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셀에 정면으로 반박한 비트겐슈타인 ◆
1919년 네덜란드의 한 호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교수님은 이 책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셨어요! 제가 <;논리철학논고>;에서 주장하는 것은 교수님의 입장과 정반대예요.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가장 단순한 원리만 가지고서 수학의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교수님의 <;수학 원리>;는 실패작이에요. 확실한 수학의 토대를 건설하는 데 실패했지요. 그 실패의 원인은 언어의 필연적인 한계에 있어요. 논리학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르게 말하는 수사법일 뿐이에요. 그것으로 수학의 토대를 구축하고 세계에 관한 진리를 발견하겠다는 것은 회전목마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러셀의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지금 러셀은 자기가 가장 믿었고 총명하다고 생각한 제자가 자신의 연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분노와 슬픔이 섞인 목소리로 러셀은 말했습니다.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없네. 언어는 세계의 그림이라는 것이 자네 ‘그림 이론’의 핵심 아닌가? 그렇다면 언어의 구조를 밝혀내는 일, 즉 언어를 지탱하는 논리를 연구하는 일은 곧 세계의 구조를 밝혀내는 일이 되지 않겠나?”
비트겐슈타인은 세차게 머리를 저었습니다.
“아니에요. 언어와 세계는 분명 대응을 이루지만, 언어가 세계와 어떻게 대응을 이루는지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림은 세계를 그려내지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림과 세계가 특정 형식을 공유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공간이라는 세계는 그림 속에서 원근법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지요. 하지만 원근법을 그림으로 그릴 수는 없어요! 원근법의 효과를 잘 보여주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원근법이라는 추상적인 개념 자체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불가능해요. 언어도 마찬가지예요. 언어가 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이유는 언어와 세계가 특정 형식, 말하자면 논리적 형식을 공유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논리적 형식이 무엇인지는 언어로 말할 수 없어요.”
“언어가 스스로에 대해서 말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네. 하지만 정교한 *메타언어를 사용한다면 그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오, 맙소사! 그 메타언어 이야기 좀 제발 그만하세요.”
비트겐슈타인이 두 손을 휘저으며 말했습니다.
“언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메타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를 미루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이제는 메타언어의 단계에서 똑같은 문제가 일어날 거니까요. 한 인도 신화가 떠오르네요. 그 신화에서는 지구를 받드는 것이 거북이라고 되어 있어요. 이 신화를 읽은 어떤 인도인이 거북은 뭐가 받들고 있냐고 물어봤지요. 그러자 그 인도인의 스승은 또 다른 거북이 받들고 있다고 대답했대요. 언어의 문제점을 메타언어로 해결하려는 교수님의 말씀도 다를 바 없어요.”
러셀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맞는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연구에 대한 부정이었습니다. 러셀은 애써 입을 뗐습니다.
“자네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비트겐슈타인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말할 수 있는 것에 관해서는 명료하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하는 겁니다.”
◆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 ◆
‘고양이가 상자 안에 있다’는 의미 있는 문장이지만, ‘초록색 생각들이 격렬히 잔다’는 의미가 없는 문장입니다. 왜 전자는 의미가 있고 후자는 의미가 없을까요?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하자면, 언어는 어떻게 의미를 획득할까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의 목적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비트겐슈타인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은 언어를 통해서만 소통합니다. 따라서 언어가 의미를 획득하는 경우를 명확히 밝히는 작업은 언어를 통해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 주제와 그럴 수 없는 주제를 구별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요컨대 비트겐슈타인의 목적은 사과, 초록색 생각, 아름다움, 쿼크, 자연수, 무한집합, 그리고 신 중에서 의미 있는 단어와 그럴듯해 보이지만 의미가 결여된 단어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에서 제시한 답은 ‘그림 이론’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림 이론에 따르면 언어는 세계의 특정 사태를 마치 그림처럼 그려냄으로써 의미를 획득합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상자 안에 있다’라는 문장과 고양이가 상자 안에 있는 상황은 마치 정물화와 사과처럼 대응함으로써 의미를 획득합니다. 반면 ‘초록색 생각들이 격렬히 잔다’라는 문장은 어떠한 그림도 그려내지 않기에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일단 그림 이론에 따르면 윤리학이나 종교 등의 언어는 의미를 결여한 것입니다. 예컨대 ‘예수라는 인물이 기원전에 존재했다’라는 문장은 의미가 있더라도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라는 문장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문장이 거짓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참 또는 거짓의 진릿값을 결정할 의미라는 요소 자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죽음 이후의 사건은 그 정의상 경험이 불가능하므로, 살아 있는 사람의 언어가 이 문장에 대응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네덜란드에서의 만남 이후 러셀은 비트겐슈타인과 조금씩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논리철학논고>;의 중요성을 인정한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저술을 출판할 수 있도록 추천사를 써주고 출판사를 알아봐주었지만, 인간관계만 놓고 보면 다소 소원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비트겐슈타인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 자격을 심사받을 때 <;논리철학논고>;가 박사 논문으로 제출되었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러셀은 마지못해 심사에 응하며 “내 생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 생생한 삶에 진리가 있다 ◆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는 1921년에 출판됐습니다. 출판 당시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추종자가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2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결성된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 모임이었습니다. 빈학파라고 불리게 된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두 가지 주장에서 그 뜻을 같이했습니다. 첫째, 오직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만이 정당한 지식이다. 둘째, 모든 학문은 논리적 분석이 가능한 명료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이에 따라 빈학파는 학문의 세계에서 미학, 형이상학, 윤리학과 같은 학문을 추방하고 수학, 물리학과 같은 학문만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빈학파는 <;논리철학논고>;가 빈학파의 믿음을 완벽히 지지한다고 여겼으며, 깔끔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문체에 마음이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책을 소리 내어 읽었고 세미나도 열었지요. 이윽고 빈학파는 비트겐슈타인을 모임에 초청했고, 1927년에 만남이 이뤄집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과의 만남은 빈학파와의 기대와는 매우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빈학파의 주장과 행동에 공감하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비트겐슈타인은 이내 일어나더니 한 시간 넘게 한 티벳 승려의 시를 낭독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거리이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진리를 품은 것이 언어와 논리학이 아닌 생생한 삶의 체험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발전에 경도돼 있는 빈학파의 일원들에게 과학의 정반대에 있다고 여겨지는 ‘시’를 낭독했지요. 그는 빈학파의 일원들에게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닮은 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러셀은 수학을 동경했지만 수학의 토대를 세우는 꿈을 이루는 데 실패했습니다. 게다가 제자의 ‘학문적 배신’마저 겪었고요. 그러나 실패는 러셀이 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리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차 대전을 겪으며 그는 평화와 인류애의 가치에 눈을 떴으며, 수학이 아닌 세계를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듯이, 러셀 또한 수식으로 적을 수 없는 것에서가치를 발견한 것입니다.
◆ 깊이 진로를 고민하다 ◆
2023년 한국.
띵ㅡ. 띵ㅡ.
비행기에서 울리는 좌석벨트 알림음에 게슴츠레 눈을 떴습니다. 정면의 모니터를 확인해보니 아직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4시간이 남았네요. 남은 비행시간 동안 영국에서 했던 교환 학생 생활 회고록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영국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수리논리학과 집합론을 배웠고, 이와 관련된 철학적 문제에 대해 교수님들과 논의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문화, 종교, 진로, 가치관을 가진 친구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수학과 철학을 탐구하는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 길을 걸음으로써 세계를 향해 샘솟는 많은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학문의 목적은 질문에 답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하며 궁극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지를 드러내는 것임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수의사가 되는 것을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의사가 되면 매일 아프고 죽어가는 동물을 봐야 하는데, 그것을 감당하기란 괴로운 일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학문에 있어서도 유효한 듯했습니다.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철학의 길을 걷는 것은 고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앎의 불완전함과 대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앎의 한계, 언어의 한계, 세계의 한계를 긋고자 했던 비트겐슈타인이 떠올랐어요.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앎의 불완전을 추구하기 쉽지 않았을 거니까요.
*메타언어
특정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또 다른 언어. 예를 들어 영어를 한국어로 공부한다면 영어는 대상 언어이고, 한국어는 메타언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