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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과학×음악 콘서트] 수학으로 악보를 그리다!

음악을 잘 모르는 기자는 혼란스러웠습니다. 프랙털을 음악에 접목한 김택수 작곡가의 ‘프래탈리시모!!’를 들으니 위기에 처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거든요. 무거운 음이 조각조각 끊겨서 연주되니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 엄청 빠른 물살 속에서 하염없이 떠내려가는 기분이었어요. 이런 묘한 매력의 음악을 만날 수 있는 ‘과학×음악 콘서트’에 함께 가시죠.

 

 

‘국내 유명 작곡가의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다니!’
2020년 12월 8일 아침 10시,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 신사동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로 향했습니다. 공연기획사 ‘스테이지원’의 주최로 열리는 ‘과학×음악 콘서트’ 사전 녹화를 하는 날이었거든요.


과학과 음악의 조합이 생소하게 느껴진다고요? 2020년 4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연구팀이 코로나19 단백질 구조를 소리로 표현한 음악을 만들어 관심을 모았습니다. 연구팀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에 ‘음향화’ 기술을 이용해 음계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음의 길이와 세기로 3차원 구조의 정보를 담았습니다. 이렇게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를 음악으로 표현하면 항체나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 부위를 보다 직관적이고 빠르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과학 연구에 음악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이번 과학×음악 콘서트처럼 음악에 수학·과학적 아이디어를 접목할 수도 있습니다. 콘서트는 수학의 프랙털, 개미수열, 과학의 극야현상, 기후변화, 끈 이론을 음악으로 나타낸 5곡으로 이뤄졌습니다. 수학 개념과 과학 현상이 어떻게 음악으로 재탄생했는지 알아볼까요?

 

 

김택수 작곡가의 ‘프래탈리시모!!’
2:2:1이 만드는 화음

 

과학×음악 콘서트의 시작은 프랙털을 음악에 녹여낸 김택수 작곡가의 ‘프래탈리시모!!’가 장식했습니다. 프랙털은 부분과 전체가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는 도형을 말합니다. 김 작곡가는 어느 측면에서 봐도 같은 부분이 나타나는 프랙털의 ‘자기 유사성’을 활용해 곡을 만들었습니다.


이 곡은 기자가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느낌이었어요. 부드러운 선율 대신 웅장하고 무거운 음이 조각조각 끊겨서 나왔거든요.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 퍼커션 네 악기가 모두 등장했을 땐 박자가 맞지 않는 것 같아 불안한 기분이 들었죠. 넷이 발을 맞춰 가면 좋을 텐데, 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길을 가는 것 같았어요.


곡에 프랙털을 어떻게 녹였기에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요? 김 작곡가는 작곡 과정에서 2:2:1이라는 임의의 비를 음의 높이, 리듬, 화성 등에 적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연주자가 연주하는 음 사이의 시간 간격을 4초, 4초, 2초로 잡아 2:2:1의 비를 적용했죠. 음과 음 사이의 간격도 온음, 온음, 반음으로 둬 2:2:1의 비를 유지했습니다. ‘도’와 ‘레’의 관계가 온음이고, ‘도’와 ‘도#’의 관계가 반음입니다.
이때 지루함을 덜기 위해 첫 3초는 클라리넷이 연주하고, 다음 3초는 첼로가, 다음 1.5초는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방식으로 악기에 변화를 줬습니다. 곡의 어느 부분을 살펴봐도 2:2:1의 비를 발견할 수 있죠.

 


그렇다고 이 곡이 완벽히 프랙털의 성질을 가지는 건 아닙니다. 엄연히 음악인 만큼 작곡할 때 어느 순간에는 김 작곡가 마음대로 비를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 작곡가는 “곡에 2:2:1이라는 비율을 적용할 때 어떤 부분에는 4초, 4초, 2초로 간격을 잡고 다른 곳은 3초, 3초, 1.5초로 잡은 이유를 묻는다면, 자의적 선택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 작곡가는 프랙털을 활용해 작곡했지만, 음악을 들었을 때 수가 연상되지 않는 것을 이 곡의 묘미로 꼽았습니다. 밀물이 서서히 차오르는 밤바다의 크고 작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음악의 분위기를 묘사했죠. 피아노를 연주한 박진형 피아니스트는 “선율이 이어지지 않고 음이 조각조각 살아있는 느낌이 프랙털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작곡가는 프랙털 이외에도 알고리듬, 불확정성의 원리 등을 이용해 과학과 음악을 엮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모든 곡을 작곡할 때 항상 수를 계산한다고 하네요.

 

_ 인터뷰

김택수 작곡가 

 

 

“사회가 만든 틀을 깨면 새로운 세상이 보여요”

김택수 작곡가는 1998년 국제 화학 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을 땄고,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과학 영재입니다. 이후 서울대 작곡과에 다시 입학해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인디애나 음악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의 음악대학 교수죠. 

 

안녕하세요, 김택수입니다. 과학을 하다가 어떻게 음악으로 넘어갈 수 있냐고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두 분야 모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4살부터 피아노를 쳤고 7살에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과학고에 진학해서도 취미로 항상 피아노를 쳤습니다. 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할 때도 종교 음악 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죠. 돌아보면 제 삶에서 과학과 음악을 배우고 즐기는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작곡을 잘하려면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저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덕분에 작곡할 때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수학·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예술을 서로 다른 분야로 여긴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피타고라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과학자가 과학과 음악을 모두 가까이했죠. 여러분도 편의상 나눠진 분야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길 바랍니다.

 

안성민 작곡가의 ‘L.A.S.S.14’, ‘L.A.S.S.1-20’
소설 속 수학이 하프 선율로~

 

‘1, 11, 21, 1211, 111221, 3a12211, 13112221, 1113213211···.
위와 같은 수열에서 9번째에 올 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선 위와 같은 문제가 나옵니다. 소설에 등장해서 유명해진 이 수열의 원래 명칭은 ‘읽고 말하기 수열’입니다. 앞의 항의 수를 연속한 같은 수의 개수로 묶어 읽는 방식으로 다음 항을 구합니다. 첫째 항이 1이면, 둘째 항은 첫째 항에 1개의 1이 있다는 뜻인 11, 셋째 항은 둘째 항에 2개의 1이 있다는 뜻인 21로 진행됩니다. 국내에선 소설 ‘개미’를 통해 널리 알려져 이 수들을 ‘개미수열’로 부릅니다.


안성민 작곡가는 개미수열을 활용해 ‘L.A.S.S.14’와 ‘L.A.S.S.1-20’ 두 곡을 만들었습니다.

‘L.A.S.S.14’는 1을 시작으로 만든 개미수열 14항의 수 64개를 이용한 곡입니다. 1로 시작하는 개미수열에는 1, 2, 3 이외의 수는 나타나지 않는데요, 안 작곡가는 1, 2, 3에 자신이 좋아하는 화음을 적용한 뒤, 그 위에 자유롭게 만든 선율을 얹어 아름다운 하프 연주곡을 완성했습니다.


‘L.A.S.S.1-20’는 1을 시작으로 만든 개미수열을 20항까지 구해서 적용했습니다. 수열에서 수의 개수에 해당하는 1, 2, 3과 수에 해당하는 1, 2, 3을 구별해서 총 6개의 다른 음을 각 수에 대응시켰죠. 개수에 해당하는 수 1, 2, 3에는 각각 솔, 레, 파가 들어갔고 수에 해당하는 1, 2, 3에는 시, 라#, 도#이 들어갔어요. 6개의 음으로만 곡을 구성했을 때의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음역을 넓혀서 곡을 구성하니 훨씬 풍성한 음악이 나왔답니다.

 

 

 

수학이 주는 무궁무진한 영감


안 작곡가에 따르면 결과물로써 음악은 수학과 관련이 없어 보여도 실제 작곡 과정에는 수학적 논리를 다양하게 적용합니다. 이번 과학×음악 콘서트에서도 작곡 과정에 녹아있는 수학을 청중과 공유하고 싶어 개미수열을 활용한 곡을 썼다고 해요. 다른 수열과 달리 개미수열은 간단하고 직관적인 논리로 구성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쉽게 다음 항에 들어갈 숫자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수열에 관심이 많은 안 작곡가는 피보나치 수열을 이용한 곡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곡을 작곡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안 작곡가는 곡을 쓰기 위해 직접 개미수열의 20항까지의 값을 구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16항부터 수의 개수가 100개가 넘어가면서 오류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항은 무려 302개의 숫자로 구성돼 있다고 하네요.


사전 녹화 현장에선 개미수열 14항의 숫자를 이용한 곡 ‘L.A.S.S.14’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곡을 듣기 전까지는 개미수열이 음악에 어떻게 녹아있을지 예상할 수 없었고, 수열이 과연 ‘음알못’인 제 귀에 들릴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하프의 선율 아래 균형을 잡아주는 개미수열의 화음이 들리더군요. 수학을 적용한 음악이라 더 감미롭게 들리는 건 제가 수학동아 기자여서 그런 걸까요?

 

음알못에겐 무척 신기한 경험이었는데요, 과학×음악 콘서트는 1월 4일 유튜브 채널 ‘유못쇼’에 공개됩니다. 여러분에겐 어떻게 들릴지 궁금하네요.
과학×음악 콘서트를 감상하고 감상평을 폴리매스 홈페이지 해당 게시판에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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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1월 수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김연진 기자 기자
  • 디자인

    오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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