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수학자 김민형 교수님이 2020년 3월 세계 최초로 수학대중화 석좌교수가 됐습니다. 영국 워릭대학교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연구 중이던 김 교수님을 초빙하기 위해 의미있는 교수 자리를 새로 만든 겁니다.
이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김 교수님께 인터뷰를 요청했고, 고등과학원에서 만났습니다. 앞으로 김 교수님은 어떤 활동으로 수학대중화에 힘쓸까요?
“한국에 있습니다. 고등과학원에서 만날까요?”
인터뷰를 할 수 있을지 이메일로 연락하자 김민형 교수님께서 반가운 답변을 주셨습니다. 때마침 영국에서 돌아와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를 마치고 고등과학원에 나오고 계셨거든요.
고등과학원은 정부에서 서울에 만든 수학과 물리학 분야의 연구 기관으로, 김 교수님은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석학교수로 매년 여름과 겨울에 고등과학원을 방문해 젊은 학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대중강연을 비롯한 수학대중화 활동을 합니다.
7월 9일 오후 고등과학원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님은 축하드린다는 인사에 “수학대중화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이 워릭대와 맞아서 옮기게 됐다”며, 언제나처럼 활짝 웃으며 맞아주셨습니다.
학문과 대중화의 본고장에서 인정받은 실력
겸손하게 말했지만 세계 최초로, 그것도 영국의 명문 대학교에서 수학대중화 석좌교수가 된 것은 한국 수학계에도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석좌교수란 탁월한 업적을 이룬 학자가 원하는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대학에서 지정한 교수직을 말합니다.
워릭대에서는 김 교수님을 영입하기 위해 일부러 수학대중화 석좌교수라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공식 명칭은 ‘대수학, 기하학 및 대중의 수학 이해에 관한 크리스토퍼 지먼 석좌교수’입니다. 김 교수님의 학문적인 업적과 수학대중화 활동을 같은 중요도로 평가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크리스토퍼 지먼은 워릭대 수학과의 초대 학과장으로, 수학대중화를 중요하게 생각한 수학자였습니다.
김 교수님은 “한국에서 펼친 수학대중화와 관련된 활동을 업적의 일부분으로 인정해 준 워릭대 측에 고맙다”면서,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연구와 수학대중화 활동을 병행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수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리는?
김 교수님에게 수학대중화란 어떤 의미일까요? 김 교수님은 “세상에 대해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수학과 세상이 어떤 관계가 있기에 수학을 알면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걸까요?
김 교수님은 대뜸 “수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리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기자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혹시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아닐까요?”라고 답하자, 맞다며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가장 중요한 정리라고 생각한다”며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김 교수님의 관점에서 약 2500년 전에 만들어진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오늘날 정보혁명의 근원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두 변의 길이를 각각 제곱한 뒤 더하면 나머지 빗변의 길이를 제곱한 것과 같다’는 이 정리를 통해 거리라는 개념을 숫자 정보로 표현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두 점 사이의 거리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구할 수 있죠.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시작으로 인류는 많은 대상을 수로 표현해 누구나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정보로 만들었고, 오늘날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김 교수님은 나아가서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정보로 나타낸 게 더 근본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의 몸도 정보를 토대로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물체를 본다는 것은 눈으로 들어온 빛이 시신경을 자극하고, 거기서 생겨난 전기 신호가 뇌로 흘러가서 각종 계산을 한 결과입니다. 손으로 만져서 느껴지는 감촉도 마찬가지죠.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정보를 통한 계산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이처럼 세상의 근본이 ‘정보’라면 정보를 처리하는 원리를 다루는 학문인 수학 없이 세상을 명확히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라는 게 김 교수님의 의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수학을 널리 알리는 일을 10년 동안이나 해온 것이고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세요!
이처럼 수학대중화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활발히 활동하는 김 교수님이지만 “특별히 거창한 사명감이 있어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대중과 대화하는 게 즐거워서”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울까요?
김 교수님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즐거워하면 좋아하잖아요”라며, 영화 감독에 비유했습니다. “강연하다 보면 청중이 ‘수학을 이해했다, 재미있다, 아름답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머리에 불이 딱 켜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 즐겁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때로는 수학대중화 활동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김 교수님은 “연구에 방해가 될 때도 있지만, 도움이 될 때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설명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생각이 더 명료해지는 경험을 한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님은 수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조언해 주셨습니다.
“내가 수학을 잘한다 혹은 못한다는 것에 집중하지 마세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학을 공부한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누구보다 잘한다거나 누구보다 못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