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있나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37살이 돼서야 진로를 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천체사진가인 권오철 작가님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해와 달, 별 등을 품은 하늘을 관측해 사진으로 남깁니다. 하지만 이 직업을 갖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는데요, 3월 10일 수요일에 방영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풀어놓았던 짧은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진로 이야기는 물론, 수학을 이용해 울릉도에서 독도의 일출을 포착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까지,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편집자 주
수학 고민 상담소 ‘수담수담’에서 수학 고민을 함께 나눠요.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할까?’, ‘수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궁금했지만 어디서도 답을 얻지 못했던 수학에 관련한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권오철 작가님은 3월 10일 tvN에서 방송한 유 퀴즈 온 더 블럭 ‘이직의 기술’ 편에 등장할 정도로 수많은 직업을 거쳤습니다.
권 작가님은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소에서 해군 잠수함을 설계하다가 갑자기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잠수함의 기본 설계를 위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어요. 그래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회사에서 잠수함을 설계하는 기본설계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것을 계기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됐습니다. 곧 홈페이지를 만드는 프로그램인 ‘나모 웹에디터ʼ를 만들고, 컬러링, 벨소리 등의 무선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를 관리했죠. 그런 뒤 유선 인터넷의 품질을 관리하는 일도 했습니다. 하지만 행복해지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 모든 직업을 뒤로하고 천체사진가가 됐습니다.
기자 언제부터 별을 관찰해 사진으로 남기는 천체사진가를 꿈꿨나요?
권오철 작가 고등학교 때부터 취미로 별을 봤어요. 하지만 별은 따서 간직할 수 없기에 사진으로 남기려고 사진 찍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취미로 하던 일이 지금은 직업이 됐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선정한 ‘오늘의 천체 사진’에 제 작품이 여러 번 뽑히기도 했죠.
2019년에도 수학동아와 인터뷰했는데, 당시 제가 생각하는 천체사진가에 대해 ‘밤하늘의 경이로움을 다른 이들에게 사진으로 전달하는 행복한 직업’이라고 설명했어요.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 정의한 천체사진가의 의미를 생각하며 일하고 있어요.
기자 사진을 찍을 때도 수학을 사용하나요?
권오철 작가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하기 때문에 별이 한 시간에 회전하는 각도는 15°(= 360° ÷ 24시간) 정도예요. 실제로 북극성을 중심으로 도는 별 사진을 찍을 때는 손을 쭉 뻗고 손바닥을 폅니다. 그러면 한 뼘이 15° 정도 된다는 것을 이용해서 별을 몇 시간 동안 촬영할지, 어떤 경로로 찍을지를 계획하죠.
요즘에는 천체투영관에서 보는 가상현실(VR) 영상도 만들고 있어요. 밤하늘을 VR로 담으려면 360°를 모두 찍어야 하는데, 최적의 카메라 구성을 위해 수학을 활용합니다. 카메라 한 대당 볼 수 있는 각도가 가로로 100° 정도라면, 여러 사진을 이어붙이기 위해서는 사진마다 겹치는 부분이 20%는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약 4대의 카메라가 필요하죠. 주어진 길이의 도로에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수를 심으려면 나무가 몇 그루 필요한지 계산하는 수학 문제와 비슷해요.
독도 일출 포착 비결은 삼각함수
권 작가님은 2014년에 촬영한 울릉도에서 바라본 독도의 일출 사진으로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 사진을 찍게 된 건 조선 시대에 기록된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발견한 몇 줄의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 두 섬이 현의 정동방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가 있다”는 내용으로,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근거죠. 하지만 울릉도에서 90km나 떨어져 있는 독도가 보일 리 없다는 게 일부 일본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권 작가님은 이를 확인하기 위한 사진 촬영에 앞서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보면 얼마나 크게 보일지 계산했습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90km, 독도 에서 서도의 높이는 168.5m, 그리고 울릉도에서 바라본 독도의 폭은 480m 정도라고 두고 그림을 그렸죠.
그럼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볼 때의 시직경을 삼각함수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시직경(θ)은 눈으로 보이는 물체의 크기를 각도로 나타낸 것을 말합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잇는 구간을 밑변이 90km, 높이가 240m인 직각삼각형 두 개라고 나눠 생각합니다. 이때 밑변과 높이의 비 240m/90km를 나타낸 탄젠트(tan(θ/2)) 값은 약 0.002667입니다. 이를 각도에 따라 계산해 놓은 탄젠트 값들과 비교하면 각도가 0.15°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울릉도에서 바라본 독도의 시직경은 0.3° 정도가 나옵니다. 이때 지구에서 바라본 태양의 시직경은 약 0.5°이기 때문에, 해가 떠오르는 위치에 독도를 맞춘다면 해가 독도를 품은 일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떠오를 때를 정확히 포착해 예상 그림과 같은 모습의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습니다.
권 작가님은 “예술적 감각만 있었다면 못 찍었겠지만, 수학에 공학적인 감각을 더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며 그때를 회상했습니다.
수학도 좋지만, 중요한 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권 작가님에게 어릴 때 수학을 좋아했냐고 묻자 곧바로 “최애 과목이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어려울 때도, 많이 틀릴 때도 있었지만, 문제의 답을 맞혔던 경험이 쌓이면서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죠. 그 때문에 수학의 모든 분야를 좋아했는데, 특히 복권 같이 일상생활에서도 적용해볼 수 있는 확률, 통계가 ‘최애 수학’이었다고 꼽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가 3년 동안 같은 반이 될 확률을 계산해 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낮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수학을 좋아하지만 권 작가님이 ‘수학 만능론자’인 것은 아닙니다. 권 작가님은 “실생활에서 수학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물리나 공학, 경영 등 수학이 필요한 학과에 가고 싶다면 수학을 잘하려고 노력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아보라”고 조언했습니다.
학부모의 마음으로 본 수학은?
사실 권 작가님의 아들도 중학교 3학년입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권 작가님은 “아들과 같이 수학 문제집을 풀어보니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놀랐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학교에서 시험문제를 무척 어렵게 내는데, 다음 학년 문제집에 나온 문제들이 많아서 마치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것처럼 느껴져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안타까웠다”고도 했죠.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을 전공한 현자들이 수학을 통해 성취를 느끼고 성장한 것처럼, 몰랐던 걸 알아내는 기쁨을 생각해본다면 수학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엔지니어와 개발자 등 수많은 직업을 거치는 동안 늘 권 작가님 곁에는 수학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수학을 사진에 적용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권 작가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수담수담 온라인 클래스에 찾아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