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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별 인터뷰 시리즈 1. 최초를 넘어 최고로

‘최초’라는 수식어는 항상 책임감이 따른다는 점에서 그 무게가 엄청나지요. 여기 수학을 밑거름으로 최초라는 이름을 따낸 이들이 있습니다. 창업 경험을 발판으로 기업가에게 ‘찐 도움’을 주는 사람부터 우리나라 금융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 남성이 대부분인 곳에서 여성으로서 첫 발걸음을 뗀 인물까지. 최초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를 위해 나아가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발전을 돕는 정부 부처는 약 26년 역사를 지닌 중소벤처기업부예요. 올해 5월 부임한 이영 장관님은 최초의 창업가 출신 중소벤처기업부 수장이에요.

 

2000년 이 장관님은 정보기술(IT) 보안 벤처기업인 ‘테르텐’을 창업했어요. 당시 해킹, 개인정보 유출 같은 사건이 계속되면서 사이버보안이 더욱 중요해졌고 테르텐은 승승장구했습니다. 이어 2020년 ‘중소기업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비례대표로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고, 이젠 시야를 넓혀 지금의 자리까지 왔어요.

 

이런 이 장관님의 화려한 이력 뒤에는 수학이 있어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KAIST 수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보안 분야에 첫발을 디뎠거든요. 사실 처음엔 ‘첫사랑에 실연 당한 심정’으로 수학과 만났대요.

 

“물리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전기대학*에 지원할 때 떨어지면서 ‘물리학과만 빼고 지원할 거야’라는 심정으로 후기대학에 수학과로 지원했어요. 석사 과정에 진학하면서 수학을 기본으로 하는 암호학을 만나 너무 재밌어서 완전 빠졌지요. 그러다 전공에 관련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일을 하고 싶어 창업했어요.”

 

수학을 공부한 힘은 이 장관님이 대학을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대요. 수학을 하면서 논리력, 사고력을 훈련한 덕분에 사업이든 정치든 현안을 빨리 분석하고 적응할 수 있었거든요. 실제로 장관님은 예산·법안 심사 등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적인 의사 판단을 하거나 대응전략을 세우는 것이 어렵지 않대요. 그래프나 수를 신속하게 분석해 객관적인 해결점을 제시할 수 있으니까요.

 

“수학을 공부하면 모든 학문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과 통찰력이 생겨요. <;수학동아>; 독자들도 수학이 주는 혜택을 맘껏 누리길 바랍니다. 또 내 삶이 깊어지고 충만해지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답니다.”
 

 

 

“교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강순이 교수님이 강원대학교 수학과의 첫 여성 교수로 부임했던 2011년, 연구실로 한 수학과 여학생이 찾아와 이렇게 물었어요. 교수님은 “그 학생이 지금 수학자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보며 여성으로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을까요?”라고 말했어요.

 

웃으며 말했지만 강 교수님이 여기까지 순탄히 오른 건 아니에요.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기까지 무려 10여 년이 걸렸거든요. 박사 졸업 후 자녀 양육에 전념하느라 전처럼 연구에 몰입하기 어려웠던 거예요. 강 교수님은 그때를 아이를 키우면서 드는 행복감과 수학자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섞인 시기라고 밝혔어요.

 

“시간이 흘러 자녀들이 자라면서 수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왔을 때 무엇보다 집중했어요. 수학의 장점은 다른 사람이 미처 공략하지 못한 문제를 언제든 발견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저는 자신 있는 문제를 발견했고 다른 수학자와 교류하며 그동안 놓친 부분을 메꾸면서, 하고 싶었던 연구를 이어갔답니다.”

 

강 교수님은 특히 인도의 천재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이 남긴 연구를 하며 여러 편의 논문을 냈어요. 라마누잔의 연구 양이 방대할 뿐 아니라 오늘날의 양자물리학, 천문학과 큰 연관이 있을 정도로 깊이 있어서 감탄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강 교수님은 수학자를 꿈꾸는 학생에게 조언을 남겼어요.

 

“수학자는 다양합니다. 수십 년 된 난제에 도전하는 수학자부터 지역의 후학을 양성하는 데 헌신하는 수학자도 있지요. 수학자로서 어떤 꿈을 꾸든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해나가십시오. 그러다 보면 본인이 갈 수밖에 없는 길에 서 있을 겁니다. 가끔 절망하겠지만, 어떤 직업을 가져도 그런 시기는 있지요. 그러나 수학이 주는 희망과 명료한 기쁨 또한 그것에 대비해 반드시 커요.”

 

 

 

“은행에서 8년 동안 일할 때 늘 궁금했어요. 대출을 받을 때 금리는 제1금융권인 은행에선 저금리인데, 왜 제2금융권인 증권회사, 보험회사나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로 가면 20% 이상인 고금리로 확 올라갈까? 중금리를 제공하는 곳은 왜 없을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창업을 결심했고 중금리를 상징하는 ‘8퍼센트’로 회사 이름도 지었어요.”

 

이효진 8퍼센트 대표님은 2014년 창업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어요. 8퍼센트는 우리나라 1호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온투업) 회사예요. 온투업은 말 그대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대출을 희망하는 사람과 투자자를 직접 연결해 주는 새로운 금융업을 말합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직거래하기 때문에 기존 제3금융권보다 금리가 낮고, 투자자는 더 높은 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과학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이 대표님은 회사를 운영하는 매 과정의 기반엔 수학이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 때 배운 수학은 무언가를 정의하고, 어떤 가설을 세우고, 문제를 찾고 이를 계속 반복하며 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대요. 사업에서도 똑같이 이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찾고, 어떤 상품을 누구에게 주면 좋을지 가설을 세우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고객의 반응을 살피니까요.

 

이 대표님은 금융 분야에서는 수학과 출신이 확실히 유리하다고 말해요. 사회에 나가면 전공과 관계없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필요한 지식은 직장에 들어가서 새로 배우면 되지만 수학은 그러기 쉽지 않다는 의미예요.

 

“금융의 기초는 수학을 기반으로 하는 모델링이기 때문에 수학을 잘할수록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수학은 학교 밖에서 쉽게 배울 수 없는 학문이잖아요.”

 

수학은 이 대표님에게 ‘마음의 고향’이에요. 그래서 언젠가 지금 일의 여정이 끝나면 수학책을 다시 펼쳐 마음껏 공부하고 싶다고 합니다.

 

 

함께 입사한 동기 78명 중 내가 단 1명의 여성이라면? 국방과학연구소 여성 연구원 1호인 주성진 수석연구원님이 실제로 겪었던 상황이랍니다.

 

한 문제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는 점이 좋아 대학 전공으로 선택한 수학! 특히 논리체계가 중요한 ‘해석학(함수의 연속성을 수량화해 연구하는 수학 분야)’에 매료됐어요. 1989년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우연히 병역 특례 기관이라 남성들에게 꿈의 직장인 국방과학연구소에서 해석학을 전공한 사람을 뽑는다는 채용 공고를 보게 돼요.

 

“국방과학연구소는 항상 남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는데, 그땐 그 규정이 빠진 채 공고가 났더라고요. 직접 전화해서 ‘혹시 여성도 뽑는다는 말인가요?’라고 물어봤어요. ‘여성도 뽑도록 규정이 바뀌었다’고 답변을 받아서 바로 지원했지요.”

 

최종 합격한 주 연구원님은 ‘내가 잘해야 후배로 많은 여성 연구원이 들어올 수 있겠구나’라는 책임감을 가졌어요. 그렇게 연구소에서 맡은 첫 업무는 무기의 진동 연구. 무기는 진동에 따라 탄이 목표물을 저격하는 정확도가 달라져 진동을 잘 조절해야 해요. 무기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 걱정했지만 이내 ‘일단 한 번 해 보자!’라는 심정으로 연구소 도서관에 거의 매일 출석했어요. 무기에 관한 국내외 리포트를 읽고 또 읽으며 10여 년 동안 연구에 매진하다 보니, 2005년 훌륭한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에 수여하는 ‘국방과학상’을 받을 정도로 전문가가 됐답니다. 그때 그를 빛나게 해 준 건 ‘수학’이었어요. 왜냐하면 주 연구원님이 쓰는 논문은 항상 수학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그 결과가 더 정확하고 논리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주 연구원님은 남성이 많은 조직에서 여성이라는 점이 장점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어요.

 

“발표자 5명 중 1명이 여성이라면, 사람들이 누구를 더 기억할까요? 여성이에요. 눈에 띄기 때문에 오히려 남성보다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지요. 단 기회가 왔을 때 바로 잡으려면 몇 배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2016년 70여 년 역사의 대한수학회(수학이 발전하도록 돕는 수학자 단체)에서 첫 여성 회장이 나왔습니다. 바로 이향숙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 교수님이었어요.

 

2014년 이 교수님이 조직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던 서울 ICM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면서 당시 수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매우 높았는데요. 이를 발판 삼아 수학계를 더 키워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이 교수님이 이를 가능케 할 인물이라는 의견이 나와 회장으로 선출된 거예요.

 

“대한수학회를 포함해 여러 이공계 학회 중에서도 제가 첫 여성 회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기자들이 말해줘서 알게 됐어요(웃음). 여성 수학자로서 책임감이 더 들면서, ‘여성 수학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기회를 늘리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임기 동안 산업수학을 발전시키고 수학자의 연구비를 늘리려고 애썼을 뿐 아니라 수학 교육에도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2018년 당시 대학 수학능력시험(수능) 수학 출제 범위에서 기하가 빠지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이 교수님은 연구자가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보직을 맡는 것은 사회적인 책무라고 생각해요. 연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누군가는 보직을 맡으며 여러 정책에 관여해야 연구자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다고 여겨서예요. 또한 교수님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도 연구 못지 않게 뿌듯하고 의미 있는 일인데요. 대학원 제자들이 훌륭한 논문을 발표했을 때, 강의에서 수학이라는 가치 있는 학문의 즐거움을 전달할 때 수학자로서 더없이 뿌듯하다고 해요.

 

“어려서부터 우리는 수학을 학습하며 논리력, 분석력, 문제해결력, 창의력 등을 키울 수 있습니다. 수능만을 위한 수학 공부가 아닌 내 ‘생각의 힘’을 키우는 수학 공부를 학창시절부터 하길 바랍니다. 생각의 힘을 키우면 미래에 여러 분야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많은 일을 할 수 있거든요.”

 

 

한국여성수리과학회(KWMS)와 엔씨소프트가 창립한 엔씨문화재단은 업적이 뛰어난 만 40세 이하의 우리나라 젊은 여성수학자를 지원하기 위해 2017년 ‘젊은여성수학자상’을 만들었습니다. 배명진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님이 이 상의 최초 수상자예요. 배 교수님은 기체 역학에 관한 오랜 난제인 ‘프란틀 추측’을 약 8년에 걸쳐 연구한 끝에 해결한 공을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어요.

 

배 교수님은 박사후 연구원이던 2009년 프란틀 추측에 도전했어요. 문제를 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이미 갖고 있어서 금방 답을 찾을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어요.

 

“불안했어요. 한 문제만 몇 년째 들고 있으니 학계에서 고립될 것 같았지요. 포기하고도 싶었지요. 그렇지만 공들인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계속했어요. 젊은여성수학자상 덕분에 내 연구의 의미를 알아주는 곳이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지요.”

 

이 경험 덕분에 ‘시간을 들인 만큼 문제는 풀린다’는 믿음을 갖게 된 배 교수님은 현재 또 다른 문제를 푸는 데 열중하고 있어요. 배 교수님에게 수학이란 무엇인지 물으니 놀랍게도 ‘두려움’이라고 말했어요. 수학 문제를 처음 대할 때 다가오는 감정이 두려움이래요. 하지만 연구를 할수록 지금껏 알던 지식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져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 있대요. 그럴 때 너무나 경이로워서 소름이 돋을 정도라네요. 두려운 순간이 90%지만, 경이로운 그 10%의 순간이 너무 매력적이라 수학을 놓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교수님의 꿈은 평생 수학만 하는 걸까요? 아니오. 교수님은 60세가 넘으면 요가 강사로 제2의 인생을 사실 거라고 단언했어요. “지금도 매일 새벽 요가 수련을 할 정도로 요가를 좋아한다”면서, “남은 인생은 수학자가 아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요”라고 밝혔어요.

 

 

이들이 현재의 최초를 넘어 얼마나 많이 또 다른 최초를 만들어가게 될까요? 그때마다 수학이 어떤 원동력이 되어줄지 궁금해집니다.   

 

 

*용어 설명

전기대학 : 1990년대 대학제도로 각 대학 별로 11월에 시험을 보는 전기 대학과 2월에 시험을 보는 후기 대학으로 나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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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수학동아 정보

  • 이채린 기자
  • 사진

    GIB
  • 일러스트

    박상훈
  • 디자인

    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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