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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체험] 박영용 씨젠생명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수학으로 더 정밀한 질병 진단 돕는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최근에는 피검사만으로도 다양한 질병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런 검사를 ‘체외진단검사’라고 합니다. 체외진단검사에 쓰이는 시약을 만드는 회사에서 활약하는 수학자가 있어 만나봤습니다.

 

진단 시약이 뭔가요?


제가 일하는 씨젠은 분자 진단 시약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몸에서 채취한 검체에 질병과 관련 있는 유전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시약을 만드는 거죠. 예를 들어 독감은 종류가 다양해요. 각각의 독감 바이러스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유전자 염기서열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면 어떤 독감에 걸렸는지 알 수 있어요. 그런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는 약물이 ‘시약’입니다. 


씨젠에서는 식중독과 장염을 일으키는 노로 바이러스에서부터 성병, 호흡기질환 등 다양한 질병의 분자 진단 시약을 만들고 있어요. 분자 진단을 통해 질병을 정확히 진단해서 적절한 약을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질병을 확인하나요?


병과 관련한 유전자 염기서열을 증폭시키는 거예요. 예를 들어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를 확인한다고 해볼게요. 분자 진단 시약에는 그 바이러스에만 있는 유전자 염기서열에 달라붙는 탐지 성분이 들어 있어요. 환자의 몸에서 채취한 검체를 시약에 넣은 뒤 유전자를 복제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해당 바이러스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있으면 바이러스에만 있는 특수한 염기서열에 시약의 탐지 성분이 달라붙게 되고, 이런 경우에만 복제가 일어나거든요. 즉 바이러스가 있으면 유전자의 양이 늘어나 시약에 빛을 쐈을 때 흡수된 뒤 방출되는 빛의 세기가 이전과 다른 값이 나오죠. 이런 방식으로 질병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분자 진단과 수학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분자 진단 자체는 생물학적인 원리지만, 결과를 분석하는 부분에는 ‘수학’이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검체를 시약에 넣은 뒤 측정한 결과는 그래프로 나타나요. 검사하고자 하는 질병이 없으면 그래프는 마치 y=1과 같은 상수함수처럼 별 차이 없는 직선 모양이에요. 


하지만 병에 걸렸을 경우 처음에는 증가량이 적다가 증가량이 커진 뒤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다시 변화가 거의 없는 마치 S자와 비슷한 모양의 그래프가 됩니다. 이런 특징을 이용해 저는 분자 진단 시약의 분석 정확도를 높이는 알고리듬을 개발했어요. 

 

 

진단 정확도는 어떻게 높였나요?


이전에는 그래프가 증가하다가 특정 값보다 커지면 질병이 있는 것으로 봤는데, 이렇게 할 경우 오류가 생길 수 있어요. 이물질이 섞여 들어가거나 시약에 생긴 기포가 터지면서 일시적으로 측정값이 커졌다가 작아질 수 있거든요. 그러면 건강한데도 병에 걸렸다는 판정을 내리게 될 수 있죠.


그래서 그래프가 특정 값보다 커지는 것과 관계없이 그래프의 모양을 분석해서 질병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알고리듬을 만든 거예요. 질병이 있을 때 시약에서 유전자가 증폭되면서 나타나는 그래프는 인구 증가를 설명하는 수학 모형의 해가 그리는 그래프와 아주 유사하다는 점에서 착안했죠. 즉 제가 만든 알고리듬은 측정 결과가 이 그래프와 얼마나 유사한지 일치율을 비교해서 질병이 있는지를 확인한답니다.


30만 건 이상의 실험 데이터를 이용해 기존 분석 방법과 비교한 결과 기존 방식에서 발생하는 판정 오류를 99% 이상 제거하는 성능을 보였습니다. 현재 씨젠에서 판매하는 최신 진단 시약은 이 알고리듬을 적용해서 분석하고 있어요. 

 

수학이 필요한 영역이 또 있나요?


분자 진단 시약을 개발하는 부서에도 수학 전공자가 일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특정 질병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면서 다른 질병에는 없는 염기서열을 찾기 위해 유전자 염기서열을 종이에 출력해서 벽에 붙여놓고 눈이 빠져라 쳐다봤는데,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어요. 인공지능으로 분석해서 해당 질병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염기서열을 찾아내고, 거기에 적합한 시약을 디자인하고 있답니다. 여기에 수학이 쓰이죠.


그밖에도 수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저는 시약을 제조하는 생산 담당 부서에서 요청을 받고 생산량을 예측하는 모형을 만들기도 했어요. 제품의 생산 효율을 높이는 데에도 수학이 도움을 줄 수 있죠.

 

 

대학원에서 하던 연구와 관련이 있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대학원에서 자연 현상이나 기계 같은 물리적인 대상의 움직임을 모형으로 만들고 시뮬레이션해서 어느 시점에 어떤 형태로 변할지를 예측하는 연구를 했어요. 회사에서 하는 일은 대학원 연구와 관련은 없지만 논문을 읽고 수식을 분석하는 훈련이 돼 있고, 코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대학원 연구보다는 수식이 단순하지만 이상적인 상황이 아닌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에 예외 사항이 많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생명과학 분야에서 수학 전공자가 갖는 장점은 뭔가요?


처음에는 제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이전에는 못했던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수학 전공자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거예요.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수식을 많이 부담스러워 하는데, 저는 수식을 이해하거나 새로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하다는 강점이 있는 것 같아요.


생명과학이나 화학 지식이 없다고 걱정하지는 않아도 돼요. 어차피 수학 전공자가 화학이나 생명과학 전공자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의사소통에 필요한 수준의 지식은 회사에 와서 배워도 충분합니다.

 

어떻게 생명과학 분야에서 일하게 됐나요?


처음부터 이 분야로 오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 수학을 가장 잘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학과로 진학했어요. 수학과에 가서는 그냥 회사에 취직하기보다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연구원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딴 뒤에는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것보다는 실제적인 연구를 하고 싶어서 기업에 취직해 연구하게 됐어요. 생명과학 분야의 기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우연히 제안을 받아서 일하기 시작했죠. 
수학은 분야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제한을 두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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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1월 수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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