 

*아메리카합중국 : 미국의 정식 국명으로, 소설 속 선이 사는 미래에서 미국을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공화정 :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나 대표 기관이 통치하는 정치 형태다.

*전제정치 : 독재자로 알려진 통치자에 의해 절대 권력이 유지되는 정치 형태다.

 

*아메리카합중국 미국의 정식 국명으로, 소설 속 선이 사는 미래에서 미국을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공화정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나 대표 기관이 통치하는 정치 형태다.

*전제정치 독재자로 알려진 통치자에 의해 절대 권력이 유지되는 정치 형태다.

우나가 답했다.

“네. 오디오 시스템 연결을 완료했습니다.”

“고마워요, 쌤.”

그 사이 선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 리스트를 모니터 위에 띄워놓았다.

“그럼 어떤 것부터 들어볼래? 노래가 엄청 많아.”

“앗, 방금 좀 특이한 노래 제목을 봤는데.”

“‘지구의 노래’?”

선의 반응에 미아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도 그게 가장 먼저 눈에 띄었어? 우리 뭔가 좀 통하는 것 같네.”

미아가 뽀얀 이를 드러내며 선을 향해 찡긋 윙크를 했다. 선은 배시시 웃으며 다시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러면 이 노래 제목으로 다시 검색해볼게. 공연 자료를 모아둔 페이지가 있는 것 같아.”

선은 마이클 잭슨의 영상을 모아둔 페이지를 금세 찾아냈다. 그리고 ‘지구의 노래’ 중 유독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많은 한 영상을 재생했다. 그 곡은 마치 먼 과거의 어떤 선지자가 꿈에서 멸망한 세상을 목도하고, 그 비극을 막기 위해 깨어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부르짖는 듯한 노래였다. 서글프면서도 강렬한 선율 속으로 순식간에 빠져든 미아와 선은 본인들도 모르는 새 숨마저 죽이고 음악에 몰입해 있었다. 곡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무렵 웬 정체 모를 사람이 무대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선, 이거 무대 연출일까?”

“아니, 그냥 누가 난입한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벙찐 얼굴로 한 정신 나간 팬이 크레인 위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봤다. 다행히도 영상 속에서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고, 공연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좀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정말 멋있었어!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겠더라!”

미아가 들뜬 얼굴로 말했다. 선은 이제 제법 구식 검색에 익숙해졌는지 백업 데이터 속에서 해당 공연 당시의 기록 일부를 손쉽게 찾아냈다.

“이 소동은 1996년 *남부 코리아의 서울 공연에서 있었던 일이래.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자 휴전국인 남부 코리아에서 탱크와 총으로 무장한 군인에게 어린 소녀가 꽂을 건네는 감동적인 퍼포먼스는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는 내용도 있네.”

“남부 코리아라면역사 수업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그 특이한 나라 맞지? 우나 쌤이 항상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던 거기.”

“응. 거기 맞아.”

 

*남부 코리아 : 소설 속 선이 사는 미래에서 대한민국을 일컫는 말이다.

 

*남부 코리아 소설 속 선이 사는 미래에서 대한민국을 일컫는 말이다.

“그냥 소설 속 나라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 그 나라와 관련된 데이터를 직접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아니, 이렇게 딴소리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비스듬히 앉아 있던 미아가 갑자기 허리를 곧게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선은 의아한 눈빛으로 질문을 대신했고, 미아는 그런 선의 옷깃을 살짝 잡아 흔들며 재촉하듯이 말했다.

“얼른 영상 좀 더 보자. 조우의 날 오프닝 행사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선은 자신이 찾아낸 인물에게 미아가 큰 관심을 보이자 괜스레 기쁜 마음이 들었다. 선은 아까처럼 노래 제목 리스트를 쭉 띄워놓고 미아에게 골라달라고 말했다. 미아는 왠지 으스스한 무언가가 나올 것 같은 제목의 노래를 선택했고, 선은 그 노래의 하이퍼링크 방향으로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인 다음 버튼을 달깍 눌렀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도서관 전체가 새까만 암흑으로 뒤덮였다.

“어? 나 갑자기 눈이 안 보여, 선. 신경에 에러가 났나 봐.”

옆에서 미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눈이 고장 난 게 아니라 도서관의 불이 꺼진 것 같아. 나도 아무것도 안 보여.”

“진짜? 네 목소리는 잘 들리긴 하네. 지금 옆에 있는 거 맞지?”

“응, 나 여기 있어.”

선은 미아가 앉아 있던 방향의 허공을 조심조심 더듬었다. 미아의 팔이 금세 손끝에 닿았다. 미아는 자신의 팔에 와 닿은 선의 손을 덥석 붙잡고는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그러게. 혹시 내가 뭔가 잘못 건드렸나?”

“에이, 설마. 우나 쌤이 가르쳐준 대로만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관의 불은 다시 켜졌다. 미아와 선은 서로의 얼굴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자 비로소 안도했다. 미아가 우나에게 물었다.

“쌤, 방금 뭐였어요?”

우나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2024 년 03월 수학동아 정보

  • 민이안
  • 진행

    김진화 기자 기자
  • 일러스트

    lemarr
  • 디자인

    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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