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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미디어] 음악과 함께 떠나는 영혼들의 여행, 소울

 

초면에 실례인 줄 알지만, 제 말 좀 들어주시겠어요? 
오늘은 제 인생 최고의 날이거든요.
이 감동, 이 기쁨, 이 희열…, 캬! 
말과 글로는 하나도 표현이 안 되네요.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대체 여기가 어디죠? 저 파란 형체들은 다 뭐예요?
에? 발밑에 보이는 저건 지구? 지이-구?! 그럼 지금 여기, 지구 밖이에요? 
전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 
뉴욕으로 보내 줘요! 당장!

 

 

인생 최고의 날, ‘영혼’이 되다니!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던 길이었는데! 거길 지날 때 누군가 뒤통수에 외치던 ‘조심하라!’는 경고를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좋은 날, 그만 맨홀에 빠져버렸어요.


기다리면 누군가 구하러 오는 단순한 사고인 줄 알았는데 깨어보니 모든 게 달라져 있었어요. 아니 글쎄, 제가 푸르딩딩한 ‘소울(영혼)’이 돼 있더라고요. 


네~, 맞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영혼. 제 영혼을 담을 몸뚱이가 없어서 어떤 것도 만질 수 없고,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단 한 점도 먹을 수 없는 아주 엉망인 상태 말이에요.


맨홀에 빠져 아주 긴 터널을 지나 도착한 컴컴한 공간은 낯설고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곳이었어요. 눈앞에 꽤 높은 계단이 놓여 있었는데, 그 계단을 따라 오르면 ‘머나먼 저세상’이 열린대요. ‘꺅~,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영혼들의 대열에서 맨 뒤로 가려고 도망쳤어요. 

 


그러다 발을 헛디뎠는데, 다른 공간으로 떨어졌지 뭐예요. 처음엔 이제 진짜 끝이구나 싶은 거예요. 그래서 여기가 천국이냐고 물었는데, 모두 아니라길래 그럼 지옥인가보다 했죠. 근데 다행히 지옥도 아니래요. 이 낯선 공간은 무려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는 군요.


태어나기 전, 각각의 영혼들이 삶을 준비하는 공간이 있었다니. 여기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작은 친구들은 바로 탄생을 준비하는 영혼들이었어요. 아직 이름도 없이 ‘번호’로 불리더라고요. 여기서 지구로 가기 전 각자 독특한 자신만의 성격과 관심사, 기질과 특징을 결정한대요. 


그런데 하필 그중에서 가장 괴짜 같은 녀석을 만났어요. 22라나? 수많은 영혼 중에 지구 따위는 평생 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 친구였지요. 지금 이 공간에서 영혼인 상태가 가장 평온하대요. 여기 살면서 틈틈이 스도쿠 퍼즐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취미라면서요. 이 세계에선 우리가 위인전에서 보던 링컨, 간디, 테레사 수녀도 멘토가 되길 포기한 문제아로 유명했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지구로 다시 돌아가려면 이 친구의 도움이 절실해요. 재즈 이야기부터 하나씩 들려주며 지구공포증을 치료해야겠어요. 

 

재즈의 즉흥연주 비결은 경우의 수


뉴욕 재즈카페 거리의 중심, 하프 노트(HALF NOTE)는 제 꿈의 무대였어요. 그것도 재즈계의 전설인 도로테아 윌리엄스 쿼텟 오디션을 통과했다니까요.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시대 최고의 재즈 색소폰 연주자예요. 그의 혼이 담긴 연주와 노래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죠. 


재즈는 어려운 음악 아니냐고요? 어른들이 가는 컴컴한 재즈바에서나 들릴 것 같다고요? 그런 편견은 잠시 넣어둬요. 재즈가 얼마나 매력적인데요. 특히 꽤 수학적이지요. 애니메이션 속 제 연주만 들어봐도 그런 편견은 싹 사라질 거예요.


재즈에서는 같은 곡이라도 똑같은 연주는 하나도 없어요. 연주자들끼리 전체 흐름만 약속하고 멜로디와 박자는 즉석에서 결정하거든요. 저 같은 피아니스트는 공연할 때마다 88개의 건반으로 매번 다른 곡을 선보일 때가 많아요. 도로테아의 오디션도 마찬가지였어요. 도로테아가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몰랐지만, 그 멜로디를 듣고 제 느낌을 더해 함께 연주했죠.


재즈는 이런 즉흥연주가 핵심인데, 즉흥연주라고 해서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 치는 건 아니에요.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악보에서 각 마디마다 정해진 코드(화음)를 누르는데, 코드는 서로 다른 몇 개의 음을 동시에 누르는 걸 말해요. 즉흥연주는 이 코드라는 뼈대에 구성이라는 옷을 입히는 원리예요. 여기서 구성을 달리한다는 건, 함께 누르는 음을 약간씩 달리하기도 하고 분위기나 다른 연주자의 연주에 맞게 박자를 쪼개서 연주자의 음악적인 감각을 덧입히는 걸 말해요. 박자를 쪼갠다는 말은 예를 들어 0.5초 간격으로 1번씩 누르던 건반을 0.25초에 한 번씩으로 잘게 나눠 누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이때 만약 한 마디에 3개의 코드를 눌러야 하고, 각 코드마다 3개씩 서로 다른 연주법이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러면 이때 서로 다른 27개(33=3×3×3)의 구성을 떠올릴 수 있어요. 그런데 노래 한 곡은 한두 마디로 이뤄져 있지 않으니, 최소 16마디만 있어도 꽤 다양한 구성을 짤 수 있답니다. 또 같은 구성도 연주법을 달리하면 그때마다 다른 느낌을 낼 수 있어요. 

 

알고리듬이 들려주는 즉흥연주


재즈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최근에는 분야를 넘나드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음악의 언어인 리듬과 멜로디, 코드와 박자 등을 학습해 즉흥 재즈 연주곡을 만드는 거예요.


즉흥연주는 다음을 예측하기 어렵고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게 큰 특징인데, 놀랍게도 수학자들은 규칙이 정해진 알고리듬으로 불규칙한 즉흥연주를 새로 만들어 내요. 이때 빅데이터 분석 분야에서 활용하는 ‘클러스터링 알고리듬’을 많이 사용해요. 


클러스터링 알고리듬은 복잡한 데이터를 비슷한 종류끼리 분류할 때 아주 유용하게 쓰입니다. 예를 들어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는 코드로 나타내면 ‘CCDCFE’로 쓸 수 있습니다. 이 코드를 다음과 같이 1개씩, 2개씩, 3개씩 연속한 코드로 묶어 가능한 조합을 구하고, 이중에서 조화를 이루는 코드 조합을 찾아 실제 연주에 활용하는 방식이에요.

 


이런 클러스터링 알고리듬은 실제로 유전자 분석, 패턴 분석, 소셜네트워크 분석, 도시계획, 의학,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흩어져 있는 빅데이터를 유의미한 데이터로 가공하는 데 활용하고 있어요. 성취도가 제각각인 친구들을 소그룹으로 묶어 학업 성취도에 맞는 분반을 만들거나, 각 사람의 게임 실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활동 기록만을 분석해 팀을 만드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에도 쓰이는 매력적인 알고리듬이에요. 


그밖에도 수학자들은 즉흥적인 재즈 연주의 특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불규칙적인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데 쓸 수 있는 알고리듬을 만들기도 한대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미래가 불확실한 저 같은 ‘긱’ 연주자에게 재즈가 오아시스 속 단비 같다면, 재즈는 수학을 만나 더 긱한 매력을 뽐내는 걸지도 몰라요.

 

 

2차원인 듯 3차원인 제리와 테리


아차! 소개를 깜빡한 등장인물이 있네요. 바로 카운슬러 중 사라진 영혼을 찾는 일을 담당하는 영혼 관리자 군단이에요. 특히 제가 지구로 돌아가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테리’예요. 다른 친구들보다 키가 좀 작지만, 자기애가 아주 투철한 친구더라고요. 
게다가 셈에는 어찌나 밝은지. 영혼이 1초에 1.75개씩 머나먼 저세상으로 간다나 뭐라나…. 여기서 그만 절 놓아주면 좋겠는데…, 절대 포기를 안 하네요. 머나먼 저세상으로 넘어가는 영혼이 저렇게나 많은데 저 하나쯤은 눈감아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테리는 종일 상황판 구슬만 만지며 도끼눈으로 영혼을 살피더니 결국 제가 없는 걸 눈치챘어요. 어휴, 무섭게 지구까지 쫓아 내려왔더라니까요. 그러더니 나지막하게 “영혼 하나가 모자라!”라고 읊조리더라고요. 


테리는 모습이 조금 특별해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유명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이 떠올라요. 피카소가 연인인 마리 테레즈 발테르를 그린 몇몇 작품에서 보았던 얼굴과 비슷하네요. 


테리는 마치 피카소 작품에서 표현된 것처럼 2차원* 평면 위에 그린 형태로 보여요. 2차원과 1차원 사이를 넘나들며 존재하는 몽환적인 느낌이랄까요? 지구로 몰래 잠입한 저와 22를 찾으러 온 테리가 1차원인 ‘선’으로 모습을 바꾸고 건물 앞 난간이나 지하철 계단에 걸린 액자 속에 잠입하고 있는 모습을 애니메이션 속에서 직접 확인해보세요! 

 

_ 인터뷰

김선영 픽사 레이아웃 아티스트

“마법같은 화면 구성의 비밀은 창의력과 상상력의 하모니!”

 

레이아웃 아티스트는 화면 속 요소들의 전체 구성을 설계하는 일을 합니다. 김성영 아티스트는 미국의 영화제작사 픽사(Pixar)에서 2013년 ‘몬스터 대학교’를 시작으로 ‘토이스토리4(2019년)’,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2020년)’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소울’ 작업에도 참여한 그에게 ‘소울’의 영상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물어봤습니다.

 

 

Q ‘소울’은 가로 길이가 강조된 2.35:1의 화면비로 제작됐습니다. 작품마다 화면비를 다르게 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통 영화의 주요 캐릭터가 누구인지, 프레임 안에서 캐릭터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화면비를 결정합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1993년)’의 주요 캐릭터는 그 모습이 세로로 긴 공룡이니, 공룡의 움직임을 프레임 안에 잘 담으려고 2.35:1보다 세로 공간을 더 확보한 1.85:1로 만들었어요.
‘소울’의 주인공인 조는 기존 픽사 캐릭터와 조금 달랐어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라서 전체적인 캐릭터의 실루엣은 얇은데, 손발은 크죠. 그러니 조의 전신이나 상반신을 화면 중앙에 놓으면 양쪽 공간이 많이 남아요. 캐릭터 양쪽에 공간이 많이 남으면 화면 전체 구성이 어색할 수밖에 없죠. 이런 어색함을 없애려 조를 중앙에 배치하는 구도를 피하고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시각적 요소들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고층 건물, 나뭇가지, 계단의 난간 등과 같은 것들을 이용해서 말이죠.


Q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자주 하는 등 작업 환경이 바뀌었지만, 유능한 시스템 팀의 지원 덕분에 전반적으로 놀라울 만큼 수월했어요. 픽사에서 일하는 특권 중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답을 찾을 때 혼자 고군분투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동료들과도 쉽게 답을 찾지 못하는 새로운 문제를 만날 때는 잠깐 산책을 나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새로운 시각을 얻으려고 노력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조와 22가 재즈바 앞에서 지구에서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전하려는 메시지와 대사, 분위기가 굉장히 섬세한 장면이거든요. 


카메라의 위치나 렌즈, 움직임이 잘 맞아야 해서 정말 까다로운 작업이었어요. 관객들에게도 우리가 담고자 했던 의도가 잘 전달되면 좋겠어요! 

 

 

 

용어정리

* 2차원 : 일반적으로 점이 만나 선을 이루면 1차원, 선이 만나 면을 이루면 2차원, 면이 만나 공간을 이루면 3차원이라고 말해요. 수학에서 차원이란 각 대상을 그릴 때 필요한 좌표의 개수라고 정의하기도 해요. 소울에서는 평면으로 표현된 카운슬러는 2차원, 주인공 조는 3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2021년 02월 수학동아 정보

  • 염지현(‘십대를 위한 영화 속 수학 인문학 여행’ 저자) 
  •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진행

    김진호 기자 기자
  • 참고자료

    Gillick, J. R. (2009). A Clustering Algorithm for Recombinant Jazz Improvisations. 
  • 디자인

    오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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