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SF 소설] 타디그레이드 피플

 

“선, 아침 식사와 샌드위치가 도착했습니다.”

탁상용 미니 스피커에서 우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나의 목소리는 주파수 150Hz에서 200Hz 사이의 선명한 발음으로 형성돼 있어, 어떤 메시지를 전하든 그 내용의 전달력이 좋았다. 하지만 읽고 있는 책에 푹 빠진 선은 우나의 목소리를 인지하지 못했다.

“선?”

“”

“선!”

우나가 볼륨을 키우자, 선은 그제야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부르셨어요?”

“선, 아침 식사와 샌드위치가 도착했어요.”

“벌써 시간이죄송해요, 선생님.”

선은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나는 지하 도시정부 출범 시점부터 지금까지 이곳의 모든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AI 시스템이다. 이에 지하 도시정부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우나란 매우 친밀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자아가 형성되는 청소년기 동안 우나와 함께 지내던 이들이 우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선, 식사하면서 이번에 빌려온 책의 내용을 요약해줄 수 있나요?”

선은 기숙사 방문 앞에 놓여있던 바퀴 달린 작은 테이블을 끌고 들어오며 답했다.

“어차피 선생님은 다 아시는 내용일 텐데요?”

“저는 듣고 싶군요.”

“음, 알겠어요.”

선이 끌고 들어온 테이블 위에는 식물성 재료로 만든 완자와 채소, 과일이 담긴 큰 접시와 한끼 용으로 포장한 샌드위치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선은 포크를 들고 식사를 시작하며 책에서 읽은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선의 말을 경청하는 우나의 리액션은 교육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섬세했다. 덕분에 선은 식사하며 한참이나 즐겁게 재잘거렸다.

“다 먹었어요, 선생님. 테이블 내놓고 양치할게요.”

“좋습니다. 선, 오늘 ‘조우의 날’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로 한 건 기억하고 있죠? 12시까지 학교가 아니라 메디움 시티 중앙 광장으로 가야 합니다.”

“알아요. 저는 좀 더 일찍 갈 거예요.”

“따로 계획이라도 있나요?”

“네. 공립 도서관에 가려고요. 거기엔 1000년 넘은 책들도 보관돼 있다던데진짜예요?”

선의 목소리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우나가 다정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원본은 수장고에 보관돼 있지만, 원본과 99% 흡사하게 만든 레플리카들을 원하는 대로 마음껏 펼쳐 읽어볼 수 있지요. 원한다면 구시대의 특수 저장장치에 담긴 정보들도 찾아볼 수 있고요. 그곳이라면 선의 취향에 딱 맞겠네요.”

“헤헤, 잘 됐다아 참, 선생님!”

“네?”

선이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우의 날을 축하해요! 샌드위치 선물 감사합니다!”

“나 또한 조우의 날을 축하합니다.”

선은 씨익 웃으며 샌드위치를 가방에 챙겨 넣고, 빈 접시가 놓인 미니 테이블은 문 앞에 내다 놓았다. 이제 양치를 하고 옷만 갈아입으면 외출 준비는 끝난다.

 

기숙사 방문을 나서던 선이 잠시 멈칫했다. 이 시간이라면 아무도 나와 있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몇몇 학생들이 복도 한구석에 모여 떠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우의 날 연휴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듯했다. 선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후드를 뒤집어썼다.

“뭐야? 구태긴이네?”

“야, 발음 조심해라.”

“이 정도면 괜찮아. 구태긴! 봐, 경고가 안 뜨잖아.”

큭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은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자연스럽게 그들을 지나쳐 걸었다.

구태긴. 그것은 사이보그 시술을 받지 못하는 ‘구태인(舊態人)’을 조롱하는 단어였다. 사이보그 시술자가 많지 않던 시절에는 인류를 ‘기본형 인간’과 ‘사이보그’로 분류했으나, 사이보그 시술자가 훨씬 더 많아진 이후에는 ‘사이보그’가 기본형의 위치를 차지하고, 생물학적으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인간은 구태인으로 분류됐다.

사이보그들은 구태인들이 의료 보험 재정을 축내고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고 불평했다. 그 결과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낸 신조어가 등장했다. 구태인과 구더기를 합쳐 만든 단어, ‘구태기’. 이 말은 우나의 혐오 발언 필터링 시스템에 곧바로 적발되었고, 혐오 발언으로 인정돼 이 단어를 사용할 경우 상당한 페널티가 적용되었다. 하지만 사이보그들은 이상한 부분에서 영리한 꾀를 냈다. 구태기라는 단어를 구태긴이라 말하면서 긴의 ㄱ발음을 살짝 뭉개기 시작한 것이다. 우나는 이 발음의 범위가 구태인 안에 들어온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긴의 ㄱ발음을 뭉갠 구태긴’은 혐오 발언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이보그들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근데 미아가 오늘 구태긴 보면 바로 연락 달라고 하지 않았냐?”

무리 중 한 녀석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사이보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근데 미아가 구태긴을 왜 찾을까?”

“모르지, 뭐. 솔직히 손봐주는 거면 재밌을 것 같긴 한데.”

“페널티 때문에 그건 어려울걸? 교육구에서 폭력은 절대 금지잖아.”

선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사이보그들의 이야기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생각지 못한 이름의 등장으로 인해 손에 땀이 고이는 감각을 느꼈다. 미아라면 이 교육구에서 ‘기계도’가 가장 높은 학생으로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선 또한 그 이름을 익히 알고 있었다. 기계도란 사이보그의 신체 중 기계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단어로, 미아의 경우 75%가 넘는 압도적인 기계도를 지니고 있었다. 사이보그 학생들은 그런 미아를 신비로운 존재 바라보듯 동경했다. 물론 구태인인 선은 예외였다. 오히려 그런 엄청난 학생에게 어떤 의미로든 찍히게 된 것 같아 찝찝하기만 했다.

선도 구태인이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었다. 태어나보니 구태인이었다. 과거에는 자신의 의지로 사망할 때까지 구태인으로 남은 인간들이 제법 있었으나, 현대에는 출생과 동시에 우나의 판단으로 사이보그와 구태인이 분류됐다. 지하 도시정부의 모든 아이는 ‘출생 관리 센터’의 인공 생식기관을 통해서 태어나는데, 갓 태어난 영아는 면밀한 스캐닝을 통해 사이보그 시술 가능 여부를 검진받았다. 안타깝게도 선은 사이보그 시술이 불가능한 아이로 판명됐다. 선은 당시 이 도시정부에서 태어난 아이 중 유일한 구태인이었고, 선의 부모는 자신들의 유전자에서 구태인이 태어난 것을 부끄러이 여기며 아이의 친권을 깨끗이 포기했다. 그 후 선은 우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보모봇들에 의해 길러졌다. 어떤 사이보그들은 구태인의 양육에 공공비용이 들어가는 것조차 탐탁지 않게 여겼다.

“선, 도서관 개관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할 겁니다.”

잰걸음으로 기숙사를 빠져나온 선은 학교 앞 승차장에서 대기 중이던 1인용 캡슐 열차에 재빠르게 올라탔다. 객차 내부 패널에 뜬 열차 시간을 확인해보니, 이어폰을 통해 우나가 알려준 대로 도서관 개관 시간보다 훨씬 빠른 시각에 메디움 시티 중앙 광장역에 도착할 것이 분명해보였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빨리 가고 싶어요. 선생님, 음악 좀 틀어주실래요?”

“알겠습니다. 선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음악은 내가 잘 알지요. 잠깐 눈을 붙여도 좋아요. 도착할 즈음 깨워줄 테니.”

선의 양쪽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은은한 하프시코드 선율이 흘러나왔다. 선은 1000년도 넘은 먼 옛날에 녹음됐다는 하프시코드 협주곡들을 좋아했다. 하프시코드라는 악기가 쓰이던 시기의 음악은 동일한 패턴의 리듬이 유독 반복되고 템포가 일정했는데, 선은 그 부분에서 굉장한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선은 팔짱을 낀 채 좌석에 기대어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누구나 결핍을 가지고 있어요"

‘타디그레이드 피플’ 작가 민이안

 

 

 

Q. 민이안이 본명이 아니던데, 이 필명은 어떤 뜻인가요?

 

깊은 뜻이 있진 않아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실명을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동명이인인 국문학과 교수님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내면 이름이 겹치겠다고 생각해 필명을 쓰기로 했어요. 당시 미니언즈라는 캐릭터를 좋아해서 한국어 이름 같으면서도 발음이 비슷한 민이안으로 했어요. 중성적인 느낌도 나고 발음도 편해요.

 

Q. SF 작가가 되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년 반 정도 논술 강사로 일했어요. 학원의 원장이 바뀌면서 학원을 그만두고 여러 군데를 전전했지요. 그러다가 우연히 박물관 큐레이터로 전향했어요. 박물관에서 키네틱 아트 전시 해설을 준비하면서 미국 과학사학자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문’을 접했어요. 여기서 사이보그는 성별, 인종을 넘어서 궁극적인 평등을 이룬 존재예요. 이후 사이보그에 관한 관심이 SF소설로 확장됐어요.

 

당시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나오면서 SF소설  붐이 일었어요. 주변의 추천으로 그 책을 읽었는데 옛날에 봤던 SF소설과는 다르다고 느꼈어요. 이전의 SF소설은 과학 지식이 있는 사람만 알 수 있을 정보의 총집합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2020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Q. 글을 쓰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쓰고 싶은 장면이 생기면 그에 맞는 캐릭터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해요. 중간중간 고쳐 나가면서 제가 쓰려던 장면이 나오는 부분까지 수사가 이어지도록 써나가요. 그러면 주인공들이 알아서 길을 찾아가듯이 글이 써지더라고요. ‘타디그레이드 피플’은 조금 특이하게 전체 내용이 한 번에 생각났어요. 결말부터 먼저 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Q. ‘타디그레이드 피플’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요?

 

이전에 발표한 SF 소설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와 연결되는 나름의 세계관이 있어요. 현대 사회에서 미래로 갈 때 분기점이 한 번 생겨요. 두 종류의 AI가 나오는데 어떤 AI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요. 하나는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의 이르모스, 하나는 ‘타디그레이드 피플’의 우나예요. 이르모스가 감정적이라면 우나는 논리적이지요. ‘타디그레이드 피플’에서는 이 두 세계를 붕괴해서 우나 쪽으로 나아갔을 때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뤘어요.

 

 

Q. 타디그레이드는 무슨 뜻인가요?

 

타디그레이드는 완보동물을 뜻하는 영어 단어예요. SNS에서 특이한 동물을 많이 다루는 분을 팔로우해놨었는데, 그분이 실제 완보동물이 움직이는 모습을 현미경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올리셨어요. 처음엔 징그러웠는데 보면 볼수록 경이로운 거예요. 그래서 한 번쯤은 소재로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번 내용과 잘 어울려서 활용했어요.

 

Q. 인간인 ‘선’과 기계도 75%인 사이보그 ‘미아’라는 서로 전혀 다른 존재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특별해보여요.

 

저는 결핍이 있는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결핍을 퍼즐처럼 싹 맞춰주는 것을 좋아해요. 소설에서 선은 사회적으로 보기에 결핍이 있는 아이이고, 미아는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사실은 마음이 비어 있던 아이예요. 이처럼 저는 누구나 결핍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둘이 만났을 때 그 부분을 채워주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Q.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타디그레이드 피플’ 속 미래는 사이보그의 세상이 되면서 신체의 결함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사이보그인과 비사이보그인으로 선을 긋고 누군가를 타자화하고 배척하지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잠재력이 있어요. 우리 모두 누군가의 영혼을 뒤덮는 행위를 하지 않고, 포용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01월 수학동아 정보

  • 민이안
  • 진행

    김진화 기자 기자
  • 일러스트

    lemarr
  • 디자인

    정영진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