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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길 따라 즐기는 수학데이트

발길 따라 수학데이트




 
이번주 토요일엔 ‘화성 데이트’ 어때? 생각보다 많이 걸어야 하니까 편한 신발 신고 나오는 게 좋을 거야. 화성은 북문이 정문인거 알지? 어어, 장안문. 어차피 둘레가 5.7km나 돼서 한 번에 다 못 보니까 이번에는 장안문 근처만 돌자! 응~, 그럼 토요일에 화성행궁 앞 광장에서 만나.

화성, 세계적인 역사 구조물로 인정받다!


2004년 미국토목학회는 화성을 ‘역사적 토목구조물’로 지정해 발표했어요. 화성은 이미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지만, 이 발표를 계기로 더욱 세계적인 조명을 받았답니다. 파나마 운하(1984년), 자유의 여신상(1985년), 에펠 탑(1986년), 수에즈 운하(2003년) 등이 지금까지 선정된 역사적 토목구조물로, 화성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적인 명소로 알려지게 된 셈이라고나 할까요?

미국토목학회와 유네스코가 화성을 우수하게 평가한 건 바로 군사·정치·상업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으면서,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도대체 화성의 어떤 측면을 보고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구조’라고 판단했을까요?

이번 데이트를 통해 과학적이고 실용적 구조를 갖춘 화성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곽 길을 직접 걸으며 꼼꼼히 살펴보는 방법이 최고예요. 성곽 길을 걷다 보면 미국토목학회나 유네스코가 왜 그렇게 극찬했는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의 데이트 코스는 화성행궁의 뒷산인 팔달산(높이 128m) 정상에 있는 서장대에서 출발해 화홍문까지 돌아보는 코스입니다.

서장대에 오르면 가장 먼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화성과 수원 시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요. 서장대는 정조가 화성을 내려다보며 직접 군대를 지휘했던 곳이에요. 2층으로 돼 있으며, 나무와 돌이 알록달록한 단청과 잘 어우러져 지휘소로서의 근엄함을 드러내 보이는 곳이에요. 현재는 많은 관광객이 수원의 야경을 즐기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데이트 코스로도 안성맞춤이지요!



그런데 웬 구멍이 이렇게 많지?
 

이제 화서문으로 출발해 볼까요? 서장대에서 화서문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굽이굽이 부드럽게 이어진 성벽과 소나무로만 둘러싸여 있어요. 그래서인지 잠시나마 성을 지키는 1800년대 조선 병사가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성곽 길을 따라 걷다보면 가장 먼저 여장★마다 뚫려 있는 구멍을 볼 수 있어요. 멈춰 서서 구멍을 통해 바깥을 내려다보세요. 어라? 그런데 아래쪽으로 뚫린 경사의 각도가 다르네요. 가운데 것은 경사가 가파르게 아랫방향으로 뚫려 있는 반면, 양쪽에 있는 구멍 두 개는 수평에 가깝게 뚫려 있어요. 다른 여장으로 옮겨 구멍을 확인해 봐도 마찬가지예요. 도대체 이 구멍의 정체는 무엇이며, 경사각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마리는 이곳이 적을 방어하는 성이라는 데 있어요. 추측건대 몸을 숨긴 채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한 구멍이었을 겁니다. 숨어서 총을 쏘는 곳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 구멍을 총안이라고 부릅니다.



뚫린 각도가 다른 두 구멍에 직접 총을 넣고 쏜다는 상상해 보기로 해요. 구멍으로 바깥을 본 다음, 적의 위치를 예측해 총으로 쏠 수 있는지 여장 너머로 확인해 보세요. 분명한 차이가 느껴지나요?

경사각이 큰 가운데 구멍으로는 성벽 바로 아래까지 다가온 적을 맞출 수 있는 반면, 경사각이 작은 양쪽 구멍으로는 성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을 맞출 수 있답니다. 그래서 가운데 구멍을 근총안, 양쪽 2개의 구멍을 원총안이라고 부릅니다.

이쯤에서 두 총안의 각도가 궁금하지 않나요? 클리노미터★를 꺼내 경사각을 확인해 보면, 보통 원총안은 경사각이 0°~10° 사이이고, 근총안은 38°~45° 사이예요.

성벽 바깥쪽 평지인 바닥에서 대략 4m 높이에 있는 두 가지 총안이 있을 경우, 적을 향해 겨누는 총구의 경사각이 수평방향에 대해 10°와 38°가 되도록 원총안과 근총안에서 각각 총을 쏘면 성벽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병사를 맞출 수 있을까요?
 
[여장★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말하며, ‘여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클리노미터★ 각도를 측정하는 도구 중 하나로, 주로 지질을 조사할 때 사용한다.]



넓은 시야가 확보되는 또 다른 구멍 타구!

어? 여장과 여장 사이에 총안과는 다른 또 다른 구멍이 있군요. 정사각형 모양의 총안과 달리 기다란 세로로 직사각형 모양인 이 구멍을 타구라고 합니다. 총안만으로는 적을 방어하는 것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사실 총안이 수없이 많긴 하지만, 분명 사각지대가 생기는 구조입니다. 그렇다고 여장 위로 머리를 내민 채 적의 동태를 살피는 것도 위험해요.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죠. 이때 타구를 이용하면 적에게 몸을 전혀 노출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급박한 순간에 총이나 화살을 쏠 수 있어요. 총안에 비해 위아래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가깝거나 먼 적병을 쏠 수 있지요. 또 여장의 모서리(타구)는 비스듬하게 잘려 있어 훨씬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도 있답니다.

만일 여장의 모서리(타구)가 90°로 각진 모양이었다면 어땠을까요?
 

5km가 넘는 화성의 성벽에는 ‘원총안, 근총안, 원총안, 타구’가 계속 반복되는 구조로 이뤄져 있어요.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아 몸을 숨길 수 있고, 안에서는 넓은 시야를 통해 적이 어느 위치에 있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지요.



꿩의 생존전략을 빌려 만든‘치’

잠시 멈췄던 발길을 옮기며 화성의 또 다른 면을 살펴봅시다. 성곽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설치된 몇 개의 구조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서장대-서이치-서포루-서일치-서북각루’ 순서로 말이에요.

잠깐만요!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성벽 안쪽이 아닌 바깥쪽으로 튀어나와 있네요! 성벽 안쪽의 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잠시 아래 지도에서 이 건축물들의 위치를 살펴보며, 당시 정약용의 생각을 읽어 보기로 합시다. 각 건축물들이 성벽 바깥쪽으로 튀어나와 있다면? 또 튀어나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만일 튀어나와 있지 않다면 아마도 어느 특정 부분을 공격하는 적을 물리치기가 어려울 수도 있어요.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방향이 한 방향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바깥쪽으로 튀어 나와 있는 경우에는 세 방향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몸을 숨긴 채 말이지요. 즉 이 구조물은 병사들이 더욱 효율적으로 서로 협력해 방어하거나 협공을 할 수 있도록 설치한 거예요.
 

이 구조물 이름 중 서이치, 서일치에서 ‘치’는 ‘꿩’을 뜻한다고 해요.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잘 엿보는 꿩의 생존 전략법을 생각하며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랍니다.
 

화성을 철옹성이라 하는 이유!

여기서 잠깐! 구조물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이유만 알고 간다면 정약용의 위대한 생각을 다 읽었다고 볼 수 없어요. 한 가지 더! 우리가 미처 상상치 못한 또 다른 생각이 숨어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것은 바로, 이 구조물(치) 사이의 간격이에요. 오른쪽의 그림에서 구조물 사이의 간격이 일정해 보이지 않나요? 어떤 기준으로 정했을까요?

잠시 정약용이 되어 상상해 보세요. 아마도 당시의 방어무기인 조총의 사격거리를 기준으로 정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조총의 사격거리는 100보 정도였어요. ‘1보’는 사람이 두 발을 모두 한 걸음씩 움직인 거리로 약 1.2m를 말합니다. 100보면 120m 정도가 됩니다. 실제로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구조물이 120보~140보(144m~168m)의 간격으로 배치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를 화성 전체로 확대해, 성곽 위의 모든 공격시설을 중심으로 원 모양의 수비범위를 그려 봅시다. 정말 ‘물샐 틈 없다~’는 말이 이해되죠? 성을 둘러싸고 2중, 3중의 방어망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따라서 이 방어망 속에는 사각지대가 없어요. 결국 화성은 적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철옹성이었던 거예요!
 

설마 이번 데이트로 화성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이곳의 생활상이나 궁중의식 같은 무형문화재도 살펴봐야 화성이 가진 매력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답니다. 이를 충족시켜줄 곳이 바로 인근에 있는 수원화성박물관이에요. <;화성성역의궤>;와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화성행궁에서 베푼 진찬연의 모형, 공심돈 내부 구조 등 화성에 대한 모든 것이 이곳에 전시돼 있어요. 화성박물관은 성곽 길을 걷기 전이나 후에 꼭 둘러볼 것을 강력 추천합니다.

2015년 07월 수학동아 정보

  • 성큼성큼 수학원정대
  • 진행

    염지현 기자
  • 일러스트

    김경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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