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서울 성수동의 한 식당에서 2022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수학과 교수님(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과 폴리매스 회원들이 툭 터놓고 수학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멘토링 행사를 진행했어요. 이 자리엔 허 교수님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 수학자인 김재훈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님도 함께해 인생의 선배로서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전해주셨어요.
멘토링의 첫 순서는 프랑스 국민 보드게임으로 유명한 카드게임인 ‘도블’을 즐기는 시간이었어요. 허 교수님은 “평소 친구나 가족과 보드게임을 자주 한다”고 이야기한 뒤 김 교수님을 향해 “오늘 하는 게임에 어떤 수학이 있는지 알려주세요”라며 물었어요. 김 교수님은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바로 “조합론 문제를 풀 때 쓰는 기하학 개념인 ‘사영 평면’을 응용한 게임”이라고 답하며 왜 그런지 자세히 설명했어요.
이렇게 수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게임에서 수학자들이 역시 우승했을까요? 승리의 영광은 엄청난 순발력으로 양우진 학생이 차지했어요. 게임을 통해 허 교수님에게 다가간 뒤 본격적으로 멘토링을 시작했어요.
Q . 윤석영 : 문제가 안 풀릴 때 어떻게 하세요?
A. 허준이 : 일단 포기해요(웃음). 그런데 어떤 식으로 연구했다가 안 됐는지 꼭 적어요. 그 과정을 잘 기억하기 위해서지요. 특히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했을 땐 꼭 적어둡니다. 다음에 시도할 방법을 결정하는 기반이 되거든요.
Q . 백진언 : 허 교수님은 논문을 잘 쓴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저도 언어로 생각을 잘 표현하고 싶어요.
A. 김재훈 : 저는 생각이 빠른 편이라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수학문제를 풀 때도 풀이 과정을 적지 않고 푸는 경우가 많았어요. 언어로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안 만들었더니 어른이 되어서도 잘 안하게 되고, 마냥 글을 잘 쓰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부럽더라고요. 허 교수님은 저와 달리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여러분도 생각을 언어로 나타내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싫을지라도 꾸준히 연습해 보세요.
Q. 장진우 : 수학은 다른 과목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A. 허준이 : 다 관련돼 있지요. 저는 수학이 이공계로 분류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공계 과목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대상들을 연구해요. 수학은 그렇지 않잖아요. 언어나 철학과 가까운 면이 있어요. 수학은 사람이 우주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Q . 양우진 : 수학을 왜 연구하시나요? 저는 그냥 수학이 재밌습니다. 문제를 풀다 보면 다양한 문제 해결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폴리매스를 통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들을 배우기도 하지요. 그 과정에서 또 새로운 문제를 알게 되고, 같은 과정을 반복해요. 특히 폴리매스에서 저보다 수학을 더 좋아하고 제가 모르는 수학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하는 수학이 멋져 보여서 다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A. 허준이 : 정확히 제가 수학을 할 때 느끼는 심리와 똑같아요! 제 앞에 거대하고 신비한 구조가 앞에 있는 것 같아요. 이 구조를 알기 위해 계속 연구하는데 그 크기가 줄지 않지요. ‘나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라고 느낄 때가 많아요. 그렇지만 앞으로 알아야 할 게 많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려요.
Q. 전준혁 : 수학을 잘하려면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할까요?
A. 허준이 : 콕 찝어 ‘이거예요’라고 말하기 힘들어요. 수학이란 분야는 하나지만, 수학을 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거든요. 그래서 수학을 잘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도 여러 개지요. 질문을 바꿨으면 해요. ‘내가 어떤 방식의 수학을 잘할 수 있고,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로요. 수학을 계속 하고 싶다면 스스로 답을 꼭 찾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