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한양의 문제적 여인 구해령. 알고 싶은 것을 공부했을 뿐이고, 아는 것을 말했을 뿐인데 해령의 행동은 모두 문제가 된다! 누군가의 아내로 숨죽여 살지 않고, 출세한 신여성으로서 역량을 펼치며 살고자 하는 해령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중종 14년 4월 22일, 왕이 신하들과 아침에 함께 공부하는 조강 시간에 동지사(종2품 관직) 김안국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여자 사관을 둬서 임금의 안방 사정까지 역사에 천년만년 남기자는 것이었다. 입시를 치러야 될 수 있는 사관은 궁궐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왕과 관련된 모든 대화를 기록하는 사람을 뜻한다.
중종은 여인들은 글을 잘 모르며 사관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핑계를 대면서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이 대화는 사관이 그대로 기록했고, 오늘날 왕과 신하의 신경전을 엿볼 수 있는 사료로 남았다. 만약 그날, 중종이 김안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성 사관 제도가 정착됐다면 어땠을까? ‘신입사관 구해령’은 이런 가상의 설정에서 탄생한 드라마다.
주인공은 단연 호기심이 많고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뛰어난 구해령이다. 그러나 여자로 태어나면 현모양처가 돼야 할 조선에서 책 읽는 것만 좋아하고 결혼에는 관심 없는 해령은 그저 집안의 문제아일 뿐이다.
어느 날 서점에 간 해령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는 매화 선생의 연애소설을 읽는다. 하지만 제아무리 조선 바닥을 뒤흔들었다 해도 해령에겐 그저 쓸모없는 글이다. 그러던 중 해령과 매화는 책방에서 우연히 만난다. 하지만 해령은 그가 매화인 줄도 모르고 그의 소설을 실컷 욕한다. 그렇게 둘의 악연은 시작되고, 이 둘은 해령이 사관이 되고 나서도 끊임없이 얽히게 된다.
여기서 잠깐! 집안의 골칫덩어리 해령은 어떻게 사관이 됐을까? 그 과정 또한 다사다난하다. 해령의 뛰어난 수학 실력이 드러난 일화를 보며 신입사관 구해령의 지금까지 이야기를 살펴보자.
뛰어난 연산 실력은 물론 천문학 이론에 빠삭해 지금이라면 학계를 뒤흔들 만큼 박학다식한 해령이지만, 시대를 참 잘못 타고 났다. 그저 여자란 빨리 결혼해서 사내아이를 낳아 기르며 서방님 말씀에 ‘맞습니다’만 외치면 되는 조선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특출난 재능에도 해령은 별종 취급만 받을 뿐이다. 여느 때처럼 따분한 아녀자 수업이 있는 날, 오늘은 하필 사내아이 낳는 날짜 계산법을 배우는 날이다.
신진 과학 지식을 섭렵한 해령은 누구보다 자연의 이치는 인간이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 해령에겐 아들 낳기 좋은 날을 계산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고, 수업은 그저 시간 낭비다. 그러니 수업내용이 영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전혀 집중을 못 하며 멍때리고 있는 이때 해령에게 선생이 사내아이 잉태 날을 찾는 질문을 한다. 하지만 해령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셈법 자체는 해령에게 식은 죽 먹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갑을, 병정, 경신’과 같은 용어는 역사책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십간’과 ‘십이지’로 날을 나타내는 단위다. 십간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로 10개고, 십이지는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로 12개다. 십간과 십이지에서 하나씩 골라 조합하면 날짜가 된다. 각각 첫 번째를 조합한 ‘갑자’를 시작으로 ‘갑자, 을축, 병인, …, 계유, 갑술, 을해, 병자, …, 임술, 계해’ 순서로 나타난다. 10과 12의 최소공배수가 60이니, 총 60개의 조합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육십갑자’라고 한다. 61세의 생일을 ‘환갑’이라 하는 이유는 바로 갑자가 돌아왔다는 의미다.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셈이지만, 되려 해령은 호되게 혼난다. 조선의 아녀자란 재주가 있어도 숨기고 아는 것이 있어도 모른 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령은 이런 현실이 답답하고 숨 막힌다. 결국 집안에서 잡아 놓은 혼례 전날, 해령은 예비 신랑에게 본인을 뻥 차줄 것을 부탁하고 여자 사관 별시에 응시해 시험을 치르러 간다.
문제가 등장하자마자 거침없이 답을 써 내려가든 미리 뒷돈을 주고 답지를 건네 받든 응시자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바빴다. 그런데 해령만 문제가 잘못됐다며 한참 고민하더니, 별안간 그림을 그려나간다. 커다란 원을 그리더니 이내 작은 원을 하나 더 그리고 두 원을 잇는 선분을 쭉쭉 긋는다. 그리고는 문제가 잘못됐다는 글을 썼다. 당연히 이 글은 심사위원은 물론 왕의 심기를 건드린다.
왕은 해령을 불러 답에 대해 묻는다. 이에 해령은 맹랑하게도 일식과 월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달은 지구 주위를 돈다. 서로 돌다 보면 지구, 달, 태양이 일직선에 놓이게 되는 때가 생기는데, 이때 달이 태양을 가려 지구에서 태양이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런 현상을 ‘일식’이라 한다. 또 ‘태양-지구-달’의 순서로 세 개가 일직선에 놓일 때도 있다. 이때는 밤하늘에 달이 떠 있다가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 달이 보이지 않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월식’이라 한다.
천문학에 빠삭한 해령에게 문제는 당연히 이상했다. 일식과 월식은 하늘의 꾸짖음이 아닌 천체의 운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자연 법칙으로, 제갈량이 살아 돌아와도 막을 방도가 없다.
그러나 신문물과 서양의 지식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는 궁중이 이 정도 과학적 상식을 모를 리 없다. 다만 하늘이 평소와 다르면 과학은커녕 글도 못 읽는 백성 대부분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기 안타까워 왕실은 굿을 해 백성들을 안심시키곤 한 것이다.
다소 무엄한 답을 쓴 해령이지만, 뛰어난 과학 실력 덕분에 해령은 마침내 여성 사관이 된다. 실력을 인정받아 궁으로 출근한 지 얼마 안 돼, 그냥 좀 잘 사는 선비인 줄로만 알았던 소설 작가 매화가 다름 아닌 왕실의 숨겨진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드라마는 해령이 사관으로 일하며 겪게 되는 일과 함께 해령이 도원대군의 정체를 알게 된 후에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드라마에서 직접 확인해보자!