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기술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생 기업인 ‘스타트업’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왔다.
한 번도 발을 담가본 적 없는 누군가에겐 미지의 세계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전쟁터 같을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학과 함께 만나보자.
역전을 위해, 다시 빛나기 위해, 빚을 갚기 위해 등 저마다의 이유를 가진 청춘들이 스타트업에 도전한다! 드라마 ‘스타트업’은 제목 그대로 성공을 꿈꾸며 스타트업에 뛰어든 청춘들의 성장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수많은 성공 신화와는 달리 실제 여정은 쉽지 않다. 세상을 바꿀 CEO가 되겠다며 무작정 스타트업에 도전한 서달미와 천재적인 코딩 실력이 있지만 기나긴 실패의 경험으로 자존감이 낮아진 남도산이 만나 이끄는 스타트업 ‘삼산텍’은 앞으로도 계속 제자리에 있을 것만 같다.
위기나 기회를 만나면 머리를 질끈 묶으며 투지를 불태우는 달미와 별자리나 혈액형 따위로 운세나 성격을 예측하는 걸 싫어하는 전형적인 이과 성향의 도산이 만드는 스타트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지도 없이 항해하듯 그들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네 주인공의 이야기를 수학과 함께 살펴보자.
코딩 천재로 거듭난 수학 천재 남도산의 최애는?
제15회 한국수학올림피아드에서 최연소 금상을 받은 수학 천재 남도산은 이과 감성 뿜뿜하는 공대 철벽남으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연애도 이공계 개그도 아닌 인공신경망 짜기라는데?!
남도산은 천재적인 코딩 실력을 발휘해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서비스에 이어 필적을 감정하는 인공지능을 만든다. 사람의 두뇌와 비슷한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인공신경망에 데이터를 학습시켜 인공지능을 만드는 기계학습 기술을 이용해서 말이다. 도산이 설명하는 기계학습에 대해 알아보자.
이미지를 분류할 때 주로 사용하는 기계학습 기술은 2014년 구글 브레인의 컴퓨터과학자 이안 굿펠로우가 처음으로 제안한 ‘GAN(생성적 적대 신경망)’ 알고리듬이다. 예를 통해 그 원리를 알아보자.
지폐 위조범과 경찰이 있다. 위조범은 경찰이 알아챌 수 없도록 진짜 같은 가짜 지폐를 만든다. 가짜 지폐를 발견한 경찰은 처음엔 속겠지만 위조지폐를 구별하려는 계속된 시도를 통해 결국 가짜 지폐를 가려낸다. 한편 경찰이 가짜 지폐를 선별해냈다는 사실을 안 위조범은 더 진짜 같은 가짜 지폐를 만들고, 또다시 경찰은 가짜 지폐를 가려내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이처럼 경쟁하며 둘 다 실력이 높아지는데, 이럴 때 ‘적대적’이라고 한다.
GAN 알고리듬도 위조범과 경찰처럼 두 개의 적대적인 인공신경망을 사용한다. 위조범의 역할을 맡는 생성 신경망은 무작위로 만든 데이터를 받아 학습한 뒤, 받은 데이터와 비슷한 가짜 데이터를 만든다. 경찰 역할의 판별 신경망이 가짜 데이터를 진짜 데이터로 오해할 정도가 되면, 판별 신경망은 생성 신경망의 데이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더 잘 가려낼 수 있도록 학습한다.
이때 두 신경망의 성능을 판단하는 기준은 ‘확률’이다. 진짜와 가짜 데이터의 확률 분포 그래프를 비교해서 진짜 데이터일 확률의 함숫값을 구하는데, 이 값이 0.5가 될 때까지 두 인공 신경망의 학습을 계속하면 판별 신경망은 더이상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즉 이 시점에서 생성 신경망이 만든 가짜 데이터가 진짜 데이터의 분포 그래프와 같아지게 된다.
우당탕탕 삼산텍의 미래는 수학에 달렸다!
남도산의 이름을 딴 ‘도산텍’부터 시작해 도산의 친구 용산, 철산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스타트업인 삼산텍이 됐지만, CEO도 겨우 데려올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다. 이런 삼산텍에 필요한 건 바로 ‘수학’이다!
“1부터 100까지 더하는 계산법을 창의적으로 해결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처럼 스타트업 운영은 문제를 발견하고, 모순을 정의한 뒤 사고를 전환해 해결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2014년 열린 ‘스타트업 네이션스 서밋’에서 스타트업의 업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우스는 만 7살 때 1과 100, 2와 99, 3과 98처럼 수를 둘씩 짝지어 합이 101인 쌍 50개를 더하는 방법으로 수학 공식은 사용하지 않고 문제를 풀었는데, 김 의장은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스타트업 업무에도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성공적인 스타트업을 분석하거나 필요한 기술을 선별, 선점할 때 수학이 유용하게 쓰인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산업수학혁신센터에서는 산업 현장의 어려운 문제를 수학적 이론과 분석방법으로 해결하는 ‘산업 수학’으로 스타트업이 겪는 금융이나 바이오, 제조업 등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한다.
수학자면서 스타트업 창업에 성공한 사례도 많다. 위상수학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수학자 군나르 칼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수학과 명예교수는 “뻔한 여생보다 예측 불가능한 도전을 선택하겠다”며, 2008년 빅데이터 분석 기업 ‘아야스디’를 창업했다. 위상수학의 성질을 그대로 적용해 만든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매퍼’를 통해 데이터를 도형으로 나타내고, 그 도형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분석한다. 이 방법으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계산하고 당뇨병 처방까지 내놓으면서, 설립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115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외에도 구글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도 응용수학 박사과정 중 창업했으며, 천정희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 역시 개발한 암호 기술로 ‘크립토랩’이라는 스타트업을 세웠다.
삼산텍의 미래, 수학으로 예측할 수 있다?
2020년 1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어떤 스타트업이 성공하는지 수학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모레노 보나벤투라와 발레리오 치오티 영국 퀸메리대학교 수학과 연구원들은 다른 스타트업과 관계가 많은 스타트업이 성공한다는 가정 아래, 빅데이터를 분석해 스타트업들 사이의 관계를 정리했다. 각 스타트업은 점으로, 직원이나 기술처럼 기업 사이에 자원이 이동하는 과정을 선으로 나타낸 ‘네트워크 그래프’를 그려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각 스타트업이 얼마나 많은 연결선을 만드는지, 어떤 스타트업이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지를 계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매출의 성장 속도를 예측하는 모형을 만들었다.
그 결과 실제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스타트업의 성장 속도와 비슷한 예측 결과를 얻었다. 이 모형을 활용하면 스타트업의 성장 정도를 미리 분석할 수 있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털 회사가 전략을 세울 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아직 서달미와 남도산이 이끄는 삼산텍은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아직 이야기는 진행 중인 만큼, 쟁쟁한 스타트업 사이에서 당당히 중심을 꿰차고 성공 가도를 달릴지 지켜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