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꽤나 품는 꿈이 있습니다.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드라마 주인공 직업으로도 등장하는 일타 강사입니다. 실제 일타 강사의 삶은 어떨까요? 정승제 강사를 홍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17년째 일타 강사 자리를 지키는 비결을 들어봤습니다.
1교시 : 진로 찾기 / 일타 강사를 꿈꾸는 너에게
Q. 명실상부 일타 강사로서, EBS와 사설교육기관을 종횡무진하며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타 강사의 하루가 궁금합니다.
아침부터 카메라 앞에 서서 온라인 강의를 6~8개 찍어요. 이후에 현장 강의를 가는 날도 있지요. 모든 강의를 마친 뒤에는 집에 가서 다음날 녹화해야 할 것을 준비해요. 그밖에 시간엔 틈날 때마다 계속 수업을 연구합니다. 하루에 2, 3시간밖에 못 잘 때도 많아요. 가끔 ‘뭘 위해 이렇게까지 바쁘게 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업계 경쟁이 심한 데다 제가 뭘 하든 긴장을 많이 하는 성향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휴가지에서도 태블릿 PC를 손에서 못 놓아요.
Q. 하루가 녹록지 않네요. 그런데 오래 강의를 해오셨는데도 연구할 게 많나요?
그럼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나 평가원 모의고사 기조가 매년 조금씩 바뀌잖아요. 모의고사 문제를 분석하면서 수능에서 어떤 개념이나 풀이 방법을 중시하는 문제가 나올지, 어떤 유형이 새롭게 나왔는지 등을 분석하며 이른바 ‘냄새’를 맡아요(웃음). 고3만큼 수학 문제를 열심히 풉니다. 이 방법으로 풀어보고 저 방법으로도 풀어보고, 연구원들과 계속 토론하며 학생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풀이 방법과 설명 방식을 찾아요.
Q. 요새 강사님처럼 일타 강사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친숙한 직업이고 돈도 잘 번다고 하니까 꿈꾸는 것 같아요. 그런데 멋지고 돈 잘 버는 일타 강사는 극히 일부예요. 강사별로 처우가 많이 차이나죠. 수많은 연예인이 유재석을 꿈꾸지만 다 그렇게 되지 못하잖아요. 그럼에도 수학에 애정이 있고, 일타 강사의 강의를 보며 ‘내가 더 잘 가르칠 수 있어’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생각만으론 경쟁력을 가지기 어려워요.
2교시 : 수학 공부 / 수학의 본질에 집중!
Q. 수학을 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유는 단순해요. 수학을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서예요. 예를 들어 함수를 배우는 건 어떤 사실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과 같아요.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생각을 오래 해보면 훗날 어떤 문제든 깊이 있게 사고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수학이 녹아있어요. 엑셀 프로그램에도, 챗GPT에도 있잖아요.
Q. 수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수학의 본질에 집중해야죠. 수학은 생각하는 것이 본질인 학문입니다. 개념을 남에게 잘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이해했다면, 문제가 안 풀릴 때 바로 해답지를 보는 게 아니라 풀이 방법을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또 선생님에게 질문을 잘 해야 합니다. 무조건 질문을 많이 하면 수학을 잘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 문제 어떻게 풀어요?’는 잘못된 질문이에요. 수학의 본질과 달리 고민조차 해보지 않고 ‘방법만 내놓아라’라는 격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풀어봤는데, 더 이상 필요한 조건 하나가 발견이 안 돼요. 어디서부터 문제일까요?’처럼 문제 풀이 과정에 관해 구체적으로 질문해야 수학 실력이 늡니다.
Q. 과연 이 방법으로 우리나라 시험에서 수학 점수를 높일 수 있을까요?
쉽진 않죠. 여전히 우리나라 수학 시험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정확히 답을 맞히는 유형의 문제가 나오니까요. 얼마나 깊이 생각했는지를 평가하도록 시험이 점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요새는 수능 수학 문제가 조금 더 생각을 요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요. 과거엔 전체 문제 중 2문제 빼고 수준이 평이했다면, 지금은 30문제 중 9문제 정도가 수학적 사고가 필요한 문제예요. 수학 개념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야 풀 수 있죠.
Q.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봐요.
저는 뭐든지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 백종원 요리 연구가는 식당을 평가할 때 먼저 입지, 마케팅, 조리시설을 언급하지 않아요. 식당의 본질인 ‘맛’부터 확인합니다. 마찬가지로 일타 강사가 되기 위해 ‘교재 색깔을 무엇으로 할까’, ‘1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돈을 어떻게 벌까?’를 먼저 고민하면 안 돼요. 강사라면 일단 ‘학생들이 수학을 잘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란 본질을 생각해야죠.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도 본질에 집중한 덕분입니다. 인터넷 강의를 시작할 때 학생들이 왜 수학 점수를 잘 못 받는지를 오래 고민했어요. 그 이유 중 하나로 대부분 이차함수 개념을 외우기만 하고 이해하지 못해서 삼차, 사차함수 문제를 못 푸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고3을 대상으로 이차함수 개념 강의를 시작했는데 대박이 났어요. 개강 전엔 고3에게 개념 강의는 너무 쉬워서 수요가 적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말이지요.
3교시 : 인생 수업 / 원하는 대학 가면 행복할 거라고? 착각이야!
Q. 강사님은 ‘계획한 대로 풀리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아’, ‘이 세상에 90%는 열심히 안 한다’, ‘운 핑계는 실패자들의 변명이다’ 같은 인생의 쓴소리를 강의에서 하곤 해요. 이런 쓴소리가 담긴 영상을 모아놓은 채널도 있어요.
성인이 된 뒤에 어른들한테 큰 배신감을 느꼈거든요. 제 수업을 듣는 학생은 일찌감치 현실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을 준비했으면 했어요. 주변 어른이 대학만 가면, 어학연수만 가면, 취직만 하면 행복할 거라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 가졌던 꿈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여러 일을 겪으면서 전화 통화 공포증이 생겼을 만큼 사람을 두려워하게 됐어요. 인생에서 불안하고 힘든 일은 계속 일어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고 알려주고 싶었어요.
Q. 2009년부터 EBS 강의를 쭉 하고 계시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제 직업 자체에 ‘원죄’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계에 부담이 갈 수 있는 사교육비로 먹고 살고 있고, 제 일이 국가의 큰 발전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회에 조금 더 기여하기 위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EBS 강의를 해오고 있어요. 제가 정화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EBS 강의에서 한 말은 학생들이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주더라고요. 사설 교육기관에서 어떤 말을 하면 ‘돈 벌려고 저런 말을 하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EBS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EBS에 그대로 기부하고 있어요.
Q. 백반집, 인디밴드 소극장도 차려봤고 급기야 2020년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고 앨범도 냈어요.
저는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에요. 수학 강사 외에 뭐 하나 제대로 성공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해봤다는 것에 만족해요. 노래는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어요. 지금도 가수 육중완 씨에게 일주일에 두세 번 보컬 레슨을 받습니다. 제가 있는 공간에는 항상 피아노가 있어요. 이렇게 수학만큼 음악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그런데 영 실력이 늘지 않네요
Q. 앞으로의 목표를 말해주세요.
제 목표는 우리나라에서 수포자를 없애는 거예요. 강의 수강자 중 전년도 수능이나 올해 모의고사 대비 성적이 크게 향상된 학생을 선정해 장학금을 주는 제도인 ‘위너스 클럽’을 14년째 운영하고 있어요. 코로나 전에는 무료로 수학 강의를 진행하고 수학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수학을 향해 사람들이 갖고 있던 편견을 없애고 싶습니다.
2005년 인터넷 강의를 시작할 즈음에 꾼 꿈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사람이 북적이는 길거리에 대통령 차가 지나가는 행렬을 보고 있었는데요. 당시 故노무현 대통령 정부 시절이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갈라서더니 대통령 차에서 노 대통령이 내려서 저벅저벅 제게 걸어오는 거예요. 그러더니 제 손을 딱 잡더니, “우리 아이들 수학 좀 잘 가르쳐 주이소”하더라고요. 잠에서 깼는데 너무 생생했어요. 수학 강사, 어쩌면 제 운명 아닐까요?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해보려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