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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Math] 수식과 그래프로 캔버스 채우는 화가 김현우

 

내용도 모르는 수식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번 인터뷰를 하며 기자 스스로에게 처음 건넨 질문이다. 당연히 내용을 알고 봐야 수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운증후군을 앓는 화가 김현우 작가를 만나고서 그 생각에 의심의 싹이 돋았다. 학창시절 수업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던 김 작가는 “수학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고 당당히 이야기한다. 그때 익힌 수식과 그래프가 아름답다고 여겨 이를 이용한 그림 연작물인 ‘수학 드로잉 시리즈’를 그린다. 김 작가는 수학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만났을까. 벚꽃의 꽃망울이 하나둘 터지던 3월, 경기 하남시에 있는 김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1 기자의 실수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가 작업 중인 캔버스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연두색, 노란색, 빨간색 등의 아크릴 물감으로 파도가 일렁이듯 칠한 그림이었다. 그 위엔 마커펜으로 수식과 그래프가 하나씩 채워져 있었다. 이른바 ‘수학 드로잉 시리즈’ 중 하나다. 

 

Q. 작가님, 만나서 영광이에요. 그럼 인터뷰 진행해볼게요. 첫 질문.

A. 안녕하세요? 저는 김현우입니다. 1995년 3월 4일에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어요.

 

아차차. 작업실에 놓인 그림에 넋이 나가 김 작가의 이야기를 빨리 듣고 싶은 나머지, 어머니께 미리 들은 그의 습관을 고려하지 못했다. 그는 낯선 상황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반드시 자기소개를 하며 여유를 둔다. 할 일을 마친 그는 기자가 미리 보낸 질문 하나하나에 손수 쓴 답을 천천히 읽으며 인터뷰에 응했다.

 

 

#2  그냥, 수학이 좋아서

 

 Q. 수학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A. 제가 서울 방산고등학교 다닐 때 수학 시간을 가장 좋아했어요.

 

 

김 작가에게 수학은 ‘좋은 기억’이다. 학창시절 선생님께 수업을 잘 듣는다고 칭찬을 가장 많이 받은 게 수학 시간이다. 칭찬한 선생님 이름을 ‘홍수현 쌤’이라고 또렷이 기억할 정도다. 물론 수업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김 작가의 눈에 비친 칠판을 가득 채운 수식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기호와 숫자로 이뤄진 수식만으로 전 세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것도 멋지다고 했다. 그래서 김 작가는 계속 썼다. 수업에 등장한 도형, 선, 기호, 숫자를 공책에 신나게 써내려 갔다. 그렇게 쓴 공책이 수십 권이다. 그의 어머니 김성원 씨는 “수학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서 수학을 어렵지 않게 느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학에 관한 좋은 기억이 뭐라고?’라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그에게 기억은 창작활동의 원천이자 살아가는 힘이다. 어릴 때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던 그는 수술과 입원을 반복해야만 했다. 이런 힘든 순간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행복했던 기억은 그를 단단히 지탱했다. 

 

하지만 당시 김 작가의 부모는 그의 수학 그림 활동이 못마땅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현우가 무얼 해서 먹고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느라 하루하루 피가 말랐기 때문이다. 다른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처럼 밥벌이를 할 기술을 익히길 바랐다. 커피를 내리고, 소켓을 끼우는 직업교육을 시켜봤지만, 번번이 지루해 하고, 공책에 수식, 음표 등을 그리기 바빴다. 심지어 어머니가 커피 만드는 법을 기록하라고 사준 노트에 ‘바리스타 수학’이라고 제목을 적고 그림만 그렸다.

 

#3  먼지 쌓인 노트에 주목하라

 

Q. 어머님께 여쭤볼게요. 그럼 김 작가님을 전업 작가를 시켜야겠다고 언제 처음 결심하셨어요?

A. 현우가 버리지 못하게 해서 쌓여만 가던 공책들을 다시 보면서부터예요.

 

‘먼지 쌓인 노트에 주목하라.’

 

2015년 어머니 김 씨는 우연히 발달장애 아티스트 지원단체 ‘로사이드’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때 메인 화면에 있는 이 글귀를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아이가 끄적거린 것에 예술성의 실마리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길로 서울특별시 북부병원에서 환자 초상화를 그려주는 로사이드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김 작가는 한 달에 두 번 병원을 찾아 수십 명의 초상화를 그렸다. 초상화에 대한 환자들의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라 병원에서 김 작가의 작품만 모아 개인전을 열어줬다. 

 

개인전을 치르며, 김 씨는 ‘어쩌면 현우가 좋아하는 그림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겠다’고 처음 생각했다. 이후 김 작가와 부모는 함께 수식이 그려진 공책 몇 장을 찢어 캔버스 위에 다른 요소와 함께 멋스럽게 올려봤다. 그랬더니 조금 변형하면 꽤 멋진 작품이 될 것 같았고, 그게 수학 드로잉의 시작이다. 공책에서 캔버스로, 연필에서 아크릴 물감과 마커펜으로 옮겨졌다. 수학 드로잉 외에도 네모를 이용해 픽셀 그림을 그린다. 

 

 

#4  하루 알람만 46개

 

‘띠리리리, 띠리리리.’ 인터뷰를 시작한지 1시간 20분이 지났을 무렵, 오후 3시 20분. 느닷없이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다. 김 작가는 하던 말을 바로 멈추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쫙 뻗었다. “아멘!” 그렇게 10분 후에 또 ‘띠리리리, 띠리리리’ 알람 소리가 났다.

 

Q. 하하, 알람이 자꾸 울리네요.

A. 제가 일어나고, 산책하고, 샤워하고 이걸 알람으로 설정해 놨습니다. (알람 설정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며) 바로 이겁니다

 

확인해보니 진짜 하루에 설정한 알람만 무려 46개. 새벽 6시에 일어나 작업하고, 밥 먹고, 밤 11시 반에 잠들 때까지 그의 하루가 46개의 단위로 쪼개져 있었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작업하다 보니 수학 드로잉은 1주일에 1개, 픽셀 그림은 하루에 2개씩 완성한다. ‘모범생 화가’인 셈이다. 물론 캔버스, 종이, 물감 등 재룟값이 만만치 않게 든다.

 

그럼에도 김 작가의 부모는 그가 마음껏 그리게 둔다. 김 작가는 그림을 그리며 안정감을 얻어서 하루라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많은 작품마다 색감과 구도가 다 다르다. 

 

어머니 김 씨는 “한 전문가가 현우는 작품 하나를 그리며 자신이 원하는 시각적인 만족감을 다 얻었기 때문에 비슷한 작품을 그리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만족을 찾아 떠나는 셈이다. 그래서 화풍이 조금씩 계속 바뀐다. 붓 대신 나무젓가락으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먹물로도 그린다. 이 작품을 모아 지금까지 개인전을 14차례나 열었다.

 

그리기 외에도 김 작가가 매일 빼놓지 않는 작업이 있다. 바로 글쓰기. 어린 시절 병원과 집만 오갔던 터라 모든 것을 글로 배웠다. 많이 읽어서 그런지 글을 쓰는 작업도 좋아한다. 시도 쓰고 작품 이름도 다 직접 단다. 학생 시절부터 가장 즐기는 건 주변 사람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을 쓰고 이들의 관계도를 그리는 거다. 

 

“보시다시피 현우는 사람들 속에 섞여 대화하기 어려워요. 관계를 맺기도 힘들죠. 하지만 관계를 맺고 싶은 잠재 욕구는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누가 누구의 친구고,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아내이고를 공책에 그리면서 나름대로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 같아요. 이게 현우에게 소중한 행위였다는 걸, 꽤 나중에 알아서 참 미안했어요.”(김 씨)

 

 

#5  수학은 ‘므네모시네’

 

Q. 작가님께 수학은 무엇인가요?

A. 수학은 ‘므네모시네’입니다. 므네모시네예요.

 

므네모시네? 생소한 이름에 당황했다. 이내 김 작가로부터 므네모시네가 ‘기억’이 인격화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수학과 관련한 기억은 수학 수업뿐이 아니다. 3살 아래 동생 현서도 있다. 동생은 어린 시절 영재원을 다녔을 정도로 수학을 좋아했다. 거실엔 수학 문제집과 <;수학동아>;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부모의 관심은 병원을 갈 일이 많았던 김 작가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동생이 사춘기를 심하게 겪기도 했다. 김 작가는 그런 동생을 지켜보며 늘 미안해했다. 어쩌면 수학을 주제로 그리는 건 동생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 아버지와 인터뷰 사진을 찍을 때도 자리에 동생이 없음에도 “동생도 같이 찍어줘요. 제 동생”이라며 수차례 동생을 언급했다.

 

“동생이 수학 좋아해요. 동생이 제 수학 드로잉이 감동이래요. 제가 <;수학동아>;에 나오면 동생도 좋아할 것 같아요.”

 

#6 무조건 파이팅!

 

Q. 작가님, 앞으로의 계획이 뭐예요? 

A. 2024년에 결혼하고 여행도 갈 것입니다. 2027년에 열릴 전시도 기획할 거예요. 저는 ‘김 큐총(총괄 큐레이터)’입니다

 

올해 캐나다와 우리나라가 수교한 지 6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김 작가는 캐나다와 우리나라를 오가며 전시를 열 예정이다. 앞으로 작가를 넘어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버지 김도석 씨는 “저희가 없으면 현우가 홀로 돈을 벌며 살아야 하잖나. 처음엔 화가가 그 수단이 될 수 있을지 정말 많이 의심했다. 지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조금 마음이 놓인다”면서도, “행복한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건강이 허락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작가에게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를 물었다. 미리 보낸 질문이 아니라 즉석에서 답을 생각해야 했다. 2초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후배들아! 음, 열심히 공부하고 무, 무조건 파이팅이다!” 

 

2023년 05월 수학동아 정보

  • 이채린 기자
  • 사진

    임익순
  • 디자인

    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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