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지하 도시정부인 메디움 시티의 모든 공적 업무는 AI 시스템 ‘우나’가 담당한다. ‘선’은 이곳 지하 도시의 유일한 구태인(비사이보그인)이다. 최대 명절인 ‘조우의 날’, 선은 공립 도서관이 있는 중앙 광장에 가기 위해 1인용 캡슐 열차에 탄다.
“선, 이제 곧 메디움 시티 중앙 광장역에 도착합니다.”
선은 반짝 눈을 떴다. 살짝 눈만 감은 채 쉬려 했는데 어렴풋이 꿈을 꾸었다. 꿈에서 선은 드넓게 펼쳐진 초원길을 친구와 함께 걷고 있었다. 태양에서 쏟아진 햇빛 줄기가 식물의 거대한 푸른 잎 위에서 반짝이며 부서졌고, 다섯 갈래 꽃잎 사이로 호박벌이 머리를 집어넣고 엉덩이를 씰룩대는 모습도 봤다. 아마도 책에서 읽고 상상했던 것들이 꿈이라는 형태로 구현된 것이리라. 선은 꿈속의 자신에게 친구가 있었다는 점이 가장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씁쓸하게 웃으며 선은 캡슐 열차에서 내렸다.
공립 도서관은 메디움 시티 중앙 광장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개관 시간까지는 3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선은 근처 벤치에 앉아 광장의 홀로그램 분수대를 바라봤다. 물줄기는 제각기 일정한 박자를 가지고 다양한 높이로 솟았다가 낮아지고, 뱅글뱅글 돌거나 아래로 푹 떨어졌다. 선은 작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수대를 바라봤다. 분수대의 움직임과 콧노래의 리듬이 꼭 맞아떨어졌다.
“상당히 즐기고 있군요, 선.”
“네. 진짜 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요.”
광장을 지나다니는 사이보그들이 홀로그램 분수대에 관심을 두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하 도시정부의 모든 구조물은 일상생활 영위를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라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고, 대부분의 사이보그는 현실보다도 메타버스 공간인 ‘뉴로어스(neuro-earth)’를 진정한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었다. 물론 구태인이라 뉴로어스에 접속할 수 없는 선은 이렇게 현실 속 이스터 에그처럼 구현된 소소한 요소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나름의 이벤트를 즐기곤 했다. 다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만.
처음 지하 도시정부가 출범했을 때, 지하로 내려온 인간의 상당수는 전란으로 인한 상해와 오염 물질 노출 후유증 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우나는 그런 인간에게 신소재를 활용한 사이보그 수술을 적극 추천했다. 우나가 사이보그 수술에 보험을 적용하겠다는 정책을 처음 발표했을 때까지만 해도 시민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사이보그 수술을 받은 사람의 삶의 질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또 그들이 지출하던 의료 비용이 얼마나 감소했는지 등의 이야기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기 시작하면서 사이보그 수술에 대한 인식은 확연히 달라졌다. 정치인들 또한 기존의 온전한 생물학적 인간만이 진정한 인간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기조를 내세웠고, 이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폭은 점점 넓어져 갔다.
그 시점에서 우나는 인간의 뇌 신경계를 네트워크에 접속시켜 과거 지상의 지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메타버스, 뉴로어스를 구현해냈다. 이즈음부터 인간들은 뉴로어스에 접속하기 위해 신경 신호변환기 삽입술을 받는 것을 안경을 맞추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뉴로어스에 접속해 각종 콘텐츠를 즐기며, 직접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고순도 감각에 매우 큰 만족감을 느꼈다.
시민들은 점점 우나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우나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그대로 따랐을 때 시민의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사실은 이미 몇 번이고 입증된 터였다. 우나가 인공 생식기관을 통해 아이를 탄생시키는 ‘출생 관리 센터’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했을 때도 이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인과 유권자는 거의 없었다. 결국 우나는 ‘합법적’으로 사이보그와 구태인을 분류했다.
“야!”
홀로그램 분수대를 지켜보던 선은 이어폰 너머에서 이상한 소음이 끼어든 것을 감지했다. 선은 잠시 콧노래를 멈췄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선은 주파수에 약간 혼선이 있었나보다 생각하고 다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야, 자연인! 비사이보그인!”
선은 그제야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한쪽 이어폰을 뺐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학생이 벤치 근처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외모로 보아 선 또래의 청소년 같았다. 조금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한쪽 눈썹을 포함한 피부 곳곳에 흰 무늬가 포진돼 있다는 것일까.
선은 우나 외의 존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는 사실이 너무 낯설어서 어리벙벙한 얼굴로 그 학생을 쳐다봤다. 무엇보다도 구태인이 아니라 ‘자연인’, ‘비사이보그인’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들어본, 아주 생소한 단어였다.
“야, 너! 이렇게 일찍 혼자서 여길 오면 어떡해?”
낯선 학생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미, 미안.”
선은 얼떨결에 사과했다. 처음 겪는 일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 가슴이 마구 쿵쾅댔다. 선은 꿀꺽 침을 삼키고는 옷소매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잔뜩 긴장한 선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낯선 학생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조우의 날, 축하해.”
“어”
낯선 학생의 인사에 선은 선뜻 반응하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선이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자, 아직 귀에 꽂혀있는 한쪽 이어폰에서 우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 상대가 조우의 날 인사를 보내오는군요. 답을 해야죠?”
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앞에 있는 상대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나도 조우의 날을 축하해.”
선이 대답하자 낯선 학생이 활짝 웃었다. 입술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뾰족한 송곳니가 제법 귀여워 보였다. 낯선 학생이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우나 쌤 대화를 공유하자.”
“어뭐”
“우나 쌤 대화 공유.”
“그게뭐야”
선의 반응에 낯선 학생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아, 대화 공유 몰라? 음, 그러니까 보통 우나 쌤하고는 일대일로 대화하잖아. 그런데 서로 합의하면 그 사람들끼리 다 같이 대화하는 거야. 그냥 학교에서 수업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내가 요청 보낼게.”
얼마 지나지 않아 선의 이어폰을 통해 우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 같은 교육구 학생인 미아로부터 대화 공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수락하겠습니까?”
“네에? 저 애가 미아라고요?”
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아의 명성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뉴로어스에 접속하지 않는 이상 다른 반에 학생을 드넓은 교육구 내에서 직접 만나보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은 문득 오늘 아침 기숙사 복도에서 얼핏 들었던 사이보그 학생들의 수다를 떠올렸다. 미아가 구태인을 찾고 있다던 이야기. 아무래도 그 이야기는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왜 그렇게 벌떡 일어나고 그래? 놀랐잖아!”
“아미, 미안.”
“그래서 대화 공유는 수락을 안 해주는 거야?”
“아, 아니. 할게선생님, 저 할게요.”
대화 공유가 승인되고 우나의 목소리가 두 사람에게 동시에 전해졌다.
“미아는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과 대화 공유를 하는 것은 처음이군요. 선은 대화 공유 시스템 이용 자체가 처음이고요. 새로이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은 저로서도 크게 환영할 일입니다. 말 그대로 기쁜 조우의 날이로군요.”
선은 우나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정말인가요? 미아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굉장히 높다고 들었는데가족 외에는 저랑 처음으로 대화 공유를 하는 거라고요?”
“선, 그런 이야기라면 나를 통하지 않고 직접 묻는 게 어때요?”
“아죄송해요.”
선은 어색한 표정으로 미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왠지 눈을 맞추기가 힘들어서 자꾸 여기저기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아는 그런 선을 바라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선은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물었다.
“근데 너 같은 애가 왜 나랑 대화 공유를 하는 거야? 나는 기계도 0인 구태인인데.”
선의 말에 미아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왜겠어? 너는 내가 대화하기로 마음먹은 상대니까 그렇지. 난 정말 올해 조우의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어. 자율 이동이 허가되는 올해라면 연휴 중에 분명 너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너 공립 도서관 갈 거지? 혹시 나랑 같이 가서 인간에 관한 자료를 좀 골라 줄 수 있니? 그리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미아를 보며 선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 저기”
선은 저도 모르게 입을 뗐다. 미리 준비한 대본집이라도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재잘대던 미아가 아차 싶었는지 잠시 말을 끊고 생긋 웃음을 지었다.
“아, 미안해! 내가 들떠서 너무 흥분했나 봐.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해!”
선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으응그런데 사실 나는 인간에 관한 책은 별로 읽은 게 없어서추천해 주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
“정말? 그럼 넌 주로 뭘 읽는데?”
“나? 나는곤충이나 조류, 포유류 같은 과거 지상의 생명체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이런 거?”
선의 대답에 미아가 가만히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 흐음, 크게 보면 인간도 과거에는 지상에 살았던 생명체니까뭔가 도움이 될만한 부분이 있을지도”
선이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과제 해?”
“아, 내가 찾고자 하는 건 과제에 관한 게 아니야.”
“그럼 뭘 찾는데?”
“음, 쉽게 말해서 ‘인간으로서 나의 존재의 의의를 증명해줄 만한 확신’ 같은 거?”
선은 미아가 무엇을 찾으려 하는 것인지 당최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선은 그게 정확히 뭐냐고 미아에게 묻고 싶었지만, 미아가 다시 말을 시작하는 바람에 질문할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아무래도 학교 도서관에는 자료가 부족해서 말이야. 공립 도서관 정도면 뭔가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하고. 책에 있어서는 네가 전문가니까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전문가? 그런 거 아닌데”
“하지만 네가 벌써 몇 년째 우리 교육구 독서왕이잖아. 그 정도면 전문가 아냐?”
“독서왕? 난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 차라리 우나 선생님한테 물어보는 게 나을걸? 그리고 뉴로어스 안에도 도서관이 잘 구현돼 있다던데물론 난 잘 모르긴 하지만.”
미아는 대충 예상했다는 듯 입술을 씰룩거리며 웃었다.
“야, 너 우나 쌤한테 배운 애 맞아? 쌤은 우리를 이끌어주는 존재지, 정답을 찾아 주는 존재가 아니야. 쌤한테 물어봐서 다 해결될 것 같으면 공부는 왜 하고, 도서관은 왜 있겠어?”
우나가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요즘 시기에 보기 드문 훌륭한 학생이로군요.”
우나의 말에 맞장구치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이런 얘기는 못 들어 봤어? 뉴로어스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편중돼 있다는 거.”
“편중?”
“그래, 편중. 많이 찾는 정보 위주로만 데이터가 축적되다 보니까 뉴로어스 안에는 기존의 인간, 그러니까 ‘자연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해. 게다가 정보를 재생산하는 사람들의 주관도 너무 많이 섞여 있고. 이 ‘자연인’이라는 단어도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옛날 법전을 훑어보다가 알게 된 거야. 이 말을 처음 발견했을 땐 기뻐서 유레카를 외쳤다니까?”
미아가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선은 거기에 조심스럽게 질문을 얹었다.
“그러니까네가 말하는 그 ‘자연인’이라는 건‘구태인’을 말하는 거지?”
“맞아. 그런데 그 구태인이라는 단어, 뉘앙스가 좀 이상하지 않니?”
미아가 허리에 양손을 얹은 채 빤히 선의 얼굴을 바라봤다. 선은 뭐라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껌뻑이면서 미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잘 생각해봐. 우리는 모두 자연인 상태로 태어나잖아. 그리고 기계와 합성체를 이루는 수술을 통해 사이보그가 돼. 생장하면서 자연적으로 우화하는 곤충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그런데 왜 자연인을 구태인이라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부르는 걸까? 자연인이야말로 인간의 진정한 원형인데 말이야!”
턱을 샐쭉 내민 미아가 선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바로 너 같은 사람, 나는 너 같은 ‘진짜 인간’이 궁금해.”
미아의 말에 선은 어깨를 살짝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말도 이상해그럼 너는 ‘가짜 인간’이란 말이야?”
“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내가 보기에는 그냥”
“그냥?”
“그냥인간 같아.”
“그냥 인간?”
“응. 심지어 기계도 75%의 사이보그처럼 보이지도 않아. 물론 피부의 얼룩 무늬 신소재는 개성이 넘치지만그것 말고는 그냥 나 같은 구태인, 아니, 자연인 같아 보여. 정말이야.”
선의 대답에 미아는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이 피부야말로 타고난 내 피부인데?”
“뭐? 인조 피부 이식술을 받은 게 아니었어?”
선이 깜짝 놀라 물었다. 미아는 하얗게 경계가 져 있는 자신의 얼굴을 가볍게 매만져 보였다. 선은 지금까지 살면서 피부에 하얀 무늬가 있는 사람은 처음 봤고, 수업 시간에 그런 사람에 대해 배운 적도 없었으며, 각종 그림책에서도 피부에 무늬가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선은 미아의 피부가 당연히 신소재로 만든 인조 피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아는 이에 관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대답을 했다.
“이건 백반증이라는 질환이야. 내가 인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하고.”
미아는 뿌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선은 미아의 반응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미아는 분명 그것을 ‘질환’이라고 말했다. 질환이라면 보통 부정적인 것일 텐데, 미아는 어째서 저렇게 밝은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난 어렸을 때 큰 병을 앓아서 몸의 대부분이 기계로 대체됐어. 우리 가족이 기계의 외형을 선호하지 않아 일상생활에서는 최대한 기계처럼 보이지 않도록 마감을 해둔 거야. 어쨌든 내 장기, 뼈, 근육 등은 대부분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어. 당시에도 큰 수술이라고 했었어.”
“그랬구나그래서 기계도가 그렇게 높구나.”
“맞아. 그런 상황이다 보니, 부모님께선 매년 내 생일에 골격 부품을 교체해주셨어. 그때마다 나는 매일 같이 키가 자라는 다른 아이를 엄청나게 질투했어. 나는 그 애들처럼 ‘성장’을 체감할 수 없었거든. 내가 인간이 맞긴 한가, 이 정도면 그냥 로봇 아닌가, 뭐 그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선은 어린 시절 우나의 보모봇이 자신을 신장 측정기 앞에 세워놓고 키를 잰 뒤 기록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너무 일상적인 일이라 굳이 되짚어볼 추억거리도 되지 않는 기억이었는데, 어린 미아에게 있어서는 전혀 다른 의미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근데 말이야, 어느 순간 내 얼굴에 흰 반점이 생겨난 거야! 처음에는 작았는데 점점 더 커지더라고. 나는 매일 같이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흰 부위가 퍼져나가는 걸 관찰했어. 교체 없이도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내 몸에 생겨나다니,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 음?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래?”
미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선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그그, 혹시아플까 봐.”
“아, 여기?”
미아가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안 아파. 그냥 색만 조금 다른 거야.”
“그래그건 다행이다.”
“당연하지! 안 아프니까 피부 이식도 안 받은 거라구. 이건 인간으로서 내 최소한의 정체성 같은 거라 생각해.”
선이 고개를 끄덕였고 미아는 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난 자연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자연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 나랑은 얼마나 비슷하고, 또 얼마나 다른지도 알고 싶고.”
그때 우나가 끼어들었다.
“대화 중 미안합니다만, 지금으로부터 5분 뒤면 공립 도서관 개관 시간입니다. 두 사람은 이곳에 조금 더 머물 예정이에요? 아니면 곧바로 도서관으로 이동할 건가요?”
미아가 선의 팔을 끌어당기며 쾌활하게 답했다.
“당연히 바로 도서관으로 가야죠! 가자!”
공립 도서관으로 이동하는 미아의 발걸음은 유독 들떠 보였다. 선은 그런 미아의 모습이 신기했다. 통계적으로 사이보그의 도서관 이용률은 극히 낮은 편이었다. 그 덕분에 사이보그의 출입이 거의 없는 조용한 도서관은 선에게 그야말로 좋은 안식처였다.
그런데 미아는 아주 독특했다. 뉴로어스보다 실제 도서관을 선호하며, 구태인, 아니 자연인에게 관심이 많았다. 지금까지 봐왔던 다른 사이보그와는 확연히 다른 특성이었다.
“미아, 선, 메디움 시티 공립 도서관은 HTTP 시대의 도서관 시스템을 재현하고 있으니, 과거를 여행하는 듯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도서관 이용 중 궁금한 점이 생기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네, 쌤.”
“네, 선생님.”
미아와 선이 공립 도서관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똑같은 디자인의 새까만 옷을 입은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줄지어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아가 중얼거렸다.
“아침부터 정보 사냥꾼들이 많네.”
“정보 사냥꾼?”
“응. 뉴로어스에서 지워졌거나 찾을 수 없는 정보를 찾아서 재게시하는 사람들.”
“주관적으로 정보를 재생산한다는 그들?”
“맞아. 그래서 정말로 원하는 정보를 알고 싶다면 도서관에서 직접 원본을 확인해야 해. 교차 점검도 필요하고. 근데 뭐, 그런 걸 하는 이는거의 없긴 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미아와 선은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에서는 구시대에 만들어진 합성수지 특유의 기묘한 냄새가 났다. 선은 도서관 안을 둘러봤다. 먼저 들어와 있던 검은 옷의 무리 중 일부는 네모난 유리 부스 안에 앉아 있었고, 또 일부는 서고를 오가며 제법 분주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쪽부터 가보자.”
미아가 유리 부스를 가리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